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뜻밖의 기연
"아버지, 어머니. 소자 부족하지만 큰 뜻을 품고 강호로
나가 천하제일의 무공을 익히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오나 가문의 영광을 위해 반드시 온힘을 다
해 노력하고 끝내 그 뜻을 이루고야 말겠습니다. 부디 옥체
일양만강하옵시고 마음 편히 계시길 바랍니다."
사마요절은 이 말을 끝으로 부모 곁을 떠나 강호로 나서
게 되었다. 아직 12세의 어린 나이기에 부모 곁을 떠나 보
낸다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두 부부는 그 동안
아들이 보여준 믿음직스러운 모습과 지혜롭고 영특한 행
동을 믿었던 터라 큰 기대 속에 사마요절을 떠나 보내게
되었다.
사마총은 떠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너는 이 세상 누구도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을 선사받
은 만큼 각별히 몸을 아껴야 할 것이다. 네게 이런 재능을
주심은 분명 천하를 위해 긴히 쓰일 데가 있기 때문이 아
니겠느냐? 부디 마음을 삼가고 몸을 정결케 하여 꼭 원하
는 바를 얻도록 하여라."
사마총은 오직 요절로 인해 가문이 부흥하길 간절히 바
랐기에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하
지만 그의 아내 주화연은 사람이 아름답지만 단순한 성격
인지라 떠나보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녀는 그저
눈물만 흘리다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건강하게만 돌아오면 된단다. 네가 설령 바보
라 할지라도 내 아들일진대 그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과욕은 마음을 상하게 하니 그저 강호 유람이나 하고 속히
돌아오렴."
하지만 주화연의 말은 사마요절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의 마음에 어머니는 너무 어리숙
하다는 생각만 들게 했다.
"하하하, 어머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나요?
남자에게는 큰 야망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저 그런
인생을 살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너무 심려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작별을 하고 나서 드디어 요절의 강호행이 시작
되었다.
'나는 반드시 위대한 스승을 만나야만 한다. 아무리 내
가 천고의 기재라 하여도 어찌 혼자서 심오한 무공을 터득
할 수 있겠는가?'
요절은 그런 다짐으로 은거하고 있는 기인들 찾아 주로
산을 뒤지며 나날들을 보냈다. 분명 어딘가에 인연이 닿는
스승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
길 2년.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늘 힘들 때마다 그는 뾰족
한 나뭇가지로 허벅지를 찌르거나 푸줏간에서 얻어 온 쓰
디쓴 소의 쓸개를 입에 머금으며 연약해지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렇게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가문의 영광이 자
신의 두 어깨에 걸려 있음을 늘 잊지 않으려 애썼다.
'위대한 일은 결코 쉽게 발견되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것
이다. 모든 일이 쉽게만 이루어진다면 어찌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기가 힘들다고 말하겠는가. 난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고통마저도 감수할 각오로 달려가리라.'
운이 좋은 날에는 산 기슭에 자리한 동네에서 밥을 얻어
먹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하루 종일 한 끼니도 먹지 못하
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고통도 마음을 단련하는 계기로
삼았기에 힘들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지
고 온 세상이 어둠에 휩싸인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며 터벅터벅 유숙할 만한 곳을 찾던 요절에게 뜻
하지 않은 위기가 닥쳐왔다.
--으르르르.
작지만 두텁게 들려오는 짐승의 울부짖음 소리였따.
'아니, 이건 무슨 소리지?'
요절은 흠칫 놀라며 황급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컴컴한
밤중에, 그것도 산 속에서 낮으면서도 멀리 퍼져 가는 짐승
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으르르릉.
좀더 확실한 소리가 수풍이 우거진 어둠 속에서 들려 왔
다. 그 수풀 사이에서 혼탁한 청광 십여 개가 이글거리며
쏘아져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 눈빛의 주인들
의 머리도 달빛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 저건 늑대가 아닌가, 이런."
탁한 청광은 요절의 눈가로 파고들며 머리끝까지 공포
를 안겨 주었다. 다급했다. 이제까지 2년이라는 시간 동
안 산길을 다니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짐승의 피해를 입
지는 않았던 터라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몰랐다.
