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백우산악회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산행자료 보관실-----♥ 스크랩 산행기 - 고성 연화산 (2009.9.19)
청산 추천 0 조회 46 10.01.15 17: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산행기 - 고성 연화산(528m)"

연화산 옥천사 전경

o 일시: 2009.09.19(土) 09:53~12:04 (총 2시간 11분) o 날씨: 맑음 18.5℃~26℃ (경남 고성) o 코스: 주차장→암벽쉼터→연화1봉→연화지 o 거리: 3.22km o 참석: 홀로 ☆ Time Table :
시 각 구 간 거 리 시 간 속 도
09:53~11:09 주차장→연화1봉 2.26km 1:16' 33'37"/km
09:53 주차장 (↑암벽쉼터 1.12km, ↑연화1봉 2.26km)
10:26 암벽쉼터 [휴식 6분]
10:58 갈림길
11:09 연화1봉(489m) [휴식 9분]
11:18~12:04 연화1봉→연화지 0.96km 0:46' 47'55"/km
11:18 연화1봉 (↖주차장 2.26km, ↗황새고개 0.7km, →연화2봉 1.96km)
11:30 백연암 갈림길 (↑주차장 0.68km, ↓연화1봉 0.28km)
12:04 연화지 (↓연화1봉 0.96km)
종 합 09:53~12:04 3.22km 2:11' 40'41"/km (1.47km/hr)
※ 지체시간: 총 0시간16분 (휴식 16분) ☆ 산행코스

산행 개획도

◎ 등반 메모 ◎
o Intro.. 연꽃이 핀 듯하다는 연화산에 간다.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인지라 전에부터 한번 가보려 벼르던 곳이다.

연화산(蓮花山 528m)

연화산은 산세가 연꽃과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비슬산(琵瑟山)이었으나 조선 인조(仁祖) 때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승려 학명이 쓴 고기(古記)에 기록된 "높이 솟은 산세에 연꽃이 핀 듯하다" 에서 연유되었다. 연화산은 혼돈산, 어산, 금태산, 시루봉 등 10여 개의 산봉우리와 함께 여덟 갈래로 돌출한 것이 반쯤 핀 연꽃 같다. 연꽃 속에 옥천사(玉泉寺), 백련암(白蓮庵), 청련암(靑蓮庵), 연대암(蓮臺庵) 등 유서깊은 암자들이 자리했다.

산세가 순탄하고 길이 잘 닦여 산행이 수월한 산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옥녀봉·선도봉·망선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 높지 않지만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 등 자연 경관이 수려해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수줍은 연꽃 봉오리가 얼굴을 내밀 듯 아기자기하게 솟은 봉우리들은 여리게 보이지만 완만하게 뻗어내린 능선으로 조용히 산꾼을 불러모으는 힘이 있다. 산행은 어느 코스를 정하든 여유롭다. 한나절 산행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코스는 옥천사를 올라 백련암에서 연화봉으로 오르내리고 다시 연화산을 올라 황새고개로 내려서 남산에서 청련암으로 하산하는 것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나 등산로의 오르내림이 커 산봉우리를 두어 개 넘는 듯한 묘미가 있다.

북쪽 기슭에 있는 옥천사(玉泉寺)는 670년(신라 문무왕 10) 의상(義湘)이 창건한 천년 사찰이다. 옥천사라는 이름은 이 절의 대웅전 뒤에 사철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솟는 샘이 있는 데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샘의 물은 위장병과 피부병에 좋다고 한다. 1948년부터 샘 위에 옥천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문화재로 옥천사 자방루(滋芳樓:경남유형문화재 53), 옥천사 대웅전(경남유형문화재 132), 옥천사 임자명반자(壬子銘飯子:보물 495), 옥천사 대종(大鐘:경남유형문화재 60) 등이 있다. 주차장 옆에 있는 계곡에는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다.

연화산은..
경남 고성읍 서북쪽 12km 거리에 있는 산으로서
혼돈산, 어산, 금태산, 시루봉 등
10여 개의 산봉우리와 함께 여덟 갈래로 돌출하여
마치 연꽃이 반쯤 핀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산경도를 보면..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된 낙남정맥이
삼신봉(1,289m)에서 남동방향으로 뻗어가다
하동, 진주를 지나고
고성 대곡산에서 북동쪽으로 꺽어돌아
마산 무학산(761m)으로 향한다.

