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676, Vote: 10, Date: 2008/10/11 12:22:49 , IP: 121.162.64.230 |
글 제 목 | 베를린 리포트 中 (8)~(14) | ||
작 성 자 | 전명화 (chcho@hanmail.net) |
베를린 리포트(8) 2008년 8월 1일 베를린의 이른 아침을 까마귀가 웁니다. 서양에선 왜 하필 까마귀를 길조라고 했을까, 이해할 수 없었는데 여기 오니 그 의문이 풀립니다. 우리는 아침에 까치가 울고 이들은 아침에 까마귀가 웁니다. 서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들리는 새울음소리를, 오늘은 좋은 일만 있게 하소서,란 인간의 염원을 담아 그렇게 여기기로 한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정말 그런 것 같군요. 이곳 창문들엔 방충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이가 독일 남쪽 콘스탄츠란 곳에서 교환 학생을 할 때. 보덴제란 바다같은 호수가 있는데 거기엔 모기떼가 극성이었답니다. 모기도 엄청 크고 살찐 것들이랍니다. 본이나 베를린엔 도대체 이 여름에도 모기가 없습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모기가 없다보니 자연히 방충망도 필요없겠지요. 알 수 없는 건, 창문 너머 바로 분수같은 게 있는데 물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모기가 물웅덩이에다 알을 낳는 건 초등학생들의 상식 아닙니까? 알을 낳는데 물이 필요하다면 저걸로도 충분할텐데..... 콘스탄츠에선 창궐하는 모기떼가 여긴 없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우선 시내로 가보기로 합니다. 제가 있는 곳은 베를린 남쪽 끝,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강남의 일원동이나 뭐 그런 동네 같습니다. 우리는 강남북이 착 갈려 남쪽은 부자동네, 북쪽은 서민 동네, 집값도 같은 평수라도 남북이 마치 한강 길이만큼 차이가 나지만, 여기서 남쪽이란 다만 방향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해봅니다. 그리고 그게 맞을듯합니다. 물론 다 사람 사는 동네이므로 부자와 빈자들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처럼 부동산 투기니 복부인이니 이런 현상들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버스가 이층입니다. 런던에만 이런 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있군요. 버스값이 3200원쯤, 우리보다 엄청 비싸군요. 야, 이층버스다. 엄마 우리 저거 타자. 역시 아이는 아이군요. 이층인 게 되게 신나는 모양입니다. 영국에서 어학할 때 타보고 처음이랍니다. 우리는 이층의 맨 앞자리, 사방이 트인 자리로 갑니다. 버스투어가 뭐 별겁니까? 오히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버스투어보다 훨씬 낫지요. 더구나 이곳 말을 다는 아니어도 곧잘 알아듣고 곧잘 말하는, 편리한 안내양이 옆에 있는데 뭐하러 돈주고 투어를 하겠습니까? 시내까지 약 한 시간, 하지만 우리의 시내버스 속도보다 많이 느립니다. 기사아저씨는 승객들이 뭔가를 물어보면 차를 그대로 세워둔채 한참을 설명합니다. 우리 버스완 천지차이입니다. 툭하면 급하게 출발하는 바람에 문에 옷이 낀 채로 몇 미터를 끌려갔다는 뉴스를 접하고 살아온 저로서는 의외의 풍경입니다. 나라의 수도는 역시 수도군요. 본보다 창밖 풍경이 많이 다릅니다. 건물들이 역시 높고 촘촘하고, 오래된 건축물이 있는가 하면 최첨단 건물도 많고..... 사람들도 많습니다. 본에는 몇 백년씩 된 나무들이 사람 수보다 많아보였는데 여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가 혼존하는 듯한 도시, 베를린입니다. 알렉산더 광장. 한켠으로 티브이 송신탑이 하늘을 찌를듯 높습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데 10유로, 약 16000원입니다. 올라가면 베를린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는군요. 그렇겠지요. 저런 건 파리에도 있었고 런던에도 있었고 우리의 남산 타워도 있잖습니까? 오늘은 날이 너무 덥습니다. 땡볕 아래 그 전망대를 올라가기 위한 행렬이 구절양장이군요. 거의가 관광객들입니다. 우리는 그 줄에 합류하기를 포기합니다. 저 뜨거운 불볕 아래 오랫동안 기다려 거기 올라간들 뻔하지요.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 랜딩기어를 내릴 때, 그때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옛날에 시청으로 쓰였다는 건축물 옆 공원. 저 할아버지가 누구였더라, 너무나 눈에 익숙한 할아버지 한 분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앉아계시고 그 옆에 비슷하게 생긴 할아버지께서 그를 호위하듯 서있습니다. 도대체 누구란 설명이 없습니다. 엄마. 이분은 칼 맑스고 이분은 막스 엥겔스예요. 아, 맞습니다. 그 유명한 칼 맑스와 막스 엥겔스. <자본론>이란 유명한 책을 썼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자였던 엥겔스는 생전에 칼 맑스를 많이 도와주었답니다. 태어나길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엥겔스는 사업도 많이 했고, 칼 맑스와는 뗄 수 없는 친구였답니다. 