요절은 천하제일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 집을 나섯지만 아
직 일체 무공을 배우지 않은 상태였다. 어설픈 내공이나 무
공을 익히게 되면 진정한 무공을 익힐 때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무공의 길이 서로 다르게
되면 오히려 기존에 익혔던 것들이 방해 요소가 될 수도
있으므로 그런 부딪히는 현상을 없애기 위해 깨끗한 상태
로 보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니 늑대가 바라보는 것만
으로도 어떻게 해처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 수밖에 없
게 된것이다.
'이러다간 졸지에 늑대에게 물려 생을 마감하게 생겼구나.'
천고의 기재도 사람에게나 기재로 통할 뿐 한낱 짐승이
그것을 알아볼 리 만무했다. 어떠한 학문이나 지혜도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제껏 나는 수많은 학문을 배웠지만 이 순간 그런 것
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무공을 배워
두는 것인데. 지금으로선 오직 두다리를 의지하여 달려가
는 수밖에.'
요절은 배고픔과 피곤에 지쳐 있었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신발이 타 들어가도록 뛰고 또 뛰었
다. 늑대는 두세 마리가 아니라 여섯 마리나 되었다. 눈이
이글거리고 입가에 침을 줄줄 흘리는 것으로 보아 한동안
배를 채우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사람이 죽음의 기로에 놓이게 되면 상상 외의 힘을 발휘
하게 된다더니만 요절의 지금 상태가 그러했다. 달리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도 벌떡 일어나서 다시 뛰었고 뒤에
서 들려 오는 늑대 소리에 심장 박동이 괴상하게 요동쳤지
만 혼신의 힘을 다 기울여 앞으로 내달렸다.
"헉헉헉."
얼마를 달렸을까?
"헉, 이런. 길이....."
다급성이 터져 나왔다. 길이 없었다. 절벽의 끝자락에 오
고 만 것이다. 뒤돌아보니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늑대들이
거세게 달려오지 않고 혀를 길게 빼문 채 침을 뚝뚝 흘리
며 서서히 접근해 오고 있었다. 늑대들은 그가 이미 더 이
상 갈 곳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하늘은 정녕 나를 버리시는가? 이렇게 허무하게 늑대
밥이 되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더란 말인가!'
스산한 바람이 절벽 밑에서 불어와 옷깃을 날렸다. 고개
를 돌려 절벽 밑을 바라보니 저 아래가 어둠에 휩싸여 까
마득하게 보였다. 이제까지 느껴 보지 못한 큰 공포가 밀려
왔다.
'절벽에서 떨어져 기연을 얻었다는 사람들은 많이 들어
봤지만 현실로 닥치니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구나. 젠장!
이런 데서 어떻게 뛰어내린단 말인가?'
요절은 수많은 책과 사람들의 입을 통해 기연을 얻었다
는 이야기를 듣고 그 상황들을 쉽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자
신이 그런 입장에 처하게 되자 기연이고 뭐고 간에 눈앞이
캄캄해질 뿐이었다.
요절은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늑대들이 서서
히 다가오며 짖는 표정에서 흐릿한 비웃음 같은 것이 느껴
졌다. 요절은 지금 결정을 해야만 했다. 늑대의 밥이 될 것
인지 아니면 절벽에서 뛰어내릴 것인지.
'절벽에서 떨어져 이 몸이 부서지는 것이 낫지, 늑대에
게 물어뜯겨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한낱 짐승에게 물려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다. 죽더라도 내 스스로 선택하리라.
혹여 만에 하나 이것이 하늘의 안배라면 난 기연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죽음이라는 극한의 공포감을 는끼다가 그 죽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자 한계를 넘어 버려서인지 오히려 일순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음을 다진 요절은 캄캄해서 보이지
도 않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 으악~~.
처절한 비명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모습을 보
고 늑대들은 역력히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에
포식할 기회가 생겼다 하고 군침을 삼키고 있었는데 먹잇
감이 비명 소리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허탈한
심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지네들끼리 위로했다.
