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교의품 20장】 불교 비판과 원불교 수행법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재래 사원에서는 염불종(念佛宗)은 언제나 염불만 하고, 교종(敎宗)은 언제나 간경(看經)만 하며, 선종(禪宗)은 언제나 좌선만 하고, 율종(律宗)은 언제나 계(戒)만 지키면서, 같은 불법 가운데 서로 시비 장단을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다 계·정·혜 삼학의 한 과목들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병진하게 하되, 매일 새벽에는 좌선을 하게 하고, 낮과 밤에는 경전·강연·회화·의두·성리·일기·염불 등을 때에 맞추어 하게 하여, 이 여러가지 과정으로 고루 훈련하나니, 누구든지 이대로 정진한다면 재래의 훈련에 비하여 몇 배 이상의 실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핵심주제
【류성태】 불교 비판과 원불교 수행법
【한종만】 불교 각 종파 수행의 통일
【신도형】 과거의 수행과 본교의 원만한 훈련
대의 강령
재래 염불종은 염불만 하고, 교종은 간경만 하며, 선종은 좌선만 하고, 율종은 계만 지키지만, 우리는 이를 병진하자.
1) 새벽에는 좌선을 한다.
2) 낮과 밤에는 경전 강연 회화 의두 성리 일기 염불을 한다.
용어 정의
염불종(念佛宗) 아미타불의 명호(名號)를 불러서 극락왕생 하기를 바라는 불교의 한 종파. 정토종(淨土宗)이 대표적이다. 정토종은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왕생정토론〉 등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있다. 중국의 혜원(335~417)·담란(476~542)·도작(562~645)·선도(613~681)를 거치면서 정토종이 확립되었다. 일반적으로 염불을 강조하고 주장하는 경우를 염불종이라고 한다.
염불(念佛) ⑴아미타불의 명호(名號)를 일심으로 부르면서 부처님의 상호(相好)·공덕을 생각하는 것. 나무아미타불을 청정일심으로 외우는 것. ⑵천만 경계를 하나로 모으고, 청정일심을 만드는 것. 만가지 생각을 한 생각으로 만들고, 한 생각을 만년으로 이어가는 것. ⑶일상생활 속에서 염불 일심으로 사사불공 하는 것.
원불교의 경우에 염불의 의미는 불교와 별로 다르지 않으나, 부처님의 색상(色相)이나 법신의 실상(實相)을 보는 관상(觀相)염불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稱名)염불이 아니다. 삼학 수행 중 정신수양의 한 방법으로서, 천만 가지로 흩어진 정신을 일념으로 통일시키고 순역 경계에 흔들리는 정신을 안정시키는 공부법이다. 다시 말하면 천만 가지 생각을 한 생각으로 만들어 그 한 생각을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영원히 이어가고, 천만 경계를 하나로 모아 청정일심으로 만들며, 일상생활 속에서 염불 일심을 놓지않고 사사불공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원불교에서 염불을 할 때에는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지만, 마음속에 외불(外佛)을 구하거나 미타색상(彌陀色相)이나 극락장엄을 그려내지 않고 자심미타를 찾아 귀의한다. 자심미타란 아미타불이 십만 팔천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십악 팔사(十惡八邪)가 없이 자성청정심이 될 때가 곧 아미타불이라는 것이다.
십악, 십악업 살생·투도·사음·망어·양설·악구·기어·탐욕·진에·우치
팔사, 팔사행(八邪行) 사견(邪見)·사지(邪志)·사어(邪語)·사업(邪業)·사명(邪命)·사정진(邪精進)·사념(邪念)·사정(邪定)
교종(敎宗) 불교를 크게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으로 나눈다. 선종은 참선이나 공안 참구를 위주로 하는데 교종은 교리·경전 등을 근거로 하여 간경(看經)을 위주로 한다. 불교 수행자들은 일반적으로 사교 입선(捨敎入禪)이라 하여 처음에는 경전공부에서부터 출발하여 궁극적으로는 선(禪)의 경지로 들어가는 방법을 많이 택하고 있다. 교(敎)는 점수(漸修)의 수행법, 선(禪)은 돈오(頓悟)의 수행법이라고도 한다.
