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장 魔敎戰王의 傳說 1 황촉불 아래에서 백리강의 얼굴은 짙은 음영을 드리운 채 그린 듯 뚜렷한 윤곽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지금 뭔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의 맞은편 의자엔 섬연한 체구를 지닌 미모의 여인이 한참 수를 놓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여인(女人), 마치 활짝 핀 장미처럼 눈부신 미모를 지닌 그녀는 바로 목소홍이었다. 세월은 목소홍에게 일단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순진하고 깜찍한 소녀가 어느새 성숙한 여인으로 변해있는 것이다. 지금 그녀는 새로 만든 백리강의 옷 위에 열심히 수를 놓고있었다. 백리강은 이때 탁자 위에 중원지도를 펴놓은 채 골똘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무언가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때 목소홍이 문득 손을 멈추고 백리강을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번…… 일은 무척 어려운 모양이군요?" 백리강은 퍼뜩 상념에서 깨어나며 싱긋 웃었다. "왜…… 그렇게 보이느냐?" 목소홍은 은은히 얼굴을 붉혔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 백리강은 그녀를 지그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미…… 주여설에게 회답을 보냈다. 천룡단과 마교는 이제 합쳐진 셈이지. 또한 지옥부의 총단 위치 역시 알아냈다. 남은 것은 누가 이기느냐 하는 승부 뿐……" 백리강은 펼쳐 놓았던 중원지도를 접어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내일 아침…… 우리는 지옥부 총단을 총공격할 것이다." 백리강의 두 눈이 불같은 신광을 뿜어냈다. "승률은 백(百)……! 반드시 우리가 이긴다! 지옥부를 일거에 쓸어 버리고 말것이다!" 그의 전신에선 이 순간 누구도 항거치 못할 가공할 기도가 뻗치고 있었다. 가히 일대 종사다운 풍도가 아닐 수 없다. 목소홍은 한동안 그의 모습을 눈부신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문득 그녀는 생각난 듯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 백리강은 다시 상념에서 깨어나 그녀를 응시했다. 그러자 목소홍은 부끄러운 듯 수줍게 수중의 옷을 내밀었다. "출정 때 이 옷을…… 입으세요." 백리강은 뜻밖인 듯 눈빛을 빛내며 그녀가 내민 옷을 받아 들었다. 그것은 흑의로 가슴에 금실로 단 두 글자가 수놓여 있었다. <전왕(戰王).> 백리강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전왕? 이게 무슨 뜻이지?" 목소홍이 수줍게 웃었다. "그건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마교의 전설이예요. 언제고 마교의 후예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 나올 것이라고 했어요. 삼태혈성을 지니고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을 지닌 그런 사람이 말이예요…… 마교에선 그 전설의 인물을 칭하여 마교전왕(魔敎戰王)이라고 불렀어요." "……" "마교의 제자들은 바로 대지존이 전설의 마교전왕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들에게 있어 대지존은 신과 같은 존재죠." "마교전왕이라…… 아무래도 너무 날 높이 평가하는 것 같군. 하여간 그동안 열심히 만든 옷이 바로 내 것이었다니 고맙다! 소홍." 목소홍은 기쁜 얼굴로 발그레 홍조를 띄웠다. 이어 그녀는 적이 망설이는 듯하다가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그동안 대지존의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 목소홍은 백리강이 빤히 응시하자 홍조띤 얼굴을 푹 떨구었다. 그리고는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수줍게 입을 여는 것이다. "그때 마교 내에서 그 일…… 대지존께서 왜…… 소녀를 거부하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그녀는 사 년 전 일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실로 꼭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소홍……!" 