--미친놈이로세.
--저런 놈은 먹어도 소화도 안될 거야, 제길.
--괜히 힘만 뺐잖아. 배고파 죽겠다.
"흐음, 으으."
얼마나 지났을까? 요절은 눈꺼풀 위에서 쇳덩이가 누
르고 있는 것 같아서 눈을 뜨기조차 힘겨웠다. 허리 아래쪽
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죽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았다. 떨어지면서 그만 혼절해 버렸는지 뛰어
내린 다음부터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눈을 뜨고 축 처진
몸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은 절반가량 물에 잠겨 있었는데
그로 인해 절벽 아래에 강이 흐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 하늘이 날 도왔구나. 역시 난 천고의 기재가 분명해.
나는 그처럼 속절없이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음,
그나저나 이곳은 어디지?'
늘 마음속으로 천고이 기재임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
렇게 막상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보니 더욱 자부심으로
가득 차게 된 요절이었다. 살았음은 확인하자 어디서부터
인지 힘이 솟아났다. 그는 몸을 벌떡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
았다. 강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사방이 막혀
있는 암굴이었다. 천장은 아주 높다랗게 막혀 있었는데 작
은 구멍들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어서 주변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명석한 두뇌로 작은 호수마냥 자
리한 물구덩이를 바라보며 추리해 보았다.
'음, 그렇구나. 아마도 절벽 밑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었
을 것이고 강바닥이나 옆으로 작은 물 속 통로가 있었을
것이다. 보통 같았으면 부력으로 인해 들어올 수 없었을 것
이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힘으로 인해 놀랍게도 이쪽으로
휩쓸려 들어오게된 것이로구나.'
그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인식되며 머리에서 사사삭~~,
정리가 되었다. 사마요절은 정황을 파악한 후 몸을 돌려 암
벽 쪽을 바라보다가 벼락일라도 맞은 양 놀라 자지러졌다.
바로 그의 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사람의 뼈다귀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쪽 턱이 떨어져 나간 해골은 기괴하
기 그지 없었다.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은 암벽의 색깔과 해
골의 색깔이 크게 구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뼈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 거기에 있었는지 삭아서 떨어져 나간 부
분도 있었는데 입고 있던 옷이 삭아서 거미줄 마냥 그 위
에 걸쳐져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왜 이곳에서 이처럼 죽음을 맞이
하게 되었을까?'
그는 몸을 일으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해골의 앞에는
양손을 모은 뼈다귀 위로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는데 기름
종이로 싸여 있었다.
"이, 이것이 말로만 듣던 무공 비, 비급이로구나."
목소리가 떨려 오고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물결치듯 밀려
들었다. 원망스러웠던 늑대들이 고맙게 여겨지는 순간이
었다.
"흐흡, 드디어 내가..."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는 이것을 하늘이 정한 운명이며
자신을 위한 배려라 여기고 전후 사정 볼 것 없이 그 자리
에서 배사지례를 올렸다.
'이분은 바로 나의 사부님이시다. 비록 언제 입적하셨는
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사제지간이
아니겠는가!'
그는 마지막 아홉 번째의 절을 마치고 일어선 후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비록 살아 계시지는 않지만 이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사부님께서 저를 맞이하고자 이곳에서 기다리신 줄 압니
다. 그동안 얼마나 적적하시고 힘드셨나요! 쓸쓸히 이곳에
서 오랜 기다림으로 인내하셨으니 이제 마음 편히 가십시
오. 어떤 고난이 온다 할지라도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어 온
세상에 사부님의 높으신 무공과 고귀한 뜻을 펼쳐 보이
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요절이 말을 다 마치고 나자 해골은 알아듣기
라도 한 것처럼 스르르 허물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자기의 사명은 여기서 끝이다라고 말하는 듯이 말이다. 사마
요절은 모든 것이 신비스럽기만 했다. 늑대에게 쫓긴 것부
터 시작해서 절별 아래로 떨어진 것 그리고 이런 비밀스런
장소로 흘러 들어온 것이며 자기가 말을 끝내자마자 해골
이 사명을 다한 듯 무너져 내린 것 모두가 우연이라는 말
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음, 그렇구나. 사부님께서는 나를 기다리시다가 뜻을 이
루시자 더 이상 남아 계실 의미가 없으시기에 떠나신 것이
로구나.'
