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1 주안 온가족 새벽기도회 / 나도움 목사 / <도움닫기> 페이지 대표운영자
말씀 : 마태복음 11:28
제목 : 결국 사랑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나도움이 제 본명입니다.
가명, 예명이 아니고 외할머니가 지어 주신 제 이름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시편 121편의 말씀을 보고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그 말씀을 바탕으로 지었다고 하시는데,
저만 이름이 특이한게 아니라 동생도 이름이 특이합니다. 동생의 이름은 '나보호'입니다.
저는 '나도움', 동생은 '나보호'인데 그러다 보니까 동생은 어릴 때 별명이 자연보호였고,
저는 초등학교 때 별명이 '안도움이다', '도움이 안된다' 칠판에 Help Me! 맨날 적어놓고,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 어릴 때, '너무 힘들다. 이름을 바꿔야 되나' 할 정도로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요즘에 좋은 거는 얼굴은 잊어도 이름은 기억해 주시고,
또 요즘 애들이 많이 쓴다는 다양한 sns, 인스타그램이든 유튜브든 페이스북이든
어디든 저를 검색하면 저 밖에 안 나오는 감사한, 애들 용어로 개이득이 있는데,
오늘 나눌 주제는 "결국 사랑이다"라는 주제이고 오늘 말씀을 마태복음 11:28절을 읽었습니다.
이 말씀을 바탕으로 할 때, 첫번째 어떤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냐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라는 이 본문을 봤을 때,
이 땅 가운데 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참 많지 않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 중에 다양한 사회적인 약자들도 계시겠지만,
그 중에 제가 1차적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생각해 봤을 때 떠오르는 존재는
* 이 시대의 청소년, 청년들이 그런 존재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통계가 있더라고요.
한국교회에 관련된 통계인데, 간단히 얘기해서 점점 교회들마다 교단을 초월해서
감리교든 장로교든 상관없이 다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
그리고 예전만 해도 한 100명 정도 되는 교회는 20명 정도, 20% 이상 정도가 다음세대의 비율이었다면
지금은 10% 미만일 정도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더 많은 어려움도 많겠지요.
이런 것을 봤을 때, 왜 교회학교나 다음세대가 줄어갈까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많은 이유들이 나옵니다. 다 아는 이야기들이죠.
공부, 학원에 대한 중압감, 저출산 때문에, 또는 학교에서 비교회적인 어떤 교육을 하기 때문에 등등이 나와 있는데
다 맞는 말이고, 또 이런 말만 보면 상당히 마음이 아픕니다.
왜냐하면, 답이 없다는 것인가? 어쩌라는 건가?
충분히 저도 이 통계를 보고 마음이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제가 전국의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여러 학생들을 만나고 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가 거의 안 가본 지역이 없을 정도로 계속 여러 지역을 다니는 삶을 살고 있는데, 단순히 여행하는 게 목적은 아니겠지요.
여행도 하겠지만, 곳곳에 있는 다음세대들을 만나는 것이 저의 삶인데, 청소년, 청년들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대전에 있는 한 중학교, 청주, 해남(땅끝)에 있는 학교 중의 하나, 전주에 있는 학교들을 다니면서
곳곳에 있는 여전히 소망이 있다는 귀한 아이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본인 마음 가운데 도전을 받아서
학교에 기도 모임을 세워가고, School Church를 세워가고 하는 애들을 만날 때마다
여전히 이 아이들이 소수일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함께 저는 보이지 않는 곳들에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발굴해 가시고 세워가신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상당히 도전이 됐습니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경기도 일산에 사는 아이였는데요, 중학생이었어요.
일반적으로 중학생 하면 이제 비하발언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뇌가 없다는 아이들 아닙니까..
뇌는 있지만, 뇌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친구들인데, 신기하게 그 아이들 중에 한 아이가 중학생인데
학교에 기도 모임 예배 모임을 세우겠다는 도전을 받은 거예요. 너무 기특하게...
기도모임을 하겠다고 하면서 자기 담임 선생님께 찾아가서 허락을 구하고,
교감선생님까지 허락을 받았는데, 교장선생님이 반대하시는 거죠.
