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제 간증문을 올립니다. 작년에 순복음 교회 신앙계에서 창간 50주년 기념 간증문 모집에 보낸 원고입니다. 제 이름만 다윗으로 바꾸고 기쁜 마음으로 올립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모두가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사실을 가는 곳 마다 입만 열면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체험만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핍박한 사실을 늘 전했습니다. 제 젊은 시절의 방황과 실수들을 주님께서는 다 포용하시고 저를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우시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셔서 무슨 일이든 열심으로 해 보시면서 살다 보면 길이 보입니다. 인생은 단기에 승부가 나는 것이 아니기에 젊은 시절의 실패가 결코 인생에 많은 손해로 남지 않고 주안에서는 성숙의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모든 일에 젊음의 패기를 가지고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해 보는 것입니다. 연애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직장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다 잊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부족한 모습 그대로 열심히 살면 됩니다. 제가 매일 간절히 제 글을 읽는 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니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꼭 생각나실 때마다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늘 가득하시길 빕니다.
DAVID 목사
1. 감사와 찬양
어릴 때 어부였던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무섭게 빠른 속도로 흐르는 시푸른 깊은 바다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오직 달과 바람과 고기의 움직임을 쫓던 순박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이스라엘 갈릴리 바다로 연결되어 어부 베드로에게 오셨던 주님이 오늘날 저에게 다시 오셔서 주님과 세상과 말씀에 대해 일일이 알려주시고 복음의 일군이 되어 주님과 함께 어디든지 누구든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는 은혜와 측량할 수 없는 사랑!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의 중한 고통과 죽음으로 죄를 사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아무 소망 없이 죽어야만 했던 죄인이 성령의 충만한 의인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세상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도구의 삶을 살게 하신 삼위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날마다 찬양합니다. 그리고 30년 한결같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한 가족과 교회와 늘 아들같이 돌보아 주신 원 광기 목사님께 그리고 믿음의 친구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나서 자란 고향 남해 노량은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하신 곳이라 충렬사라는 사당이 있고 마을 주민들은 마을 앞 바다에서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지으면서 참으로 순박하게 사는 곳이었습니다. 동네 어른들 모두를 자신의 조부, 조모와 같이 공경하고 집집마다 자녀를 많이 낳아서 보통 한 가족이 10명 이상 되는 대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료시설이나 약이 구비되어 있지 아니하여도 많은 분들이 80세를 넘게 사는 장수하는 마을이었습니다. 저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8남매가 함께 어른들을 극진히 공경하며 형제간에 우애가 넘치는 가정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중학교까지 다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부시라 조그만 노 젓는 배를 타고 그물을 바다에 내려 고기를 잡으셨는데 동네에서 제일가는 어부셨기에 늘 많은 고기를 잡으셨습니다. 우리도 심심하면 낚싯대를 가지고 고기를 낚았으며 여름에 햇볕이 내리 쬐면 바다 속에 들어가 온 종일 멱을 감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도시로 나온 후 지금까지 대도시에서 사는데 가끔 고향에 가 보면 바다에 떠 있는 섬들과 넘실거리는 바다와 갯내음 그리고 시원한 바람은 마치 제가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그 곳에는 참으로 아무 걱정 없이 놀기만 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학교공부를 마치자마자 책 보따리를 던져놓고 친구들과 함께 산과 바다와 들판으로 떼를 지어 놀려 다녔습니다. 지금의 초·중등학생과 달리 공부에 대한 압박이 1퍼센트도 없었기에 놀기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 세상과 죄에 깊이 물들다