백리강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목소홍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그를 향해 생긋 웃어 보였다. "꼭…… 이기세요. 기다리고 있겠어요." "……!" 백리강은 스르르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두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소홍, 오늘 따라 더욱 아름답구나." "……!" 목소홍, 그녀는 흡사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아…… 름답다고……? 내가……) 그녀의 옥용이 사르르 붉어지고 두 눈은 꿈꾸듯 몽롱한 빛을 발했다. (아아…… 대지존께서…… 나를……) 그러나 그녀의 상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백리강의 입술이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덮쳐 버린 것이다. (아아……) 입맞춤은 길고도 길었다. 목소홍은 전신에 힘이 모조리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매달려야 했다. 그녀의 백사(白蛇)같은 두 팔이 백리강의 목을 휘감았다. 백리강은 가슴에 와닿은 뭉클한 감촉을 느꼈다. 그것은 사내의 가슴에 불을 당기기에 충분했다. "소홍……" 백리강의 입술은 미끄러지듯 목소홍의 목덜미께로 내려갔다. "아아……" 목소홍은 마치 전신이 불구덩이 속에 든 듯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에 빠졌다. 백리강의 손길은 자연스레 목소홍의 가슴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손이 그녀의 옷깃 사이로 스며들어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더듬고 있었다. 목소홍의 전신에서 잔경련이 일었다. 그녀의 두 팔은 더욱 힘껏 백리강의 목을 끌어 안았다. 그것은 보다 적극적인 유혹의 발로였다. 사방에 켜놓은 황촉불이 신이 난 듯 밝게 타오르고 실내는 뜨거운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남(男)과 여(女)는 어느새 알몸이 되었다. 뜨거운 열정(熱情)과 목마른 갈증으로 그들의 알몸은 뒤엉켜 있었다. 사내는 적극적이되 결코 서두르지 않고 여체의 구석구석에 불꽃을 당겼다. 그때마다 여체는 물고기처럼 파닥이며 환희에 찬 신음을 토했다. 한데 어느 순간이었을까? 춤추던 불꽃이 일시에 정지하고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실내에 충만했다. 그리고 한 순간 찢어지는 듯한 비명성이 실내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멎었던 불꽃은 다시 화려하게 타오르며 일렁이기 시작했다. 대출정을 하루 앞둔 이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2 휘이---- 이---- 잉---- 바람(風),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듯 불어오는 바람은 벌써부터 옷깃을 여미게 하는 스산한 삭풍이었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세 사람,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에 안고 거칠고 험한 봉우리 정상에 우뚝 서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백리강이었고 다른 두 명은 각기 청의(靑衣)와 흑의(黑衣)를 걸친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지옥파천도 담대혈궁. 만독마존 장손천우. 바로 마교 사태상(四太上) 중의 두 사람이었다. 백리강은 담대혈궁에게 눈길을 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담대노인, 준비는 모두 끝났소?" 담대혈궁은 음침하게, 하나 예의를 갖춘 공손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십팔마궁주 중 십 이 명과 본교의 고수 이만(二萬) 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음……" "명령만 내리십시오. 