여긴 동상이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광화문의 이순신장군이나 공원쯤에 있는 위인들의 동상을 보면 높이 단을 만들어 사람들이 근접할 수 없는데 맑스와 엥겔스는 손을 만져볼 수도 있고 눈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 뒤로는 히틀러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이 고통어린 표정으로 마치 통곡의 벽처럼, 서있군요. 슈프레 강. 베를린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는 강엔 유람선이 다닙니다. 물은 맑지 않군요. 강폭도 좁습니다. 이쪽에서 저쪽이 잘 보일 정도로..... 오늘은 너무 땡볕이라 배는 다음에 타기로 합니다. 거리엔 주로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성당이 보이고 박물관이 보이고..... 본에서 박물관만 돌아다녀 그런지 별로 내키지를 않습니다. 늙은 엄마를 이 땡볕에 모시고 다니는 아이가 좀 힘들어 보입니다. 훔볼트 대학이 나옵니다. 통독 전엔 동독의 대학이었답니다. 베를린 자유 대학은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있나봅니다. 대학 앞엔 노천 책방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땡볕만 아니라면 까막눈이라도 무슨 책들인가 둘러보고 싶은데 도무지 그늘에서 밖으로 나가기가 싫군요. 아이는 그래도 이것저것 뒤져보고 있습니다. 대학의 아카데믹한 분위기는 어디나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고려대학은 오래된 건축물과 첨단 건축물이 마구 혼재하여 너무 빡빡한 느낌이고 너무 정신이 없는데, 훔볼트나 본 대학은 정말 대학같은 느낌입니다. 여름방학 특강이라도 있는지 강의실에 아이들이 가득합니다. 맨 뒤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옆 사람들과 말하며 웃고 장난치는 게 살짝 보입니다. 자고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앞줄에 앉는 것 같습니다. 넌 절대로 뒤에 앉지 마라. 엄마, 쟤들은 학부생들이라구요. 하긴 그렇겠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해야 하는 학문의 길, 그 멀고 험한 길을 왜 우리 아이들은 선택했는지, 얼마든지 편하게 살 방법도 있었을텐데, 마음이 또 편치 않아집니다. 씨티은행에서 돈을 좀 찾아야겠습니다. 유로 환율이 몇 년전보다 너무 올라 국제현금카드를 만들면 돈을 찾을 때의 환율로 계산된다기에, 그리고 제가 떠나올 때 강만수인가 하는 사람이 환율을 또다시 내리는 쪽으로 돌아섰다는 뉴스를 보고 왔기에 가능한 당장 쓸 돈만 찾는 게 유리하답니다. 과연, 떠나올 때는 유로당 1600원이었던 게 50원 정도가 떨어졌군요. 50원이 어딥니까? 100유로면 오천원, 1000유로면 오만원입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어야겠습니다. 애초엔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가기로 했었는데 그건 좀 아껴두어야겠습니다. 날 흐린 날 천천히, 그리고 아주 자세히 살펴볼 예정입니다. 더위에 몸조심하십시오. 베를린 리포트(9) 2008년 8월 2일 비텔, 에비앙, 브란덴부르거 바쎌...... 여기 와서 본 물의 상표들입니다. 그 외에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답니다. 값도 천차만별입니다. 우리도 물론 파는 물은 여러 종류가 있는 모양인데 저는 아직까지 물을 사먹어보지 않아 그게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 떨어지면 남편이 가까운 구민회관 근처 약수터에서 한꺼번에 보통 열흘씩 먹을 물을 차에 싣고 오면 그걸로 끝입니다. 신기한 건, 여름에도 한달 이상 되어도 물에서 냄새가 나지 않고 이끼도 없습니다. 보통 약수는 오래 되면 이끼가 끼기 마련인데 우리 동네 약수는 참 좋습니다. 서울시에선 보통 수도물을 아리수란 근사한 명칭까지 붙여가며 마셔도 좋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우린 거리에 물통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없는데 여긴 그게 필수품입니다. 우린 거리를 가다가도 목마르면 은행이나 관공서나, 먹을 물 준비 안 된 곳은 거의 없지요.도대체 식당에서 밥먹으면서도 물값은 따로 지불해야 하는 게 저로선 너무 아깝습니다. 이곳 물이 석회질 어쩌구 하며 돌을 그렇게 떡주무르듯 해놓은 것도 돌에 석회질이 많아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데, 그렇다면 수도에서 나오는 물을 어떻게 먹을 방법이 없을까. 물을 받아 하룻동안 그냥 놔두어봅니다. 그게 물보다 무겁다면 밑으로 가라앉을 것 아닙니까? 가만히 윗물을 딸아냅니다. 밑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물을 버리고 담겨 있던 그릇을 그냥 놔두었더니 안에 마치 밀가루를 살짝 묻혀놓은듯 하얀 것이 붙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그 석회질이라는 건가 봅니다. 그렇다면 석회질은 물보다 가벼운 모양입니다. 윗부분에 그게 끼여 있으니까요. 물을 다시 끓여서 식혀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전문가가 아닌담에는 물과 석회질을 분리시킬 방법은 없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에선 그게 몸속에 쌓이면 장이 나빠지고 어쩌고만 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돌에 석회질이 많아 돌이 부서지기 쉽디면 인간의 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뼈가 약해진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식당에서도 물값을 따로 내고 물병을 필수품으로 들고다니는 이들이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게 과연 맞는 건지 누구 석회질에 아시는 분 없습니까? 