마산상고에 진학하면서 가족과 떨어지게 되었고 3년 동안 열심히 주산공부와 타자 등 상업공부에 힘써 졸업과 동시에 은행에 들어가게 되고 제주도로 발령을 받아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고2 때 돌아가셔서 큰 형이 어머니와 함께 집안을 돌보셨기에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집에 다 보냈습니다. 큰 형이 어머니와 제 월급 문제로 다툼이 있게 되고 어머니께서 집을 나가시게 되었기에 저도 돈 보내는 것을 단념하였습니다. 그 후에 저는 불교에 심취해서 법정 스님의 글을 읽고 좋아져서 은근히 법정 스님과 같이 출가를 할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슴 한 켠에 늘 허전한 마음이 들어 우연히 제주도의 사창가를 가게 되었고 틈만 나면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후에 춘천과 군대 그리고 충무에까지 그런 곳에 가는 일이 연결되어 젊은 육체의 소욕을 건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곤 하였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와 사랑에 빠져서 동거를 하다시피 하면서 지내다 아기가 생기면 아무 생각 없이 지우곤 했습니다. 너무나 큰 죄를 쉽게 지었습니다. 카투사로 군대에 갔는데 1년이 지나면서 애인은 저의 무책임한 모습에 실망해 떠나갔습니다. 실연을 당한 저도 군대를 마치고 은행에 대한 미련이 없어지고 군대에서 만난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형편이 아니 되는 데도 예비고사를 보고 대학에 늦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점장님도 말리고 어머니도 홀로 계시는데 어린 동생들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너무나 좋은 직장을 버리고 제 하고 싶은 대로 대학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세차장 일을 시작하셨는데 80이 넘으실 때까지 노동을 하셔야만 했습니다. 고시를 목표로 정하고 공부를 해서 여자에 차인 저의 위상을 높이고 시대적 염원인 통일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해 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김해 장유에 있는 고시원에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 교회 수련관이 있었는데 지금은 반석교회 원로 목사님이 되신 성경석 목사님과 소천하신 김성수 장로님께서 저와 모든 고시생들을 잘 대해 주시며 전도를 하셨습니다. 저는 누가 ‘예수를 믿으라.’ 하면 ‘내 자신을 믿지 왜 예수를 믿나?’하고 반문했으며 스스로 의롭고 도덕적이며 선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해서 은행에도 들어갔으니 고시도 합격할 것이라 생각하고 기독교 대신 불교에 심취해 매일 산 중턱에서 가부좌를 틀고 묵상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할 때 군대에 있는 교회에 처음 나갔다가 ‘다음 주에 대표기도를 하라.’는 말을 듣고 군대를 마칠 때까지 교회에 나가지 않은 경험이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 고전 13장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저를 회개시킴
고시원장이셨던 동향의 김성수 장로님께서 성경책을 한 권 주시기에 나는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거절하려고 했지만 고향 분이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서 공부하는 좁은 방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틈틈이 산에 올라 명상을 하곤 했는데 오월의 어느 날 산 중턱에서 바라본 산의 파릇파릇한 나무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는데 갑자기 저것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놀라운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산에서 명상을 하고 내려와 고시공부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까뒤집어지는 듯 아프고 커다란 두려움이 함께 밀려왔습니다. 어찌 할 바를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제 눈에 성경책이 들어와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펴서 읽는데 고린도 전서 13장 말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글이 아니라 한 구절 한 구절이 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인 제 마음은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선하고 의로운 마음이 아니고 고전 13장 말씀과 완전 반대인 못된 마음이었습니다. 순간 무릎이 꿇리고 눈물이 나며 기도가 나오는데 “저를 도구로 써 주세요.” 라는 기도였습니다.
그 순간부터는 예전과 같은 태도와 모습으로 절대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고전 13장 말씀을 묵상하며 그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잘못된 저의 모습을 강하게 되돌아 보았기에 절대로 예전과 같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생각나는 대로 육체가 이끄는 대로 살아오던 사람이 갑자기 사랑을 하려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과 함께 본 성경의 거울에 비친 제 마음의 잘못을 너무나 강하게 보았기에 고전 13장의 말씀대로 살 도리 외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반석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를 드리고 몇 년이 지나 사영리로 전하는 대학생의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동안 대학공부와 고시공부를 병행해서 했는데 대학 3학년 때 행정고시 1차에 합격했으나 2차에는 낙방했습니다.