지옥부 정도는 일거에 싹 쓸어버리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지옥부를 쓸어버리다니…… 그렇다. 백리강은 지옥부를 공격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광서(廣西) 땅의 거칠고 험한 이 대명산(大明山)에---- "……" 백리강은 느릿하게 시선을 들어 허공을 응시했다. 비라도 오려는지 시꺼먼 먹장구름이 머리 위로 낮게 깔려 있었다. 담대혈궁은 독사 눈을 음산하게 빛내며 말했다. "싸움을 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백리강은 빙그레 미소하며 그를 응시했다. "어쨌든 이번 일은 담대노인의 수고가 많았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지옥부의 위치를 알아냈으니 말이오." 담대혈궁은 비릿한 조소를 떠올리며 말을 받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무척 쉬운 일이었습니다. 금사후 그 놈이 키우던 전서구를 제가 키우던 독수리가 추적해갔던 것이니까요." "음……" "하나…… 이놈들이 이토록 험악하고 음습한 곳에 위치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오오…… 그렇다면 지옥부는 이 대명산 어디엔가 있다는 말인가? 문득 백리강은 장손천우에게 시선을 옮겨갔다. "장손노인, 서문빙천 쪽은 어떻소?" 장손우는 공손히 대답했다. "그는 아직도 천룡단과 계속 대치 상태입니다. 하나 아마도 천룡단이 얼마간 이상은 버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음……" 백리강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물었다. "서문빙천을 어떻게 보시오?" "강한 고수입니다. 하나 너무 성급한 것이 단점입니다. 특히……"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는 자신의 수하인 사천공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최악의 단점입니다." "음……" 백리강은 나직이 침음하며 눈빛을 깊숙이 가라 앉혔다. (주여설…… 비록 열세라고는 하나 어느 정도는 혈극천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우리는 지옥부를 궤멸시키고 빠른 시간 안에 주여설과 합류해야 한다!) 그는 생각을 정리한 다음 다시 담대혈궁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담대노인" "말씀하십시오." "정확히 세 시진 후 공격 명령을 내리시오." "존명!" 대답이 끝나는가 했더니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백리강의 시선이 장손천우를 향했다. "장손노인!" "말씀하십시오." "본교의 이만(二萬) 제자들로 대명산을 철통같이 포위하게 하여 지옥부의 단 한 명도 살아나가지 못하도록 하시오." 순간 장손천우의 눈빛이 짧게 흔들렸다. 백리강은 마지막 쐐기를 박듯 단호한 어조로 말을 끝맺었다. "이번 일에 추호의 차질도 없도록 하시오." 장손천우는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명심하겠습니다." 스슷…… 그가 허리를 편 것과 그의 모습이 산봉에서 사라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 백리강은 천천히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비(雨)는 머지않아 곧 쏟아질 기세였다. 3 두두두두…… 협곡(陜谷), 대명산의 어느 협곡을 질풍처럼 달려가는 일진의 기마대가 있었다. 그 숫자는 대충 백여 명, 두 눈만 빼놓고 전신이 온통 먹빛 장포로 가려진 이들은 바로 지옥백팔도객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한 명도 남김없이 몰살한 지옥백팔도객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서 움직이다니…… 한데 맨 앞을 달려가는 인물은 또 누군가? 아무리 눈을 부비고 보아도 그는 틀림없이 금사후였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이미 죽은 자들이 이렇듯 시퍼렇게 살아 움직일 수가 있는건가? 아니다. 설사 신(神)이라 할지라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두두두두두…… 달린다. 그들은 대명산 전역을 뒤흔들며 미친 듯이 달려갈 뿐이었다. 