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란은 일본 에도시대(1603년~1868년)에서 다이쇼시대(1912년~1926년)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유곽에 소속된 매춘부인 유녀 중에서 제일 최상층 계급의 유녀 계급을 말한다.
에도시대에 유명했던 이 유녀들은 당시에 인기 있던 여성으로
음주가무는 물론이고 뛰어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고위층의 말상대를 하고 몸을 팔았다.
참고로 이러한 고급 기생인 오이란은
오이란(花魁 -おいらん) 들은 손님을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즉, 오이란은 아무리 돈을 많이 낸다고 해도 처음 온 손님을 무조건 받지 않고
단골이 되어 그녀에게 많은 투자를 할 때
비로소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요시와라의 손님들은 대부분 곧바로 오이란 계급 아래의 유녀를 사서
그냥 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또는 귀찮고 번거로운 절차를 밟고 나서
오이란과 하는 관계를 맺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럼 이 귀찮고 번거로운 절차는 무엇이었을까?
에도일목도병풍 (江戸一目図屏風,에도히토메즈뵤후)
1603년 에도막부 창설 이후, 1617년에 구 요시와라가 생겨난다.
원래 니혼바시 쪽에 위치해 있었지만, 1657년에 대화재로 소실된다.
이후 확장된 에도의 시가지를 피해 논밭이었던 아사쿠사 쪽으로 이전된다.
그게 바로 신 요시와라. (줄여서 요시와라.)
(당시 요시와라의 전경을 묘사한 그림)
윗 글의 설명대로 오이란花魁이란 기본적으로 당시 도쿄(당시 이름은 에도)의 유곽지대인
요시와라에서 찾을 수 있었던,
특별히 가격이 비싼 고급 유녀였다.
오이란이 되기 위해서는 외모도 중요했지만 또한 높은 품격과 교양이 요구되었다.
차도(茶道), 화도(花道, 꽃꽃이), 향도(香道, 향을 감상하거나 어떤 향인지 맞추는 것)를 비롯해서
노래, 악기 연주 등의 가무 능력도 갖추어야 했고, 바둑이나 장기등의 놀이를 원하는 고객도 많았기에
여차하면 상대를 해 줄만한 실력을 갖고 있어야 했다.
오이란을 이용하는 고객이란 주로 귀족 그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견줄 만한 학문에 대한 소양 또한 필수적이었다.
오이란에는 당시 대중이 가지는 "재색을 겸비한 이상적 여성상"이 담겨 있었다고
다큐멘터리에서는 말하고 있다.
(일본 드라마 벛꽃물 든 게이샤의 한 장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장 높게 친 재주는
글재주(문예) 였는데, 아름다운 문장의 편지를 써서 고객을 감동시키는 오이란이야말로
평판이 높았다고 한다.
즉 러브레터를 잘 쓸수록 인기가 높았던 것이다.
참고로 당시에 이 유녀가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지, 매년 책자로 나왔는데
이를 유녀 평판기(遊女評判記) 란 책자도 있었는데,
마치 상품의 카탈로그 북처럼 요시와라 유녀 대다수의 정보가 수록되있었다고 한다.
이런 시중의 평판을 뚫고 3천명 가량의
모든 유녀 가운데 정상에 오른 오이란의 지위와 인기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일본 미인 의사도감)
참고로 일본에서는 직업군 중에서 여성의 순위를 평판이나 외모로 책을 발매하는 경우가 잦다.
흔히 미녀들이
"도내 S랭크 미소녀(처녀)" 라고 말하는게
사실은 진짜 일본 문화에서 파생된 것이다.
텐메이부터 칸세이까지(天明~寛政期,1781~1801) 18세기 후반 에도의 3대 스타를 그린
우키요에(풍속화)인 카츠카와 슌코(勝川春好)의「에도 산부쿠츠이(江戸三幅対)」란 작품으로
이 작품에는 가부키 배우 이치카와 단쥬로(市川団十郎), 스모의 요코즈나 타니카제(谷風)와
오우기야(扇屋)의 오이란 하나오기(花扇)가 그려져있다.
