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혈검 (碧血劍)
김용(金庸)
卷一
<目次>
第 一 章 난세(亂世)
第 二 章 생(生)과 사(死)의 우정
第 三 章 사부와 사부의 친구
第 四 章 금사검(金蛇劍)과 미소년(美少年)
第 五 章 원수의 사랑
온남양(溫南楊)이 말했다.
『근 20년 전의 일이니까 내가 26살 때였어.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양주로 가서 여섯째 숙부님을 도와주라고 하셨지.』
원승지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석량 온씨의 다섯 사부는 원래 여섯 형제였구나’ 라고 생각했다. 온남양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양주로 갔었지만 여섯째 숙부님은 만날 수가 없었지. 그런데 어느 날 밤 사건이 일어났단다.』
온의(溫義)가 냉담하게 물었다.
『무슨 사건이었는데요?』
그 물음에 온남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내대장부가 감출 것이 뭐 있겠느냐? 나는 어떤 집의 아름다운 아가씨가 밤에 뜰에서 꽃을 꺾는 것을 보았지. 그런데 그녀는 다시 꽃을 꺾지 않았어. 내가 죽였기 때문이야. 그녀는 막 숨이 끊어지면서 비명을 질렀는데 그 비명을 듣고 솜씨 좋은 무사들이 달려 나와 나를 현장에서 붙잡고 말았었지.』
원승지는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는 조금도 뉘우치는 빛이 없다고 느꼈다.
온남양이 계속했다.
『그들은 나를 관청의 감옥에 가두어 버렸었지. 그러나 무섭지는 않았어. 이 일은 작은 일이 아니었으므로 세상에 점점 소문이 퍼지면 여섯째 숙부님도 소식을 들으실 것이고, 그러면 나를 감옥에서 구해 줄 것이라고 믿었었어. 그러나 10여일이 지나도 숙부님은 오시지 않았었지. 관청에서는 나를 단칼에 베어 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졌었고 그때 나는 너무나 놀랐었지.』
청청이 경멸하듯 말했다.
『지금도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은데요?』
온남양이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했다.
『3일이 지난 후에 감옥 안으로 술과 고기가 들여보냈었어. 나는 내일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나는 오래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술과 고기를 깨끗이 치우고 곧 잠이 들었었어. 한참 자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를 흔들더군. 내가 벌떡 일어나 앉자 그 사람이 내 귀에 대고 말했어. '조용히 하시오! 당신을 구하러 왔소!' 그러면서 내 손위의 수갑을 끊고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갔어. 그 사람은 날렵하였고 힘도 세어 보였어. 두 사람은 성 밖으로 나와 다 쓰러져가는 사당에서 잠시 머물렀지. 그리고 그는 제단에 초와 향불을 밝혀 놓았어. 나는 그제 서야 그를 똑똑히 볼 수 있었는데 그는 키가 크고 준수한 청년이었어.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적어 보였으나 그는 정말 미남이었어.』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는 온의와 청청을 천천히 응시했다. 그리고 계속 말을 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어. 그런데 그 사람은 오만하게도 인사도 받지 않고 말했어. '나는 하(夏)가라는 사람이오. 당신은 석량파의 온씨지요?' 나는 그렇다고 말하면서 그의 허리에 걸려있는 무기를 보았는데 그것은 구불구불한 것 같기도 하였으나 머리 부분이 둘로 갈라져 있는 모양이 매우 괴상하더군.』
원승지는 그것이 금사검(金蛇劍)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온남양이 계속 이야기했다.