그러던 중 고성 성지산에서
북서방향으로 한 지능선을 분기한다.
이 지능선이 좌우측으로
어산(537m)과 혼돈산(467m)을 솟구치고,
혼돈산은 계속 지능선을 이어오다
비로소 연화산(526m)을 맺어놓는다.

산경도

o 이동.. 오전 7시, 집 밖을 나선 뒤 대진고속국도를 타고 남하하여 오전 9시30분경 연화산 IC를 빠져나와 1002번 지방도를 타고 북동진하다 영오면에서 우회전하여 1007번 지방도에 진입한 뒤 남동진한다.

교통궤적

오전 9시46분, 연화산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한다. 등산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어서 그런지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우선 들머리를 찾아본다. 사전에 산행기를 통해 알아두었기 때문에 주차장 우측 잔디밭을 가로지르는 계단 옆에 등산조감도가 쉽게 눈에 띈다. 그 직전 나무 난간 너머가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곳이라는 것도 곧바로 눈치챈다.

연화산도립공원 주차장

산행 들머리와 공룡발자국 화석

산행 준비를 마친 뒤 일단 공룡발자국을 만나러 간다.

공룡발자국과 돌탑

가까이 다가가보니 발자국의 윤곽이 뚜렷하진 않지만 울퉁불퉁한 암반 표면에 움푹움푹 팬 자국이 몇 가닥 열을 지어 숲속으로 향하고 있다.

공룡 발자국(Sauropoda)

공룡발자국

자료에 따르면 소형 용각류 공룡이 걸어간 발자국이라고 한다. 아주 옛날에는 이곳이 바닷가였나보다.

자료 - 소형 용각류(Sauropoda)

자료 - 공룡발자국

o 연화산도립공원 주차장 → 제1연화봉 연화제1봉으로 오르는 산행 들머리로 간다.

산행 들머리

그 앞에 세워진 조감도를 보면서 오늘 산행계획을 잠시 짚어본 후

조감도 - 산행계획

오전 9시53분, 산행을 시작한다.

이정표

계단을 타고 올라 숲길에 접어드니 특이한 모양의 암석이 눈에 띈다. 켜켜 굳어 있는 단층 구조가 해안가 암석을 연상시킨다.

암석

계속해서 완만한 등로를 오르던 중 자그마한 뱀이 길가에 기어가고 있기에 스틱으로 들어올려 산 기슭으로 던져놓는다. 사람 눈에 띄는 곳에 오지말고 잘 살그라이..

완만한 등로

조금 더 오르다가 꽃님들을 만난다. 자그마한 가지 주변에 자그마한 꽃알갱이가 뽀글뽀글 피어난 형광빛 층층이풀꽃은 개체가 비록 외소하지만 제법 싱싱한데.. 자그마한 새가 전기줄에 바글바글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 활량나물은 색상이 퇴색하기 시작하는 걸 보아 생명의 끝자락으로 향하고 있는 듯 싶다.

층층이풀꽃

활량나물

오전 10시26분, 암벽쉼터에 당도한다. 주차장으로부터 2.26km 떨어진 이곳까지 1시20분 가량 소요되었다. 여유롭게 올라오다보니 시간이 제법 많이 걸린 듯 싶다.

암벽쉼터

암벽쉼터.. 말이 암벽이지 그 주변엔 낭떠러지 같은 암벽은 없고, 평평한 암반만이 서너개 있을 뿐이다.

암벽쉼터

쉼터 주변엔 산행초입부터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던 두 팀의 산객이 휴식을 취한다. 나도 그 암반 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암벽쉼터

5분 가량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오전 10시31분) 등로는 이제 완만한 산책로 같은 길이 이어진다.

완만한 등로

조금 전진하다 이름 모를 야생화를 만난다. 꽃 모양으로만 볼 때 바디나물인 것 같은데 잎 모양이 다르다.

야생화

야생화 잎

평평한 숲길을 20여분 지나 오르막이 점차 가파라질 즈음..

점차 가파라지는 오르막

갈림길에 당도한다. (오전 10시58분) 연화제1봉을 우회하는 길이 좌우로 가로질러간다.

