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태일 목사
지난 주일에는 올바르고 참된 삶을 살기위해서 먼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말씀들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인생을 즐겁게, 행복하게,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꼭 기억해야 할 말씀중,
첫째로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 즉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 죽는 것, 흥하는 것 망하는 것, 건강이나 생명이나 가정이나 나라나 자녀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속에 있음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우리 모든 인간은 한번 죽는다는 것입니다.(히9:27)
믿는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나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서 그 최후가 지배당한다는 점에서는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죽음이나 고난은 헛덴 것이 아님니다. 죽음이나 고난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합니다. 죄를 깨닫게 합니다. 신앙을 굳게 합니다. 담대하게 합니다. 소망중에 더욱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3절 말씀처럼 죽음도 고난도 회피하지 말고 정직하게 대면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는 인생의 부패성을 아는 것입니다.
3절에 인생이란 악을 품고 살며 일생을 미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여전케 하셔서 다 지옥 형벌받지 아니하고 영원히 부끄럽지 아니한 삶을 살게 하시려 예수님도 세상에 보내주시고 믿게 하시고 생명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회개도 하게 하시고 거듭나게도 하시고 일할 수 있는 여건도 허락하심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남은 인생을 올바르고 참되게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되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너는 가서 기쁘고 즐겁게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겁게 살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전도서의 말씀을 기록한 솔로몬은 한 때 자신이 감각적 즐거움의 함정에 빠져서 그것을 남용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제는 그 사실들을 공포하면서 타인들에게 그 위험을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한 때는 부인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700명의 후궁과 300명의 첩으로 인생을 즐겼고(왕상11:3), 자신의 왕궁을 위해 14년간이나 건축을 했고, 술, 소유, 지식, 권력 세상에서의 온갖 것을 다 누렸던 왕입니다. 훗날 전도서에서 고백합니다. 헛데고 헛데니 헛데고 헛데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을 합니다.
솔로몬은 향락, 즐거움에 대한 전면적인 금지를 하지는 않고 건실하고도 적당하게 그 즐거움을 선용하도록 하라고 가리켜 줍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용해도 좋으나 남용해서는 안 되며,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취해도 되지만 그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됨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성도가 세상을 사는데 힘들고 어렵다고 힘이 빠져 우울해져서는 안되고 보다 나은 기분, 즐거움 기쁨을 가지고 살 것을 말씀합니다.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가져라는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운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참 즐거움, 기쁨을 누리는 동안은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동요시킬 수 없습니다. 흔들리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것을 사용하는 가운데에 그를 즐거움으로 섬겨야 합니다.(찬송가 375. 3절, 예수를 믿고서 늘 사랑하여 즐거운 맘으로 섬기리다 온 맘을 드리고 순종한 후에 구주를 영원히 섬기겠네.)
성도의 삶은 기본적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기적중의 기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정말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받은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얼굴이 밝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처럼 밝게 사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왜 얼굴이 어두워집니까? 대개 마음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로서 얼굴을 펴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어야 합니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얼굴이 예쁘다고 풍채가 있고 부유하다고 해서 삶의 기쁨이 넘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예쁘고,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그렇게 예쁜 마음을 가지고 즐거워하면 실질적으로 얼굴도 예뻐 보입니다. 솔로몬의 부인이 되었던 술람미 여인은 피부가 검은 흑인이었지만 마음이 예쁘니까 얼굴도 예뻐 보입니다. 그러니까 천 명의 처와 첩을 둔 솔로몬 왕으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지 않습니까?
사실상 사람을 끄는 매력은 얼굴이 아니고 예쁜 마음입니다. 얼굴이 예쁘지만 마음이 추하면 그 예쁜 얼굴이 더 추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예쁜 마음을 가지면 말씨도 예뻐지고, 표정도 예뻐지고, 인상도 좋아집니다. 그러나 마음이 추하면 표정도 이상해지고, 말도 이상해지고, 인상도 이상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정말 예쁜 마음을 가지려고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속한 곳'을 사랑과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왜 믿는 사람들이 기쁨과 즐거움을 자주 잃어버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고 너무 세상적인 축복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보십시오. 너무 세상적입니다. 그러니까 불행해집니다. 물론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필요한 것이 한이 없고, 너무 배고픈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꼭 필요한 것 중심으로 먹어야 하는데 가리지 않고 먹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기쁘고 즐겁게 사는 인생 모습이 무엇입니까?
1. 첫째로 그 즐거움이 양식을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
7절을 보면,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사람에게는 의식주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는 옷이요 다음은 먹는 것이요 그 다음이 집이라 말합니다. 그 중에 먹는 것 얼마나 중요한 문제입니까? 하루에도 세 번 이상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쓰러집니다.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밥이 보약이라 하지 않습니까?
☛1) 우리는 무엇보다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물과 양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실감하며 사는 때입니다.