『내가 그에게 다시 이름을 묻자 그는 여전히 냉랭한 태도로 '당신은 알 필요 없소. 그리고 앞으로는 감사할 이유도 없을 거요' 하더군. 그 당시 나는 그가 아주 이상하고 불쾌했었지만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라 그저 고맙다고 여겼었지. 그런데 그 사람이 말했어. '나는 단지 너의 여섯째 숙부 온방록(溫方錄)을 위해서 너를 구해 주었을 뿐이오. 나와 함께 갑시다!' 나는 그와 함께 강으로 가서 배를 탔어. 그는 사공에게 남사로 가자고 명령하더군. 배가 양주를 떠나 10여리쯤 갔을 때야 비로나 나는 관군이 여기까지는 쫓아오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긴장을 풀었었지. 내가 그에게 말을 붙여도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냉정하게 있다가 갑자기 속옷 주머니에게 아미검(我眉劍)을 꺼내는 거였어. 그것은 여섯째 숙부님의 것으로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인데 어떻게 그것을 손에 쥐어졌는지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어. 그때 그 사람이 얼굴에 살기를 띄는 것이었지.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그런데 그가 말했어. '이 상자를 가지고 너는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면서 배 안의 큰 상자를 가리켰던 거야. 그것은 강철로 매우 튼튼하게 만든 것으로 밧줄로 여러 번 감겨져 있었어. 그는 또 '길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상자는 반드시 너의 큰아버지가 직접 열어 봐야 한다.' 라고 덧붙이는 것이었어요. 내가 알았다고 대답하자 그는 '한 달 안에 내가 너의 집을 방문할 것이니 어른들께 기다리시라고 전해라' 고 까지 했어. 나는 그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으나 그냥 알았다고 했었지 그런 말이 비치고 나서 쩔렁쩔렁 소리를 내며 4개의 닻을 모두 내리게 하였어.』
청청이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못 믿겠다는 듯 비웃고 표정을 짓자, 온남양이 '퉤!' 하고 땅에 가래침을 뱉았다.
청청은 원래 깨끗한 성격의 소유자라, 그런 짓으로 인해 그녀가 손수 가꾼 정원이 더러워지는 것 같아 매우 기분이 나빴다. 원승지가 그대의 이런 마음을 알고 발로 가래침을 비볐다. 청청의 눈에는 그에게 감사하는 빛이 역력했다.
온남양이 계속 말했다.
『그는 나에게 무예를 자랑이라도 하듯 닻을 끌어 배에 집어던지면서 말했어. '만약 네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몰래 상자를 열어 보물을 가진다면 너도 이 닻처럼 만들어 버리겠어.'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은전을 꺼내 배 위에 던지면서 말했어. '여비에 쓰시오!' 라고. 그리고는 대나무 막대기로 배를 밀어 떠나게 하고는 그는 번개처럼 강 언덕으로 뛰어 올라 한바탕 호탕하게 웃고는 곧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어.』
원승지는 마음속으로 '금사란 분은 호걸이로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청청은 그를 아주 칭찬하였다.
『그분은 정말 영웅호걸이로군요!. 얼마나 위엄 있고 기개가 넘쳐요?』
온남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영웅! 제기랄, 영웅은 무슨 영웅이야? 그때 그는 나를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었지만 그가 말할 때의 흉악한 눈빛은 나를 증오하고 있는 것 같았어. 게다가 그의 이상한 성격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어. 강을 건넌 후에 나는 다른 배를 빌어서 집으로 돌아왔어. 상자를 운반하는 사람들이 모두 무겁다고 해서 나는 여섯째 숙부님이 이번에는 재물을 많이 모으셔서 이 상자 안에 금은보화로 가득 채워 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 이렇게 힘들여 집으로 가져왔으니 숙부님들께서 나에게도 한몫 떼어 주시리라고 믿고 기뻐했어. 아버지와 숙부님들께서는 내가 처음 나가서 이런 일을 했으나 나쁘지 않다고 칭찬까지 하셨었지.』
청청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죠. 대갓집 규수를 죽였어도 큰 상자를 가지고 왔으니…….』
온의가 말했다.
『청청아, 가만히 있거라. 숙부님의 말씀을 계속 들어보자.』
온남양이 말했다.
