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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작품세계 스크랩 뉘 탓이냐 / 함석헌
진영희 추천 0 조회 4 16.12.13 00: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뉘 탓이냐 / 함석헌

이게 뉘 탓이냐
비단에 무늬를 놨다는 이 강산에
다섯 즈믄 겹 쌓아 솟은 바람터에 올라
보이느니 걸뜬 피뿐이요
들리느니 가슴 내려앉는 숨 소리뿐이요
맡아지느니 썩어진 냄새뿐이요
그리고 따 끝에 둘린 안개 장막 저 쪽엔
무슨 괴물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건 알지도 못하고
그러다 그러다 가게 됐으니
이게 뉘 탓이냐

신선의 산이라 했다는 걸
군자국(君子國)이라 했다는 걸
예의지방(禮儀之邦)이라 했다는 걸
집엘 가도 안을 자식이 없고
길을 걸어도 손 잡을 동무가 없고
오래 거리를 다 뒤타도
이야기를 들을 늙은이를 볼 수 없고
봉 사이, 물결 위에는 스스로
달 바람이 맑고 밝건만
듣고 볼 사람이 없으니
이게 뉘 탓이냐
뉘 탓이냐
어느 뉘 탓이란 말이냐
네 탓
내 탓
그렇다 이 나라에 나온 네가 탓이요
그 너 만난 내가 탓이다
무얼 하자고 여기를 나왔더냐

아니다 탓이람 그 탓이다
애당초에 그이가 탓 아니냐
무얼 한다고 삼위(三危)요 한배(太白)요
그냥 계시지 못하고 홍익(홍익)이니 이화(이화)니
부질없이 이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신단 말이냐
그 탓이다 그이가 탓이다
그 한 탓에 이 노름이다

이게 뉘 탓이냐
가없고 변저리없는 아득한 한 누리에
둘은 없는 묵숨불 탔다면서
소리를 지른 것이 목구멍에 잠기고
뛰어 본 것이 그림자 위에 되떨어지고
생각을 한 것이 살얼음 틈에 녹아나
하늘 가에 맴도는 조롱박 속에서
콩알처럼 흔들려 바사지게 됐으니
이게 뉘 탓이냐

나를 본 자 아버지 본 거라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라 높다
네 자신을 알아라
하늘이 내게 속알을 주셨다
거룩하게 거듭거듭 일러는 주셨건만
불이란 불은 다 불다간 꺼졌더구나
물이란 물은 다 흘러선 흘더구나
바람조차 불다가 불다간 돌아도더구나
종교요 과학이요 두루 캔 뒷 끝은
싹 트는 알 하나의 하품에 놀라
공든 탑보다도 말 먼저 무너져
얼굴이 파랗게 질리게 됐으니
이게 뉘 탓이란 말이냐

뉘 탓이냐고
개인 탓, 사회 탓,
물질 탓, 정신 탓,
그렇다 산 내 탓이요 있는 너 탓이다
뭐 탓다고 이 곤두박질이겠느냐
어떻다고 이 가슴 답답한 냄새겠느냐

아니야 너도 아니오 나도 아니야
제 탓이람 차라리 쉽지만
있자 해서 있는 인생이더냐
없자 해서 없는 자연이더냐
탓이람 그의 탓이다
그가 애초에 탓을 일으키셨다
말씀(뜻) 낸 것이 말썽의 탓 아니냐

영원의 두루뭉수리 그냥을 품고
늙은 암탉처럼 업디는 아버지를
무엇 하자 가만 아니 두고
그 날개를 들치고 나오셨을까
밑 모르는 캄캄 빈 탕에 아로새김을 하자
열쌔고 거세게 슬프게 나서는
한 줄기 외론 따뜻한 빛
아이들은 가만 못있는 것
가만 아니 계신 아들 탓이다
그저 계시면 그저 하나이신 걸
한 번 번쩍 나선 탓
위는 영원한 눈도 깜짝 못하는 쌈이
버러지니, 천지요 만물이요 역사였더라

그러나 아아
삼켜도 삼켜도 삼켜 낼 길 없는 어둠을
삼키려 드는 칼날 같은 그 맘을
누가 아느냐 누가 받느냐
모든 탈의 탓의 탓의 또 탓으로
타고 탓고, 타고 탄, 또 타고 탈 그 탐

아아 그 한 맘의 끝이
쇠도 아니 드는 어둠이 맨바닥 위에
아버지 그린 얼굴을 그린다고
좇고 좇다가
한 몸이 다 탓구나
인젠 그 탓을 빛 지울 곳도 없고
번쩍 탔던 그 순간 그는
단번에 만물을 불러내어
아버지 모습을 그 모든 위에 지져 박았고
네 탓, 내 탓, 육 탓, 영 탓, 안 탓, 모른 탓
모든 탓이 거기 죄 다 탔으니
아무 탓도 아무 탈도 아무 탄도 할 곳 없는
다만 빛의 나라뿐이로다 

.................................................................................................................................................

 "자아에 철저하지 못한 믿음은 돌짝밭에 떨어진 씨요, 역사의 이해 없는 믿음은 가시덤불에 난 곡식이다" 한 해 열한 달 다 보내고 스므날 남짓 남겨둔 12월 다시 듣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다. 1970년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면서 천하의 씨알이 다 소리를 내기 위해서 이 책을 창간한다고 하면서 그 구체적 목적을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이제 내가 이 잡지를 내는 목적을 말합니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 사람이 죽는 일입니다. 씨알의 속에는 일어만 나면 못 이길 것이 없는 정신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어나라는 명령을 받아야지. 누가 명령하나? 하나님 혹은 하늘이 하지. 옳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을 빌어서 하십니다. 하나님의 입은 사람의 입에 있습니다. (중략) 둘째는 거기 따라오는 것인데 더 중요한 것입니다. 유기적인 하나의 생활공동체가 생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와 더불어 이 땅의 비판적 지식인과 씨알 들의 대변지 역할을 담당했던 '씨알의 소리' 오래된 추억의 한페이지로 덮어버리기엔 지금도 신산스럽다. 진보와 개혁 세력이 넘쳐나는 이 시대 정작 함석헌 선생이나 장준하 선생같으신 분은 왠지 뵈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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