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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 여행 스크랩 문화유산과 여름을 함께 즐기는 횡성여행(0.8.1)
숲길 추천 0 조회 57 10.08.05 09:16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문화유산과 여름을 함께 즐기는 횡성여행(0.8.1)

 

여행스케치에서 이번에 가는 여행 프로그램은 횡성을 가는데 풍수원성당, 어답산 병지방계곡, 횡성재래시장과 치악산 구룡사를 가는 것이다.

원래 출발은 시청앞에서 아침 7시 30분인데 절정인 여름휴가철이라서 7시로 당겨서 출발한다고 한다.

이번에 동행하는 가이드는 정소이가이드였는데 처음 뵙는 분이다.

지난번에도 어떤 분이 가이드가 좋아서 여행을 한다고 했는데 그만큼 여행에서 가이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고 사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게 사실이다.

정소이가이드는 재치있고 명랑하고 즐겁게 일하는 가이드였다.

퀴즈도 많이내고 레크레이션 강사를 해도 될 것같은 가이드였다.

가이, 바이, 보를 해서 이기고, 지고, 비기고를 내기해서 감자떡을 주기도 했다.

이번 여행객은 친구보다는 가족이나 연인이 많이 와서 아주 조용해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없어서 아주 좋았다.

철따라 여행을 다니다 보니 이렇게 여름에 여행을 다니는 것도 묘미가 있다.

집에 있으면 더울텐데 차에서 에어콘 시원하게 틀어주니 피서도 하고 여기 저기 가보지 않은 곳도 가보고 시장도 보니 최소한 일석 삼조는 이상이다.

먼저 도착한 곳은 봉수원 성당인데 우리 정소이가이드가 자귀나무 이야기를 해주었다.

거기 올라가는데 자귀나무도 있고 그 꽃 향기도 좋고 합환목이라고 했는데 수나 목이나 거기서 거기니 맞는 이야기였고 예배 보는 곳 뒤에 유물관이 오래된 건물이라는 말도 했고 성당의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정소이가이드는 여행지 공부가 잘되어 있는 가이드였다.

신유박해 이야기도 하고 우리나라 3번째 신부가 여기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봉수원 성당에 대하여 알아본다.

 

풍수원성당은 1982년 11월 3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으며, 강원도 최초의 본당이며 고딕 양식의 천주교 성당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40명의 교유들이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숨어서 지킨 신앙터이며, 90여 년간 숨어 지킨 신앙의 위대함으로 1888년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설정되어 2007년 120주년을 맞게 되었다. 드라마촬영지로도 유명하며, 풍수원 성당 그 자체가 고풍스럽고 멋스러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혹은 1803년경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40여명의 신자들이 팔일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바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인 풍수원이다.

풍수원에서 80여년동안 신자들은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영위해오다가 1888년 불란서 성직자 르메르 이 신부님을 맞이하여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케 되었다.

1866년(고종 3년) 교회 대박해(병인년)와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는 곳이라 사방으로 연락하여 신자들을 모아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20년간을 지내다가 1888년 6월 20일 조선교구장 민대주교께서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불란서 르메르(Le Merre)이신부가 부임하여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등 12개군을 관할하였으며 당시 신자 수는 약 2,000명이었고 초가집 20여간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1896년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띠노)신부가 부임하여 중국인 기술자 진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 (벽돌 연와조 120평)을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하여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신자들이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 나무를 해오는 등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했다.

풍수원 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한국 최초의 성당이며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고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강원도 전체와 경기도 일대의 성당은 풍수원 성당에서 분당된 것이다. 그런데 본 성당은 지난 1982년 강원도에 의해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바 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기해 1920년에 제1회 성체대회가 실시되어 매년 행사가 치뤄지고 있다.(6.25동란으로 3년간 본 행사가 치뤄지지 못했다.)