사마요절은 더욱 마음 깊이 감명받아 사부의 뼈들을 정
성스레 주워 모아 한쪽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흑흑, 사부님! 그 동안 저를 기다리시느라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시기가 힘드
셨죠? 이제 두 다리 쭉 펴시고 쉬소서. 사부님의 뜻을 받들
어 강호를 평안케 하고 큰 인물이 되겠나이다."
그런 후에 그는 혹시나 자기를 위해 벽에 어떤 글이라도
새겨 놓지 않았을까 하여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오른쪽 벽
면 쪽을 바라보니 굵은 글씨로 영약실(영약실)이라고 새겨
져 있는 것이 보였다. 문의 형태로 금이 가 있는 것을 보니
분명 그곳을 열면 그 안에 영약들이 산재해 있으리라는 생
각이 들었다.
"오호! 신령한 약이라니."
그는 너무나 기뻐 양손으로 힘껏 밀어 보았다.
--영차~~.
현재로서는 기력이 쇠잔하여 석문이 열리지 않을 것이
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간단히 한쪽이 밀리며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자 그는 더욱 들
뜬 마음이 되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오! 보라!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공척석유(空
淸石乳)를 비롯하여 수많은 산삼(山蔘)들과 기이한 화초(花
草)들이 널려 있는 것이 아닌가? 공청석유는 작은 연못 같
은 곳에 맑게 고여 있었고 산삼과 하수오 등은 위에 뚫린,
햇볕 드는 작은 구멍들과 절묘한 배치를 이루며 자라고 있
었다. 마침 허기졌던 요절은 공청석유로 목을 축이고 산삼
들을 뽑아 머어 대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이 아마 이런 요절
의 모습을 봤다면 눈이 뒤집어지며 환장병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평생에 공청석유 한 방울만이라도 입에 대어 보길
소원하는 것이 무림인들이건만 요절은 지금 그것을 물 마
시듯 마시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영약들을 배불리 먹자
요절은 온몸에서 피곤함이 가시고 불끈불끈 힘이 솟아나
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약실은 상당히 큰 데다가 그 양
도 풍부했기에 몇 달 정도 이것만 먹는다 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나와 또 다른 무엇이 있는가 하고 벽면
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쪽 귀퉁이에 사부님이 기록
해 놓으신 것으로 추정된 글귀가 아주 조그맣게 몇 구절
새겨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세밀하게 살피지 않
았다면 찾아내기 힘들었으리라. 기록된 내용은 이러했다.
'나 파천황(破天荒) 석두오(石頭悟)는 73세 때 인연이 닿
아 파천황경(破天荒經)을 얻어 무공수련에 들어갔노라. 하
지만 파천황경(破天荒經)은 너무나 심오하여 120세가 된 지
금에 이르러서도 고작 3성까지밖에 터득하지 못했다. 이
책은 분명코 천하제일의 기재가 아니고서는 연마할 수 없
을 것이리라. 나는 이제 때가 다 되어 죽음을 기다리지만
후인이여, 그대를 위하여 수많은 영약을 준비하노라. 부디
파천황경의 무공을 온전히 깨우쳐 그 힘을 세상에 펼치도
록 하라.'
"음, 나의 사부님은 파천황이라 불리셨구나. 그런데 이
름이 석두오라니. 돌 머리를 깨우친다는 뜻이군, 후후. 그
러니 고작 3성까지밖에 터득하지 못하신 것 아닌가, 후후.
하지만 나는 깨우치지 못하는 것이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공전절후(空前絶後)의 기재가 아니던가! 사부님
은 50년이란 시간동안 3성밖엔 이루지 못하셧구나. 나는
기필코 5년 안에 12성을 달성해 내고야 말겠다."