그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고 싶군요. 이곳 사람들은 길에서 눈이 마주치면 그냥 웃습니다. 처음엔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고개숙여 인사했습니다. 엄마, 그냥 웃기만 하면 돼요. 아이 눈에 그게 마땅치 않았나 봅니다. 다음부턴 저도 그쪽에서 웃으면 열심히 따라했죠. 저 할아버지가 웃기 전에 내가 먼저 웃어야지, 생각하며 웃었는데 이번엔 또 그쪽에서 모른척 지나칩니다. 저쪽에서부터 유심히 이 낯선 동양아줌마를 쳐다보기에 웃은 건데요. 뭐가 뭔지 알 수 없습니다. 여기 슈퍼마켓은 참 종류도 많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그런 것들이 할인점일텐데, 우린 이마트나 홈플러스나 홈에버나 물건 값이 거의 같지 않습니까? 물론 약간의 차이나는 것들도 있지요. 여긴 이게 싸고 저긴 그게 싸고 뭐 이런 식인데 여긴 할인점마다 비싼 곳이 있고 싼 곳이 있고 그렇습니다. 전에 영국에 갔을 떄 아스다란 아주 싼 할인점이 있었는데 대처 수상이 경제 개혁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었답니다. 신기한 건, 그곳에 들어갈 때 아무런 "쯩"을 제시하지 않는 것. 아무나 들어가고 아무나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물건이 나쁘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또한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가는 경우도 없다고 했습니다.지금은 또 어떻게 변헀는지 모르지요. 수시로 변하는 게 사람 사는 동네 아니겠습니까? 만약 우리에게 그런 게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지 짐작이 갑니다. 동사무소에서 주는 생활보조금 수혜자들을 조사했더니 엉뚱하게도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땅도 있는 사람들이 걸렸었다는 말도 들은 적 있습니다. 몇 천만원씩 세금 체납한 사람들 뒷조사하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지, 마치 경쟁하듯 내보내는 티브이 프로도 있잖습니까? 아이는 어디가 싼 할인점인지 잘 알더군요. 알디는 많이 싸고 리들은 좀 싸고 또 어디는 배추를 팔지 않고 어디는 무우를 팔지 않고 ..... 너무 복잡해서 저같은 사람은 외기도 힘들군요. 우리 같으면 다 팔렸으면 모를까 배추 파는 데서 무우을 안 파는 경운 없지요. 이게 혹시 이들의 주식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지요. 인터넷으로 한국식품 파는 데서 한달 쓸 식품들을 주문했었는데 그게 어제 온다고 해 집을 비우지 않았습니다. 밑에서 딩동 눌러 집에 사람이 있으면 올라와 주고 간다는데 하루 종일 벨도 울리지 않았지요. 저녁 무렵 내려가 보니 우체통 안에 우체국으로 찾으러 오란 딱지가 있습니다. 원, 젠장. 저절로 푸념이 나옵니다. 이렇게 되면 우체국까지 가는 건 문제 없는데 올 때가 힘들지요. 그 무거운 짐을 들고 2킬로를 땡볕에 걸어야 하니까요. 택시 타면 된다구요? 택시 값이 우리완 비교할 수 없이 비쌉니다. 먹는 물값도 아까운데 택시값은 더더구나지요. 아이와 함께 커다란 기내가방을 들고 땡볕에 걸어갔다 왔습니다. 왕복 4킬로, 운동은 충분했습니다. 막상 해보니 그렇게 힘들진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우편물 배달부가 짐도 무겁고 더운 날씨에 엘리베이터 타기도 귀찮고 이래저래 에이, 그냥 쪽지 남기면 찾으러 올테지, 하는 배짱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니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 전날 밤에까지 없던 쪽지가 어젠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 벨 소리를 못 들었을리 없고..... 오늘은 아침부터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세차게 내립니다. 시원합니다. 기온이 많이 내려갔습니다. 유럽인들 옷장엔 4계절 옷이 같이 들어있고 하룻동안에 4계절이 다 들어있답니다. 저렇게 세차게 비가 오면 다니기도 어렵지요. 또 모릅니다. 좀 있다 해가 반짝 날지...... 또 쓰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십시오. 베를린 리포트(10) 2008년 8월 4일 저 아저씨가 왜 날 자꾸 쳐다보지? 아이는 잠깐 볼일 보러 가고 저는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데 웬 "짱깨"같은 아저씨가 수시로 쳐다봅니다. 짱깨는 중국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유럽 지역 유학생들의 은어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열에 아홉은 우리에게 저팬, 아니면 차이니즈냐고 묻고 거리에서 만나는 동양인 태반이 중국인이지요. 13억대 5천만의 차이라고 하면 할말 없지만...... 일본은 진작부터 선진국이라, 중국은 잠자던 사자가 깨어나 세계를 주무르고 있지 않습니까? 텔레비전에서도 중국인들이 곧잘 보입니다. 비록 진기명기같은 프로지만..... 일본은 그 작은 도시 본에서조차 자신들의 절 물건들을 옮겨와 몇 달째 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게 없다는 게 아닙니다. 