먹지 아니하고서는 사람이 못살아 갑니다. 먹는 것 먼저 감사한 일이지요. 먹을 것이 없어서 난리치던 시절이 있었잖습니까? 끼니를 걸어가면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살던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름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7절에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셔라” 말씀하십니다.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먹고 마셔야 합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간 원망과 불평으로 먹고 마셨습니다. 감사함으로 먹고 마셔야 하는데 애굽이나 생각하고 애굽의 고추나 푸추나 마늘을 그리워 하면서 하나님이 기적으로 먹여 주시는 양식을 기쁘게 먹지를 못했습니다. 신26:14절 말씀처럼 우리는 "애곡하는 중에 "떡을 먹어서는 안됩니다.
신약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기쁨"과 관대한 "마음"으로 떡을 먹고 마셔야 합니다(행 2:46) 가진 자들은 땅을 팔아 사도들앞에 가져옴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왔습니다. 자기 것을 제 것이라 여기지 아니하고 가져다가 나누어 주었습니다. 떡을 떼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애찬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먼저 왔다고 자기들만 다 먹지 않았습니다. 기다렸습니다. 함께 먹는 식사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중 어떤 사람들, 먼저 온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어 늦게 온 사람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기도 했고, 너무 많이 마심으로 취하여 덕을 상실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은 기쁨으로 관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즐겁게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수 있는 교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람니다.
☛2) “네 떡을 먹고 네 포도주를 마시라.”
즉 네 것을 먹고 마시되, 남의 것을 먹고 마시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정직하게 일하며 수고의 떡을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기만의 떡은 먹지 말며 폭력의 술은 마시지 말고, 정직하게 얻은 것을 먹고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먹고 마셔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할 것이며 그것에서 아무런 축복도, 배부름도 즐거움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비리를 조장하고 가정을 파탄에 빠뜨리고 국민을 슬프게 합니다. 남을 이용하려고 음식을 먹이고 술을 먹이고 비리를 무마시키려고 부정직하게 먹고 마심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3) 다음으로 이 말씀의 뜻은 “네 떡과 네 포도주는 네 지위와 처지에 어울리도록 먹고 마셔야 하며, 네 형편 그 이상으로 사치하거나 그 이하로 옹색한 음식을 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너무 비싼 음식이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음식을 취하거나 또 대접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청지기로서 하나님이 네게 주신 것을 그 맡은 목적에 합당하도록, 분량에 맞게 쓰도록 해야 합니다.
☛4) 또 이 말씀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깨끗한 물과 양식을 먹기를 원하듯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 살아야 함을 보여 줍니다.
나는 깨끗한 물을 먹기를 원하면서 더러운 오폐수를 마구 하천에 버린다면 나도 역시 다른 사람이 버린 더러운 물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전에도 늘 그래왔고 먹는 것 가지고 폭리를 취하고 불결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날짜만 바꾸거나 원산지를 다 속여서 학교 급식에 백화점에 슈퍼에 납품하여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자기들도 못 먹고 심지어 자기 자식들에게는 안먹이려고 자기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정상적으로 납품하고 나머지 학교에는 속여서 벌레가 나오고 상하고 부패한 것도, 남은 음식물을 모아서 섞어서 반찬 만들어 먹이고 납품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름니다.
요즘 국내산 음식에도 발암물질이니 속이며 질병을 주는 그런 음식물로 인해 난리가 납니다. 특별히 중국산에서 납이니 기생충이니 발암물질이니... 말이 아님니다. 김치에 기생충이 아니고 사실은 기생충 알입니다. 이 알이 유충으로 변하기도 하며 아니되기도 하는 것이지 문자 그대로 기생충이 발견된 것은 아니라는 뉴스입니다. 언론에 오보내지 잘못 기사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문제는 국내산이든 중국산이든 문제가 있으면, 알면 수입을 안하거나 폐기시켜야 하는데 알면서도 버젓이 싼 것을 사다가 폭리를 취하는 악덕 상인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수입을 안하면 되는데 그것을 알고도 돈 때문에 이익을 크게 남기려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먹고 마시는 것, 즐거움으로 감사함으로 행하도록 배려와 준비를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더라도 이런 일들은 얼마나 잘못된 일이고 다른 사람들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생명까지도 앗아가는 간접 살인행위입니다. 그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식들, 모든 사람들의 기쁨을 앗아가는 이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정치나 경제나 각료들이나 국회의원들이나 대통령 모두 모두 백성들의 마음을 편하게 즐겁게 잘 먹고 마시며 살도록 해야함이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적 아님니까? 백성들이 안심하고 잘 살게 도와주는 것이 자기들의 정치의 꿈이나 이상 권력의 목표보다 더 중요한 문제 아님니까? 그런데 이렇게 즐겁게 먹고 마시며 건강하게 살게 하는 일에는 무관심하고 권력과 자기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바른 것이 아님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 인생의 즐거움이 먹는 것으로부터 나올 수 있기를 바람니다. 일용할 양식 주심을 감사하며 수고하며 일하여 얻은 음식을 즐거움으로 먹고 마시며 이웃과 나누는 그런 행복한 삶이 되시길 바람니다. 내 처지와 형편을 따라 주신 양식 감사와 기쁨으로 대하시기 바람니다. 내가 기쁘고 즐겁게 먹고 마시듯이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들, 교회와 성도들이 먼저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 주일에 계속 말씀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