신앙의 요람터요 선조들의 얼이 담겨져 있는 역사의 현장인 이곳에서 30여명에 달하는 한국인 사제들이 탄생되어 풍수원은 참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 하겠다

 

주차장에서 성당으로 가는 길은 가로수로 튤립나무가 많이 심어졌는데 조경에 조예가 깊은 분이 심은 듯하다.

목재도 좋고 병충해에서 튤립나무가 강해서 강남구에 많이 심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성당 바로 앞에 큰 나무가 하나 심어져 있어 바로 앞에서 성당의 풍경을 가리고 있었다.

뒤에 유물관이 있고 유물관에서 옆으로 묘역과 성모마리아 석상과 십자가 공원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그 길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과정과 십자가에 못박히는 과정 등이 부조로 새겨져 있었다.

성당은 벽돌연와조라고 하는데 고색창연한 느낌이 들었다.

주차장에서는 신자들이 우리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어 여행객들이 사기도 했다.

풍수원 성당을 들리고 횡성의 재래시장을 방문하였다.

방문하기 전에 전통시장 이용권 5천원권을 1매씩 주어 시장을 이용하라고 했다.

시장은 점포는 나름대로 깔끔한데 계절이 계절이라서 살 것이 그리 마땅치는 않았다.

어떤 분은 옥수루를 한포대 사기도 했는데 고추도 그렇고 마늘도 그렇고 하나로 마트와 축협을 갔는데 횡성한우의 가격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가면서 1인당 안흥찐빵 2개씩을 주었는데 찐빵을 사기도 했다.

점심은 시장안에서 곤드레밥과 보리밥을 먹었는데 어떤 분은 곤드레밥을 찾지 못해 다른 것을 드셨다고 한다.

축협 앞에는 공원을 멋지게 만들어 놓아 사람들이 쉴 수 있는 멋진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조형물로는 더덕을 인형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물론 소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점심후에 간 곳은 어답산 병지방계곡이다.

어답산에 대하여 정가이드가 마한의 왕이 답사한 곳이라고 얼핏 이야기했다.

 

어답산에 대하여 알아본다.

 

진한의 태기왕을 쫓던 박혁거세가 이 산에 들렀다 하여 어답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갑천이라는 지명도 태기왕이 피묻은 갑옷을 갑천면 계천에서 씻었다 해서 붙여졌다. 또 다른 설은, 2000 여 년 전 진한의 태기왕이 신라의 박혁거세와의 전투에 져서 패주할 때 이산에 와서 어탑을 놓고 쉬었던 곳이라 해서 어탑산이라 했던 것이 어답산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어답산의 낙수대라는 멋진 전망대 바위봉이 있는데 예전에 홍수가 났을 때 이 바위 위에서 낚시를 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바위가 있고, 가장 전망이 좋고 시원한 곳으로 유명하다.

 

어답산은 삼거리저수지 동북쪽으로 병풍을 두른 듯 솟아 있으며 선바위, 어답산 장송, 약물탕 등의 볼거리와 정상에서의 끝간 데 없이 펼쳐지는 시야 아래로 잔잔한 횡성호와 삼거리저수지가 누워있는 경관을 감상할 수 있고, 어답산 정상에서 북쪽 200m 삼각점으로 향하는 곳에 낙수대에서는 정상과는 다르게 멋진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병지방계곡에 대하여 알아본다.

 

병지방계곡은 어답산을 끼고 굽이쳐 흐르는 산세깊은 골이다. 크고 작은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그 맑기가 명경지수와 같다. 계곡 주위로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특히 선녀탕주위는 기암괴석과 들꽃이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물이 많아 여름철 피서객에게 인기있는 곳이다. 어답산 정상을 넘어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등산로는 어느 명산 못지않게 아름답다. 외부와의 접근이 어려운 특성을 지니고 있는 체류형 산촌휴양지로, 오토캠핑장, 주차장, 음료수대, 운동시설 등의 시설을 갖춘 종합캠핑장이 있어 가족단위의 캠핑장으로 인기가 있다. 또한 병지방리는 때묻지 않은 토속마을로 토종닭, 토종꿀, 촌두부등 먹을거리도 다양해 시골풍경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병지방을 둘러싼 어답산 뒷자락에 횡성온천이 2002년 3월 개장하여 여행길에 온천욕으로 피로를 줄일수 있다.