간경(看經) ⑴종교의 경전을 읽는 것. 원불교에서 간경은 대개 새벽 좌선이 끝난 후나 법회 시간에 한다. ⑵선종(禪宗)에서 사용하는 말로서 경계를 피해 고요한 곳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불경을 읽은 것. 처음에는 풍경(諷經‥소리내어 불경을 읽는 것)과 상대되는 말로 사용했으나, 뒤에는 풍경·근행(勤行)·독경 등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선종(禪宗) 불교의 한 종파. 교종에 상대되는 말로서, 어렵고 복잡한 불경에 의하지 않고 좌선을 통한 이심전심의 묘법으로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강령으로 한다.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한다. 인도에서도 선은 널리 행해졌으나 종파로 확립된 것은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와서 면벽구년할 때 부터였다. 선종은 서가모니불에게서 정법안장을 물려받은 가섭으로부터 달마대사에 이르기까지 28조사가 법을 상승(相承)하였다. 이것을 서천(西天) 부법장(付法藏) 28조라고 한다. 28조인 달마를 다시 초조(初祖)로 하여 육조혜능에 이르러 크게 번창하였다. 오조 홍인의 법을 받은 혜능의 남종(南宗)과 신수의 북종(北宗)으로 나뉘어 졌으나, 북종은 오래지 않아 후손이 끊어지고 남종은 오가 칠종(五家七宗)을 이루어 크게 번성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선종이 들어 온 것은 신라 선덕여왕 5년(784)에 당(唐)나라의 서당지장(西堂智藏)으로부터 법을 받아 온 도의(道義)의 가지산문(迦智山門)을 비롯한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성립되면서 크게 번창하였다. 그러나 고려 때에 와서는 차츰 쇠퇴하다가 고려 중기에 이르러 보조국사가 조계산에 수선사를 세우고 선풍을 크게 일으켜 중흥의 기운이 있었으나 고려말엽 부터는 다시 쇠퇴해졌다. 고려 말기의 선종은 태고 보우와 나옹 혜근의 두 파로 갈라졌는데, 나옹의 법계(法系)는 얼마 안가서 없어지고 태고의 법계만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계종은 고려말기부터 생긴 이름이고, 선종의 법맥을 이어받아 한국 불교의 대표 종단이 되어있다.
좌선(坐禪) (1)정기훈련 십일과목 중의 하나. 마음에 일어나는 망념을 쉬고 참성품을 나타내는 수행법. 몸에 불기운을 내리고 물기운을 오르게 하는 수행법이다. 선(禪)은 우리의 참 마음 곧 본래성품을 찾는 공부이다. 좌선은 원래 불교 선종의 수행 방법이다. 고요히 앉아서 참된 이치를 생각하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어지럽지 않게하며, 마음을 하나로 모아 시비선악에 관계하지 않고, 마침내 무심의 상태에 들어가 우리의 본래마음을 찾고 깨치는 공부법이다. 「선이란 곧 부처님의 마음이요, 계율이란 부처님의 형상이며, 경전이란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계율을 지키고 경전을 배우는 것이 불법의 진리를 공부하는 길이지만, 선 수행을 통해서 부처님의 마음을 찾고 깨치는 공부가 매우 중요한 것임을 강조한 말이다. 불교에 있어서 선의 시초는 서가모니불이 영산회상에서 마하가섭에게 꽃 한송이를 들어 보였을 때 미소로 대답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심전심의 세계가 곧 선이라는 것이다. 좌선은 달마대사의 면벽구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좌선은 마음을 깨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래서 좌선을 하지않고 깨치기를 바라는 것은 모리배와 같다고 한 것이다.
(2)가부좌 또는 반가부좌의 자세로 사량 분별을 끊고 정신을 집중하여 무념무상의 경지로 들어가는 불교의 전통적 수행방법.