그들이 십여 개의 협곡을 거침없이 통과했을 때였다. 돌연 협곡이 확 트이며 전면에 거대한 분지가 드러났다. 한데 이럴 수가! 하늘 아래 어찌 이렇듯 어둡고 음습한 곳이 존재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곳은 빛이 없는 세상이었다. 티끌 만큼의 빛도 찾아 볼 수 없는 완벽한 어둠의 세계였다. 뭉클…… 뭉클…… 먹물같은 흑무는 어디선가 끊임없이 흘러나와 어둠을 더해가고 하늘과 땅을 온통 뒤덮은 흑무에는 음습한 기운이 칙칙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오오…… 그렇다. 지옥부(地獄府)----! 바로 그 지옥부가 있는 곳이기에 그토록 어둡고 음습한 것이었다. "……!" 금사후, 그는 더 나아가지 않고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 그곳에 한 채의 거대무비한 전각이 괴물처럼 자리해 있는 것이 금사후의 동공에 맺혀져 있었다. 문득 금사후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냉소가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이곳이 바로 지옥부……) 그의 눈빛이 음산하게 번뜩였다. (후후후…… 앞으로 일각 후…… 모조리 쓸어주마!) 그는 천천히 말을 몰기 시작했다. 따가닥…… 따가닥…… 그 뒤를 지옥백팔도객은 유령(幽靈)처럼 따라가고 있었다. 이윽고 금사후가 전각 앞에 당도했을 때였다. 돌연 전각 안에서 한소리 짤막한 외침이 일었다. "금군사께서 돌아오셨다. 문을 열어드려라." 순간, 쿠구구궁…… 육중한 대문이 웅장한 소리와 함께 활짝 열렸다. "……" 금사후는 느릿하게 전각 안으로 말을 몰았다. 그때 문득 금사후의 이마에 한 방울의 물이 떨어졌다. 빗방울이었다. 투둑…… 툭…… 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이곳에도 비는 내리나보다. 일순 금사후의 눈 깊숙한 곳에 한 줄기 스산한 광채가 스쳐 지나 갔다. (잘됐군. 빗속에서 모조리 고혼이 되게 생겼으니……) 후두둑…… 후두두둑…… 폭우(暴雨)가 되려나? 빗방울이 급격히 굵어지며 드세지기 시작했다. 4 지옥부주, 그는 세 명의 인물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깊은 숙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천(天). 지(地). 인(人). 각자 가슴에 그런 글씨가 수놓아진 음침한 인상의 삼인(三人). 그들은 이른바 지옥부 최고의 고수로 일컬어지는 지옥삼마(地獄三魔)였다. 천마(天魔) 축천궁(祝天弓). 지마(地魔) 축천세(祝天世). 인마(人魔) 축천륭(祝天隆). 가슴의 글씨는 바로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워낙 판에 박은 듯 똑같이 생긴 얼굴들이라 가슴에 쓰여진 글씨가 아니곤 누구라도 식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숙의는 이제 거의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듯했다. "이제……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 지옥부주는 지옥삼마를 둘러보며 음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혈극천과 천룡단의 싸움은 곧 끝난다. 천룡단이 강하다지만 혈극천의 적수는 아니다. 조만간 천룡단은 붕괴될 것이다." "……"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얼마 전 마교가 동정호의 군산을 떠나 북상 중이라고 한다. 예측대로라면 그들은 반드시 혈극천과 충돌할 것이다. 마교와 혈극천…… 매우 흥미있는 싸움이 될 것이다……" "……" "놈들은 우리 지옥부의 움직임은 조금도 모르고 있다. 하기야 지옥부의 위치조차 모르는 놈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알 리가 만무하지만 말이다." 이때 묵묵히 듣고있던 천마 축천궁의 입술이 떼어졌다. "그럼 이제부터 부주님은 어떻게 행동하실 것입니까?" "보름 후 이곳을 떠난다." 지옥부주는 눈빛을 사이하게 번뜩이며 이어 말했다. "그런 연후에 혈극천과 마교와의 싸움 결과를 기다린다." "그럼……?" "누가 이기든 그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최소한 절반 이상의 전력 손실이 올 것이다. 우리가 노리는 건 바로 그것이다." 