갈림길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계속해서 산등성이를 향하여 전진하여 오전 11시09분 능선마루에 올라서니 그곳에 돌탑(케언)이 있다.

연화제1봉

그 옆에는 이곳이 연화제1봉 정상(489m)임을 알려주는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연화제1봉 정상석

먼저올라온 산객에게 부탁하여 기념촬영을 한 뒤 휴식을 취한다.

연화제1봉 - 청려장

o 제1연화봉 → 연화지 오전 11시18분, 휴식을 마치고 정상석 뒷편으로 이어지는 등로로 전진한다. 그런데 방향을 잘 못 잡았다. 그곳에서 연화산 정상으로 가려면 우측 황새고개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왼편 주차장 방향으로 들어선 것이다. 나중에 사진에 찍힌 이정표를 보니 황새고개 방향이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그것을 눈여겨 보지 않은 것이다. 등로가 워낙 단순하여 감으로 이 방향이 맞겠거니 하며 전진했다가 큰 코를 다친 것이다.

연화제1봉 갈림길

이정표

암튼, 당시엔 엉뚱한 곳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왼쪽 등로로 전진하는데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진다.

내리막 길

10여분을 내려가다보니 갈림길 이정표가 눈에 띈다.

갈림길

가까이 가보니 오른편으로 백련암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그때라도 지도를 살펴보았다면 사태를 알게 되었을 텐데 그곳도 무시한 채 능선방향을 따라 계속해서 하산한다. 이 길이 황새고개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추호도 눈치채지 못했으니 머리속에 그려진 황새고개까지의 직선길로 내려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곧 황새고개에 도착하겠거니 하면서..

백연암 갈림길 이정표

계속해서 내려가던 중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한쌍의 부부산객을 만난다. 그중 남자분이 황새고개 가는 방향을 물어온다. 지금 황새고개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으니 갸우뚱하며 주차장에서 올라온다고 하신다. 주차장? 그제서야 지도를 펼쳐보며 현 위치를 되짚어보고선 길을 잘 못 들어섰음을 알게된다. 허걱~

내리막 길

맥이 탁 풀린 채 뒤돌아서서 그분들을 뒤쫓아 다시 연화제1봉으로 오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보니 연화1봉으로 다시 올라가는 것이 시간관계상 무리일 것 같다. 여기까지 내려오는데만 15분 가량 걸렸는데 다시 가파른 오르막 길을 오르려면 20여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결국, 다시 발걸음을 돌려 하산하기 시작하여 10여분 가량 내려가니 계곡이 나온다.

계곡

그 옆에 연화봉으로부터 0.96km 내려왔음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

계곡을 따라 조금 더 내려오니 연못이 나온다. (오후 12시04분) 지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하니 연화지다.

연화지

o 연화지 연화지 위에 있는 공터에서 도시락을 꺼내어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포도까지 먹은 뒤 주변을 여유롭게 둘러본다. 그러던 중 발견한 흰물봉선.. 가만 보니 그 주변이 흰물봉선 군락지다. 흰물봉선은 분홍색의 보통 물봉선에 비해 쉽게 볼 수 없는 것인지라 무척 반갑다. 그런데 워낙 가냘퍼서 바람결에 휘휘 흔들리다보니 카메라 촛점을 잡는데 애를 먹는다. 간신히 그럭저럭 촛점이 맞은 두 컷의 사진을 건진다.

흰물봉선

흰물봉선

공터를 빠져나오면서 만난 담배풀과 도로변에서 만난 플록스도 반가운 꽃님들이다.

담배풀

플록스

o 옥천사 옥천사까지 걸어가려고 하는데 주변 산객이 옥천사까지 꽤 멀으니 차를 가져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 귀뜸한다. 하여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승용차를 몰고 올라와 입장권을 끊은 뒤 옥천사로 간다. 옥천사 주차장은 유물전시관인 보장전 앞에 있다. 그곳에 차를 주차한다.

자료사진 - 옥천사 전경

옥천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천년사찰이다.