『이날 밤, 대청에 불을 밝혀 놓았는데 2명의 하인이 상자를 운반해 왔었어. 아버지와 숙부님들은 중간에 앉아 계셨구. 내가 직접 밧줄을 끊고 못을 하나하나 빼냈어. 나는 그때 큰 숙부님께서 웃으시며 '여섯째가 그 집 아가씨에게 반해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군……' 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어. 그리고 모두들 '무슨 보물이 나오는지 어디 보자!' 라고 하신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내가 상자의 뚜껑을 열어젖히자 종이가 가득 들어 있었고 종이 위에 편지가 있었어. 편지 겉봉에는 '온씨 형제가 함께 뜯어보시오' 라고 적혀 있었어. 그런데 글씨가 여섯째 숙부님의 필체 같지가 않아서 얼른 큰 숙부님에게 보여 드렸어. 그는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상자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라고만 하셨지. 내가 종이를 들어내고 상자 밑바닥을 보니 큰 보따리가 나왔는데 그것은 가는 줄로 여러 번 동여매어져 있었어. 그래서 칼로 줄을 끊고 보자기를 풀자 7, 8개의 독화살이 튕겨 나온 거야.』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청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원승지는 그것이 금사의 평소의 수법이라고 생각했다.
온남양이 말했다.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간담이 서늘해. 거기에서 튀어나온 독화살은 여섯째 숙모님을 향해 쏘아 댔어. 숙모님은 전신을 붉은 피로 물들이며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만 돌아가셨어.』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난 온남양은 노한 눈빛으로 청청을 바라보았다.
『이 모두가 너의 아버지 짓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계속 했다.
『여섯째 숙모님이 불시에 죽음을 당하자 대청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웅성거리기 시작했어. 그런데 다섯째 숙부님은 이 모두가 나와 관계된 것인 줄 알고 나에게 보자기를 마저 풀게 했어. 나는 멀찌감치 서서 긴 장대로 보자기를 열었으나 독화살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어.』
여기까지 말한 온남양은,
『청청, 너는 그 안에 무슨 보물이 들어 있으리라고 생각하느냐?』
『글쎄요…….』
청청이 어정쩡하게 대답하자,
『그 속에는 너의 여섯째 할아버지의 시체가 들어 있었어!』
순간 청청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핏기가 가시는 것이었다. 온의가 얼른 그녀를 안았다.
온남양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눈을 부라렸다.
『그놈이 얼마나 악독한지 알겠지? 사람을 죽였으면 그만이지 시신을 집으로 보내오다니…….』
온의가 물었다.
『어째서 그가 그런 짓을 했는지 말씀하지 않으셨지요?』
『너는 이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 네 정부의 일이니…… 어떻든 네 말이 맞다고 하겠지!』
온의는 멍하니 밤하늘을 응시했다.
『비록 혼례식은 하지 않았어도 그는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남편이에요.』
그리고는 청청을 바로 보며,
『청청아, 그때 나는 지금의 너보다 더 어렸단다. 무술을 익히는 것을 싫어하였고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때였지. 숙부님들은 온갖 짓을 일삼아 나는 원래부터 그분들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여섯째 숙부님이 죽었어도 슬퍼하지 않았단다.』
그때 온남양이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여섯째 숙부의 무술은 무척이나 뛰어 났는데 어떻게 살해당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과거 20년 전의 일이었는데도 그날 밤의 상황을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 편지 속의 말도 아주 상세히 알고 있었다.
큰 숙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편지를 읽는 목소리도 덜덜 떨었음을 기억했다.
<석량파 온씨 형제 귀하.
당신들의 동생 온방록의 시체를 보내오니 웃으면서 받아 주시오. 이 사람은 우리 친 여동생을 욕보인 후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내 부모 형제 일가족을 몰살시켰소. 나 혼자 겨우 몸을 피해 있다 이렇게 원수를 갚으려고 되돌아 온 것이오.
피의 빚은 배로 갚아야만 내 원한이 풀릴 것 같소. 그러니 장차 당신 가족 50명과 여자들 10명을 죽이거나 욕보일 터이니 주의해서 지켜보시오. 만일 이 숫자가 채워지지 않으면 사람이 아님을 맹세하면서!