그들에 비해 숫적으로나 양적으로 미미하다는 것이지요. 짱깨아저씨는 계속 저를 주시하는데, 제가 자리를 옮기면 방향읗 틀어서까지 바라봅니다. 겁날 것까진 없습니다. 지금은 한낮이고 여긴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중심부입니다. 아이가 오고 버스 안내판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동안에도 아저씨 눈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가 우리를 주시하는지어떤지도 모른 채 번호판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말을 할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마침내 그가 우리쪽으로 옵니다. 저는 일부러 모른 척 다른 쪽만 바라봅니다. 그가 아이에게 묻습니다. 어디 찾으세요? 그 반가운 우리의 훈민정음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아, 그는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우리가 한국인임을 진작 눈치채고 도와주려고 그랬던 거지요. 그는 아이에게 열심히 우리가 갈 방향을 설명합니다. ........여기 오신지 얼마나 ...... 35년요. 세상에, 그렇게 많이요? 그의 표정은 담담합니다. 보자마자 한국 아줌마임을 알아채는 노하우도 세월에서 생긴겁니다. 그에게 차마 아저씬 광부로 오신 거냐고 물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배로 보아 십중팔구입니다. 그 시절, 광부 아니면 간호사, 아주 적은 숫자의 유학생들 빼고 여기까지 흘러와 사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박정희대통령이 정권을 잡고나서 차관을 들여오려고 무진 애를 썼었다는 것. 그리고 잘 알다시피 군사독재정권이라 당시의 어느 나라도 우리에게 친화적이지 않았다는 것, 마침내 독일이 손을 내밀었고 대통령은 타고갈 비행기도 없어 독일에서 보내준 비행기로 올 수 있었고, 광부와 간호사들의 월급을 보증으로 돈을 빌릴 수 있었으며,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 대통령이 다시 이들을 찾았을 때 그들은 서로서로 붙잡고 울었다는 것, 그 후 대통령은 광부와 간호사들을 맺어주기 위해 휴일이면 몽 마르뜨로, 어디로 여행을 시켰고 그 결과 그들 부부가 많이 탄생했다는 것....... 너무나 유명한 일화입니다. 마침내 아저씨는 자신이 타야할 버스를 타고 갑니다. 46번 버스는 그동안 수도 없이 지나갔는데, 그러니까 그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고 자기 가야 할 길도 미룬채 그렇게 서있었던 겁니다. ........안 됐다......... 엄만, 저들이 지금 연금 받으며 얼마나 편안한데 그래요. 저는 우리 현대사에 대한 안쓰러움이 겹친 안됐음이었는데, 아이는 그냥 아저씨 개인으로 한정시킨거지요. 대로엔 일단의 시위 행렬이 지나갑니다. 피켓을 들고 노래부르며, 외치며, 웃으며, 이야기하며, 그 뒤와 옆을 많은 경찰차들이 호위하듯 쫓아갑니다. 환경보호, 18세 이하의 아이들 노동 금지, 세계화에 반대한다, 뭐 그런 거랍니다. 우리로 치면 시민운동인 셈이죠.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정도까지, 대체로 젊은 사람들입니다. 포츠담 광장까지 오자 그들은 단을 만들고 누군가 나와 연설하면 박수치고 와와 소리지르고, 노래하고 춤까지 추고, 이야기하며 맥주 마시며, 거의 노는 수준입니다. 하나도 심각한 얼굴이 없습니다. 이들의 표정은 너무 밝습니다. 아, 이들은 시위를 저렇게 하는구나. 경찰도 뒤에 서서 서로 이야기하며 웃으며, 한가합니다. 마치 우리의 촛불 대열들 같습니다. 그럼 그걸 한국의 젊은이들이 여기서 배워간건가. 저쪽 잔디밭에선 일단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앉아 싸온 점심도 먹으며 이야기하며 웃고 개중엔 서로 껴안고 포옹하는 연인들도 보입니다. 이쪽과는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너희는 너희끼리 우린 우리끼리, 참 다양한 세상입니다. 한쪽에는 우리의 물레같이 생긴, 나무로 된 옛날 기계같은 걸 갖다놓고 지푸라기가 그 안에 있습니다. 그 옆에는 그 기계로 짰을 듯한 옷과 밧줄과 식타보같이 생긴 헝겊이 놓여있습니다. 만져보니 좀 거칠기는 하지만 굉장히 튼튼하고 모양도 그럴싸합니다. 자연에서 저절로 생기는 지푸라기로 저렇게 옷을 짜입고 밧줄도 만들고, 일상용품들을 생산한다는 뚯입니다. 우리나라의 환경운동가들이 하는 것과 일치하는군요. 물레와 만들어놓은 것들이 신기한지,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모 신문에서 발행되는 주간지의 독일 통신원이 된 아이 역시 글감이 생겼다며 좋아라 카메라를 눌러댑니다. 오늘은 또다시 비가 옵니다. 땡볕보단 차라리 비가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너무 오면 습하고 우울해지고, 이래저래 날씨란 건 역시 햇빛도 비쳤다가 비도 왔다가 바람도 불어야 할 것 같군요. 인간은 역시 까다로운 동물입니다. 또 쓰겠습니다. 잘 지내십시오. 베를린 리포트(11) 2008년 8월 5일 대로변의 가로등을 붙잡고 마네킹 하나가 서 있습니다. 두 다리를 비스듬히 하고 가로등 기둥을 껴안을듯한 자세로, 손에는 맥주병을 들고 마시는 듯힌 자세입니다. 모자에서부터 발끝까지 온통 진한 회색입니다. 심지어 얼굴과 손까지도, 양말과 구두까지도.... 세상에, 마네킹이 움직입니다. 아주 천천히.... 마네킹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40세 가량된 남자입니다. 