율종(律宗) 경·율·논의 삼장 중에서 특히 율장을 중요시하여 계율을 기본으로 삼는 불교의 한 종파.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사분율(四分律)〉에 의거하기 때문에 사분율종이라고도 한다. 계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상부율종(相部律宗)·동탑종(東塔宗)·남산종(南山宗)으로 분립하였다. 상부율종은 〈사분율소〉의 저자 법려(法礪)가 개조(開祖)이고, 동탑종은 〈사분율개종기〉의 저자 회소(懷素)가 시조이다. 이 양파는 서로 상쟁하는 일이 많았고 모두 오래 가지 못해 쇠태하고 말았다. 남산종은 도선(道宣)이 개조인데 오랫동안 교세가 번성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제시대의 겸익이 인도에 가서 율을 연구하고 돌아왔으나 개종한 일은 없었고,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에 가서 남산종을 배우고 돌아와 통도사에서 금강계단을 세우고 계를 설하여 개조가 되었다.
사분율 출가한 승려가 불법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계율을 자세히 기록한 불교의 율전(律典). 60권. 우리 나라의 비구가 지키는 250계와 비구니가 지키는 348계가 기록되어 있고, 오부율전(五部律典) 가운데 상좌부(上座部) 계통의 율전을 이어서 엮은 것.
계(戒) ⑴원불교의 삼십계문. ⑵불교 도덕의 총칭. 소극적으로 방비지악(防非止惡), 적극적으로는 수선(修善)의 뜻. 오계·십계·이백오십계·오백계·사미계·보살계·비구계 등이 있다. ⑶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 신라 화랑오계 등.
주석 주해
【류성태】 본 장은 불교에 대한 교판적 비판을 통해서 어느 하나에 편중된 수행을 극복하여 원만한 삼학병진 수행을 하자는 내용이다. 원불교에서는 염불종, 교종, 선종, 율종의 수행법을 두루 섭렵, 수행하자는 뜻이다. 물론 불교에서도 규봉선사는 선교 양종을 겸하자 했다. 어떻든 편벽수행은 과거의 수행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앞으로의 불법은 미래지향적 병진과 쌍전의 원만 수행이 필요하다. 일원상 수행으로서 삼학병진의 수행법이 인도정의의 대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길진】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삼대력을 병진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떠나서 한 가지만 한다면 원만한 불법이 아닐 것이다. 이 공부는 어려움도 많고 시비도 분분하 것이나, 삼학으로 해결하고 나가야 한다. … 옛날에는 한문 한 가지만 공부했으나, 이제는 다방면으로 필요한 과목을 훈련해야 한다. 체조, 예능까지도 해야 한다.
【한종만】 염불종은 정토종을 말하며, 교종은 간경과 관법의 실천을 하며, 선종은 초단계에 경 공부를 하여 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간다. 염불은 타력염불과 자력염불(自力念佛, 자기의 노력으로 지혜를 닦으며 부처님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 공덕을 쌓아 성불하기를 바라고 꾸준히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있다. 염불을 수양과목으로 수용한 것은 자력염불을 수용한 것이다. 새벽과 저녁에는 좌선과 염불을 통한 수양 공부를 하며, 낮에는 경전, 강연, 회화, 의두, 성리, 일기 등을 하는 것이다.
【신도형】 과거의 수행과 본교의 원만한 훈련(정기훈련을 중심으로)
1) 과거 : 염불종~염불위주, 교종~간경위주, 선종~좌선위주, 율종~지계(持戒)위주로 각 종파간에 시비가 분분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 삼학의 한 과목이니
2) 본교 : 새벽~좌선, 낮과 밤~경전, 강연, 회화, 의두, 성리, 일기, 염불을 때에 맞게 훈련한다. 이상의 각 과목을 때와 곳과 심경에 따라 적의(適宜)히 하되 전과목을 두루 훈련하여야 한다.