지옥삼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지옥부주는 잠시 침묵하더니 깊숙이 가라앉은 음성을 흘려냈다. "모든 것은 금사후가 천금마옥에서 돌아오는 보름 후부터 시작한다." 이때 문 밖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부주님께 아룁니다." 지옥부주의 시선이 느릿하게 문쪽을 향했다.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고 한 육순 가량의 노인이 들어섰다. 음침한 인상에 눈이 하나 뿐인 독목노인(獨目老人)이었다. "무슨 일이냐?" 지옥부주의 물음에 독목노인은 깊숙이 부복하며 공손히 대답했다. "조금 전 금군사께서 지옥백팔도객과 함께 돌아오셨습니다." 지옥부주의 눈빛이 일순간에 정지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그 빛이 곤혹과 불신으로 변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금사후가……돌아왔다고?" 독목노인의 어깨가 왠지 움츠러들었다. "그…… 그렇사옵…… 니다……" "지옥백팔도객과 함께……?" "예……" "지금쯤 천금마옥에 도착했을 금사후가…… 이곳 지옥부로 돌아와……?" "하지만…… 분명 금군사님이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지옥부주는 싸늘한 냉갈을 터뜨리다 말고 돌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 설마……?" 그는 급히 독목노인을 향해 물었다. "문을 열어 주었느냐?" 그의 어조에서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은 듯 독목노인은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 그렇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독목노인은 가볍게 몸을 떨며 황망히 대답했다. "지…… 지옥천에……" 지옥부주의 몸에 태풍같은 경련이 일어났다. "멍청한 것!" 지옥부주는 노갈을 터뜨리며 냅다 일장을 내갈겼다. "으악!" 독목노인은 피분수를 칠공으로 내뿜으며 펄쩍 튀어 올랐다가 멀찌감치 나가 떨어졌다. 더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지옥부주는 급히 지옥삼마들을 돌아보았다. "삼마(三魔), 어서 가서 막아라. 지옥전에는 우리가 쓸 백 팔십만 근의 화약이……" 한데, 말도 다 끝나기 전이었다. 꽝----! 돌연 천지를 무너뜨릴 듯한 엄청난 굉음이 멀지 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순간 지옥부주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 이건……" 쿠콰콰콰쾅----! 또 한 차례의 천번지복할 굉음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지옥부주가 딛고 있는 땅이 소리내어 뒤흔들렸다. "이…… 이럴 수가!" 지옥부주의 전신에 한 차례 격렬한 진동이 일었다. 다음 순간 그는 미친 듯이 밖으로 신형을 쏘아갔다. 5 쏴아---- 아---- 아----! 쏴쏴쏴! 비(雨), 장대같은 폭우(暴雨)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천지를 집어삼킬 듯한 불기둥이 지옥부의 중심에서 걷잡을 수 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꽈꽈꽈꽝! 꽈르르르르릉! 지옥부(地獄府)! 그 이름 그대로 온통 불바다의 지옥으로 변해있었다. 지옥부주는 사방을 둘러보며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지옥부 전체가 불타고 있었다. 그 엄청난 폭발 속에서 몇명이나 생존자가 있는진 생각하기도 끔찍했다. "이…… 이럴 수가……" 그는 한 차례 크게 비틀거리며 신음하듯 뇌까렸다. 그때였다. 슈우우우…… 퍼퍼퍼펑! 펑! 오색찬란한 폭죽이 밤 하늘에서 화려하게 폭발하는가 했더니 하늘이라도 허물어뜨릴 듯한 함성이 사방에서 터졌다. "와아----!" "죽여라! 지옥부의 씨를 말려라!" 동시에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인영이 사방에서 노도처럼 쏟아져 나왔다. 일률적인 흑의차림에 가슴에는 각자 마(魔)라는 글자가 수놓여 있었다. "마…… 마교!" 지옥부주의 눈이 더할 수 없이 확대되며 격렬한 진동이 전신을 태풍처럼 휩쓸었다. 하나 그는 이내 신형을 추스르며 치떨리는 음성을 씹어뱉듯 내뱉았다. "당했다……! 마교의 백리강 그놈에게……" 일시에 대해(大海)라도 뒤집을 듯한 무서운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쏴아---- 아---- 아----! 