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申師任堂, 1504~1551]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호는 사임당·시임당·임사재이다.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으며 어려서부터 경문을 익히고 문장 ·침공 ·자수에 능했으며 특히 시문과 그림에 뛰어나 여러 편의 한시 작품이 전해진다.
또한 안견의 영향을 받은 화풍은 여성 특유의 섬세 정묘함을 더하여 한국 제일의 여류 화가라는 평을 듣는다. 산수 ·포도·풀·벌레 등을 잘 그렸다. 자녀 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었다.
작품으로 시(詩)에 《유대 관령 망친정》 《사친》 등이 있고, 그림에《자리도》 《산수도》 《초충도》 《노안도》 《연로도》 등이 있다.
[출처] 신사임당 | 네이버 백과사전
50000원권에는 우리나라 여성의 대표적인 인물인 신사임당 초상과 함께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묵포도도와 초충도수병(보물 595호) 가운데 가지 그림이 삽입됐다.바탕 그림은 왼쪽에 난초와 기하학 무늬가 오른쪽에는 고구려 고분 벽화 무늬가 각각 배치됐다.
신사임당 얼굴은 일랑 이종상 화백(71)이 그렸는데 그는 37세 때 5000원권의 율곡에 이어 34년만에 그의 어머니까지 그렸으니 현존 화폐에 초상 두 점을 남기는 진기록을 세웠다.
뒷면의 보조 소재는 조선 중기의 화가인 어몽룡의 <월매도>와 이정의 <풍죽도>를 사용해 세로로 디자인하고 바탕은 바람 무늬를 이용했다.
앞면에는 신사임당(1504-1551)초상이 오른쪽에 큼지막 하게 배치 되고 왼편에 그녀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묵포도도>(墨葡萄圖, 간송 미술관)와 <초충도수병>(草蟲圖繡屛, 동아대 박물관)이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5만원권에는 이처럼 1종의 초상과 4 종류의 작품이 도안으로 들어가 있다.
이중에서 먼저 앞면 도안으로 사용된 묵포도도를 살펴보면 커다란 포도송이 때문에 축 늘어져 있는 넝쿨이 인상적이다.
<묵포도도>는 주렁 주렁 열매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화폐용으로 적합하다. 먹의 농담으로 열매와 잎, 줄기 등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어 그 당시 포도는 사군자 다음으로 애용된 소재였다.
이율곡은 어머니 사임당의 그림에 대하여 이렇게 술회한다.
“평소에 그림 솜씨가 비범하여 일곱 살 때부터 안견(安堅)의 그림을 모방하여 드디어 산수화를 그렸으며 또 포도를 그렸으니 모두 세상에서 견줄 만한 이가 없었다.
다음으로 도안에 사용된 <초충도수병>은 검은 비단에 색실로 자연을 수놓은 여덟폭짜리 병풍인데 이중 일곱 번째를 장식한 가지 그림이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초충도수병(草蟲圖繡屛, 보물 595호 동아대 박물관 소장)
동아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8폭의 수병풍인데 병풍의 뼈대와 녹색의 명주실로 화초와 곤충들을 수놓은 수사(繡絲)는 반푼사를 사용하여 평수 기법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수놓은 작품이다.
우리 전통 자수가 원색적인 것이 많고 꼰 실로 수놓고 있는 것에 비하면 다소 이색적인 작품이다.
신사임당의 다른 <초충도>들은 당채로 된 채색화인 데 비하여 이 병풍은 적색과 홍색이 배제되어 있어 특징이 되고 있다.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이 수병은 소재와 표현 기법이 그의 여러 <초충도>와 매우 흡사하여 자연스럽게 <초충도>를 떠올리게 한다.
참고로 <초충도>는 5000원권 뒷면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가지 그림의 이 자수는 검은 비단(墨貢緞)에 색실로 풀ㆍ꽃ㆍ벌레ㆍ나비 등을 아름답게 수놓아 만든 8폭짜리 병풍 가운데 7폭에 있는 작품이다. 병풍의 크기는 8폭 각각 가로 40cm, 세로 65cm이다.신사임당(申師任堂 · 1512∼1559)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초충도수병은 한국 여성의 뛰어난 손재주를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8폭〈초충도〉중에서 '가지'를 살펴보면 화폭의 중앙에 곡선진 가지의 두 줄기가 좌우대칭을 이루며 서 있고 섬약한 줄기들에는 밤색과 흰색의 가지들이 곱게 열려 있다. 가지 주변에는 종류가 다른 화초와 곤충들이 배열되어 있어 그림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안정된 구도, 몰골법(沒骨法)으로만 이루어진 묘사, 아담하고 음영을 살린 설채법 등이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돈의 뒷면을 살펴보자. 어몽룡(1566-?)의 <월매도>(月梅圖, 국립중앙박물관)가 선명하고 이정(1541-1622)의 <풍죽도>(風竹圖, 간송미술관)가 엷게 깔렸다.
5만원권 뒷면 도안으로 사용된 월매도와 풍족도
앞의 <월매도>가 워낙 선명해서 뒤에 깔린 <풍죽도>는 배경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림이나 화폐 도안에 관심 없다면 이 두가지 작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풍죽도>를 그린 탄은 이정은 묵죽화에 있어서 그는 유덕장(柳德章) · 신위(申緯)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화가로 꼽힌다. 그는 임진왜란 때 적의 칼에 오른팔을 크게 다쳤으나 이를 극복하고 회복 후에는 더욱 힘찬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조선 초기의 묵죽화들이 대개 수문(秀文)의 묵죽화와 같이 줄기가 가늘고 잎이 큰 특징을 보임에 반하여 그의 묵죽은 줄기와 잎의 비례가 좀 더 보기 좋게 어울리며 대나무의 특징인 강인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특히 굵은 통죽(筒竹)을 잘 그렸는데 통죽의 굵은 입체감을 두드러지게 표현하였다. 그는〈풍죽도〉에서 대나무의 줄기와 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대나무의 탄성(彈性)을 잘 나타내었다.
어몽룡의 대표 작품으로 꼽히는 <월매도>는 한자 그대로 매화와 달이 같이 그려져있는 그림으로 비단 바탕에 수묵으로 처리하여 예술성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어몽룡은 충청도 진천 현감을 지낸 선비 화가로 조선 중기 매화 그림의 절창으로 꼽힌다. 그림에서 보듯 매화나무의 헌 가지는 꺾이고 새 가지는 하늘로 치솟아 생명의 순환을 노래한다.
그의 묵매는 부러진 굵은 가지와 새로 돋아난 곧고 가는 어린 가지들을 대조시켜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며 매화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 있는 구도와 부러진 굵은 가지를 비백으로 처리한 단촐한 형태를 띄고 있다.또 굵은 가지 주변에 크고 작은 짙은 점을 찍어 강조한 점 및 고담한 분위기 등을 특징으로 한다.
출처- 손수호 논설 위원, 2009년 3월2일, 국민일보[한마당]
첫댓글 파주에 가면
율곡 이이와
부모님의 묘.사당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