 

병지방계곡을 가면서 정가이드는 지금 피서의 절정이라서 거기에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가보아서 여건이 어려우면 그냥 치악산으로 간다고 이야기 했다.

가면서 보니 거기도 캠핑장이 있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길 옆으로 차가 대어져 있어 이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졸면서 갔지만 깊숙이는 어쩐 지 모르지만 들어가는 길에는 계곡은 있었지만 숲이 없어 땡볕이 내려쬐는 느낌이었다.

차에서 내려다 보는 계곡은 그리 물이 많은 것같지 않은데 더 깊은 계곡은 알 수 없었다.

결론은 여기는 물놀이 장소로 적합하지 않다고 하며 여기는 한여름을 피해서 오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치악산으로 향하였다.

 

치악산에 도착했는데 여기는 주차장에 주차가 곤란하여 여행객만 내려놓고 차는 다른 곳에 주차시키고 나중에 4시 10분에 온다는 것이다.

여기는 구룡사가 있어서 그런지 입장료가 있는데 입장료는 정가이드가 해결을 했고 우리는 몸만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보니 국립공원 사진전 수상작을 천에 인쇄하여 게시하여 놓았고 봄철의 꽃도 현수막을 해 놓았다.

치악산 계곡은 올라가면서 보니 물이 많고 피서객들도 많이 와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나무들도 오래된 나무들이 많고 울창하여 피서지로는 적격이었다.

치악산에 대하여도 정가이드가 설명을 했는데 치는 꿩 치자로 구렁이가 꿩을 감고 있는 것을 선비가 활로 쏴서 구해 주었는데 나중에 길을 잃어 잠은 잤는데 구렁이가 감고 있어 꿩이 머리로 종을 쳐서 구해주었다는 것이다.

 

구룡사도 원래는 아홉구였는데 나중에 거북구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먼저 본 것은 일주문인데 특이하게 원통문이라는 편액이 되어 있었다.

대개는 무슨 산 무슨 사 이렇게 일주문에 쓰여 있는데 여기는 특이했다.

원통문이라는 것은 원통 자체만으로도 관음성지라는 의미가 있었는데 나중에 절에서 보니 관음성지라는 표식이 있었다.

 

먼저 치악산에 대하여 알아본다.

 