요절의 기재병이 도져 아까까지 눈물로 사부의 뼈들을
묻던 때와는 사뭇 다른 어조로 중얼거렸다. 요절은 그렇게
비웃음을 머금고 책을 집어 들어 조심스럽게 펼쳐 보았다.
--파천황경(破天荒經).
기름종이를 펼치자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파천황경이라
고 날아갈 듯한 필체로 기록해 놓은 이름이었다.
"음, 정말이지 이름이 매우 그럴싸하구나. 하늘을 깨 버
리는 비급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위력적이면 하늘을 깨뜨
릴 수 있다는 것일까? 그런데 어찌하여 이 책은 아무런 변
고 없이 보존될 수 있었을까?"
자세히 보니 책은 일반 화선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양피지(양피지)로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에 특별한 약품 처
리를 했는지 독특한 냄새가 심하게 났는데 아마도 이 때문
에 지금까지 보존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장
을 펼치자 깨알 같은 글자가 빼곡이 들어차 있었는데 거
기엔 이 무공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되어
있었다.
'이 비급을 인연이 닿지 않는 자가 보고 익히게 될 시엔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부디 능력이 따르지 않는 자느
이 비급을 익히지 않기를 권하노라. 하지만 인연자가 있어
이 무공을 터득하는 날에는 하늘과 땅도 그 앞에 굴복할
것이다.'
"나야말로 인연자가 아니던가! 이제 앞으로 나 또한 강
호로 나간 후에는 훌륭한 별호가 있어야 할 테니 파천무황
이라고 칭해야 되겠다, 음하하하하. 강호여, 기다려라. 조
만간 파천무황의 시대가 도래하리라, 음하하하."
그날부터 사마요절의 뼈를 깎는 수련이 시작되었다.
비급의 내용은 깨알 같은 글씨로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
니라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요절이 누구인가. 천하
제일의 기재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그앞에 난해한 글귀란
있을 수 없었다. 여기서 잠깐 파천황경에 기록된 12성을
달성했을 때의 그 위력에 대한 설명을 옮겨 보도록 하자.
파천심법(破天心법)
모든 파천황경의 무공을 익히는데 필수적인 심법으로
서 7성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환골탈태를 하게 되고 10성
의 경지에 이르면 한 호흡에 모든 기를 자유롭게 조정한다.
12성에 이르게 될 시 비로소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되어
가히 하늘이라도 두 조각 낼 만큼의 힘을 갖게 되리라.
파천아수라장법(破天阿修羅掌法)
손을 뻗으면 아수라의 형상처럼 붉은 강기가 춤을 추듯
뿜어지며 그에 닿는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그
앞에선 산악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며 바다도 둘로 나누
어지리라(참으로 광오하기 이를 데없는 무공이 아닐 수 없
다).
파천일지(破天一指)
일지에서 뻗어 나온 힘이 백장 너머의 암석을 관통시킬
수 있으니 시야에 비치는 모든 것은 끝내 소멸되고 말리라.
파천운천신법(破天雲天身法)
파천심법을 운용하고 이루어 내는 파천운천신법은 그
종적이 묘연하고 나타났는가 싶으면 이미 없고 없는가 싶
으면 이미 존재하는 듯한 신묘하기 이를 데 없는 신법으로
그 어느 누가 있어 벗어날 수 있겠으며 그 어느 누가 있어
따라올 자 있으라.
파천허보(破天虛步)
현란한 발놀림은 차라리 바람에 흩날리는 구름과도 같
으니 구름이 흩어지고 모아지듯 어느 곳으로 움직일지 아
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한 걸음에 사만 팔천 번의 변화를 가
지니 비(雨)라도 옷을 적시지 못하리라.
파천백팔검법(破千百八劍法)
일검은 백팔 개의 변화를 이루어 내고 백팔 검은 다시
그 하나하나가 다시 백팔 개의 변화를 이루며 거기에서 다
시 백팔 개의 변화를 이끌어 내어 백이십오만 구천칠백십
이 번의 변화를 가진 절대 검법이다. 눈이 내리는 평원에서
라면 가히 시야에 들어온 모든 눈들을 맞추어 낼 수 있으
리라.