그 앞에는 작은 가방 위에 동전을 넣는 통이 놓여 있습니다. 남자의 앞으로는 슈프레 강이 흐르고, 오가는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흥미있게 지켜봅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살짝 그 앞으로 가 남자와 함께 사진도 찍습니다.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들. 그는 계속 자세를 아주 천천히, 조금씩 바꿔가며 자신이 살아있는 마네킹임을 증명하려는 듯합니다. 오래 버티기엔 아주 불편한 자세, 나이많은 사람이라면 하기 힘들 자세입니다. 통 속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자주 납니다. 아이는 리더십 플랜인가 뭔가 대학원 때 학교에서 보내준 유럽 여행이 있었는데, 그때 저런 퍼포먼스랄까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답니다. 제가 즐겨보는 프로인 이비에스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 스페인의 어느 광장에서 지금처럼 무언극을 펼치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컨셉은 상당히 밝고 희극적 요소가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지금 저 남자의 주제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 우울해 보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대의 우울을 표방하는 듯한. 진한 회색. 눈만 빼꼼하게 뜷려 거기만 하얗습니다. 마치 자본주의의 맨 밑바닥층에서 힘겨워하는 걸인들을 상징하는듯합니다. 어차피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그도 걸인은 걸인이겠지요. 남자의 자세는 아주 힘든 모양으로만 골라가며 바뀌고 사람들은 재미있어하며 사진들을 찍습니다. 어찌보면 인간의 잔인성을 이용하여 이 남자는 돈을 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스페인의 투우나, 뭐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소싸움이나 닭싸움같은 것도 결국 인간 속에 내재한 잔인성을 이용한 놀이 아니겠습니까? 슈프레 강을 끼고 박물관들이 즐비합니다. 얼마나 많으면 박물관의 섬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알테 무슨무슨 박물관이 많은 걸로 보아 고대 중세의 유품들을 전시했겠지요. 페르가몬 박물관. 고대 그리스에서 터키 근방에 세운 도시국가의 이름인데 거기 있던 유물들을 전시해놓은 곳이랍니다. 베를린 박물관 중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고 그곳은 꼭 봐야 한다기에, 오늘은 어차피 문도 닫았고 다음에 꼭 와야겠습니다. 보데 박물관 좁다란 광장에서 음악회가 열린다는 포스터가 붙었습니다. 앞으로 한시간쯤 남았습니다. 일단 보기로 작정하고 우리는 주변을 걸어갑니다. 슈프레 강은 라인강보다 훨씬 좁고 물도 더러운데, 주변의 풍광과 어울려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사람들은 주변에 모여 앉아 맥주도 마시고 밥도 먹고 이야기하며, 토요일 저녁을 즐기고 있습니다. 꼭 우리의 한강변 풍경 같습니다. 음악회가 열리는군요.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의 "두 개의 색소폰을 위한 연주" 검은 예복의 두 아가씨가 클래식 색소폰을,아름다운 선율입니다. 색스폰으로만 알았는데 철자를 따라가면 색소폰이 됩니다. 색소폰은 재즈나 뭐 그런 거 연주하는 도구로만 알았는데 저렇게 클래식도 연주하는가 봅니다. 다 제가 잘 모르는 탓이겠지요. 소리도 다릅니다. 아가씨들이 연주하는 것이 훨씬 맑고 청아하게 들립니다. 사람들이 꽉차있습니다. 모두가 조용합니다. 강의실 세미나에도 맥주병을 들고다닌다는 이들이 지금은 아주 경건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자리가 모자라 길바닥에까지 털썩 주저앉아 듣는 이들이 많습니다. 다음 주엔 피아노 연주회가 열린답니다. 그때도 와봐야겠습니다. 금방 전까지도 하늘에 별이 총총했었는데 천둥이 치며 금방 비가 쏟아집니다. 걸어가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우산을 펴듭니다. 하지만 이 비도 우리가 집에 닿을 때쯤 되면 그칠지도 모릅니다. 이곳에 먼지가 거의 없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오다 갰다 표변을 하니 먼지가 쌓일 틈이 없겠지요. 우리처럼 텔레비전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어쩌구 하는 말은 안 들어도 되겠지요. 내일은 파리에서 큰아이가 도착하는 날입니다. 여긴 공항이 세 곳입니다. 셋 다 베를린 외곽에 있답니다. 이곳에서 부러운 것 딱 한가지만 대라면, 말할것도없이 나무들입니다. 중심부에만 좀 그렇지 어딜 가나 나무, 나무들의 행렬입니다. 짧게는 10년 정도에서 몇 십년씩 되어보이는 나무들이 도시를 거의 에워싸듯 보호하고 있습니다. 아마 전쟁이 끝나고 바로바로 심은 나무들 같습니다. 서울은 지금 한창 덥겠습니다. 몸조심들 하십시오. 베를린 리포트(12) 2008년 8월 8일 <카드로 만든 집>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고고학자인 아빠를 따라 이집트로 여행을 간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한 여자의 남편이며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여섯 살쯤 된 여자아이는 높은 곳에서 그만 발을 헛디뎌 떨어져죽는 아빠를 직접 목격합니다. 