높이 1,288m. 차령산맥에 솟아 있다. 본래는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서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렀으나 뱀에게 잡힌 꿩을 구해준 나그네가 그 꿩의 보은으로 위기에서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에서 치악산의 이름이 유래한다. 주봉인 비로봉(飛蘆峰:1,288m)을 비롯하여 매화산(梅花山:1,084m)·향로봉(香蘆峰:1,043m)·남대봉(南臺峰:1,182m) 등 1,000m 이상의 산이 남북으로 뻗어 하나의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주 능선을 경계로 남동쪽 사면은 비교적 완경사, 북동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소초면 구룡사에 이르는 북쪽은 매우 가파른 능선과 계곡이 형성되었다. 남동쪽 강림면 부곡리 신막골 일대에 넓은 고위평탄면이 발달했다. 동쪽에서 발원하는 물이 주천강으로 흘러들고, 서쪽에서 흐르는 물은 섬강으로 흘러든다. 식생은 성황림(城隍林:천연기념물 제93호)을 비롯해 젓나무·들참나무·대나무·피나무·가래나무·층층나무·들매나무·느릅나무·소나무 등이 울창하며, 파랑새·호반새·딱따구리·꾀꼬리 등 희귀조류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산세가 웅장하고 경관이 뛰어나며 많은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어 원주시를 포함한 일대가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4년에 총면적 182.1㎢의 치악산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울창한 숲,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사다리골·상원골·산성골·범골·입석골 등의 계곡, 구룡·세렴 폭포,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 등의 명소가 많다. 북쪽 산록 소초면 학곡리에 있는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는데 용 9마리가 살던 못을 메우고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구룡사 대웅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을 비롯해 거북바위·구룡소 등의 경승지가 있다. 절 주위에 우거진 노송들은 조선시대에 황장목이라 하여 임금의 널을 짜거나 대궐을 짓는 데에 목재로 쓰려고 함부로 베는 것을 금했다고 한다. 봄에 산신제가 열린다.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에는 상원사가 있으며, 계수나무·용마바위와 법당 벽에 꿩의 보은설화를 그린 벽화가 있다. 석경사는 고려말의 충신 원천석의 은둔지였으며, 그의 묘소, 사적을 기록한 묘갈, 재실이 있다. 태종대·할미소·대왕재 등 많은 명소가 있다. 예로부터 군사 요충지인 이곳은 험준한 산세와 지리적 여건으로 천연의 요새였으며, 남대봉 서쪽 기슭에 합단(哈丹)의 침입과 임진왜란의 격전지였던 영원산성을 비롯하여 금두산성·해미산성지 등이 있다. 윗성남-상원사-남대봉-영원사-일론분교-금대리-치악역, 원주-석경사-곧은치-영원사-일론분교-금대리-치악역, 윗성남-상원사-남대봉-향로봉-곧은치-원통재-비로봉-구룡사 등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9월에는 치악문화제가 열린다. 관광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야영장·식수대·자연학습원·음식점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1975년 영동고속도로 개통 이래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며, 남서쪽 사면으로는 중앙선이 지나고 있다. 원주역에서 구룡사까지 버스가 운행된다

 

이번에는 구룡사에 대하여 알아본다.

 

백두대간의 주맥이 오대산을 거쳐 서쪽으로 태기산을 지나, 국동의 명산 치악산에 이르고 거기에 영서의 대찰 구룡사(龜龍寺)가 자리잡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천년이 지난 신령스러운 거북이 연꽃을 토하고 있고, 영험한 아홉바다의 용이 구름을 풀어 놓는 형상을 한 천하의 승지”인 치악산에 구룡사는 서기668년(신라 문무왕8년)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셨으며 나말려초 도선국사의 비보사찰중의 하나로 수많은 고승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구룡사는 원주시 소초면 학곡2리 치악산(1288m) 국립공원에 자리잡고 있으며 황장목(금강송)숲길의 일주문(원통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들어서 구도의 계단을올라 문화재인 보광루밑을 나오면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다

 

아득한 옛날이라고 할 천삼백년 전의 일이다. 메마른 품이 학같은 늙은 스님 한 분이 원주지방에 찾아와 절자리를 두루 고르고 있다가 관서우 거산 치악산을 향해 떠났다.

이 스님의 이름은 무착대사라고도 하고 의상조사라고도 하나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원주서 치악산을 향해 육십여리 길을 가던 대사는 그 곳에서 다시 시오릿길을 더 가서 지금의 구룡골에 멎었다.

스님이 사방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이 솟아 있고 다시 천지봉의 낙맥이 앞을 가로질은 데다가 계곡의 경치 또한 아름다웠다.

절을 세울만한 곳이군. 그러나 대웅전을 세우려면 저 연못을 메워야겠는데.....? 대사는 발을 옮겨 연못가로 갔다. 그때 그곳에 있던 큰 연못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

연못을 메우자니 모처럼 용이 사는 것을 쫓아야겠고 난감한 일이구나.......? 대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연못에 살던 용들이 들었다. 그리고는 대사를 향해 "대사님이 벌써 우리를 내어 쫓을 생각을 하시나 우리도 마음이 안놓여 살수가 없오, 대사와 우리가 서로 내기를 해서 우리가 이기면 대사가 이곳에 절을 못 지을 것이요, 지면은 선뜻 자리를 내어드리리다." 했다.

