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문을 연 ‘휘트니스쎈터’에서 ‘째즈땐스’를 교습한다는 벽보가 붙어 유심히 보게 되었다. 몇 줄 안 되는 광고 문구 중에 유독 외래어를 잘못 표기한 것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거리의 간판이나 텔레비전 자막을 보아도 한글 표기와 달리 외래어는 잘못 쓴 경우가 많다. ‘휘트니스쎈터’와 ‘째즈땐스’는 ‘f’ 소리를 ‘ㅍ’으로 적고, 된소리 표기를 인정하지 않는 외래어 표기 원칙에 따라 ‘피트니스센터’ ‘재즈댄스’로 적어야 옳다.
글을 쓸 때 일부러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를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실수로 잘못 적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면 다시는 틀리게 적지 않으려고 애를 쓰게 마련이다. 한글 철자뿐만 아니라 한자나 영어를 쓸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외래어를 한글로 적을 때에는 나라에서 정한 표기법을 일부러 무시하고 제 나름의 표기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인은 물론이고 출판사나 언론사들도 정해진 표기법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어 언어생활에 혼란을 주곤 한다. 정해진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대개 현행 외래어 표기가 원어의 발음을 충실히 나타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피트니스’ 대신 굳이 ‘휘트니스’를 쓰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영어 발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에서 온 말을 한글로 적는 방법을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외국어 소리를 한글로 정확하게 표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저 비슷하게 적을 수 있을 뿐이다. 한글이 우수하다는 것은 우리말을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이지 남의 말소리까지 다 만족스럽게 적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이런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적어야 외국어 발음을 똑같이 나타낼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를 들어 ‘Thank you’의 ‘th’ 소리는 ‘ㅅ’이나 ‘ㄷ’ 어느 것으로 적어도 만족스럽지 않다. ‘right’의 ‘r’와 ‘light’의 ‘l’은 서로 다른 소리이지만 한글로는 똑같이 ‘ㄹ’로 적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f’ 소리는 ‘ㅍ’이나 ‘ㅎ’ 어느 것으로 적어도 영어의 소릿값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어떻게 적어야 외국어 소리를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지 소모적인 논쟁을 지속할 것이 아니라 정해진 외래어 표기법을 잘 지킴으로써 불필요한 혼란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외래어 표기법의 제정 목적은 외국어에서 비롯되었으나 국어 속에 들어와 사용되는 말들을 통일된 방식으로 적기 위한 것이지, 외국어 발음을 한글로 정확하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coffee’라는 단어를 ‘커피’ ‘코피’ ‘코오휘’ 등 제각각으로 적지 말고 ‘커피’라는 한 가지 형태로 고정시켜 적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외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표준 표기법과는 다르게 적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수도 ‘Paris’는 ‘파리’로 적어야 하는데, 프랑스어 발음과 멀다는 이유로 굳이 ‘빠리’로 적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파리’로 적든 ‘빠리’로 적든 프랑스어 소리를 똑같이 나타낼 수는 없으며, 오히려 같은 도시 이름이 다른 방식으로 적히게 되어 언어생활에 혼란만 가중된다.
물론 ‘파리’로 적는 것이 더 나은지, ‘빠리’로 적는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사실 ‘파리’ 대신 ‘빠리’로 적는 것이 일면 타당한 점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많은 연구와 토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합의한, 그래서 이미 수년간 사용해 온 표기법이 개인의 견해와 다르다고 해서 따르지 않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정해진 약속은 충실히 지켜 가는 가운데 정당한 경로를 통해 자기 주장을 펴 나가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
〈정희원/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