연화산 옥천사

신라의 성인 원효대사와 함께 쌍벽을 이룬 의상조사는 당나라 유학시 그곳 종남산에서 지엄선사로부터 화엄의 오묘한 뜻을 깨닫고 귀국하여 화엄대의를 선양하면서 국내의 영지를 가려 불찰을 많이 세웠는데 그것을 화엄십찰이라고 일컬었고, 옥천사는 그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창건되었다. 경내에 달고 맛있는 물이 끊이지 않고 솟는 샘이 있어 절 이름을 옥천사라 불렀고,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이다.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로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495호인 임자명반자와 도지정문화재인 자방루, 향로, 대종, 대웅전 및 소장품 119점과 기념물로 청련암의 찰피나무가 있다. 암자로는 백연암, 청연암, 연대암의 부속암자가 있으며, 옥천사 임자명반자, 배불, 옥천사 소장품 등 120여점의 불교유물의 보관관리를 위한 유물전시관(보장각)이 건립되어 연화산도립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불교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옥천사 가람배치도

우선 옥천사 유일한 보물이 전시되어 있다는 보장각으로 향한다.

보장각 - 유물전시관

신발을 벗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 만나고 싶었던 보물을 전시대 모퉁이에 찾아낸다. 나무 걸쇠에 걸려있는 마치 징처럼 생긴 주물이 보물 495호로 지정된 명자반이다. 고려시대에 군사용으로 쓰이던 북이라고 하는 데, 군사들을 모을 때 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제작된지 200년이 지났음에도 상태가 양호해 보인다.

옥천사 임자명반자(玉泉寺 壬子銘飯子, 보물 495호)

옥천사 임자명반자(玉泉寺 壬子銘飯子, 보물 495호)

반자는 옛날에 군대나 절에서 쓰던 금속으로 만든 북의 일종이다. 옥천사 임자명반자는 옥천사가 소장하고 있는 1252년의 명문(銘文)이 새겨진 청동반자이다. 반자에 새겨진 명문에는 원래 지리산의 안양사(安養寺)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옥천사에 소장된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반자가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연대와 조선 전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 안양사가 기록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적어도 200년 이상의 기간동안 안양사에서 사용되다가, 안양사가 폐사되면서 옥천사로 옮겨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반자의 표면 직경은 55cm, 측면 넓이는 14cm이다. 북을 두드리는 쪽에는 테두리를 포함해 50cm 넓이의 각격으로 4개의 동심원이 두터운 돋을 새김 선으로 돌려 있고, 뒷면은 소리를 내기 위해 꽹과리처럼 비어 있다. 표면의 정 중앙에는 많이 두드렸던 흔적과 6개의 동그란 꼭지가 돋아 있고, 첫 번째와 두 번째 동심원 사이에는 겹으로 된 연꽃문이 있다. 가장자리에는 당초운문(唐草雲文)이 돋을 새김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반자의 측면에 새겨진 187자의 명문에는 제작시기, 제작자, 절과 시주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불교미술사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보장각을 빠져나와 옥천사 경내에 들어선다.

옥천사 전경

옥천사의 맨 앞 건물인 자방루 앞에 샘터가 있기에 이것이 옥천사(玉泉寺)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옥천(玉泉)인가보다 했더니 주변 산객이 옥천은 이것이 아니고 사찰 안에 있다고 알려준다. 글쿤.. 그 샘터 앞 물웅덩이에는 수련이 화사하게 만개하여 벌을 유혹하고 있다.

수련

물을 먹고 자방루 쪽으로 들어서려는데 마당 뒷편 개울 건너의 풀섶에 시선이 꽂힌다. 그곳에 핏빛 꽃들이 나래비를 서 있다. 와~ 꽃무릇이다. 오늘 그렇잖아도 오늘 대한토는 선운산에 가기 때문에 지금 그곳에 한창 피었을 법한 꽃무릇을 싫컨 감상하리라 생각했는데 나도 여기서 만나니 부러울 것이 없어진다.

꽃무릇

꽃무릇

일단 옥천사 경내를 둘러본 뒤 저 꽃무릇을 감상하기로 맘 먹고 자방루로 향한다. 맛 있는 것을 애껴두는 기분으로.. ^^ 자방루 앞에는 넓다란 공터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훈련을 받던 곳이라고 한다. 그 끄터리에 원통형 부도와 석등이 세워져 있는데 석질 상태로 보아 오래 된 것 같지 않다.