어떻게 하겠습니까.. 뭐 그분과 싸울 수 없지 않겠습니까.. 중 1이 얼마나 힘이 있다고,
그 친구가 했던게 뭐냐면 교장선생님 '허락해 주세요' 하면서 장문의 편지를 써서 드렸습니다.
(사진) 이게 A4 가득히 써서 편지 중에 하나인데, 이런 얘기 나와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수정 선생님의 반인 ㅇㅇ입니다.
헌법 2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갖는다' 이런 걸 적어 보낸다든지,
그때 당시는 문화관광체육부였는데 거기에 질의해 봤을 때, 불법이 아니다' 이런 걸 통해서 교장선생님께 드렸고,
당장은 씨알도 안 먹혔지만 결국은 허락을 받아서 2년 넘게 학교에서 귀한 모임을 이어갔던 믿음의 용사 같은...
나이는 어리지만 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던 친구였는데, 그 아이가 저에게 새벽에 연락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중 2 때인가, 하는 말이 새벽에 연락이 많이 옵니다.
'주무세요?'
이 말은 제가 잠 자는게 궁금해서 물어보는게 아니겠지요.. 본인이 할 말이 있다는 건데, 뭐라 말하나 들어봤더니
'사실요 제가요 집에 들어가면요 아빠랑 엄마가 부부싸움 하시고
아빠가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면 엄마랑 부부싸움 하시고 화풀이를 자기들한테 하는데',
쟁반던지기 하시고 뭐 던지고 하다 보니까 피하고 숨고 이런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였더라고요..
원래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티를 안내서 몰랐는데, 그런데 이 아이가 이래서 남자를 좀 무서워했던 거구나
나중에 느꼈지만, 결국은 이 아이가 하는 말이 '그나마 다행은요 아빠가 매일 집에 들어오지는 않아요'
그나마 다행히 아빠가 매일 집에 들어오지 않는게 다행이라고 말한 그 아이한테 제가 어떤 위로의 말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을 몰랐을 때, 제가 YTN 뉴스에서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부모님께 듣고 싶은 말들.. 다들 아는 말들일 수 있습니다.
사랑해, 고마워, 힘내, 괜찮아, 보고 싶다, 힘들지 이런 등등등 이 말이 얼마나 마음이 짠했으면...
이게 보자 마자 요즘 말로 심쿵하거나 감동 받을 말은 아니거든요. 그냥 일상 용어잖아요.
고맙다, 미안해, 감사해 이런 말들을 듣고 싶어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평상시에 이런 말들을 못 듣고 살아간다는 현실이니까 마음이 짠해 가지고,
이걸 그대로 사진을 다운로드 받아서 SNS 페이스북이든 인스타에 올리면서 제가 아는 다양한 아이들,
청소년들을 태그 걸어서 올렸는데, 랜덤으로 아무나 올렸는데, 그 때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도 제가 태그했던 거지요.
이런 아픔이 있는지 몰랐을 때, ....
그런데 그 아이가 새벽에 연락이 와서 하는 말이 제가요 이걸 보는 순간 눈물이 나왔어요.
왜? 우리 엄마는 좋은 엄마지만 아빠는 그런 아빠가 아니니까..
그런 아이한테 제가 무슨 위로의 말을 던지겠습니까!
물론 말은 할 수 있지요. '힘내', '괜찮아', 수많은 말들을 할 수 있지만
그 말이 그 아이한테 별로 위로가 안되고 도움이 안 되는 말이어서
마음이 짠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고민 고민하다가 이 말 밖에 못 하겠더라고요.
그 아이, 중학생 아이한테.. 'ㅇㅇ야~ 언제든지 연락해. 언제든지 연락 받아 줄께'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습니다.
'ㅇㅇ야~ 언제든지 연락해. 언제든지 연락 받아 줄께'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그 아이가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진 진짜요? 저 정말요? 그래도 돼요?'라는 말을 하는데 제가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왜냐하면, 그게 그냥 빈 말일 수 있잖아요. 뭐 '다음에 밥 사 줄께', '다음에 얼굴 보자'
뭐 '힘 내라' 할 수 있는 그냥 뻔한 말 중에 하나일 수 있는 말인데,
그 친구가 '진짜요? 정말요? 그래도 돼요?' 하는데 더 마음이 아팠고,
벌써 어느 순간 시간이 흘러서 그 아이는 스무 살이 넘었어요.