관련 법문
【대종경 서품 19장】 대종사 또 말씀하시기를 [과거 불가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혹은 경전을 가르치며, 혹은 화두(話頭)를 들고 좌선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염불하는 법을 가르치며, 혹은 주문을 가르치며, 혹은 불공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그 가르치는 본의가 모든 경전을 가르쳐서는 불교에 대한 교리나 제도나 역사를 알리기 위함이요, 화두를 들려서 좌선을 시키는 것은 경전으로 가르치기도 어렵고 말로 가르치기도 어려운 현묘한 진리를 깨치게 함이요, 염불과 주문을 읽게 하는 것은 번거한 세상에 사는 사람이 애착 탐착이 많아서 정도(正道)에 들기가 어려운 고로 처음 불문에 오고 보면 번거한 정신을 통일 시키기 위하여 가르치는 법이요, 불공 법은 신자의 소원 성취와 불사(佛事)에 도움을 얻기 위하여 가르치나니, 신자에 있어서는 이 과목을 한 사람이 다 배워야 할 것인데 이 과목 중에서 한 과목이나 혹은 두 과목을 가지고 거기에 집착하여 편벽된 수행길로써 서로 파당을 지어 신자의 신앙과 수행에 장애가 되었으므로, 우리는 이 모든 과목을 통일하여 선종의 많은 화두와 교종의 모든 경전을 단련하여, 번거한 화두와 번거한 경전은 다 놓아 버리고 그 중에 제일 강령과 요지를 밝힌 화두와 경전으로 일과 이치에 연구력 얻는 과목을 정하고, 염불·좌선·주문을 단련하여 정신 통일하는 수양 과목을 정하고, 모든 계율과 과보 받는 내역과 사은의 도를 단련하여 세간 생활에 적절한 작업 취사의 과목을 정하고, 모든 신자로 하여금 이 삼대 과목을 병진하게 하였으니, 연구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이무애(理無碍) 사무애(事無碍) 하는 연구력을 얻게 하며, 수양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사물에 끌리지 않는 수양력을 얻게 하며, 취사 과목을 단련하여서는 부처님과 같이 불의와 정의를 분석하고 실행하는 데 취사력을 얻게 하여, 이 삼대력(三大力)으로써 일상 생활에 불공하는 자료를 삼아 모든 서원을 달성하는 원동력을 삼게 하면 교리가 자연 통일될 것이요 신자의 수행도 또한 원만하게 될 것이니라.]
【대종경선외록 20. 원시반본장 9절】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내 뜻을 알지 못하는 자는 내 회상에 있으면서도 묵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여 혹은 공부를 하려면 고요한 산중에 들어가서 훤하게 터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 혹은 특별한 신통을 얻어서 이산 도수와 호풍 환우를 마음대로 하여야 큰 인물이 되지 보통 인간 도덕으로는 별 우월할 것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자, 혹은 경전 강연 회화도 다 쓸데 없고 그저 염불 좌선만 하여야 정력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자, 혹은 아무것도 않고 좌선만 하다가 병이 들어 죽게 되니까 그때에는 운동을 시작하여 가지고 효력을 본 후로는 또 운동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자 등, 이와 같이 저의 사견에 집착하는 자는 나를 만났지마는 나의 얼굴도 보지 못한 자인 것이다."
【정산종사법어 제2부 법어 제6 경의편】 말씀하시기를 [수양의 방법은 염불과 좌선과 무시선 무처선이 주가 되나 연구와 취사가 같이 수양의 요건이 되며, 연구의 방법은 견문과 학법(學法)과 사고가 주가 되나 수양과 취사가 같이 연구의 요건이 되며, 취사의 방법은 경험과 주의와 결단이 주가 되나 수양과 연구가 같이 취사의 요건이 되나니라.]
【대산종사법어 제2 교리편 60장】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 「대종사께서는 삼학 편수를 특히 금하셨나니 우리는 삼대력 중에서 모자라는 점을 스스로 살핌과 동시에 스승의 지도와 동지들의 의견을 들어서 삼학을 병진해 나가야 하느니라.」
【대산종사법어 제3 훈련편 23장】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대종사께서 삼학을 편벽되게 닦는 것을 특히 금하셨나니 우리는 삼대력 중에서 모자라는 점을 스스로 살피고 동지들의 의견도 들어서 삼학을 병진하는 원만한 수행자가 되어야 하느니라. 참 수행자는 능한 것은 감추고 부족한 것은 더 드러내어 능할 때까지 연마를 쉬지 않으므로 점점 더 능하게 되나, 보통 수행자는 능한 것을 감추지 못하므로 도리어 그로 인하여 어두워지나니, 삼학을 편벽되게 닦는 것이야말로 수도인의 큰 업장이며 마장이니라.」
위 내용은 【류성태(2008), 대종경 풀이 上, 137~139】, 【신도형(1974), 교전공부, 567】, 【원불교 용어사전】, 【원불교 경전법문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