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6장 경제와 기술로 세계 발전에 이바지하다 8. 그는 바다의 사나이였다 문선명처럼 물과 바다를 사랑한 사람도 드물다. 그는 어쩌면 생의 절반 이상을 바다에서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선명은 지구의 2/3가 물로 이루어져 있고 육지보다 바다에는 생물이 더 많기 때문에 하나님도 바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실 것이라고 늘 이야기했다. 세계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다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금후에는 육지 자원이 필요한 때가 지나가고 수중 자원을 관리하는 기술, 즉 해양산업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견했다. 바다의 수산물이 고갈될 것을 염려해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 으로 사업을 이끌어 양식장을 설립하고 인류의 식량난에 대비했다.
“하루에 6만 명이 굶어 죽는다구요. 참부모라는 말을 하기 전에 굶어죽는 사람을 먼저 해방하라 이겁니다. 이것이 나의 철학입니다. 20년 전부터 해양산업을 발족시켜 가지고 굶어죽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돈을 투입했습니다.”
특히 수산업 발전을 위한 품목으로 튜너 (참치)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한 마리가 무려 500kg이 넘는 튜너는 1년에 300만 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이를 양식할 수 있다면 식량문제 해결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또한 튜너잡이는 매우 역동적인 스포츠의 하나이기도 했다. 문선명은 신도들을 불러 모아 바다낚시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튜너낚시를 경험하게 하여 그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하고 인격을 개발하는 훈련을 여러 차례 했다. 1974년에는 미국 내 수산 관련 업체를 중심으로 전 세계 통일교의 수산업을 총괄하는 트루월드그룹을 세웠다. 그리고 알래스카와 남미를 중심으로 남극 해에서 크릴새우와 튜너,킹크랩 둥을 잡아 미국 선교활동의 경제적 근간을 마련했다.
문선명은 ‘알래스카 정신’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알래스카 정신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바다로 나갔다가 밤 12시를 꼬박 넘기고 이튼날 새벽에 돌아오는 것이다. 그날 잡아야 할 책임랑을 다 못하면 채울 때 까지 고기를 잡아야만 돌아온다. 그렇게 지독하게 견디는 법을 배워야 세상을 이끄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알래스카는 한국식 발음으로 ‘알았습니까?’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죽음이 교차하는 위험한 곳인 것을 알았습니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고기들이 추운 알래스카를 왜 찾아갑니까? 그것은 음양의 조화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화합하는 곳에 가서 새끼를 치려하기 때문에 전부 다 유동하는 것입니다. 나는 알래스카에서나 어디에서나 밤낮없이 선두에 서서 통일의 전통을 세워나갔습니다.”
문선명은 알래스카를 탐사한 후 그곳에서 해양섭리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알래스카는 평범한 사람들이 문화적 여유를 누리며 살기에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21세기를 향한 수산업을 부흥시키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말했다. 1976〜1981년 사이에 버지니아의 노폭, 앨라배마의 바유라바트레,매사추세츠의 글로스터와 더불어 알래스카 코디악은 수산산업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문선명은 바다가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이를 위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던 중 1978년 코디악에 있는 국제해산물회사(International Seafoods of Alaska:ISA)사 들였다. ISA가 주로 다루는 생선은 연어, 넙치, 대구, 은대구, 서대기, 볼락 등 다양했다. 이어 생선을 처리할 수 있는 공장이 1980년부터 가동되었다 이 공장은 알래스카에서 최초로 해안에서 가공을 하는 공장이며 정부로부터 해산물생산 인증을 받았다.
몇 년 후에는 브리스톨베이에 있는 어류 구매회사를 인수해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6〜8월까지의 낚시철 동안 ISA 직원들은 어부들로 부터 물고기를 사서 세척하고 얼음을 넣어 코디악에 있는 공장으로 보내면 그곳에서 가공과 냉동 과정을 거쳐 각지로 배송했다. 1986년 새로운 가공처리 공장을 지었는데 54톤의 물고기와 생산품들을 저장했다. 이는 코디악에서 가장 큰 냉동창고였다. 1989년에는 시설을 현대화시켜 2개의 자동화라인이 추가됐다.