4.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다
대학교회에서 입교 절차를 통해서 제가 죄인임을 고백했고, 이런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 없이는 아무런 소망이 없으며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임을 온 교회의 회중 앞에서 선포하고 몇 년 더 신앙생활을 한 후에 다시 장유로 옮겨 반석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과 성도들 모두가 잘 대해 주시고 고시생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 주셨지만 교회생활이 편하고 쉬운 일만 아니었습니다. 우선 대학공부와 고시공부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기에 이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교회생활을 하지 않아 예배시간에 찬송을 하는 것이나 성경말씀이 고린도 전서 13장 외에는 이해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목사님과 성도들의 격려로 잘 참고 늘 마음으로는 고전 13장 말씀을 묵상하며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5년이 지난 1991년 5월 19일 김해 장유 반석교회에서 성경석 목사님의 집례와 김성수 장로님의 도움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고 나니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편안해지고 쉬워졌습니다. 비록 죄 사함에 대한 이해는 많이 없었지만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찬송도 함께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시공부를 하면서 성경책도 조금씩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니 비로소 제가 너무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라는 선한 일은 한 적이 거의 없고 하지 말라는 악한 행위는 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라 생각했으며,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다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 마다 보이는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죄를 짓지 않으려 몸부림쳤습니다. 마태복음을 읽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5. 예수님으로부터 불세례를 받다
1991년 다시 행정고시 1차에 합격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2차 준비를 착실히 하였습니다. 서울대 옆 신림동에서 1992년 2차 준비를 하면서 선민교회에서 다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고시공부와 대학공부를 병행해야 했기에 서울과 지방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공부를 하였는데 이제는 나이도 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서울대생과 성대생, 부산대생 그리고 강원대생 등 1차 합격자 7명이 모여서 그룹을 만들어 매주 1-2번 만나서 모의고사를 보고 서로 답안을 보며 토론을 했습니다. 또 1차 합격자만 200명 정도를 모아서 출제위원급 교수를 각 과목별로 초빙해 강의를 하며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을 해서 등수를 발표하는 2차 대비 실전과정에도 등록해서 모의시험을 매주 쳤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매번 시험에서 고득점해서 200명 중 10위 안에 늘 들었기에 그룹스터디 하는 학생들도 제가 고득점으로 최종 합격할 것이라 믿어 주는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교회생활도 충실히 해서 주일 성수와 어려운 가운데서도 10일조 생활을 빠짐없이 하던 중 고등학교 동창인 문호를 만났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전도하니 우습게 여기고 오히려 영적으로 저를 힘들게 해서 하지 않던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배시간에도 창자가 뒤틀리고 곁에서 찬송을 하면 천둥소리같이 들리고 참으로 어려운 순간들이 계속되었습니다. 한 달 정도 그렇게 새벽기도를 나가면서 순복음 교회에 다니시는 할머니 한 분도 아침마다 모시고 같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도 역시 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들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고 박기수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목사님께서 설교 중 우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평소 그림으로 보던 수염 있으신 예수님의 얼굴이 칼라가 아닌 흑백으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입에서 빨간색의 불이 뿜어져 나와서 제 가슴으로 오는데 제 가슴에 촛불과 같은 작은 불꽃이 몇 개가 있는 것이 보이고 손에 땀이 나면서 ‘아픈 사람을 만지면 나으리라’는 믿음도 함께 왔습니다.
너무나 좋은 축복을 받았기에 나누고 싶은 생각이 나서 예배를 마치고 당시 국수를 삶아서 나누어 먹었던 지하식당으로 내려갔습니다. 늘 저를 보면 아들같이 안아주시던 박외분 권사님이 서 계셔서 뒤에서 옷만 가만히 만졌는데 갑자기 뒤로 돌아서시고 엄지를 세우시며 “수석해라. 수석해라!”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행시에 수석 하라는 말로 이해하고 방에 수석합격이라 써 붙였습니다. 그리고 늘 성전에 계시던 관리집사님(지금은 장로님이 되신)이 그 분께는 아무 말도 아니했는데 웃으시면서 “하나님을 만났구먼.” 하셨습니다. 그 때는 고시공부도 세상일도 모두 잊어버리고 천국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 무엇을 할지 몰라 “하나님 무엇을 할까요?” 물으니 “문호!” 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상해서 다시 물으니 이번에도 “문호!”라고 하시는데 그 음성이 한 번 더 물으면 고막이 터질 것 같아 문호에게 가라는 말로 이해하고 문호 집에 갔는데 문호는 아직 새벽이라 이불 속에 있으면서 제가 왜 아침부터 찾아오나 의아해 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아침을 하기 위해 쌀을 씻다가 차를 한잔 내 왔는데 차를 서로 먹다가 문호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을 만났다.’ 하며 저로 인함이 아니라 성경을 차분히 읽다가 만났다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하나님께 “무엇을 할까요?” 물으니 목사가 되라고 하셔서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을 하라고 하시기에 또 박기수 목사님을 너무나 영적으로 괴롭힌 것 같아 할 수 없다고 하니 “기도를 하라.”고 다시 말씀하셔서 기도를 하니 마음에서 “예”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야지 하고 조심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와 고시 2차 시험을 쳤는데 과목낙제 없이 1점 차이로 낙방하고 8년간 대학 대학원을 거치며 열심히 했는데 합격하지 못해 실망한 마음을 추스르고 목사가 되려고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6. 결혼을 하고 신대원 준비하면서 전도에 매진하다 이혼을 당하다.
