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환과(不患寡) 환불균(患不均) |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미풍양속의 습관은 차츰 사라져가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만풍(蠻風)이 세상에 유행한다. 이것의 주범(主犯)은 당연히 TV의 드라마이다. 시청률이 가장 높은 저녁시간에 방영되는 그 내용은 한 사내를 두고 친 자매가 다툼을 벌이는 것이나, 한 딸애를 두고 사촌끼리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 방영된다. 방송윤리위원회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무슨 윤리를 다스리는지 모르겠다.
남의 말 잘 듣고 현혹하는 사람을 귀가 얇은 사람이라 한다. 현세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은 대체로 귀가 얇은 편이다. TV의 선전이나 사기꾼 같은 약장수의 꼬임수에 여축(餘蓄)없이 넘어가고 얼마가지 않아서 틀림없이 후회한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요즘 유행하는 야생초의 조약(調藥)이나 식품을 살펴보자.
위장에 좋고 냉병에 효과가 있는 참쑥을 제쳐놓고 이름도 고약한 개똥쑥이 유행하고, 간장에 좋고 눈을 밝게하며 윤기있고 맛 좋은 참비름 보다는 쇠비름이 판을 친다. 두툼하고 기름기가 있는 노상(魯桑) 뽕 잎은 누에치고 혈압에도 좋다는데 그것 보다는 가시가 붙어 있고 잎도 볼품없는 구지뽕을, 팍신한 분이 나고 전분과 녹말이 함유되어있어 간식도 좋거니와 강원도 사람들의 주식으로 대접받는 감자를 제쳐놓고 돼지감자를 보신용이라 한다.
참나리는 자취를 감추고 개나리가 판을 치며, 신선이 즐긴다는 두릅나물(木頭菜) 보다는 개두릅을 좋아한다. 배고픈 시절 구황(救荒) 식품으로 시골 사람의 배를 채운 산나물과, 잘 사는 집 아이는 먹기 싫어서 못 먹고 가난한 아이는 없어서 못 먹던 보리밥, 조밥이 웰빙식품이라 하여 대접을 받게 되었다.
제사때 멧밥이 아니면 일년내 구경 못하던 흰 쌀밥은 비만을 촉진한다, 당뇨에 해롭다하여 모두들 싫어하고, 꼴뚜기, 쥐치, 아귀, 물메기 등 생선은 천하디 천하였는데 지금은 귀인의 밥상에 올라가며, 쇠고기의 간천엽에 기름소금과 따뜻한 정종이면 고급 술집의 귀인들의 메뉴였는데 지금은 허술한 한우식당에서 허드레 안주가 되었다.
심지어 몇 백 만원하는 통영(統營)의 세죽(細竹)갓은 밀려나고 3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양이 넓은 나이롱 갓이 아랫목을 차지하는 세월이다. 견문이 좁은 어느 분들은 좋은 갓을 쓴 어른에게 갓을 바꾸라고 권한다. 이것이 영국의 경제학자 그레샴이 말한 ‘악화(惡化)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이론과 흡사한 것 아닌가 싶다.
한달 쯤 전의 일이다. 뉴스를 듣다가 저으기 놀란 일이 있다. 은행장의 연봉이 25~26억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참으로 어안이 벙벙하다. 무슨 일을 얼마나 하고, 국민이나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의 불균형에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혈기 방장(方張)한 청소년들이 월 100만원 일터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상보도가 가끔씩 발표된다. 춘추전국시대의 정치가 관중(管仲)은 불환과(不患寡)요 환불균(患不均)을 역설하였다. 이것은 '수입이 적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는 말이다. 철학 없는 경제, 도덕 없는 치부(致富), 노동 없는 복지, 윤리 없는 쾌락, 헌신 없는 종교가 사회비리를 조장한다는 보도를 들었다. 지금 세상에 적당한 이야기들이다.
조선조 중종당시 기묘명현(己卯名賢)이며 한훤당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정암 조광조(趙光祖)와 동문이고 형인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과 쌍벽을 이룬 큰 선비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은 선비가 갖추어야 할 요건 네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첫째는 책을 정리하고 갈무리 하는 책장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외로울 때 심회를 달랠 수 있는 악기가 있어야 한다.
셋째는 친구가 찾아 올 때 차를 대접할 탕기와 찻잔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로는 아름다운 산천을 찾아갈 때 타고 다닐 당나귀가 있어야 한다고 적어 놓았다.
이것이 당시의 중산층이다.
지금세대의 중산층은 이와 같이 말하였다. 50평 이상의 아파트, 1억 이상의 예금 잔고, 중형이상의 자가용, 자유로운 외국여행 등을 들었다. 이것을 살펴보아 선인들의 운치 있는 고상한 정신을 알 수 있고 지금 사람의 저속한 생활분위기를 알 수 있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이요,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이요,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의지가 굳은 사람이다.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여유롭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으며, 제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도록 유지하고 죽은 뒤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영원히 산다. 만족함을 알면 욕됨이 없고 그칠 줄 알면 위태하지 않으니 오래도록 보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요즘 정치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할 말 못할 말을 가릴 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외국을 순방하는 여정에서 축하는 못하더라도 비행기 추락 운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와 같은 부도덕한 언행을 질타하는 사람에게 종북과 색깔논쟁으로 몰아 부친다고 오히려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정코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악인들은 이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 남의 입장을 생각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요,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람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질 하는 자이다. 진실로 명언이다.
한국청소년개발원에서 한(韓)중(中)일(日) 청소년의 역사인식과 국가관에 대한 여론 조사를 하였다고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나가싸우겠느냐의 물음에 일본은 41% 중국은 14% 한국은 10%이다. 외국으로 도망가겠다는 대답은 일본 1.7% 중국 2.3% 한국 10.2%가 되었으며 우리 청소년의 행복지수 1순위를 돈으로 생각한다니 한심한 일이다.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은 안현수를 파벌싸움과 체육계의 부조리와 비리 때문에 조국을 버리고 외국으로 떠나게 하였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아! 슬프다.
돈 때문에 부모에게 폭행하는 일도 더러는 있다고 한다. 효자(孝子) 가문에 충신(忠臣)이 난다는 말은 들어도 패륜아가 나라 사랑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이 글이 끝나고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절기의 하루전날 아침이다. 때 늦은 설화(雪禍)로 경주의 마우나리조트라는 건물이 눈 무게에 짓눌려 붕괴되었다. 그 안에서 신입생 수련을 받던 부산 외국어대 입학생이 깔려서 100여명 부상에 10명 사망했다는 뉴스가 터졌다.
참혹하다. 이것은 천재인가 인재인가.
그래도 소치 올림픽의 금메달은 울적한 마음을 달래는 계기가 되었다.
2014년 03월 25일(화)
▶성균관 부관장 이자 경상북도도청 상량문을 지으신 의성신문 주필이신 동천 김창회 선생의 칼럼에서 옮긴 글입니다.
첫댓글 구구절절 틀림이 없는 소리 !!! 존경 스러운 분 이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