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문학회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토속어에서 전통의식을 찾다 - 미당 서정주 선생님에 대한 회고 이광소    내가 미당 서정주 선생님을 만난 것은 1963년이다. 그때 미당 선생님은 48세였다. 나는 1960년 전주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는데, 1961년 교육잡지인 <새교실>에 시를 응모해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시는 시골에서 시를 공부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끝내 사직서를 쓰고 1963년 서라벌 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였다. 그 당시 서라벌 예술대학교 문창과 교수로는 미당 서정주 선생님, 박목월 선생님, 김동리 선생님, 김구용 선생님, 및 손소희 선생님이 계셨다. 미당 서정주 선생님이 가르친 과목은 시론과 시창작이었다. 나로선 선생님의 시집 <화사집> <귀촉도> <신라초> <서정주시선>등을 애독했던 터라 선생님의 강의가 궁금했다. 미당선생님의 목소리는 서당 선생님의 천자문 가르치는 톤이었다. 박목월 선생님의 목소리 톤은 짧고 빠른데 비해 서정주 선생님의 목소리 톤은 느리고 길었다. 나는 수업 시간이 끝나면 교수실로 자작시를 가지고 들어가 선생님의 조언을 직접 듣기에 바뻤다. 선생님은 토속어에 관심이 많았는지 현대시에 토속어와 고어를 살려서 넣어보라고 권하셨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후에 선생님의 작품에서 토속어와 방언을 발견할 수 있었다.예를 들면 1966년 현대문학 5월호에 발표한 <동천>에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놓았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에서 둘째 행 “즈믄 밤”이 나온다. 즈믄은 “천(千)”의 고어이다. 고은 눈썹을 천날이나 되는 밤의 꿈으로 맑게 씻었다는 뜻이다. 지금 2024년에 사는 젊은이들이 “즈믄”이라는 단어가 천의 날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 당시 1963년에 대학생이었던 필자도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다. 선생님은 사라져가는 우리 토속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계셨다 다음에 구어체 사용이다. 시 <내리는 눈발속에서는>에서 “괜, 찬, 타,”는 “괜찮다”의 발성에 의한 구어체이다. <수대동시>에 “쌰알 보오드레르처럼 섧고 괴로운 서울 여자를/ 아조 아조 인제는 잊어버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 아조는 아주의 구어체이다. “아조 아조 인제는 잊어버려” 구어체를 사용하니 사실감이 살아날 뿐 아니라 감칠맛이 난다.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에도 “아조 섭섭지는 말고”에서 “아조” 를 사용하고 있다. 시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에도 첫 구절에 “아조 할 수 없이 되면 고향을 생각한다”로 시작한다. 여기에도 ‘아조’가 나온다. 그리고 이 시에는 살포시의 토속어인 애살포오시, 사금파리의 방언인 새금팔, 낫게 해주러의 방언인 나시우러를 사용한다. <화사>에는 “아름다운 배암”이 나온다. 표준어 뱀을 방언인 배암으로 사용했다. 배암은 뱀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운율적인 리듬감이 살아난다. 또한 <귀촉도>에서 언급한 메투리는 메추라기의 전북지역 방언이다. 또 시 <멈둘레꽃>이 있다. 멈둘레꽃, 머슴둘레꽃은 민들레꽃의 방언이다. 방언은 또 있다. “질마재”도 표준어는 “길마재”이다. 질마는 짐을 싣기 위해 쇠잔등에 얹는 길마의 방언이다. 그 시절 사람들에게 질마재가 일상어가 되었다. 시제를 <멈둘레꽃>이나 <질마재 신화>와 같이 방언으로 사용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은 시의 가락이다. 시 <푸르른 날>은 가락이 탁월한 시이다. “푸르른 날”이나 “어이 하리야”에는 ㄹ, ㄴ, ㅇ, 유성음이 반복된다. 소리의 가락이 애틋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이야기시는 억양과 장단에 가락이 흐르고 있어 정감을 느끼게 한다. 그 외에 미당 선생님은 남의 시를 흉내 내지 말고 “절대적 자아”를 강조하였다. 그러면 남이 안 쓰는 토속어와 사투리 사용이 “절대적 자아”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생각하곤 하였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업적은 무엇보다 민족의 전통 의식의 회복에 있다. 미당은 일찍이 신라 정신에서 민족의 전통 의식을 찾으려고 애를 쓰셨다. 김유신, 선덕여왕, 백결, 박혁거세 어머니 사소, 문무왕, 등 신라의 영웅들과 문화를 통해 영원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정신은 특별한 사람들에 국한된 서사들이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1972년부터 1975년까지 연작시 형태로 쓴 <질마재 신화>를 1975년에 시집으로 내놓으셨다. 질마재에 사는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을 신화로 승격시켰다. 설화와 토속어에 대한 애착이 결국 신라 정신이 아니라 서민들의 토속정신에서 영원성을 찾기에 이르렀다. 미당 선생님은 환갑에 뜻을 다 이루셨다.<신부>는 설화를 차용해서 쓴 시이다.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마당방> <상가수의 소리> <알묏집 개피떡>은 일상적인 서민들의 생활이다. <해일>은 자연에 설화와 토속의 정신을 살리었다.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를 예를 들어보면, 외할머니 뒤안의 툇마루는 외할머니 손때가 묻은 먹오딧빛이 나는 정감의 장소이다. 하도 많이 문질러서 거울이 되었다.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들으면 어디 갈 곳이 없어 외할머니 툇마루를 찾아간다. 이곳이 유일하게 피신할 수 있는 곳이다. 외할머니가 있는 한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구역이다. 즉 외할머니 툇마루는 도피성이며, 언짢은 감정을 진정시키는 정화의 공간이며, 어머니도 접근할 수 없는 성소이다. 이와 같이 생활공간인 툇마루는 속과 성의 합일성을 이루게 된다. 미당 선생님은 산문 <내가 아는 영원성>에서 선대의 삶을 이어가는 사승자(史乘者)의 자각을 언급한 바 있다. 이 정신을 영통이라고 하였다. 서정주 시인에게 영통이란 현세를 일탈하여 내세로 초월해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서의 생명을 영원 속으로 지속하는 원리이다. 종합해보면, 미당 선생님의 정신은 민족의 토속성에서 한국 전통 의식을 찾고자 한 것이다.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영원성으로서 자리매김 하고자 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선생님에게 시 창작을 학습 받아 1965년 문공부 신인예술상에 시로 당선 되었다. 그 뒤 선생님의 이름이 담긴 잡지 <미당문학>에 이구한이라는 필명으로 문학평론으로 등단하게 되었고, 미당 선생님의 시집 <질마제 신화>를 중심으로 <속과 성의 합일성 세계>라는 평론을 쓸 수 있었다.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미당문학회>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제자로서 매우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