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이 곧 섬이자, 섬이 곧 절인 '간월암',
바다 위 둥둥 '부상탑'과 아름다운 여우섬이 있는 '안면암',
'꽃지해변'에서의 황홀한 낙조,
그리고
걸죽함서도 맛깔스런 뒷풀이를 한 '딴뚝식당'까지의
행복한 여정을 담은 餘適 ▣
☆ 일시 : 2024년 1월 27일.
☆ 여행코스 : 간월암~스카이워크~안면암~꽃지해변~딴뚝통나무집.
@ 간월암(看月庵)
간월암(看月庵)
간월도가 예전에는 피안도(彼岸島), 간월암은 피안사(彼岸寺)라고 불린 적이 있다.
신라때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하는데 그 출처가 분명하지는 않다.
밀물이 들어오면 물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 하여 연화대(蓮花臺)라고도 불렀다.
고려 말에 무학 대사가 이곳에서 수행 중에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고 하게 되었다.
무학 대사의 득도처였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대사가 태어난 곳이 간월암에서 멀지 않은
충남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 이기 때문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법어를 일갈하신 성철스님도
만공스님이 권해서 간월암에서 수행할 정도로
스스로를 가두고 수행정진하기 좋은 절해고도(絶海孤島)였다.
천수만의 작은 섬이었던 간월도는 1984년 간척사업(정주영 공법) 덕에 육지와 연계되어 뭍이 되었다.
서산방조제가 세워지면서 간월도 앞 바위섬(간월암)도 뭍과 연결되었다.
하루 두 번은 배 없이도 오갈 수 있다.
그래서 간월암 홈페이지 통해 물때를 미리 확인해야만 한다.
만공(滿空) 선사가 1942년 8월부터 3년 동안 이곳에서 조선독립을 기원하는 1000일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회향한 지 3일 만에 광복을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간월암이 세간에 알려졌다 한다.
만공선사는 일제강점기 만해스님이나 용성스님(민족대표 33인이자 조계종 범어문중의 시조)처럼
직접 독립운동 일선에 나서진 않았지만 선원에서 정진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선학원을 만들어 한국불교 말살 정책을 피던 조선총독부의 핍박에서 벗어나
독신 수행가풍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다.
스스로를 인간 부처라 일컫고 근세 선불교의 중흥을 이끈 ‘괴짜 스님’ 경허대사의
셋째 제자로서 스승의 족적을 만인에게 알리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 조계종 최대 문중 가운데 하나인 덕숭문중(덕숭산 수덕사를 중심으로 하는 문중)이
경허스님 만공스님으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조선불교 초기 대표적 선승인 무학대사와 근대불교 선종(禪宗_대승불교의 하나의 조류이며 달마대사가 창시자)의
중흥기 법통을 이은 만공선사의 정신이 간월암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을 비롯한 세 제자들을 중심으로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불교 이야기를 담은 최인호 작가의 장편소설 ‘길 없는 길’이나
유작소설 ‘할’에는 간월암의 여러 풍광이 묘사되기도 했다.
벽초(碧超)선사는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9살 때 탁발 나온 만공 선사에게 감화돼 수덕사로 출가했다.
그의 부친 연등 스님도 함께 출가해 그는 연등을 은사로 삼아 만공의 손상좌가 되지만,
실제로는 만공이 거두고 다듬은 직제자였다.
그는 만공을 따라 금강산 유점사와 오대산, 지리산 등
명산 대찰을 찾아 무섭게 정진해 생사의 철벽을 타파했다.
1930년에 수덕사로 돌아온 그는 1940년부터 무려 30년 간 주지를 지냈다.
빈한하기 그지없던 수덕사를
오늘날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백양사와 함께 5대 총림의 하나로 일군 이가 벽초선사였다.
1945년 8월 16일, 일제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만공 스님은
무궁화 꽃잎을 따다가 벼루에 얹고 먹을 갈아서 쓴 글.
“세계는 한 송이 꽃.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라.
어리석은 자들은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인 줄 모르고 있어.
그래서 너와 나를 구분하고, 내 것과 네 것을 분별하고, 적과 동지를 구별해 다투고 빼앗고 죽이고 있다.
허나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라. 풀이 있어야 짐승이 있고,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네가 있는 법, 남편이 있어야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어야 남편이 있고, 부모가 있어야 자식이 있고,
자식이 있어야 부모가 있는 법. 남편과 아내도 한 송이 꽃이요, 부모와 자식도 한 송이 꽃.
이 세상 모든 것은 한 송이 꽃이라는 이 생각 한 가지를 바로 지니게 되면 세상은 편할 것이요,
세상은 한 송이 꽃이 아니라고 그릇되게 생각하면 세상은
늘 시비하고 다투고 피 흘리고 빼앗아 죽이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참 뜻을 펴려면,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참새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심지어 저 미운 원수들마저도 부처로 봐야 할 것이요.
다른 교를 믿는 사람들도 부처로 봐야 할 것이니,
그리하면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이라.”
스님은 당시 이렇게 예언하셨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가 독립했으니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간월암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 대신에, 관음보살을 모시는 ‘원통전’이 중심을 차지한다.