1994년 튼튼영어 교대지사에서 근무하면서 만난 천주교에 다니는 자매에게 목사가 될 것이니 도와주길 부탁드리고 문정동 성당에서 가족과 친지를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는 잠실교회에 등록해서 출석을 하고 아내는 성당에 계속 다녔는데 서로 신앙적인 문제로 갈등이 생겨 결국 서로의 교회에 번갈아 출석하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교사로서 교회 일을 하면서 여의도 순복음 교회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 일을 하면서 매일 하루에 200여 가구를 방문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장로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려고 성경정리와 성경공부를 부지런히 했습니다. 1995년 전북대 강준만 교수에게 보낸 전도편지를 시작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며 편지도 보냈습니다.
신림동에서 만난 남해 할머니는 고혈압과 당뇨가 있는 분이셨는데 보름간 다니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었고 옆집에 사시는 어지럼증을 가지신 할머니도 이런 소식을 듣고 기도를 부탁하자 역시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잠실교회에서 교사를 하시며 전도를 많이 하시던 꼬마 집사님께서 성전에서 허리가 아파서 몸을 잘 움직이지도 못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순식간에 고치시어 어찌할 바를 몰라 하셨고 동상에 걸린 분을 발바닥에 손을 바치고 기도하니 수백 개의 바늘이 찌르듯 했는데 이분도 하나님께서 고치셨습니다.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던 중 90이 넘는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기도할 때 몸에 생기가 돌며 가픈 호흡이 편안해 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화여대 영문학과에 다니다 재수를 해서 수능을 치기 전날 밤 불안하다며 기도해 주기를 부탁하는 전처 고모님 딸에게 고시공부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심으로 평안이 임하는 것을 보았고 시험을 잘 쳐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최근에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국무총리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 2인 1조가 되어 복음을 전하던 중 어느 집에 들어갔다가 심히 혼이 나며 내쫒기는 과정에서 동료가 분을 삭이기 못하고 기도를 방언으로 하는데 저는 당시 상황으로 보아 그 내용이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놀랍게도 갑자기 방언이 가느다란 이쑤시개로 귀를 후비듯 귀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말로 통변이 되었는데 우리를 모욕하고 폭언을 하신 분을 축복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은 참으로 편안하고 아늑했습니다. 아내와 처가 식구들은 부농이라서 저희가 먹을 것을 다 보내주셨고 고시공부에 지치고 낙망한 저를 전처는 너무나 잘 품고 섬기어 낙방의 상처도 속히 치유 받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저는 가정과 신학을 위해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야만 했었는데 오히려 이곳저곳 직장을 옮기며 신학 공부를 핑계로 가장에 충실히 하지 않고 벌이도 시원치가 않아서 결혼 후 5년이 지나면서 아내와 다투는 일이 많아지고 결국 아내는 제가 교회에서 돌아온 어느 주일날 집이 텅텅 비어있어 알아보니 짐을 싸서 떠나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떠난 자리가 너무 커서 다시 신림동으로 들어온 저는 이번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무리 기도로 마음을 잡으려 해도 되지 않고 이상행동을 하다 결국에는 녹번동에 있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이 되어 부랑자, 알콜 중독자 등과 같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가족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에서 벗어나 장신대 아래에 있는 단칸방에서 밥과 빨래를 하면서 공공근로를 하면서 겨우 연명해 가는데 이미 빚도 많이 있던 상태라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잠실교회 당시 담임이셨던 원광기 목사님께서 부르시고 근황을 묻고 잠실교회 관리집사를 하라고 하시어 이사를 하고 2001년 초부터 잠실교회 관리집사로 안정적으로 일을 하면서 빚도 갚았지만 아내가 떠난 자리는 메우지 못해 우울과 불면증으로 시달리다 체념과 소망 없이 하루하루 사는데 외로움이 얼마나 심한지 뼈가 시렸고 이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천주교, 개신교의 분리에서 오는 주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정신을 차려서 다시 열심히 교회 일을 하면서 전도편지를 가족과 이웃에 보내며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전도편지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너는 저리가라. 내가 쓴다.” 하시며 주님이 오셨는데 주님이 편지를 쓰는지 내가 쓰는지 모르게 주와 하나가 되어 전도 편지를 썼습니다.