노폭에서 출발한 해앙산업은 글로스터,알래스카, 앨라배마 채 포니아, 시애틀까지 확장되었다. 또 1977년 문선명의 비전에 감명받은 통일교 신도들은 상업용 낚싯배를 만드는 미국해양회사(US Marine Corporation)를 앨라배마에 세웠다. 이 회사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의 낚시 선박을 만들었고, 수리도 했다. 이러한 선박들은 알래스카 연안에서 어업을 하는 선단에 포함됐다.
1989년 문선명은 일본 여성 신도들에게 남편과 함께 ISA로 와서 일을 배운 뒤 43개국으로 나아가 수산업을 개척할 것을 요청했다. 문선 명의 부름을 받은 신도들이 코디악으로 와서 고기를 잡는 방법, 생선 가공과 포장, 판매 기술 등을 익혀 전 세계로 흩어져 수산업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세계의 기아 문제를 줄이기 위해 생선을 말려 분쇄기로 갈아 분말로 만든 피시파우더도 만들었다. 코디악에 있는 국립수산어업연구소, 코디악 상공회의소,알래스카 주정부 등이 힘을 합친 결과 1994년에 85%의 단백질을 농축한 피시파우더를 생산할 수 있었다.
국제구호친선 재단(IRFF)은 이 피시 파우더를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부룬디와 르완다께 있는 난민캠프에 보내 굶주림을 해결히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문선명은 기아 문제에 대해 이렇게 사람들에게 강조했다.
"오늘날 거의 10억 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6초마다 한 사람이 영양실조로 사망합니다. 전문가들은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인구 비율이 2020년에는 두 배로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바다는 환경오염과 고갈로 죽어가고 있는 지구를 소생시킬 수 있는 원자재의 보고이며 인류에게 밝은 미래룰 약속해 줍니다. 나의 목적은 인류를 기아로 인한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바다의 모든 자원, 어류와 원자재가 집중된 곳이 알래스카다. 세계의 수산자원 가운데 80%가 미국에 있는데, 미국 수산자원의 70%에 해당하는 고기가 알래스카에 있다. 그곳에서 생선을 잡고, 그 고기로 피시파우더를 만들면 아프리카의 기아를 구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정부가 지원을 해도 고된 선원생활을 할 젊은이가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알래스카로 진출해 한국인의 부지런 함과 똑똑한 머리를 활용하면 곧 수산업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으며 미래의 산업을 책임질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문선명이 세운 회사들은 참으로 많다. 그의 말처럼 "지상에 천국을 만들려고 하니 손을 안 댈 곳이 없을 정도" 였다. 기계 회사에서부터 언론사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회사들은 전부 사람들의 행복한 삶과 평화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통일교 경제활동의 규모는 한때 수조 원에 이르렀고 그 범위도 무척 다양했다. 통일교가 이처럼 왕성한 경제활동을 해온 이유에 대해 세간에서는 이러중저러중 말빠이 많았다. 문선명이 오로지 돈율 벌기 위한 목적으로 기업을 세우고 운영해 왔다면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또 독자적인 제품을 개발하지 않고 이미 있는 제품울 모방해서 만들어냈다면 훨씬 더 쉽게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선명은 그런 방법을 취하지 않았다. 또 모든 기업의 목적은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 모든 인류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본인의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의 맺히신 그 한을 풀어 드리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슬픔과 외로움, 고뇌로부터 해방시켜 드리려고 했던 것이 본인이 살아온 목적이었습니다. 70년을 두고 해온 모든 일은 그것이 종교활동이든 언론이든 경제든 정치든 기업이든 그 모든 동기는 여기에서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문선명은 1950년대 그 처절한 가난 속에서 토담집 하나를 지어 교회를 시작했고 평생 땀을 흘리며 많은 세계적인 기업들을 일구었다. 그 중 기업들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그 기업들이 뿌린 씨앗은 우리 경제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 목적은 오로지 하나, 문선명의 말처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