자방루

부도

자방루 안으로 들어선다. 자방루(滋芳樓)란 "꽃다운 향기가 점점 불어난다"라는 뜻을 가진 "불도를 닦는 누각"이라 하는데 이 자방루는 신도를 설법하는 곳으로만 이용된 것이 아니라 승병들의 군사교육을 위해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타 누각에 비해 규모가 커서 3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한다.

자방루

옥천사 자방루

자방루(滋芳樓)는 영조 40년(1764년) 뇌원(雷遠)대사가 초창하고 고종 25년(1888)에 중수한 누각으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뛰어난 건물이다. 240여 년 된 건물로 경남 유형문화재 53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들보 6개중 왼쪽에서 4번째에는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비천상이 쌍방으로 그려져 있고 3번째에는 비룡(飛龍)이 그려져 있다. 4개의 기둥중 2번, 3번의 기둥머리에는 용두(龍頭)가 쌍방으로 조각되어 있다. 지붕 밑의 장혀와 창랑에는 화조도와 풍경화를 번갈아 그렸는데 이는 120년 전 중수당시에 그린 단청그림이다. 각종 기묘한 새 그림이 안팎으로 다수 그려져 있어 조선말기의 단청장 스님들이 솜씨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그 밑의 큰 벽화는 근래에 그린 풍경화로 솜씨에 차이가 있다. 사찰의 누각은 대개 2충 누각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으나 자방루의 경우 초창 당시 300여명의 승군(僧軍)에게 군사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단층 누각을 건립한 것이다. 이후 누각은 승려들에게 불경을 가르키고 초파일 같은 큰 행사때 법회를 여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자방루(滋芳樓)란 "꽃다운 향기가 점점 불어난다"는 말로 "불도를 닦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이 자방루는 거대한 성채처럼 절 외곽을 둘러 쌓아 중심영역인 대웅전을 가리고 있다. 이런 유형은 산지에 큰 뜰을 갖춘 절에서 흔히 볼수 있지만 자방루는 그 크기와 형태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단층 8작지붕의 건물이고 기둥 사이를 모두 문으로 막아서 앞마당과 전면만을 개방해 큰 성채를 방불케 한다. 건물 장식 또한 당당하고 사치스러울만큰 화려하게 치장하였다. 이런 건물형식은 신도를 위한 설법장소만이 아님을 추정케 한다. 임진왜란 직후 조정에서는 전략 요충지에 비상시를 대비한 군사적 목적의 사찰을 건립한 예가 있는데 옥천사도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즉 군사적 회합의 대 공간과 사찰 보호용 외곽의 방어용 성채, 군사 훈련을 위한 대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므로 산지의 사찰로는 보기 힘들 만큼 넓은 앞 마당이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거대한 성채같은 자방루는 조선후기사찰 건립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자방루 내부를 들여다보니 이채롭게도 단층누각인데, 그것은 승군(僧軍)을 편의를 위한 것이라 한다. 천장 아래를 가르는 보에는 낡은 편액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녹녹치 않은 연륜을 나타내는 훈장들인 듯 싶다.

자방루 내부

자방루를 지나 대웅전 앞 마당으로 들어선다. 대웅전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적묵당이 있고, 오른편엔 탐진당이 있다.

적묵당과 대웅전

대웅전과 탐진당

정면에 있는 대웅전은 높은 석축 위에 건립되어 있다. 신도들이 위로 올려보도록 함으로써 건물의 권위를 드세운 것이라 한다.

대웅전

옥천사 대웅전(玉泉寺 大雄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이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57년(효종 8)에 용성화상이 중창하였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간으로, 팔작(八作) 지분의 다포계(多包系) 양식 건물이다. 건물의 규모는 일반 대웅전과 비슷하나, 마주보고 있는 자방루나 적묵장의 크기에 비하면 초라하리만큼 작은 편이다. '앞마당의 뜰(中庭)'도 자방루에 비해 훨씬 작고, 부속 건물에 둘러싸여 답답한 느낌을 준다. 다만 높이 쌓은 석축 위에 건물을 조성함으로써, 이곳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든 위를 올려보게 하여 중심 건물이 갖는 당당한 권위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건물의 부재(部材)들 역시 고급스럽고 튼실하여 조선후기 남해안 지방에 건립된 일반 사찰에 비해 훨씬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기둥은 장식물들은 길게 뻗어있으면서도 완만하게 상승하고 있어서 힘과 유려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대웅전은 조선후기 다포계 팔작집의 화려한 격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므로, 당시의 대웅전 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대웅전 안에는 금동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대웅전 삼존불

대웅전 왼편에는 명부전이 있다. 명부전 옆의 고풍스런 굴뚝이 멋지게 어울린다.