그 후 아이는 알 수 없는 정신병에 시달립니다. 실어증에 걸리고 끝도 없이 괴성을 지릅니다. 아이가 조용할 때는 트럼프할 때 사용하는 카드같이 생긴 물건으로 한없이 집을 지을 때입니다. 카드로 만든 집은 위로, 위로만 올라가고 그건 어느날 갑자기 한순간에 무너져내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합니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정신과 의사를 찾는 일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짓는 집의 정체를 알아냅니다. 아빠가 하늘의 별과 달과 같이 살고 있다고 믿는 아이는 그 아빠에게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해 끝도 없이 위로, 위로만 향하고 싶은 마음으로 카드로 만든 집을 짓고 있었던 겁니다. 운동장만큼 넓은 뜰에 구조물이 세워집니다. 엄마와 의사의 합동작전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듯 점차 높이 세워진 구조물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별이, 달이 지상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집니다. 아이의 오빠를 포함한 네 사람은 천천히, 그 길을 따라 올라가고 우리의 주인공인 여자아이의 입이 마침내 열립니다. 그리고 웃습니다. 엄마........ 그 영화에 나오는 구조물과 높이만 다를 뿐 아주 흡사한 구조물이 제가 있는 이 동네에 있습니다. 저걸 뭐하러 만들었을까? 가까이 가서 보니 구조물이 올라간 끝자리에 다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육교인 셈이지요. 이 동네와 저 동네를 연결해주는 육교. 다리 밑으로는 철길이 나있습니다. 철길 옆으로는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못하도록 쥐똥나무 비슷한 아주 촘촘한 나무를 심었습니다. 한데, 이 육교를 아주 많이 생각해서 지은 것 같습니다. 더구나 모서리 부분에는 철근으로 작은 구조물을 엇갈리게 세워놓아 자전거나 유모차가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빙글빙글 돌아가듯 세워진 간단한 구조물 하나로 사람은 물론이고 자전거도, 유모차도, 장애인차도 모두모두 이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작은아이가 콘스탄츠란 독일 남부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논문 제출을 위해 서울에 8개월 정도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갈 때 허물고 있던 5층짜리 건물이 8개월만에 다시 와보니 그때도 허물고 있더랍니다. 미국사람이 말했답니다. 우린 3개월만에 빌딩 하나가 올라가는데 너흰 뭐하냐. 독일 사람이 대답하기를, 우리도 3개월밖에 안 걸린다. ......서류 심사가. 우리 한국도 역시 미국쪽에 서겠지요. 이들이 건축물에 왜 그토록 오래 시간을 들이는지, 저 구조물 하나가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허물은 구조물에 웬 낙서들이 그리 많은지요. 그것도 울긋불긋 요란한 페인트로....... 어찌 보면 그림같기도 하고 또 글씨도 들어있고, 아이들한테 물어본다고 했다가 잊어버렸습니다. 제가 사는 방화동 가까이 현대 아파트가 줄줄이 종횡무진으로 들어서더니 그 앞 대로변에 바로 육교가 생기고 그 옆에 엘리베이터가 놓여지더군요. 높이 올라간 계단 옆에 또 엘리베이터가 서니 가뜩이나 좁은 보도가 더욱 좁아지고 볼성도 사납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도 이네들의 이 빙글빙글 육교를 차용하면 보기도 좋고 편리할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서울특별시에서 아파트 담 허물기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지요. 텔레비전에선 담으로 인해 좁았던 길이 이렇게 넓어졌다고 선전하며 시민들에게 그렇게 하기를 종용했습니다. 우리 동네도 예외가 아니라 방화역 바로 옆 대단지 아파트가 선정되었나 봅니다. 담을 허물자는 구청측과 싫다는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 한참 싱갱이를 벌이고 결국 단지 안에 놀이터를 새로 만들어주고 또 무슨 인센티브를 주는 조건으로 합의했습니다. 마침내 담이 헐리고 그 자리에 쥐똥나무가 들어섰습니다. 회색의 칙칙한 담보다 훨씬 보기 좋았지요. 우선은 녹색의 색깔만으로도 저는 좋으니까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곳을 지나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 쥐똥나무 안쪽으로 가시철망이 쳐져있는 겁니다. 그것도 두 겹으로...... 어차피 쥐똥나무는 줄기에 가시가 많고 촘촘하여 보통 사람들은 그걸 넘어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아파트 주민들이 꺼리는 동네 불량배들이나 도둑 혹은 강도는 가시철망이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지요. 가시철망 해놓으면 주민들의 불안감이 가실 것인지....... 이곳 집들은 도대체가 담이 없습니다. 담이 있을 자리에 잔디가, 나무가, 그리고 꽃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간혹 일층의 집에선 창문에 방범창을 설치한 경우도 있지만, 아주 드뭅니다. 저렇게 살면서도 불안하지 않을까. 궁금하지만 들어가 물어볼 수도 없고....... 이곳 사람들은 거의가 송아지만한 개들을 끌고 다닙니다. 본에서도 개들이 모두 송아지만해 놀랐는데 여기도 마찬가지군요. 