그런데, 요즘 또 여러가지 고민이 많은 친구입니다.
요즘에는 뭐 약을 먹지 않으면 잘 못 잔다고 말하기도 하고, 여전히 어떤 고민 가운데 살아가는데
결국은 그럴 때마다 꾸준히 연락하다 보면, 꾸준히 연락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살리는게 대단하게 말하는 것보다 짧은 말 같지만,
정말 진심어린 말과 진심이 통하는 것 같은데 제가 이걸 준비했냐 하면,
결국은 살아가면서 이것은 어떤 부모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친구, 성도님들과의 관계, 수많은 관계들 가운데 이 말들이 우리에게 필요한데,
서로 해 보지 않아서, 못 들어봐서, 뻘쭘해서, 어색해서 못하다 보니까
우리 안에 있는 때로는 관계가 어그러지거나 때로는 누군가 실수와 나의 실수를 통해서 관계가 꼬였을 때,
뭔가 좀 관계가 어긋났을 때 좀 누가 먼저 '미안했다 용서해 주라' 이런 말을 좀 했다면
그나마 좀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오랫동안 안타까운 관계가 지속돼서 결국은 회복되지 않는 관계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준비한 말이 있습니다.
함께 이 시간에 옆에 있는 성도님들과 또 아이들에게 또는 앞에 있는 분들에게 이런 말을 한 번 덕담처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잘 커 줘서 고마워"
충분히 잘 자라 오셨다. 충분히 잘 커 오셨다는 진심을 담고 싶었고,
왜 이 말이 중요하냐, 사람은 꼭 엄청난 말 때문에 감동을 받는게 아닌 것 같아요.
예전에도 수능이 끝난 고3 아이가 연락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왜?"
"저 망했어요. 갈 대학이 없어요."
그러니까, 끝난 거잖아요, 갈 대학이 없다는 건 팩트이고, 제가 도와줄 수 없잖아요..
모 대학 총장도 아니고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데, 오죽하면 저한테 '저 망했어요 갈 대학이 없다'고 말을 하겠습니까..
하소연할 데가 필요했던 건데, 그때 했던 말이
"맞다. 사람들은 너의 어떤 대학, 너의 어떤 성적, 등급에 따라서
네가 가는 과에 따라서 네가 가치가 있다 가치가 없다 말할지 모르겠지만,
아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넌 정말 가치있는 사람이야! 결과와 상관없이 너는 정말 가치있는 사람이야!"라고 말을 해 줬거든요..
그 아이가 그 말을 듣고 저한테 ㅠㅠ 하면서, 우는 척 하면서 하는 얘기가
"하! 저 이런 말 처음 들었어요." 그러는데, 참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네가 소중하다는 말이, 결과와 상관없이 네가 가치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말을 처음 들어볼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일반적으로 교회를 다닌다면, 그 아이도 모태신앙이고 믿는 집안인데...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와 닿더라고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교회 안에서도 수 많은 찬양을 부릅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아주 먼 옛날", "축복합니다" 등등 엄청 많은데~
우리가 은연 중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대할 때, 네가 좀 더 뭔가 되면 가치가 있고, 뭔가 안되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은연 중에 대했던 행동과 말과 어떤 제스처들 때문에 그런 식으로 인식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결국 사람은 대단한 말이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진심어린 위로와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게 꼭 말로 할 수 없다면 쪽지라도.. 그게 누군가를 살리더라고요..
제가 애들을 만나면, 뭔가 줍니다. 제가 뭐 돈이 많이 있는 건 아니니까 작음 마음으로 뭘 주면, 응원카드라고...
응원 메세지가 담겨 있는 걸 줘요..
처음에는 이런 백지에, 그림도 없는 백지에 좋은 문구만 달려 있는 걸 줬습니다.
등하교 시간에.. 걱정 마! 충분히 잘 하고 있어. 넌 소중해! 등등......