명부전

옥천사 명부전(玉泉寺 冥府殿)
명부전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본존으로 하여 염라대왕 등 10대왕(十大王)을 봉안한 전각으로 지장전(地藏殿) 혹은 시왕전(十王殿)으로 불리기도 한다. 중앙의 부처님은 지장보살이시고, 좌우보처는 합장을 한 도면존자와 읍을 한 무독귀왕이 시립하고 계신다. 지장보살은 석가 입멸 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부처없는 세계에 머물면서 육도(六道) 중생을 교화한다는 보살이다. 현재의 명부전은 1895년(고종 32) 옛 궁선당(窮禪堂) 터에 중건한 것이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쇠서를 이용하여 네 모서리마다 각 7마리의 봉황새를 앉혔으며 내부에는 활처럼 굽은 대들보 2량을 가구하여 조선 건축의 아름다움을 한껏 표현하고 있다.

명부전 안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염라대왕을 비롯한 10대왕을 봉안하고 있다.

명부전 10왕 - 좌

명부전 지장보살

명부전 10왕 - 우

명부전 굴뚝 옆에 있는 동자승의 표정이 진지하다. 그 모습이 귀엽다.

동자승 1

동자승 2

명부전 뒷편에는 높은 석축 너머로 조사전(祖師殿)이 있다.

조사전(祖師殿)

조사전 안에는 스님 영정 7~8개가 모셔져 있다. 이 절에서 불법을 닦은 고승들인 듯 싶은데, 가운데에 모신 분이 옥천사를 창건한 의상조사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조사전 영정

그 석축 하단에 있는 구멍이 옥천(玉泉)이라고 한다. 이 샘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항상 수량과 수온이 일정하고, 물은 위장병 및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이 옥천 때문에 절의 이름이 옥천사(玉泉寺)라고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물 무덤이 아래에 있는 샘은 숫샘이고, 옥천사 대웅전 뒤 옥천은 암샘'이라 한다. 여기서 물 무덤이는 연화산 정상을 일컫는다. 그래서 연화산을 일명 물무덤이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옥천(玉泉)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옥천사 전각. 전각지붕이 긋고 있는 직선과 곡선이 멋스럽게 만나고 교차한다.

지붕

지붕 너머에는 연화산이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산자락을 완만히 내뻗고 있다.

연화산과 하늘

옥천(玉泉) 우측에는 초 미니 전각인 독성각과 산령각이 위치한다.

독성각과 산령각

산령각의 탱화는 옆에 호랑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산신령을 그려놓았음을 쉽게 눈치챈 반면, 독성각의 탱화는 흰 눈썹의 노승이 한손에 염주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뉘신지 잘 모르겠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홀로 깨달아 성인이 되었다는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 한다.)

독성각의 성인 (나반존자)

산령각의 산신령

나반존자(那畔尊者) - "홀로 깨달아 성인이 된 사람"