금사랑군 하설의 백(白).>
온의가 한숨 지으며 온남양에게 말하였다.
『오라버니, 숙부님이 그의 가족 모두를 죽였다는 게 사실이에요?』
온남양이 오만하게 눈을 치켜떴다.
『사내 대장부가 흑도(黑道)로 들어가 재산과 여자를 훔치며 살인방화하는 일은 보통의 일이다! 여섯째 숙부님이 그놈의 여동생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요구했으나 완강하게 거절당해 분풀이로 칼을 뽑아 살인을 했기로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그래서 숙부님이 그의 가족을 몰살시켰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시 그 놈을 놓쳐 후환을 남게 한 것이 애석할 뿐이지.』
온의는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남자들이 바깥에서 그런 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 걸 우리 여자들이 집에서 어떻게 알겠어요?』
온남양은 온의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큰 숙부님은 편지를 다 읽고는 하하! 하고 한바탕 웃으시고는, '이놈이 찾아온다니 잘 됐구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이 찾아 나서야 할 텐데. 그 놈이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지 알 수가 있었겠느냐?' 하셨지. 하지만 내심 신중을 기하면서 그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어 하셨어. 그날 밤은 경계가 매우 살벌했고 한편으로는 일곱째 숙부님과 여덟째 숙부님에게 그 일을 알리기 위해 금화와 엄주에 사람을 보내셨단다.』
원승지는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무슨 형제가 그렇게 많아요?』
청청도 의아했는지,
『엄마, 우리 집에 할아버지가 두 분 더 계시나요? 어째서 나만 모르고 있었죠?』
하고 물었다.
『그분들은 너희 할아버지의 사촌 형제들이셔. 본래 여기에서 살고 계시지 않으시었다.』
온의의 말에 온남양이 덧붙였다.
『일곱째 숙부님은 금화에서 사셨고 여덟째 숙부님은 엄주에 사셨어. 일가이지만 다른 사람은 그리 많이 알지는 못했지. 그런데 금사란 놈이 어찌 알았는지 일곱, 여덟째 숙부님들을 도중에서 살해하고 만거야. 이놈은 신출귀몰하여, 어느 날 우리집 금과 죽수를 훔쳐갔어. 그리고는 우리집 사람들을 죽인 후에 이 죽수를 꽂아 두었지. 결국 50명이 그에게 죽음을 당했어.』
이때 청청이 물었다.
『우리 집 사람들은 백여 명이 넘는데 어째서 막아내지 못 했었나요? 그에게는 몇 사람이나 있었어요?』
『그 놈은 단신이었단다. 하지만 좀체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평소에도 어디에 숨어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단다. 오직 우리들 중 혼자 남아 있을 때만 나타났던 거야. 결국 큰 숙부님은 강호에 있는 훌륭한 무사를 초빙하여 하루종일 집에 계시면서 그 놈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고 밖에는 방을 붙여 놈에게 정정당당히 대결하자고 했었지. 그러나 그 놈은 나타나지 않았었어. 이쪽의 사람이 많이 있으면 몸을 도사렸던 거야. 한 반년이 지나자 강호의 무사들도 하나 둘씩 흩어져 갔어. 그러자 큰 방의 세 번째와 다섯 번째 방의 아홉째 숙부님이 갑자기 연못에서 익사하셨는데 몸에는 죽수가 꽂혀 있었던 거야. 그 놈은 인내심도 대단한 놈이었다. 조용히 반년을 기다린 후 때를 맞춰 이런 일을 저지른 거였어! 계속해서 십일 동안 사람들은 죽어갔어. 석량진의 관을 만드는 가게에서는 손이 모자라 구주에 가서 관을 사 가지고 와야 할 정도였어. 동네 사람들에게는 집안에 전염병이 돌아 죽었다고 했지. 온의야, 너는 이러한 악몽의 날들을 기억하고 있겠지?』
온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석량진의 모든 사람들은 벌벌 떨었고, 아버지와 숙부님들은 번갈아 순찰을 도셨지요. 그리고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모두 가운데 방에 모여 그림자만 얼씬거려도 소리를 지르곤 했었죠.』
온남양이 몸서리를 치며 이를 갈았다.