처음에 딱 가리고 주니까, 뒷면으로 주니까 아이들이 안 받으려고 해요.
아는 애들만 주는게 아니고 학교 앞이나 학교 안에서나 누구나 만날 때 주는데, 그러면 처음에 안 받으려고 합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학원 광고인 줄 알고 찌라시인 줄 알고..
그런데 딱 돌렸더니, 찌라시가 아니고 좋은 문구만 적혀 있으니까 씩 웃고 들어가고,
교실에 들어가서 '야, 너도 받았니? 나도 받았는데, 이분들 뭐야?' 와 대박! 야 감동이다 우리 응원하러 온 거야
이러면서 좋아하면서, 그림도 없이 이쁜 것도 아닌데 이걸 보고 받고 간직하고 안 버리더라고요..
버려도 사실 상관없는데, 비싼 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고 받고 좋아하고 sns에 올리는 것을 보다 보니까
신기하게 별 것도 아닌데 애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느낀 이후에 이제 아는 디자인 하는 청년한테 부탁해서
'이게 별 것 아닌 거지만 신기하게 아이들이 좋아하더라. 너가 그림을 그려주고 내가 문구를 정해서 넣어 만들자'
이후에 이런 식으로 그림을 넣어서 만들어 줬어요.
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잘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잘 하고 있어 충분히!"
* 이 말이 아는 선생님이 만든 말인데, 뭔가 말을 만든 말인데 "네가 잘 하는지 모르지만 잘 하고 있다"는 너무 귀한 말인데,
이 똑같은 말을 제가 제주도에 가서 애들한테 나눠 준 적이 있습니다. 이걸 받자 마자 애들이 세 명이 울더라고요..
마음이 짠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말은 맞지만 울 정도의 말은 아니거든요.
좋은 말은 맞지만, 굳이 눈물을 흘릴 정도의 말은 아닌데 이걸 받고 운다는 건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이런 말이 필요한데, 이런 걸 못 듣고 산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니까
마음이 짠했는데 이걸 받은 아이가 뒷면은 백지인데, 백지에다가 쪽지를 쓰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전 남친을 주더라고요.. 전 남자친구를.. 약간 당황했습니다.
뭐지?
그런데, 다시 만나게 되었답니다. 다시 연애를 이어갔대요.
저희가 이럴려고 만든 건 아닌데, 둘이 연애하라고 다시 만든 건 아닌데, 그런 일도 있었어요.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사람을 살리는 말은 대단한 말이 아니라
이런 마음이 담긴 진심어린 말들을 말로 하든, 쪽지로 하든 그게 사람을 살릴 때가 있더라고요.
오늘 말씀 두번째, [다 내게로 오라] 오늘 나오는 말씀이죠.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말씀하셨는데, 너무 잘 아시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이 본문을 저 어릴 때 얼마나 많이 배웠으면, 맞다
그래서 이곳에 혹시 예수님을 믿지 않는 힘들고 지친 영혼들을 교회로 데려와.
그래서 친구초청잔치, 총동원주일, 전도주일 같은 때 많이 쓰는 말씀이었어요. 저 어릴 때도..
틀린 건 아닌데 요즘에 이렇게도 말을 합니다. 그 말도 맞지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잖아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지만, 말씀만 하시고 저기 멀리서 팔짱 끼시고 가만히 계시며 '빨리 와, 왜 안 오는 거야?'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로는 오라 하셨지만, 직접 찾아가셨잖아요.. 가만히 계시면서 '언제까지 안 올 거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때 당시에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 세리, 이방인, 사람이지만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대상에게 나아가셨던 것처럼,
그것이 예수님의 모습이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메세지였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라]고 말씀하시는 건, 단순히 그냥 [오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나아가라 내가 그런 삶을 산 것처럼.."
제가 계속 전국을 다니면서 애들을 만나고 있지만, 코로나 때는 다들 그랬던 것처럼
저도 학교 안에 들어가기 어려웠고, 애들도 학교 안에서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포기할 수 없으니까 어떻게 하든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길들을 찾았습니다.