쏴쏴쏴쏴쏴…… 하늘에선 폭우(暴雨), 땅에선 혈우(血雨)…… 이 땅에서 가장 처참한 대살륙이 지옥부의 땅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불사천령강시, 지옥백팔도객을 위장하고 백리강과 함께 지옥부로 침투한 그들은 눈 앞에 보이는 지옥부의 고수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무너뜨렸다. 죽일 수도 없지만 죽지도 않는 괴물들이 바로 불사천령강시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마령칠십이참혼대! 이 잔인한 죽음의 집행자들은 때를 만난 듯 광란하고 있었다. 실로 환상처럼 움직이며 눈부시게 활약하는 그들 마령칠십이참혼대였다. 뿐이랴? 아무데서고 노도처럼 쏟아져 나오는 저 마교의 정예들은 어떠한가? 살인 방면에 있어선 누구에게도 뒤지기 싫어하는 그들이 아닌가? "으아아악!" "크---- 악!" 분명히 지옥부는 무너지고 있었다. 원래 이렇듯 허무하게 무너질 지옥부는 아니었다. 하나 기습이 치명타였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 고스란히 날벼락을 맞은 것이었다. 또한 두 번째 결정적 원인은 불사천령강시들 때문이었다. 그들의 무서운 위력에 지옥부의 고수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내노라 하는 지옥부의 일급고수들도 일단 불사천령강시에게 걸리면 죽는 일밖에 할 일이 없었다. 완전히 끝장을 보겠다는 하늘의 뜻이련가? 쏴아---- 아---- 아---- 아----! 폭우는 갈수록 격렬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지옥부의 붕괴에 덩달아 신이라도 난 것처럼…… 6 지옥부주는 이 순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미친 듯이 움직이며 닥치는 대로 마교 고수들을 죽였다. 얼마나 많은 마교의 고수들이 그의 손에 죽었는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의 육신은 이미 피로 완전히 젖어있었다. "크흐흐……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는 마치 짐승같은 괴소를 터뜨리며 쌍장을 쉴새없이 맹렬하게 뻗어냈다. 여섯명의 머리가 일격에 수박처럼 깨졌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땅바닥에 고꾸라지기도 전에 다시 네 명의 몸이 풍선처럼 터지며 피보라가 난무했다. 실로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하나 상대는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죽이고 또 죽여도 끝이 없는 것이었다. 한데 어느 순간이었을까? 스스스스…… 지옥부주의 주위로 핏빛 인영들이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몰려 들었다. 바로 불사천령강시들이었다. 지옥부주의 곁에 있던 지옥삼마 중 인마 축천륭의 입에서 한소리 폭갈이 터졌다. "이놈들! 모조리 죽여주마!" 동시에 그의 신형이 한 불사천령강시를 향해 빛살처럼 쏘아져 갔다. 꽈꽝! 인마 축천륭의 쌍장은 여지없이 불사천령강시의 가슴에서 작렬했다. 격전이 시작된 이후 그런 식으로 이 백여 명의 심장을 터트린 그였다. 한데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딴판이었다. 심장이 터지기는 커녕 불사천령강시는 끄덕도 안하며 오히려 양손으로 축천륭의 머리를 사정없이 찍어갔다. "헉!" 축천륭은 뜻하지 않던 사태에 까무라칠 듯 놀랐다. 상대가 자신의 일장을 정통으로 맞고도 움직이리라곤 생각조차 안했던 터라 그는 미처 피할 자세조차 갖추지 못했다. 뿌지직! 끔찍했다. 불사천령강시의 두 손이 하나로 합장되며 축천륭의 머리통이 두부처럼 으스러진 것이다. 순간 지옥부주의 입에서 짤막한 경악성이 터졌다. "불사천령강시!" 천마 축천궁과 지마 축천세는 그 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는 순간에도 불사천령강시는 흐느적거리며 계속 지옥부주 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숫자가 무려 백여 명! 일순 지옥부주의 눈에서 소름끼치는 광채가 폭사 되었다. "음무극…… 그놈이 마교와 손을 잡았구나!" 천금마옥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그로선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때 지마 축천세의 입에서 별안간 쥐어짜는 듯한 비명이 터졌다. "으---- 악!" 