10월 28일 서울시민 김면운(편지에서 윤치호를 거론한 걸로 보아 아마 노인이었던 듯)은 하지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을 받았다.
10월 15일 김면운은 서울에 주둔한 하지 사령관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 편지는 리차드 힐리 대위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10월 22일 하지에게 전달되었다.
편지는 긴 인사말로 시작됐다.
"장군께서는 한국에 오신 이후 다방면에서 우리 국민들을 위해 활동하고 계십니다. 진정 대단히 고맙습니다.
장군께서 보셨듯이 한국은 본래 박애화 홍익, 예의와 지혜가 넘치는 땅이며 이곳의 백성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에게 우애하며 국가에 충성하고 상하 계급 간에는 믿음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성은 매우 점잖고 선량합니다."
인사말을 건넨 김면운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친일파를 멀리할 것을 충고하면서 그 예로 윤치호를 거명했다.
"장군께서는 한국에 처음 오신 만큼 당신께서 대면하는 한국인들을 통해서만 한국을 이해하고 계실 것입니다...그런 인물 가운데 한국 관리를 했던 윤치호라는 인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부유하고 원로로 꼽히고 있습니다. 젊어서 미국에서 유학했고 평화와 정직함을 사랑하는 미국인들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 같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본인에게 매수되었습니다. 그 결과 과거 그의 행적은 비열하고 맹종적이었습니다.
김면운은 미군정의 관리 임용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요즘 경기도청에서는 다수의 공무원에 대한 해임과 임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 중앙청과 서울시청 각 국에서도 미군정 국장대리와 자문역이 임명되고 있고 군수와 경찰서장도 임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임용 기준은 무엇입니까? 이들 일부는 국민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지만 대다수는 돈의 힘으로 국장 자리를 차지한 자들이며 또 다른 다수는 친일인사들입니다...친일파가 고위직을 차지하니까 그 친일 관리의 추천으로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일 세력 인물들이 잇달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면운은 친일파의 모함으로 오히려 참신한 공직자가 친일파로 몰려 해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부당한 임용 사례들을 제시했다.
"친일파 세력들이 처신이 능숙해서 미군정청의 미국인들도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고 있습니다. 친일파들은 심지어 지금도 일제 통치 때와 동일하게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일제 때 총무국장이었던 현 서울부시장(김장용, 10월 11일 임명)은 자신의 안일만을 추구했던 아주 나쁜 공직자였음에도 고위직을 차지했습니다. 어떤 지방 읍장은 지난 8월 30일까지도 매일 정오 때마다 일본의 안녕을 기도드렸던 인물입니다.
사령관 각하, 한국을 세심하게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정직하게 다스리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지난 36년 동안 일본과 친일파들로 인해 고통을 받아온 우리들은 행복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비다. 제가 드린 말씀이 도움이 된다면 저의 행복일 것입니다."
하지 사령관은 10월 27일 답장을 보냈다.
"친애하는 김면운 씨,
편지에 감사드리며 귀하가 몇몇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본인의 주의를 환기해주신 데 대해 특히 깊은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귀하가 제공한 정보는 보다 완벽하게 보완되어야 합니다. 그 후 이를 근거로 단호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귀하가 편지에서 언급한 관련자의 이름과 구체적인 사실, 일시와 행위 내용을 알려주신다면 향후 의사결정에 귀하의 조언을 지침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윤치호는 당시 이미 80세의 고령으로 9월 23일 군정장관 아놀드에 의해 조선총독부 자문기관 중추원이 해체되면서 중추원 고문직에서 파면되어 미군정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의 상황에서 평범한 서울시민 김면운은 이러한 상황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총독부의 총무국장을 역임했던 인물이 해방이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서울부시장의 자리에 오른 것은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대한 공식적 문제 제기는 평범한 서울시민 김면운을 제외하고는 없었던 듯하다.
충실한 공직자답게 하지는 서울 시민의 민원을 무시하지 않고 답신을 보냈다. 그는 김면운에게 관련자의 행적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자세한 정보를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시민 김면운에게는 이를 해낼 역량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는 한나절도 걸리지 않아 김장용의 구체적 친일행적을 다 살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하지는 김장용의 친일행적에 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정보를 모두 알고 있었고 그의 관료 경험을 높이 사서 그를 서울부시장에 임명한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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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입니다~
혼란한시기에 구체적인 사례로 그당시 인사정책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네요..그래서 예전에 반민투위도 활동도 제대로 못하고 중단되어 친일파가 지금까지도 승승장구하고 있네요..
이 시기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대개 미군정이 친일파를 등용했다로만 서술되어 있어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열씸히 찾아보았습니다. 제 의도를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반민특위가 와해된 것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때 친일파 문제가 잘 처리되었다면 친일문제로 인한 국론 분열은 없었을 텐데요.
하지만 지금도 친일파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일제 때 부역한 사람들 중 많은 숫자가 6.25를 거치면서 제거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우리사회의 분위기가 친일파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제거되지 않은 친일파들도 사회분위기에 따라 자숙했고 자신의 친일을 내세우거나 친일 세력을 규합하거나 세력화하지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 태어난 세대는 학교의 공교육에 의해 철저히 반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만 해도 공교육 전과정에 걸쳐(반공은 고딩 때까지만) 반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금 뉴라이트들이 친일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나친 반일이나 혐일에 대한 일종의 반동이라 생각합니다. 이들이 우리 사회를 친일로 이끌어 갈 정도의 능력자들도 아니고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슈 렉 국힘 등 정치권이 친일파여서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본과의 관계 회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일본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된 이유에는 문재인정부의 과한 반일정책이 작용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기에 관계회복을 위한 선제적 시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윤정부의 매끄럽지 못한 방식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한국처럼 일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강한 나라에서 무슨 토착왜구가 있겠나요?
저는 이런 허상적 프레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제가 오래 살다보니, 그래서 어쩌다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보수 쪽 사람도 구경해 봤지만 토착왜구를 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미군정의 혼란된 인사에 대해 구체적 사례를 든 것은 해방 이후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자는 의도입니다.
그때 우리가 참 이런 슬픈 역사를 보냈구나 하는 정확한 인식요.
하지만 이때의 역사가 지금의 친일파론으로 계승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때 처단되지 않은 친일파가 우리 사회에서 계속 일본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고 하면 여전히 문제가 되겠지만 다행히 8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의 흔적은 시간이 지날 수록 지워졌고
@슈 렉 이제 우리는 일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발전했습니다.
다만 제가 원하는 바는 그때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이 다른 분들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저런 문어체 펜글씨 문서를 추방한게 5.16 세력들.
타자기 갖다놓고 짧게 끊어쓰고. 요약해서 괘도 만들고...덕분에 저도 국민학교때 매직으로 괘도 꽤나 만들었습니다.그 시대엔 나름 시청각 교육.
인터넷으로 다들 글을 잘쓰는 시대인데, 문장들이 다시 길어진것 같기도... 읽다 보면 무슨 말인지 다시 읽다가 그냥 포기.ㅎㅎㅎ
I am 헷갈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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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각해보니 다 외울때까지 집에 안보냈던 국민교육헌장은 무쟈게 길었군요.
나는 오후반이라 밖은 컴컴해지고 외워지진 않고.
레인저님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저는 반에서 1등으로 외우고 집에 감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