『더 잔인한 일은 네 번째 방의 숙모님 두 분이 한밤중에 체포되어 간 일이야. 당시 우리들은 숙모님들이 잡혀간 후 살해당한 줄만 알았는데 한 달쯤 지나 두 숙모님이 양주에서 소식을 보내 왔더군. 그 놈이 술집에 숙모님들을 팔아넘긴 거야. 숙모님들은 한달 동안 손님들을 접대했지. 넷째 숙부님은 화가 나서 그 두 여인들은 이제 필요 없다고 하시며 사람들을 시켜 그 술집과 기녀, 낭자 등을 모두 불에 태워 죽여 버렸어. 이 불로 양주의 술집 여덟 채가 불에 타 버렸지.』
원승지는 모골이 오싹해짐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금사랑군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지만 너무 심했어. 그건 그렇고 온방록은 어째서 온 집안을 쑥밭으로 만들 일을 저질렀을까? 자기의 두 며느리까지도 죽게 하다니……)
원승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내저었다.
온남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게다가 사람을 더욱 미치게 하는 것은 단오절이나 추석, 설날에 편지를 보내어 아직도 몇 사람이 부족하며 여자 몇 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지. 석량파가 강남에서 몇 십 년을 살아오면서 그저 놈을 찢어 죽여도 분이 안 풀릴 거야. 그러나 그 놈의 솜씨가 어찌나 뛰어난지 아버지와 숙부님들은 번번이 놈을 놓치고 말았어. 우리들이 철저하게 방어하자 그 놈은 몇 개월 동안 오지 않다가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어김없이 일이 벌어지곤 했어. 모두 어쩔 도리가 없었어. 2년 동안 놈한테 살해당한 사람이 무려 38명이었어. 청청아, 어디 한 번 말해 봐라. 우리들이 그 놈을 증오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청청이 힘없이 말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됐어요?』
『너의 어머니한테 말씀해 보라고 해라!』
그러자 온의가 원승지를 바라보며 초연하게 말했다.
『그의 시신을 원상공이 묻었지요. 그러니 그때의 상황을 우리 모녀에게 이야기 해 주세요. 우리 두 모녀가 알아듣도록. 그럼…….』
그녀는 목이 메이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나는 그를 왜 그렇게 증오했는지 알 수가 없었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이 대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는 매일 정원에서 놀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그나마 오라버니들이 없으면 정원에도 못 나가게 하셨단다. 대낮에도 말이야. 그런데 춘삼월 어느 날 유채화 향기가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진동을 하는 바람에 나는 산언덕으로 꽃을 보러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지 뭐냐. 하지만 금사랑군 때문에 꼼짝할 수가 없었어. 금사랑군은 그렇듯 좋은 날씨에 우리를 방안에 가두어 놓았단다. 나는 혼자서라도 빠져 나갈까 했었지만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이 떠올라 감히 나갈 수 없었단다. 그날 오후 나와 두 번째 방의 셋째 여동생과 다섯째 숙모와 남양오라버니와 천패오라버니, 이렇게 우리 다섯 명은 정원에 나와 놀았었지. 그때 나는 그네를 뛰고 있었단다. 점점 높이 올라가면서 멀리 담장 밖을 바라보니 연한 버드나무와 만발한 살구꽃이 나를 기쁘게 하더구나. 그때 천패오라버니가 이상한 소릴 지르며 쓰러지자 나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그의 흉부에 그 사람의 금사추가 꽂혀 있었어. 천패오라버니는 금세 죽어버렸단다. 그리고 내 기억에 남양오라버니는 금방 방으로 뛰어 들어가 몸을 피하고 우리들 세 명의 여자들만 바깥에 남겨 두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