파천황경을 다 익힌 후의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이 무공
은 절대 무적의 무공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것
이리라.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이 무공이 익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듯 절
세의 기이한 무공들을 사마요절은 온힘을 기울여 연마해
나갔다. 그는 열심히 무공을 연마하면서 영약 대신 식사를
따로 준비해야만 했다. 영약은 많았지만 무공이 성취 상황
에 맞추어 그 수준이 상승했을 때에 먹는 것이 가장 효과
적이므로 아껴 두어야 했다. 일반적인 식사는 주로 물고기
를 잡아먹는 것으로 해결해 나갔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마
리를 잡기도 힘들었으나 차츰 무공을 터득해 나감에 따라
물고기 사냥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약 반 년이 지
나 내공을 운용할 수 있게 되자 급기야 물 속으로 들어가
물길을 따라 강으로 나올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렇게 되자 강가를 따라 돌아다니며 과일이나 짐승들을 사
냥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무공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섣불리 밖에서 활동하려 하지 않았기 때
문에 무공은 늘 암굴에서만 익혔다. 무공이 아직 완성 단계
에 이르지 못햇고 귿이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파천황경의 운기행
공 심법은 햇살이 들지 않은 곳에서 익히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마요절은 고독함을 달래기
위해 틈나는 대로 자신의 삶이 어떠했는지 벽에 일기를 새
겼다.
'내가 여기에 온지도 어느덧 일련이 지났다. 나도 어느
덧 고수의 반열에 오른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밖으로
나가 나를 이곳에 떨어지게 한 늑대들을 찾아 나섰다. 약간
헤매긴 했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그놈들을 찾아낼수 있었
다. 이곳에 온 후로 한 번도 잊어 본적이 없는, 참으로 고
마운 녀석들이 아닐 수 없다. 그때 늑대들이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도 최강의 무공을 찾
아 어딘가 산중을 헤매고 있겠지! 후후. 나는 그렇듯 고마
운 녀석들을 보자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 반가움의 표시로
나는 그 녀석들에게 다가가 단숨에 머리를 뽀개버렸다. 이
얼마나 강한 기쁨의 표현인가? 강한 반대는 강한 긍정을
나타내는 것이니 단번에 죽여 버림은 그만큼 아낀다는 뜻
이 아니겠는가? 음하하하. 이것은 농담이고 사실을 말하자
면 처음에는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늑대들은 나에게 인도자의
역할을 했으니 나름대로 배려를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
었기 때문이었다. 늑대들은 내 일장에 머리가 터져 죽으면
서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난 거침없이 다 죽여
버렸다. 아! 마음이 너무 상쾌하구나.'
'아! 삼년! 너무나 짧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벌써 삼
년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파천황경의 무공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구나. 이제 겨우 칠성의 경지를 돌파
햇고 황홀하게도 환골탈태를 경험했다. 예상컨데 앞으로
삼 년 정도만 지나면 십이성까지 터득할 수가 있으리라. 지금
강호에 나가도 나를 상대할 자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
지만 는 겸손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처럼 혼신의 힘을 기
울여 무공을 연마하는 것처럼 어딘가에 있을 악당들도 나
름대로 최선을 다해 힘을 기르고 있을 것이다.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다시 그로부터 삼 년이 경과된 어느 날의 일기.
'아! 이대로 그냥 강호로 나가고만 싶구나. 십이성까지
나아가기가 이리도 힘이 들더란 말인가! 아니다. 힘을 내
자. 십일성까지 터득하는 데 육년이 걸렸다. 이제 내 나이
스물. 여기서 1년이 더 지난 후에 나간다 하여도 난 아직
젊다. 그 어느 누가 있어 이십 세가 갓 넘은 나이에 천하제
일 고수가 될 수 있었겠는가? 파천무황의 신화를 일구어
내기 위새 힘을 내어 극복해 나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