한데, 한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본의 개들은 아무리 커도 눈빛이 순하고 도무지 짖지도 않았는데, 베를린의 개들은 눈빛도 사나워보이고 잘 짖습니다. 이게 도시개와 시골개의 차이일까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은 같을텐데 도둑이 없을리 없고, 혹시나 집집마다 송아지만한 개들을 키우기 때문에 이들은 도둑으로부터 안심을 하는 건지, 그것 역시 들어가 물어볼 수 없으니 혼자만의 상상에 맡겨야겠지요. 서울도 이제 입추가 지났다니 조금만 견디시면 선선해지젰지요. 또 쓰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베를린 리포트(13) 2008년 8월 11일 브란덴부르크 토어. 동서독의 통일로 너무 유명해진 이 문은 옛 프로이센 제국 때 개선문으로 세워진 것이랍니다. 독일 고전주의의 기법으로 지어져 아름답다고 하는데 제 눈엔 몇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그냥 평범한 문입니다. 파리의 개선문보다 시시하네. 큰아이의 반응입니다. 역사의 흔적을 규모나 뭐 그런 걸로 따진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별거 아닌 걸로 보이나봅니다. 문 주변은 온통 관광지 같습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넘칩니다. 거의가 유럽인들 같군요. 동양인들은 가물에 콩나듯합니다, 멀리 승전 기념탑이 보이고 그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문 꼭대기에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올려져 있고, 승리의 여신이 타고 있군요. 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가 빼앗아 갔던 것을 8개월만에 도로 찾아왔답니다. 역사란 게, 어찌보면 아이들 장난같습니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서로 빼앗고 뺏기고, 도로 찾아오고...... 문 주변엔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천편일류적인 물건들, 베를린이라고 써진 티셔츠, 열쇠고리, 엽서........ 큰아이는 장벽의 이쪽에서 내민 손을 장벽 저쪽에서 손이 나와 마주잡으려는 그림이 든 엽서를 찾아내고,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한듯 좋아합니다. 세상에, 저것도 상품이 되는군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나온 시멘트 조각들을 손톱만한 크기로 잘라 그걸 엽서에 붙여 파는군요. 그러고 보니 장벽조각들이 너무 많군요. 크기가 클수록 비쌉니다. 제 손바닥만한 조각 하나에 자그만치 25유로, 약 4만원입니다. 해도 너무한다 싶습니다. 과거에 아무리 처절했던 역사라도 지나고나면 그게 상품이 되는 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그거 아마 가짜일 겁니다. 91년에 이곳으로 유학와 아직까지 눌러산다는 어느 여성의 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제가 왔을 때도 그 조각을 팔았는데, 벌써 18년입니다. 그놈의 장벽조각이 화수분으로 나오잖아요. 더구나 화가들이 장벽에 그린 그림들은 155킬로미터 중 몇 미터 되지도 않았다는데 파는 것들은 모조리 페인트칠 흔적이 생생하잖습니까? 그게 무슨 요술조각도 아니고 어떻게 18년 동안이나 계속 나오느냐구요. 우리도 통일이 되면, 휴전선을 가로막았던 가시철망을 조각내어 저렇게 팔지 않을까요. 남의 것 차용해 오는 덴 도통했을테니 아마도 그럴겁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다보면 우리도 가짜 철망조각을 만들어낼까요. 지금의 판문점이 여기처럼 관광지가 되는 건 좋지만, 그래서 우리의 취약하기 짝없는 관광산업이 좀 번창하면 좋지만, 저런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문 앞 광장에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독일인 부부가 가운데 장애아인 딸아이를 휠 체어에 앉히고 A4 용지만한 설명서를 행인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이십대로 보이는 아이는 장애가 아주 심해보입니다. 거의 식물인간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보이자 아이 아빠는 커다란 선글라스까지 벗겨가며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 줍니다. 눈을 뜨고만 있지 기능을 멈춘 상태입니다. 사람들도 웅성웅성 둘러서있습니다. 미국 의과대학을 다니던 중 사고로 다쳤는데 미국의 그 악명높은 의료보험 체계의 희생양이 된 모양입니다. 제때에 치료를 못 받아 저 지경이 됐다는군요. 남의 나라에 공부하러 간 유학생 신분으로 의료보험의 혜택을 제대로 못 받았을 건, 그 유명한 마이클 무어의 <식코>란 다큐멘타리가 너무 실감나게 보여주지 않습니까? 어느 나라나 사람 사는 동넨 너무 닮았습니다. 얼마전 오바마가 이곳에 왔을 때 텔레비전마다 그렇게 난리굿으로 환영일색이었는데, 한쪽에선 또 이런 일이 있고, 거리를 다니다보면 오바마를 비난하는 피켓을 든 사람들도 보이고, 또 그를 그렇게 환영하는 정부를 비난하는 피켓도 보이고...... 그 아이 아빠도 참 아빠군요. 물론 이 사태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마음을 이해는 가지만, 아이의 안경까지 벗겨가며 보여주는 행동은 참 잔인하단 생각마저 듭니다. 