대사가 "너희들이 무슨 재주를 부리려느냐?" 하느냐"

" 그것은 잠시 두고 보시면 압니다."

고 대답한 용들은 연못에서 날아 하늘로 치솟더니 뇌성벽력과 함께 우박같은 비를 쏟아놓았다.

이 바람에 근처의 산들은 삽시간에 물에 잠기고 대사 또한 물속에 빠져 죽는가 했으나 대사는 태연하게 앉았다가 비로봉과 천지봉 사이에 배를 건너 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동안 비를 퍼부은 용들은 이만하면 대사가 물속의 귀신이 되었겠다 생가하고는 비를 거두고 내려왔다. 그러나 뜻밖에도 대사는 배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홉 마리의 용들이 다 내려오자 부시시 일어난 대사는

"너희들의 재주가 고작 그것뿐이냐 이제 내가 조화를 부릴것인즉 너희들은 눈을 크게 뜨고 잘 지켜 보아라."

하고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 속에 넣었다.

얼마 안있어 연못에서는 더운김이 무럭무럭 오르며 큰 연못의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뜨거움을 참다못한 용들은 뛰쳐나와 한다름에 동해바다로 달아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아홉 마리의 용 가운데 한마리의 용이 눈이 멀어서 미쳐 달아나지를 못하고 근처에 있는 조그만 연못으로 옮겨 앉았다.

용들이 달아나자 대사는 못을 메우고 지금의 구룡사 대웅전을 지었다. 한편 뜨거운 물에 쫓겨 달아나던 용들은 얼마나 다급했던지 구룡사 앞산을 여덟 개의 골이 치어있으며, 이때 미쳐 도망하지 못한 눈먼 한 마리의 용은 구룡사 옆에 있는 용소에서 지난 왜정때까지 살다가 그해 여름 장마때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한다

 

또한 지금 아홉구(九) 대신 거북구(龜)자를 쓰게된 연유는 본래 구룡사는 스님들의 수양도장으로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을 두고 흥망성쇄에 따른 곡절이 많았다.

이조에 들어서면서 치악산에서 나는 산나물은 대부분 궁중에서 쓰게 되어 구룡사 주지스님이 공납의 책임자 역할까지 하게 되었고 좋거나 나쁘거나 구룡사 스님의 검사 하나로 통과되는 지라 인근 사람들은 나물값을 제대로 받기 위해 별도로 뇌물을 받치기도 했다.

견물생심이라 아무리 부처님같은 스님이라 할지라도 여기엔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구룡사는 물질적으로 풍성하기는 하였으나, 정신도장으로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럴 즈음 한 스님이 찾아와 몰락한 이 절을 보고 개탄하면서 이 절이 흥하지 못하는 것은 절로 들어오는 길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 때문이니 그 거북바위를 쪼개 없애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절에서는 그 스님의 말을 믿어 거북바위를 쪼개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후부터 찾아오는 신도는 더욱 적어지고 거찰(巨刹 : 큰절)로서의 명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급기야는 절문을 닫아야할 처지에 이르렀다. 이럴 때 어느날 도승 한 분이 또 찾아왔다.

"이 절이 왜 이렇게 몰락하는가 하면 그 이름이 맞지 않기 때문이오" 하고 말했다. 주지스님은 "그건 무슨 말씀이지요?"하고 물었다.

"본시 이 절은 절 입구를 지키고 있던 거북바위가 절운을 지켜왔는데 누가 그 바위를 동강으로 내 혈맥을 끊어버렸으니 운이 막힌 것이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주지 스님은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그 도승은 거북이 이미 죽었지만 다시 살린다는 뜻에서 절의 이름을 아홉구(九)자 대신 거북구(龜)자를 쓰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지금 현판에 새겨진 대로 치악산 구룡사로 불리우게 되었다

 

구룡사도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부도군은 절 들어가기 전에 있었다.