나반존자는 독성(獨聖)이라고도 하는데, 혼자 수행을 하여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수기(受記)를 부처님께 받고 남인도 천태산(天台山)에서 홀로 수행해 깨침을 얻었다고 전한다. 해가 뜨고 지는 것, 잎이 피고 지는 것, 봄에 꽃이 피는 것, 가을에 열매가 맺는 것 등 변함 없이 운행되는 우주의 법칙을 보고 깨달았다고 한다. 이리하여 삼명(三明)과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삼명은 전생을 꿰뚫어 보는 숙명명(宿明明), 미래를 보는 천안명(天眼明), 현세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 누진명(漏盡明)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으로 자리이타(自利利他), 곧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므로 말법시대의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고 한다.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부처의 제자가 된 나한이라고 하나 부처의 제자 중에는 그의 이름이 없고, 이름을 거론한 경전도 없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의 문헌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육당 최남선은 단군신앙에서 생겨난 우리나라 고유의 신으로 파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무리가 따른다. 우리나라에 독성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693년(숙종 19)이며, 180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사찰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또 다른 설로 십육나한 중 한명인 빈두로존자로 보기도 한다. 흰 머리와 흰 눈썹 등 외모상 비슷한 점이 많고 신통력이 있다는 것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말법시대에 나타나 미륵불이 오기 전까지 중생들에게 복을 주고 재앙을 없애며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였다.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말에 나반존자 신앙이 더욱 성행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험이 큰 성인이나 성격이 매우 엄하고 무서워 공양을 드릴 때는 목욕재계는 물론이고 공양물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나반존자를 따로 모신 '독성각'을 마련하거나 삼성각 안에 칠성과 산신을 함께 모시기도 한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 상을 봉안하기도 하지만 보통 독성탱화를 많이 봉안하는데 이 탱화는 천태산을 배경으로 하여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늙은 비구가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출처: 불교신문 및 여타 자료]

산령각 우측에는 나한전이 있다. 그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삼존불을 유리장 안에 모시고 있고, 유리장 좌우로 석가모니의 제자들인 16나한을 모시고 있다.

나한전

나한전 내부

옥천사 나한전(玉泉寺 羅漢殿)

나한전(羅漢殿)은 16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羅漢)은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불법을 수호하도록 부처님의 부촉을 받은 분들로서 곧 잘 영험을 나투는 수가 있는데 옥천사에서도 가끔 영험을 보이신다. 중앙의 유리장 안에는 석조로 된 석가모니불과 목조로 된 미륵보살, 제화가리보살 등의 삼존을 모셨는데 정조연간(1776~1799)의 아름다운 불상들이다. 나한상은 상단 불상의 상단 불상의 좌우로 각 여덟분씩 16분을 모셨다. 16나한은 최근에 일률적으로 개반, 개채하였는데 그 중 9분은 조선 전래의 나한들이고 7분은 근래에 조성된 나한들이다.

이 건물은 고종 32년(1895)에 건립된 단포(單包) 집으로 내부에는 4모서리에 비룡을 조각하여 매다는 등 뛰어난 건축술을 발휘하였다. 바깥 기둥의 주련은 성파 하동주(星坡 河東州, 1986~1944)의 글씨다. 성파는 추사의 필법을 이은 근래의 명필로 경남 거제에 살면서 많은 글씨를 남겼다. 주련의 뜻은 "옛날 부처가 나기 전부터/둥근 모양이 뚜렷했었네/석가도 오히려 알지 못 했는데/가섭이 어찌 전할 수 있을 손가?"라는 뜻이다.

대웅전 오른편에는 팔상전이 있다. 팔상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그린 8폭의 탱화를 모신 전각이다. 국보로 지정된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에 비하면 다소 초라한 느낌이다.

팔상전

팔상전 내부

옥천사 팔상전(玉泉寺 八相殿)
팔상전(八相殿)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8폭의 탱화로 그려 모신 전각이다. 고종 27년(1890)에 건립되었다. 8상 탱화의 원본은 도난 방지를 위해 따로 보관 중에 있고 대신 이곳에는 원본 탱화의 사진을 봉안하였다. 탱화 밑의 존상들은 부처님의 8대 제자로서 최근 풀리싱으로 조성하여 모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2500여년 전 카필라성 동서남북의 4문을 돌아보시고[四門游觀相], 생로병사가 있음을 아신 후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출가했다고 하지만, 근래의 고승 청담스님의 설법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생로병사 중에서도 특히 중생의 죽는 고통을 불쌍히 여겨 죽지 않는 도리를 깨닫기 위하여 출가하셨다고 한다.