7. 공중에 오신 주님 새로운 가정을 주심(2004) 그리고 넓어지고 크진 전도
하루는 평소에 하는 대로 교회 마당을 쓸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공중에 오시어 하늘에서 지구를 보시며 복을 줄 자를 찾고 계셨습니다. 저는 즉시 “예수님 한국에는 저와 결혼할 여자가 없으니 세상을 보시고 제 짝을 찾아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사실 이혼한지 4년이 지났고 교회와 목사님께서 여러 여자를 소개시켜 주셨는데 아무도 저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전처도 주변에 살아서 재결합하자고 아무리 애를 써도 허락해 주지 않았고 홀로 사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뵌 후 1개월이 지나지 않아 잠실교회에서 보내신 선교사님이 카자흐스탄에서 여자를 4명 구해놓았으니 와서 보라고 하기에 교회에 말씀을 드리고 카자흐스탄으로 날아갔습니다. 그곳에 키도 크고 예쁜 아가씨가 있어 선교사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선교사님께서 설득을 하시어 결국 잠실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아들을 낳아 주어 이제 11세가 되었으니 이혼의 아픔은 옛일이 되었고 우울증 불면증 약도 결혼과 동시에 끊고 신학도 마치고 목사안수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 아내와 함께 열심히 전도를 하여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가족에서 홀로 예수님을 믿었는데 어머니께서 75세에 믿으시고 권사님이 되셨고, 숙모와 삼촌, 동생들, 조카들도 교회에 출석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아내와 같이 마천동의 족발집에서 족발을 시켜놓고 종업원에게 전도를 하고자 하면서 주님이 이곳에 계실까 생각하는 순간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데 “있다!”하셨습니다. 어쩔 바를 몰라 마음이 베드로가 주님을 만난 것 같이 천리만리로 도망을 가는데 또 음성이 들리는데 “담대 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계신다 생각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 정신을 차려 종업원을 보니 종업원이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히 듣고 있었습니다. 늘 전도할 때마다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믿으며 언제나 마음속으로 들리는 음성이 “힘을 내라.”와 “사랑한다.”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음성은 전도를 하는데 늘 격려와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8년간의 잠실교회 관리집사 일을 마치고 그동안 보낸 편지를 정리를 해보니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내져서 책을 내어도 될 정도이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일본최고 부자 사이토 히토리 전도와 그의 구원의 보임, 2011년 동창 1200명 전도편지의 1년간 발송, 2014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전도는 모두 성령의 인도로 된 것임을 믿습니다. 2011년 신대원 졸업논문으로 “전도자의 입장에서 본 교회성장과 나눔에 대해” 글을 쓰면서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고백이 똑 같이 저에게도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30년 전에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저를 회개하게 하셨고, 5년 후 장유 반석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 받아 1992년 겨울 신림동 반석교회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불세례를 받고,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과 같이 권능을 받아 복음을 전했으니 성경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이 내용의 이해는 사건의 발생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며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하게 이해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1997년 장로교신학교 신학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시작된 성경 정리도 쉬지 않고 세상일을 하면서 꾸준히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성경의 이해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8. 로마서의 이해와 이신칭의의 이해
성경 66권을 테리 홀의 파노라마 성경에서 소개한 정리 방법대로 20년 가까이 정리를 하고 있지만 로마서의 이해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통해서 전도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게 되었고 이를 신학대학원 졸업논문으로 썼고 로마서의 이해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최근에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믿는 이’라는 바울의 표현이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성령 받은 이들을 ‘믿는 이’로 표현한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성령 받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바울의 이신칭의(以信稱義, 믿음으로써 의인이라 불리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령 받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을 받은 후 각 나라 말로 이야기하는 120문도를 보면서 놀라는 동족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하며 2장 44절에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라고 했는데 여기서 ‘믿는 사람’의 표현은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고백대로 예수님을 만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따른 회개와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3년 따라 다니며 배움과 함께 그 이름의 세례(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십자가 대속을 보고 그 의미를 믿음을 통한)와 이를 통한 죄 사함을 받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사람들과. 이번에 회개하고 세례 받은 신도 3,000명을 지칭하는 표현인데 이 믿는 사람과 바울의 로마서 8장 23절에서 “성령 받은 우리가”와, 로마서 3장 22절에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치는 의니” 라는 표현에서 모든 믿는 이는 모두 같은 말입니다. 즉 로마서의 ‘모든 믿는 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분명히 정의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즉 칭의의 대상은 반드시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고백대로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은 후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의 임함 같이, 바울이 아나니아로부터 성령 받은 것과 같이, 사도들을 통해서 사도행전 여러 곳에서 예수이름의 세례와 요한의 세례를 받아 성령 세례를 알지 못하는 성도들을 안수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임한 성령을 받은 사람과, 고넬료와 같이 먼저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된 사람의 육신이 여전히 죄를 향하는 모습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곤고한 자신으로 한탄하셨습니다. 하지만 8장에서 예수 안에 있는 자, 즉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 사랑에 거하는 자(사랑을 실천하는 자) 그리고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고백하고 이런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됨을 선포하였습니다(롬8장).