밑으로 가서 사천왕문으로 해서 올라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바로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먼저 대조사전으로 갔는데 거기는 출입금지 지역이었다.

삼성각, 천불전, 웅진전, 관음전, 대웅전 등을 둘러 보았다.

대웅전 외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었고 석가모니불이 중앙에, 좌측에 아미타불, 우측에 약사불이 모셔져 있었다.

구룡사에서 제비나비를 만나 한참 대면을 하였다.

 

구룡사는 사천왕문과 보광루의 높이가 많이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아 높은 산을 깍아서 만든 느낌이었다.

구룡사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전설의 그 용소가 있는데 거기로 내려오는 물도 높은 폭포는 아니지만 멋지게 물이 내려오고 용소도 아주 좋게 보였다.

그곳으로부터 아치형 다리 있는 곳까지 올라가 보았는데 계곡마다 물이 많고 많은 피서객들이 피서를 즐겨도 될 정도로 좋았다.

그 계곡 반대쪽은 야영장까지 있어 피서지로서는 아주 좋은 곳이었다.

계곡에 발을 담그어 보니 아주 차가워서 오래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근처에서 노는 어린이는 추워서 입술이 파래지면서도 좋아하는 것같았다.

시간이 되어 여유있게 걸어서 천천히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버스가 조금 늦게 와서 조금 기다리다 탔다.

이제 서울로 가는 길이 관건인데 기사님이 국도, 지방도, 모든 길을 총 망라하여 연구하여 길이 최대한 막히지 않는 길을 택해서 왔다.

한번은 국도에 접어 들려고 했는데 차 밑이 닿아서 뒤로 돌아 가기도 했다.

그래도 양평을 지나면서 서울로 돌아오는 차가 워낙 많아서 정체에 정체를 거듭하다 왔다.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 15분 정도 쉬었다가 왔는데 갈때는 강 저쪽으로 갔는데 올 때는 이쪽 저쪽을 넘나들면서 온 것같다.

이번에 보니 강변쪽으로 많은 모텔 등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서울 시청앞에 8시 25분경에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피서철에 강원도에서 이 정도에 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정소이 가이드의 재치와 기사님의 안전운행으로 아주 즐거운 여행을 한 것같다.

거기다 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 여행스케치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도 감사드립니다.

 

양평을 지나가는데 역시 양평은 한국의 베니스라고 불릴만큼 멋진 곳이다.

 

 

 

차창으로 본 집들도 멋지다.

 

 

봉수원 성당 주차장에 우리 버스가 도착하였다.

 

 

사람들이 성당으로 걸어간다.

 

 

풍수원 성당이라는 입석표지석이 있다.

 

 

가로수로 튤립나무가 심어져 있다.

 

 

성당 앞에서 군청에 제출할 기념사진을 찍었다.

 

 

성당의 앞 모습을 본다.

 

 

성당 안에는 미사가 진행중이다.

 

 

만남의 방이라고 성물판매소가 있다.

 

 

성당 안의 등 색깔이 멋지다.

 

 

성당의 뒷모습이다.

 

 

유물관 내부 모습이다.

 

 

 

유물전시관의 모습이다.

 

 

저기 예수님의 석상이 있다.

 

 

 성당의 옆모습이다.

 

 

예수님 석상을 옆에서 본다.

 

 

 

위로 올라가는 길이다.

 

 

예수님의 순교장면을 부조에 새겼다.

 

 

묘역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모마리아 석상이 조성되어 있다.

 

 

정소이가이드가 말한 자귀나무를 담아 본다.

 

 

상사화가 있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을 되돌아 본다.

 

 

주차장에서 신도들의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안흥찐빵을 1인당 2개씩 지원한다고 해서 받았는데 찐빵이 1박스에 8천원인데 산 사람이 많다.