전각 관람을 마치고 대웅전 앞마당으로 내려온다. 적묵당 앞 석축에 우산이끼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우산이끼

우산이끼
우산이끼는 집 근처나 산지 응달 등 음습한 땅에서 자라며, 전체적으로 땅바닥에 달라붙어 퍼져나가는 잎처럼 넓은 엽상체와 엽상체 복면에 털 같이 나는 헛뿌리로 구성되어 있다. 암수딴그루이며 수그루는 뒤집어진 우산 모양의 배우체를 가지며, 암그루는 찢어진 우산 모양의 배우체를 가진다. 암 배우체에 포자낭이 생기며 이 포자낭 속에서 포자가 만들어져 번식한다. 또한 엽상체의 표면에도 술잔 같은 무성아기(無性芽器)가 생겨서 짙은 녹색의 무성아가 많이 생긴다. 번식은 포자보다도 무성아에 의한 것이 많다. 우산이끼란 암그루와 수그루가 우사같이 펼쳐지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우산이끼 엽상체(바닥에 넓게 퍼진 것)와 수그루 배우체

우산이끼 암그루 배우체

이제 사찰 밖으로 나가려니 어느 분이 적묵당 댓돌 위에 있는 고무신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열심히 찍고 있다. 스님들의 고무신은 항상 이렇게 깨끗하다고 하며.. 나도 그 분이 잡은 구도를 흉내내어 한 컷 찍어본다. 가지런히 놓인 한쌍의 고무신이 수행자의 단정한 모습을 연상짓게 한다.

고무신

자방루를 빠져나와 앞마당을 가로질러 범종각으로 간다.

범종각

범종각 처마에는 커다마한 벌통이 하나 있다. 맹독 침을 가진 땡벌집인 듯 싶다.

범종각의 벌통

벌통

범종각 뒷편 개울을 건너 아까 보아두었던 꽃무릇 군락지로 간다.

계곡

경사진 풀숲에 빨간 꽃더듬이를 치켜세운 꽃무릇들이 나를 반겨준다.

꽃무릇 1

꽃무릇(석산 石蒜)

꽃무릇은 수선화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이다. 일본 원산이며 학명은 Lycoris radiata이다. 석산(石蒜)이라고도 부른다. 산기슭이나 습한 땅에서 무리지어 자란다. 절 근처에서 흔히 심는다. 잎이 10월에 나왔다가 다음해 5월에 사라지고, 잎이 떨어진 9월에 산형꽃차례에 붉은 꽃이 피는데 꽃덮이(화피)는 여섯 조각으로 거꾸로 된, 얇은 바소꼴이고 뒤로 말린다. 수술은 6개고 길이 7~8센티미터로 꽃밖으로 나오며 암술은 한 개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은 쓰러지며 그 뒤에 잎이 나온다. 비늘줄기(인경)로 번식한다. 비늘줄기의 한약명이 석산(石蒜)이다. 해독 작용이 있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이 꽃을 그냥 '붉은상사화'라고도 불렀었다. 상사화는 원래 봄에 피는 분홍꽃을 말하는데 노란색 상사화도 개상사화라 불리어지며 꽃무릇도 가을에 피지만 상사화류에 속하는 꽃이다. 상사화는 잎이 지고나서 꽃이 개화하기 때문에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을 서로 그리워하는 것으로 비유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꽃 주변을 휘둘러 치켜세운 더듬이 모양의 꽃술이 볼 수록 특이하고 오묘하다.

꽃무릇 2

꽃무릇 3

꽃무릇 4

꽃무릇 5

꽃무릇 6

꽃무릇 7

꽃무릇 8

꽃무릇 9

꽃무릇과 작별을 한 뒤, 개울을 넘어오던 중 쥐손이풀을 만난다. 분홍색도 있고 흰색도 있다. 화려한 꽃무릇에 비해 수수하디 수수한 이 꽃님들도 이쁘기 그지 없다.

쥐손이풀 1

쥐손이풀 2

이제 돌아가는 길, 하마비(下馬碑) 옆을 지나고..

하마비(下馬碑)

천왕문을 통과한다. 정토(淨土)를 벗어나 다시 사바(娑婆)의 바다로 빠져든 것이다.

천왕문

☆ 지나온 길 오후 12시04분, 연화지에 당도함으로써 연화1봉 산행을 마쳤다. 총 산행거리는 3.22km, 산행시간은 2시간 11분 소요되었다.

산행 경로

☆ 쫑 연화산 정상을 밟지 못하여 아쉬움이 컸지만 연화지의 흰물봉선, 고색창연한 옥천사, 풀숲 속의 꽃무릇이 그 아쉬움을 완전히 해소시켜준 듯 싶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