이 과정을 요약하면 우선 예수님을 만나 회개를 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믿어 정식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이 있게 되고 이런 사람에게 성령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로마서에서 ‘신자’라 표현하였고 이런 신자를 하나님께서 죄 사함 받아서 깨끗해졌기 때문에 비로소 ‘의롭다’ 선포하십니다. 이것을 이신칭의로 이해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로마서의 이해가 예수를 믿고 30년이 지난 최근에 이루어졌기에 예수 믿고 성령 받은 것만으로도 너무나 영광되고 귀한 일이라 여겼는데 여기에다가 또 의인으로 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보면서 이런 영적인 원리를 모르고 죄의 유혹이 다가왔을 때 너무나 쉽게 무너져 버린 과거가 참으로 후회스럽습니다. 진실로 의롭다 인정받은 신자는 다시는 불의에 물들어서는 아니 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유혹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반드시 주님의 계명을 잘 숙지해 지키고 하나님과 이웃과 믿음의 형제를 성경의 말씀대로 사랑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늘 받으며 살아야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다고 믿습니다.
칭의에 대해 500년간 천주교와 개신교의 논쟁이 있는데 그 의미와 효력의 범위 등 학파와 주장에 따라 복잡하게 설명이 되어 참으로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이신칭의가 되는 과정을 잘 이해하면 이런 논의도 많이 정리가 되고, 칭의로 인해 신자가 얻는 유익에 대한 논쟁도 많은 부분 사실은 큰 논쟁거리가 아님을 믿습니다. 나아가 로마서를 잘 이해하게 된다면 이 논쟁은 많은 부분의 답이 그 이해를 통해 나오리라 믿습니다. 저는 신학자도 목회를 오래 동안 제대로 한 목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신칭의 이해나 로마서의 이해에 있어 그 깊이가 참으로 얕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간증의 제목도 전도자에게 보인 이신칭의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통해서 이해된 부족하고 온전치 못한 저의 이해가 모두의 논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주안에서 신자가 모든 교파를 초월해서 하나가 되고, 올바른 이신칭의의 이해를 통해서 모든 신자가 이 세상에서 생명을 걸고 정의롭게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의 의의 측면에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 분의 크신 사랑과 놀라우신 은총의 발로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한량없으신 은혜로 값없이 죄 사함 받아 의롭게 됨을 깊이 감사 찬양합니다. 신자의 선한 삶과 증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만방에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신자에 대한 칭의의 본질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롬3;25-26)
9. 맺는 말
며칠 전 들판에 나가 날씨가 너무 추워 불을 피우기 위해 공사장의 나무를 주우러 갔다가 나무에 박힌 못에 깊이 발바닥을 찔렸습니다. 얕은 신발장을 뚫고 못이 깊이 발바닥 속으로 들어오는데 고통과 함께 너무나 놀라 얼른 못을 뽑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발바닥을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고통과 우리에 대한 사랑을 묵상해 보았는데 주님의 크신 사랑과 늘 함께 하심을 다시 한 번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무지한 사람들이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고 죽이는 것도 참으시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께서 피 흘리시며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재창조물임을 확인하시며 최종 인을 치십니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을 창조하신 것과 같이 우리를 예수 안에서 재창조하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실로 이 세상을 선하게 살며 증인의 의무를 다하며 또 의로우신 하나님을 이 세상에 나타내려 의롭게 살아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를 로마서는 잘 표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수백 년 동안 논쟁한 이신칭의를 짧은 글로 전도의 경험과 성경 정리를 통한 성경 이해와 개인적인 신앙체험을 통해서 적어 보았는데 너무나 두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되는 과정(회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 죄 사함, 성령세례 그리고 칭의 됨. 행 2;28, 롬 3;24-25)은 반드시 모든 신자가 지키며 꼭 실천해야 하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에 모든 신자가 자신의 상태를 꼭 이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아 고칠 것을 반드시 고쳐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부족한 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이 민족과 교회와 모든 신자들에게 충만히 임하셔서 이 혼탁한 세상에 질서가 확립되고 하나님의 의가 하수같이 흘러넘치길 기도하며 신앙계의 주안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기원합니다.
2017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