아픈 자식까지 그 땡볕에 데리고 나와 자기의 상황을 극대화시키려는 의도같은데, 만약 그 아이가 말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런 아빠를 잘한다고 할지 못한다고 할지....... 독일도 우리처럼 참, 미국을 의식하는 듯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세계를 내키는대로 주무르는 거대 제국 미국 앞에 과연 어느 나라가 당당히 맞설 수 있을는지..... 생각 같아선, 미국도 중국도, 모조리 구 소련이 나뉘어졌듯 각 주별로 나뉘어 따로따로 나라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같이 콩알만한 나라도 좀 기펴고 살지 않을까요. 비록 한여름밤의 꿈같은 이야기지만........ 브란덴부르크를 떠나 한 13분 걸으면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그리고 아직까지 일부분을 보존하고 있는 장벽 등 막상 볼거리는 이 거리에 더 많습니다. 이건 다음에 다시 써야겠군요. 엄마 글 올릴 때 문 앞에서 찍은 사진도 함께 올려주겠다던 아이가 아직 자고 있어 깨우기가 좀 그렇습니다.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어젠 하루 종일 비가 뿌리더니 오늘 아침은 해가 반짝 하는군요. 여긴 더워도 30도를 안 넘가는 것 같고 또 추우면 우리의 가을처럼 서늘합니다. 서울은 올림픽 소식이 휩쓸고 있겠군요. 또 쓰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베를린 리포트(14) 2008년 8월 12일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이름만 들어선 이게 뭔지 잘 알수 없습니다. 동서베를린 분단 시절,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분할 통치하던 시절의 미국쪽의 점령지를 말했던 곳이랍니다. 사람들이 다니려면 통행증을 제시해야 해서 체크포인트라 했고, 미국의 가장 흔한 이름 찰리를 붙인 모양입니다. 물론 나머지 세 나라도 어딘가에 체크포인트가 있다고 설명은 되어있습니다. 장벽이 있었던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모래주머니같은 것들을 대강 쌓아놓고 영국과 미국의 국기를 든 군인 둘이 총까지 들고 서있습니다. 당시의 컨셉을 연출한 것입니다. 관광객들이 그들과 사진을 찍는데 1유로랍니다. 군인들은 쉴새가 없군요. 사방에서 셔터를 눌러대고 포즈를 취하고...... 찰리 박물관 안에는 당시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할 때 쓴 도구들과 사진들이 많답니다. 자동차의 앞부분을 뜯어내고 사람이 들어간다든지, 두 개의 가방을 연결해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간 기가막힌 아이디어까지 있답니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실제의 베를린 장벽을 일부분만 전시해놓고 사람들을 끌어모읍니다. 이런 식의 장벽이 곳곳에 몇 개쯤 있는 모양입니다. 장벽을 따라 커다란 흑백의 사진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있습니다. 끌려가는 유대인들, 처형당하는 유대인들, 전후에 잡힌 전범들, 제가 알 수 있는 인물들도 곧잘 보입니다. 괴벨, 힘믈러 등등.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각국에서 일어난 레지스탕스들도 보입니다. 유대인들을 모아놓고 한 명씩 구덩이 앞에 서게 해 뒤에서 총을 쏘면 곧바로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게 하는 기가막힌 사진도 있습니다. 그들로선 시신을 끌어모으고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어 편리했겠지요. 2차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서 수없이 봐왔던 충격적인 장면들. 하긴 어차피 그림이긴 영화나 사진이나 똑같군요. 너희들이 아무리 나에게 박해를 가해도 나의 정신까지 침범하진 못할 것이다. 나는 끝까지 살아남아 너희들의 만행을 만방에 알릴 것인즉....... 당시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어느 유대인 정신과 의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하긴 그가 아니어도 가해자 스스로 우리는 이렇게 죄를 졌소, 하고 만방에 알리며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으니..... 우리식으로 말하면 일제 36년 동안의 폭압통치사를 도쿄 중심지에 진열해놓고 사람들아, 어서 와서 우리들이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나 낱낱이 봐 주시게, 하는 것과 같겠지요. 우리들은 꿈에서도 상상 못할 일입니다. 지금은 장벽 앞 길거리에 사진들을 진열했지만, 그 앞으로 현재 이것들을 전시할 박물관을 짓고 있습니다. 완성되면 이 사진들조차 무료로는 볼 수 없을겁니다. 여기 물가 수준으로 생각하면 15유로쯤은 받을 것 같습니다. 2만원 쯤이지요. 탈출도구 몇 개 전시해놓고 입장료 12유로니까 더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떙볕에서도 사람들은 열심히 들여다보며, 뭔가 서로 속삭이며, 하나같이 진지한 표정들입니다. 좀더 찬찬히 살펴봤으면 좋겠는데 햇빚이 너무 강하고 무엇보다 작은아이가 어제부터 목이 아프다더니 기침을 하고 힘이 없어 보입니다. 아이로선 전혀 독일말을 못하고 못 알아듣는 언니와 엄마를 데리고 다니려니 힘이 들었나봅니다. 오늘은 일찍 집에 가야겠습니다. 또 쓰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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