 

 

횡성읍내에 들어가면서 다리에서 본 하천의 모습이 멋지다.

 

 

횡성읍내 모습이다.

 

 

축협 앞에 만세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축협의 모습이다.

 

 

횡성시장의 남문이다.

 

 

시장 내부 모습이다.

 

 

장날이라 밖에도 포장을 쳤다.

 

 

횡성농협인데 하나로마트와 같이 있다.

 

 

만세공원에 오니 소 모형이 있다.

 

 

더덕모형도 있다.

 

 

공원의 모습을 좀더 본다.

 

 

 

치악산 주차장에 왔는데 밑에 풍경이 멋지다.

 

 

국립공원 사진전 수상작을 전시하고 있다.

 

 

 테마탐방로 안내판이다.

 

 

봄꽃이야기 현수막이다.

 

 

용머리와 거북이가 있다.

 

 

구룡사 안내 조감도이다.

 

 

구룡사 일주문인데 원통문이라는 편액이 있다.

 

 

부도군이다.

 

 

저 나무들이 금강송이라고 한다.

 

 

국사단이라고 되어 있는데 뭐하는 집인 지 모르겠다.

 

 

계곡이 너무 멋지다.

 

 

구룡사 전경이다.

 

 

사천왕문을 내려다 본다.

 

 

절을 지키는 보호수인데 느티나무로 생각된다.

 

 

세검당이다.

 

 

가운데 보이는 것이 대웅전이다.

 

 

조사전이다.

 

 

웅진전이다.

 

 

범부채에 제비나비가 날아 왔다.

 

 

참나리와 범부채가 대웅전을 바라본다.

 

 

웅진전 내부 모습이다.

 

 

자유로운 구도자를 의미하는 풍경이 치악산을 바라본다.

 

 

관음전의 관세움보살이다.

 

 

관음전의 모습이다.

 

 

대웅전의 옆모습이다.

 

 

구룡사는 제30호 관음성지이다.

 

 

범종각이다.

 

 

대웅전의 정면 모습이다.

 

 

보광루의 모습이다.

 

 

대웅전의 부처님들이신데 좌로부터 아미타불,석가모니불,약사불이시다.

 

 

대웅전의 뒷모습인데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삼성각이다.

 

 

천불전의 내부 모습이다.

 

 

천불전의 모습이다.

 

 

대웅전과 삼층석탑을 옆에서 본다.

 

 

관세움보살이신가? 그 앞을 우리의 가이드가 지나간다.

 

 

보광루를 옆에서 본다.

 

 

가이드가 사천왕문을 지나온다.

 

 

사천왕들이시다.

 

 

 

보광루를 밑에서 본다.

 

아미타불이신가?

 

 

사천왕문이다.

 

 

사천왕문, 보광루, 대웅전을 나란히 본다.

 

 

용소이다.

 

 

 

치악산 계곡을 본다.

 

 

 

 

연리지도 있다.

 

 

가족들이 쉬고 있다.

 

 

일주문 위에 풀들이 자라고 있다.

 

 

구룡교와 용머리이다.

 

 

주차장 입구에 있는 자귀나무이다.

 

 

승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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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8.05 09:45

    첫댓글 내가 가본듯 글도 자세히 쓰시고 사진도 빠진곳 없이 많은분량을 찍으셔
    한참을 보고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0.08.05 13:17

    고맙습니다. ^^

  • 10.08.06 06:19

    풍수원성당 어지간한 님들은 다 아시는 곳이지만 실제로 가본적은 없기에 감사히봅니다
    예전엔 횡성하면 한우만 떠올랐는데 요양사공부할때 강사님의 고향이 그곳이라 이젠 여러가지가 생각납니다

  • 작성자 10.08.06 09:59

    요양사도 취득하셨나 보군요 ㅎㅎ
    저는 처음 가 보았는데 한번 가 볼만 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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