지옥부주의 고개가 지마에게 홱 돌아갔다. 축천세의 정수리 중앙에 별모양의 동전만한 구멍이 뚫린 채 핏줄기가 쭉 뻗어나오고 있었다. 지옥부주의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은하비성백리탄(銀河飛星百里彈)!" 오오…… 아는가? 한 번 시전하면 은빛 고리 형상의 지풍이 끊임없이 발출되고 격중된 곳에는 어김없이 별모양의 자국이 남는 죽음의 지법(指法) 은하비성백리탄(銀河飛星百里彈)을! 축천세의 몸이 맥없이 바닥에 쓰러진 것과 우렁찬 대소가 허공을 뒤흔들며 울려 퍼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으하하하하……" "와핫핫핫……" 다음 순간, 스스슷! 세 줄기 인영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백리강과 담대혈궁, 장손천우 등 삼인(三人)이었다. 때를 같이해서 신기하게도 주위에서 좁혀들던 불사천령강시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지옥부주는 백리강 등 삼 인을 빠르게 쓸어보며 말했다. "네놈들은……?" 백리강이 천천히 입을 열어 대꾸했다. "마교대지존 백리강이 바로 나다." "……!" 지옥부주의 시선이 칼날처럼 백리강에게 꽂혔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백리강을 보는 순간 그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지옥부주는 살을 태울 듯한 분노의 안광을 쏟아내며 부드득 이를 갈았다. "네놈이…… 내 모든 것을 이토록 허무하게 부숴 놓다니……" 백리강은 싸늘하게 말했다. "마교를 무시하고 천하를 넘본 댓가다." "이…… 이……" "오직 마교만이 마도의 진정한 최강자일 뿐…… 혈극천이나 지옥부 따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죽일 놈……!" 지옥부주의 옷자락이 바람도 없는데 찢어질 듯 펄럭였다. 백리강은 문득 음침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지옥부주, 네놈의 목숨은 나 마교대지존이 손수 거두어 주마." "건방진 애송이……!" 지옥부주는 부드득 이를 갈더니 문득 품에서 옥빛 단도를 꺼냈다. 길이는 한 자 가량인데 검자루에서 검신의 끝에 이르기까지 온통 투명한 옥빛을 띠고 있었다. 장손천우의 안색이 미미한 변화를 일으켰다. "수라옥도(修羅玉刀)……!" 이어 그는 백리강을 향해 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대지존, 조심하십시오. 저것은 전설의 마도(魔刀)로 불리우는 수라옥도입니다." "……" "놈이 수라옥도를 갖고 있다면 틀림없이 수라삼도(修羅三刀)도 익히고 있을 것입니다." 백리강은 희미하게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간이었다. "마교의 애송이! 죽어랏!" 한소리 폭갈과 함께 지옥부주의 신형이 유성처럼 허공을 갈랐다. 번---- 쩍! 백광(白光)! 마치 태양이 폭발하는 듯 눈부신 광채가 수라옥도에서 일었다. 순간 백리강은 담담하게 웃으며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단지 흔들었을 뿐이건만 일시에 백리강의 신형이 수십 개의 환영(幻影)을 창출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환상의 신법인 은형백변환(隱形百變幻)이었다. 순간, 쿠쾅! 폭음과 함께 백광이 백리강이 서 있던 자리를 강타하며 커다란 웅덩이가 패여졌다. 오오…… 그것을 어찌 도(刀)에서 쏟아져 나온 힘(力)이라 할 수 있으랴! 다음 순간 지옥부주는 그대로 허공에서 신형을 꺾으며 재차 수라옥도를 번뜩였다. "수라마겁(修羅魔劫)!" 쿠쿠쿠쿠…… 마치 햇살같은 백옥빛 광채가 무서운 파공성을 일으키며 백리강에게로 휘몰아쳤다. 같은 순간 백리강은 우수를 가슴 앞에서 한 바퀴 회전시킨 뒤 앞으로 쭉 내뻗었다. "여래팔법의 제칠법 불법무변(佛法無邊)! 불법은 끝이 없으매 그 뜻 또한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도다." 순간, 번---- 쩍! 가공할 묵광(墨光)이 허공을 찢으며 뻗쳐 나갔다. 콰콰쾅! 이 소리를 어찌 인간의 힘이 맞부딪힌 소리라 할 수 있겠는가? 고막을 갈기갈기 찢을 듯한 폭음과 함께 엄청난 경력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동시에 지옥부주의 신형이 허공 중에서 약간 퉁겨 나갔다. 