‘어떤 이야기라도 다 들어준다’고 하는 관음(觀音)보살은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자비의 화신이라 한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고뇌를 주원융통(周圓融通, 두루 막힘이 없는 상태)하게
씻어준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관음보살을 모신 건물을 관음전이라 칭하는 절들도 많다.
원통전엔 충남 유형문화재 ‘목조보살좌상’을 비롯해
무학대사, 만공선사, 벽초대사(만공의 제자)의 영정이 놓여 있다.
목조보살좌상은 나무와 종이로 틀을 제작한 뒤 금칠을 입힌 불상으로 1600년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願此鍾聲遍法界(원차종성편법계)_원컨대 이 종소리가 온 법계에 두루 퍼져서
鐵圍幽暗悉皆明(철위유암실개명)_철위산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 다 밝아지리라
간월암은 특히 주변의 섬들과 어우러진 낙조와 함께 달이 떠올랐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우리의 일정이 여의치 않아 그 풍경은 다음에 다시 와 보기로 하고,
마음을 달랜다.
간월도항 방파제등대는 2019년 6월에 처음으로 불을 밝혔으며,
빨간색 원추형 모양으로 일몰을 형상화한 벽화가 인상적이다.
‘황해바다 석화야!, 석화야! 물결 타고 달빛 따라 간월도로 모여라.
황해바다 석화야! 석화야! 이 굴밥 먹으러 간월도 달빛 따라 모두 모여라 석화야….’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자역민들의 굴 풍년을 기원하는 간절함을 담아 제를 올린다.
‘간월도 굴부르기 군왕제’다.
과거 무학대사도 태조에게 간월도에서 난 어리굴젓을 진상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지역민들은 이 굴로 어리굴젓을 담가 먹었다.
어리굴젓은 육질이 단단하고 굴 특유의 바다냄새가 풍부하다고 한다.
@ 안면암(安眠庵)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청정 태안을 되찾았으면 하는 주민들의 염원을 담아 2009년에 세워진 탑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인 안면암(安眠庵)은
대웅전, 선원, 불경독서실, 삼성각, 용왕각, 불자수련장 등이 갖춰져 있으며 지난 1998년 지어졌다.
@ 꽃지해변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산27번지 일대의 꽃지해수욕장에 있는
면적 약 10,526㎥의 바위로, 2009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꽃지 할미·할아비 바위는 만조 시에는 바다 위의 섬이 되고 간조 시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경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해수욕장의 모래 사구, 바다 등과 어우러져 바위 뒤로 넘어가는 일몰 경관이 뛰어나
우리나라 서해안 낙조 감상의 대표적 명소이다.
서해 낙조의 뛰어난 경관적 가치 외에도 작은 바위인 할미바위와
그 옆의 할아비바위에 전해 내려오는 금슬 좋은 노부부의 전설 등 민속적 가치 또한 큰 경승지이다.
할미 할아비바위는 아름다운 풍광만큼 아름답고 애절한 전설을 지니고 있다.
신라 제42대 흥덕왕(826~836년)때 해상왕 장보고는 청해(완도)에 진을 설치한 뒤
서해안의 중심지인 안면도(건승포)에는 전략적 전진기지를 두었는데,
이 기지의 책임자로 '승언'이라는 장군이 파견됐다.
그는 부하들을 친형제처럼 여기고 어질게 대하니 부대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이런 승언장군에게는 '미도'라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으며
이 부부들의 금슬은 너무 좋았고 사랑은 날로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장보고는 승언장군에게 급히 군선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장으로 떠나는 승언장군은 사랑하는 아내와 기약없는 작별인사를 나눈 뒤 군선을 이끌고 출정했다.
여러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자 초조해진 미도 부인은 바닷가 높은 바위에 올라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일편단심으로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몇년이 지나도 장군을 돌아오지 않았으나 미도 부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밤낮으로 수 십년을 기다리다 결국 이 바위 위에서 숨을 거둔다.
이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할미바위'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천둥소리가 하늘을 깨는 듯 하더니
할미바위 앞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할아비바위'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KBS 주말 드라마 '저 푸른 초원위에'에서 꽃다리와 해변의 해넘이가
두 주인공의 사랑을 나누는 황홀한 배경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곳이다.
'꽃지'라는 이름은 예부터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난 데서 유래했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 인근에 위치한 딴뚝통나무집은 멋진 외관과 최고의 맛을 자랑하며,
자연속의 정갈한 맛을 제공하기에 여행하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태안의 토속음식인 게국지를 현대인의 입맛에 맞도록 안면도에서는 처음으로 메뉴를 개발하여
손님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아, 이제는 모든 식당들이 따라하는 메뉴가 되어버렸다.
게국지는 게장 국물에 묵은지나 배추, 우기지 등을 넣고 끓인 찌개를 말한다.
그런데, 이 게장 특유의 비린내 등으로 낯선 외지인들은 먹기가 거북스러울 때가 많았다.
이창우 대표는 이 점을 착안해 관광객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입맛으로 개발해
게국지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자평한다.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씨푸드 경영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맛집이기도 하다.
@ 광주 희망토요산악회 회장님 이하 및 집행부님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따뜻한 배려에 깊이 감사드리며,
기회가 닿는 즈음에는 언제든지 함께할 것을 다짐하면서
길고도 허접한 후기에 같이해주심에 고마운 마음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