이것은 오랜 내전기를 끝내고 번영의 시대로 접어든 에도시대 일본에서
3S, 즉 영상(희극), 스포츠, 섹스가 얼마나 융성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당대 가장 유명했던 스포츠 선수, 인기 폭발의 연극(가부키) 배우와 함께 고작
'몸을 파는' 유녀가 유명 연예인인 여타 인물들과
동등하게 그려져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에도시대 일본의 매우 자유로운 性 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실제로 이 오이란들은 유곽의 안 쪽에 온실 속 화초처럼 숨어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때때로 마치 여왕처럼 시종과 추종자들을
이끌고 요시와라 일대를 행진하곤 했는데,
그 화려함은 오이란 도츄(花魁道中)라 하여 단연 요시와라의 명물로 꼽혔다.
(오이란 도츄를 하는 모습)
보다시피 당시의 오이란은 나쁘게 말해선 창녀임에도 여느 스타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여느 스타와는 다르게 오이란의 수명은 약 27세 언저리로 비교적 짧았다고 한다.
참고로 유녀가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나이는 약 15살
즉 대부분의 오이란은 최소 15세 이상(거의 불가능하지만)부터
27세 미만인 그 당시에 정치,경제,그림,문예가
뛰어난 여자를 뜻한다.
자 그럼 이런 오이란과 만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만 했을까?
에도 요시와라의 규모는 약 2만평으로, 당시 일본 내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요시와라의 출입구는 오직 정문 하나 뿐이었으며,
나머지는 도랑을 파서 침입자나 도주자의 범죄행위를 원천봉쇄 했다.
그 위용은 마치 하나의 성과 같았다고 전해진다.
일단 요시와라에 들어가는 순간, 마치 치외법권에 들어온 것처럼
신분의 고하를 떠나 동등한 손님으로써 대접을 받았고, 사무라이는 칼을 입구에 맡아놓아야만 했고
귀족이라도 가마에 타고 출입은 불가능했다. 지위가 낮아도 돈만 충분했다면
이곳에선 귀족처럼 대접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에도 요시와라는 유녀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많은 명물들이 많았다.
특히 요시와라의 메인이라고 하면
나카노쵸의 벚꽃(仲之町)은 남녀노소가 즐기는 에도의 명물이었다고 한다.
이게 왜 명물이냐?라고 갸우뚱 할 수도 있지만
봄이 되면 에도에서 가장 아름답게 활짝핀 벚꽃나무를 옮겨다가 심었고,
지기전에 다시 뽑아버리는 연출을 하니, 명물이라고 불릴 수 밖에
그밖에도 1년내내 계절의 명물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장치가 있었다고하니
지금의 말로 표현하면 테마파크 느낌인 유곽이었다.
자, 이제 본문으로 넘어가서 오이란과 관계 하기 위해서 돈이 많다고 가능한건 아녔고
오이란과 관계 맺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절차를 따라야만했지
첫번째 만남 초회(初会)
먼저 히키테챠야(引手茶屋)라는 곳에 들러야 된다.
요시와라를 찾은 손님은 여기서 오이란을 소개 받아야 했다.
지금도 일본에는 이런 가게가 더러 있지만, 당시에 性을 '접대' 하는 곳은
때때로 "찻집" 이란 간판을 달았다.
접대원은 손님에게 차를 제공할 뿐이고,
별실에서 종업원과 손님이 눈이 맞아 어떤 '일'을 치루는지는 그들의 자유이다.
(현대 일본의 소프랜드랑 비슷함)
1층에서는 좌식실로 차를 마셨고
2층에서는 유녀를 상대했다고 함
보통 저급 유녀는 1층에서 손님과 차를 마시고, 교제한 후,
2층으로 들어 가서 정사를 치뤘다고 한다.