하나 다음 순간 지옥부주는 재차 앞으로 쏘아져 가며 벼락같은 일갈을 터뜨렸다. "아수라의 혼(魂)이 모두 여기에 모여있다! 수라멸천(修羅滅天)!" 순간, 오오…… 보라! 일시에 하늘을 뒤덮으며 쏘아져 내려오는 수백 개의 아수라악마상을! 콰콰콰콰! 그것은 지옥부주가 뽑아낼 수 있는 최고 최대의 힘이 아수라악마상들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소리였다. 바로 그때다. 마검 묵류혼이 백리강의 수중에 모습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리 크다 할 수 없는 짤막한 외침이 그의 입 밖을 떠났다. "표향검우(飄香劍雨)!" - 향기는 바람을 타고 흐르며…… 검(劍)의 비(雨)는 천하를 뒤덮는다. 살인을 예술로까지 승화시킨 단 일식의 살인검초(殺人劍招)! 바로 마검살인십삼예가 아니고 무엇이랴! "……!" 지옥부주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펼쳐낸 아수라악마상의 모습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사라졌다고 느낀 순간 정수리에서 사타구니까지 불로 지지는 듯 화끈해지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것이 곧 자신의 몸뚱이가 반으로 쪼개지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두 동강난 그의 시체가 바닥에 곤두박질치며 내리 꽂혔다. 지옥부주,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그의 죽음이었다. 때를 같이해서, "으---- 악!" 어디선가 처절한 비명이 허공을 떨어 울렸다. 천마 축천궁이 담대혈궁의 지옥파천도에 의해 이승을 하직하는 비명이었다. "……" 백리강은 어느새 마검 묵류혼을 품에 넣고 느릿하게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거의 끝나가는군."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일까? 극히 잔잔한 미소 한 줄기가 그의 입가로 소리없이 번져 나왔다. …… 싸움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폭우가 거의 잦아들 무렵, 스스슷! 한 인영이 백리강의 면전에 뚝 떨어져 내렸다. 금사후였다. 그는 내려서기 무섭게 백리강을 향해 깊숙한 부복지례를 취했다. "대지존께 아룁니다." 백리강은 잔잔한 미소와 더불어 입을 열었다. "말하라! 성혼." 금사후는 다름 아닌 성혼의 변장한 모습이었다. 성혼은 정중한 어조로 짧게 대답했다. "지옥부 내에 생존자는 없습니다. 몇명이 도주했지만 대명산을 포위한 형제들에 의해 모조리 제거당했습니다." 백리강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 많았다." 이때 장손천우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지존." 백리강은 간단히 대꾸했다. "혈극천과 천룡단이 싸우고 있는 횡산으로 갈 것이오." "……!" 백리강은 문득 신비스런 미소를 지으며 거듭 말했다. "이미 목노와 월노가 본교 고수 이만(二萬)을 대동하여 횡산으로 떠났소. 지금쯤 천금마옥의 조사의, 위지풍과 합류하여 그들 휘하의 오만(五萬) 고수와 함께 혈극천과 싸우고 있을거요." "……!" 백리강의 신비스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 정도면 서문빙천의 세력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오." "……!" 장손천우는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나타냈다. 백리강의 얼굴에서 문득 미소가 사라졌다. "하나 만약 서문일백이 지옥부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혈극천 전체를 움직일 가능성도 크오. 그 전에 우리가 먼저 도착해야 하오." 장손천우는 문득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하오면……?" 백리강은 간단히 힘주어 말했다. "십 일 이내에 천룡단이 있는 횡산까지 도착해야 하오." "불가능합니다. 뛰어난 경공을 지닌 사람이 한시도 쉬지않고 간다면 몰라도…… 하나 인간이 무쇠가 아닌 이상 그럴 순 없습니다." "아니…… 십 일 안으로 분명히 도착할 수 있소." 백리강의 눈빛이 섬뜩하게 변했다. "최소한 그들만큼은……" …… 비(雨), 그토록 사납게 쏟아지던 폭우는 어느샌가 멎어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