일단 이 "찻집"에 들어서면 가게 입구에다 지갑을 맡겨야했다.
요시와라는 꿈의 장소, 무릉도원과 같은 곳이기에 돈이라는 현실적인 것은 잊어달라는 것이
당시의 설명이었으나 사실 무전취식을 막는 용도라고 하는데
오이란이 있는 찻집들은 규모도 커서
100명 이상의 종업원이 근무했다고 한다.
준비가 완료되면 손님은 2층에 있는 히키츠케베야(引付部屋)라고 불리는 연회장에서
소개받은 오이란을 기다려야 했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고객은 오이란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이란이 귀한 손님이라도 되는 냥 연주자나 게이샤 등를 불러서 연회를 열어주어야 했다.
이때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하석에 앉아, 오이란이 앉을 상석인 카미자(上座,상좌)를 비워두고 기다린다.
그리고 이렇게 기다리면 오이란을 바로 안을 수 있었을까?
당시에 오이란에겐 손님을 고를 권리가 있었고,
이때 오이란은 손님에게 말도 걸지 않고, 그저 살펴보기만 했다고 한다.
즉 첫날인 초회는 바로 오이란이 손님이 자신에게 맞는 사람인지 살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일 뒤 , 손님은 다시 오이란을 찾아 가야하는데,
이렇게 2번째 만남을
우라(裏,뒤) 혹은 뒤를 뒤집는다(裏を返す,우라오카에스) 라고 하는데,
초회와 마찬가지로 연회를 열고 오이란을 기다려야 한다.
참고로 이 우라를 해서 한번에 하지 못하면 손님의 수치
우라를 받지 못하면 오이란의 수치라고 불렸다고 한다.
보통 3번째의 만남,
마침내 오이란이 손님을 마음에 들어하면,
오이란은 처음으로 유녀옥(遊女屋,유녀집)의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손님을 초대한다.
이때부터 오이란은 차가운 태도에서 바뀌고,
연인처럼 손님을 공손하게 대접하는데,
이렇게 되면 나지미(馴染み)[배꼽친구]가 된다고하는데
같은 유녀에게 3번 이상 방문해, 오이란이 인정한 단골손님이 되는 것을 말했다고 한다.
이때 손님에게는 특별한 것이 준비되어 있는데,
바로 고객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젓가락 주머니(하시부쿠로).
이렇게 나지미가 되면 이름을 불러주며 마치 부부처럼 대해준다.
그리고 이윽고 몸을 허락하고는, 남녀간의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당연히 여기까지 오는 비용은 엄청 난 것으로
중개료, 화대,팁등을 다 합하면 현재 엔화 가치로 약 200만엔에서 3천만엔까지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돈과 시간을 들여서 오이란의 나지미가 된다고 해서 좋은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이란의 나지미는 다른 유녀와 성관계를 할 수 없이 오로지 그 오이란과의 성관계만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이 규칙을 어기면 요시와라에서 쫓겨나거나, 위자료를 지불하거나 했고
다른 유녀로부터 조롱을 들었다고 한다.
사랑을 상품화해서 팔고, 유사 부부관계 마저
상품화해서 파는 요시와라에서
유녀들은 행복했을까?
그건 아니라고 한다.
대부분은 27세 미만에 오이란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고
대부분의 유녀들은 빚때문에 요시와라 적을 두게 되었기때문에
대부분의 유녀들의 꿈은 「미우케(身請け)」라고 해서,
나지미가 된 손님이 자신의 빚을 갚아주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부인이나 애인이 되어 하루빨리 유곽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한다.
어쩌면 오이란의 나지미 제도도 평범하게 부부 생활을 하고 싶었던
오이란의 꿈이 만들어낸 제도가 아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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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엔카지킴이님!
일본문화 공부에 대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좋은 노래 감상 항상 대단히 감사 합니다^^*
항상 건강 하시옵고 다복 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