원래는 온라인으로 중계를 하지 않다가 코로나가 지나면서 영상으로 내보내는 것처럼
저의 경우에도 줌으로라도 만나서 같이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이 일어났고,
또, 아이들 중에는 하고 싶은데 자기는 내성적이라 용기가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을 모아서 온라인 기도회도 하면서 2-3년 이어왔습니다.
결국은 감사하게 그 코로나 때도 새롭게 생겨난 모임들이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학교 기도모임들이 이어가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그 중에 이런 모임이 있습니다. 아침 8시마다 모이는 학교 기도모임이 있었는데, 2018년도에 세워졌던 모임입니다.
2년을 이어왔고, 2020년도에 3년차 되는 모임이었는데 코로나가 터졌고,
저도 학교 안에 못 들어가고 아이들도 고3이 아닌 이상 학교에 매일 가지 않았습니다.
고1과 고2가 격주로 학교에 가니까 만날 수 없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까 5년이든 10년이든 15년이든 이어왔던 기독교 동아리, 기도모임들이 없어지고
자연소멸 되는 모임들이 은근히 많이 있었는데, 저도 당연히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1년이 지난 후 2021년도에 연락이 왔습니다.
연락이 와서.. 한 사람이 중요한데 그 아이가 남학생인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요, 내성적이고 앞에서 나대는 것 힘들어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리더십이 없는 사람인데,
저라도 안하면 이 모임이 없어질 것 같았어요.'라고 말하면서 매주 목요일 아침에 8시마다 모이는 모임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아침 8시에 모인다는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모였는데, 결국은 이 아이가 본인이 안 해도 되는데(그 당시 고2)
본인이 매주 학교에 가서 이 모임을 지킨 겁니다. 나라도 가서 기도하겠다고......
그러다 보니까, 아이들이 의리가 있어 가지고 두 세 명이 와 주기도 하고, 그런데 꽤 많은 시간(1년 동안)을 혼자 버텼습니다.
1년 동안 혼자 버텼더니, 결국은 2022년도에도 이어지게 되고, 작년부터 학교 안에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올해도 거의 매달 가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하게 되었는데, 항상 그런 것 같습니다.
누가 볼 때는 내 성격과 기질과 내 상황과 내 모습이 그럴만한 어떤 도전과 믿음 액션을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또 신기하게 그런 믿음의 도전을 받아서 요즘에도~
과거에 10년 전, 20년 전만이 아니라 요즘에도 이런 믿음의 선택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울산에 있는 어떤 불교 재단 학교에서 기도모임을 세운 거예요.
일반적으로 불교 재단 학교에 기독교 기도모임을 세우면, 학교에서 장소 허락을 해 주겠습니까?
쫓겨나고 쫓겨나고 하다 보니까 기도모임 할 데가 없어서 코로나 때 학교 주차장에서 모임을 했답니다.
무슨 북한의 지하교회도 아니고, 그러면서 2년 동안 세 명이서 버텼답니다.
너무 기특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만나러 갔습니다.(코로나 때)
저는 그 애들이 귀해서 갔는데, 한 열 명 정도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갔는데, 때마침 학교측에서 학교에서 모임할 수 있도록 장소를 허락해 주셔서
알고 봤더니 이 모임을 도와주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교회 선생님이셨어요.
그 선생님이 하는 말이, 7-8년 전에 이 동네로 이사를 오셨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런 제안을 받은 겁니다.
우리 애들이 좀 여러가지 사정들이 많이 있는데 괜찮으시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공부방을 열어달라고...
이 분이 혼자 하기는 좀 뻘쭘하니까 집에서 아내에게 말하고 '우리가 2년만 해 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결국은 2년이 지나고, 7-8년이 지나고 지금도 하고 계시답니다.
거기 모인 아이들이 열 명이 모이면, 열 명 중에 9명 정도가 교회를 안 다니는데
예수님을 믿게 된 아이들인 거예요.(예수 믿는 집 아이들이 아닌데 이 모임을 통해서 예수 믿게 됨)
알고 봤더니, 그 공부방을 하면서 만났던 초등학생들 중학생들이 이분들을 만나서
시간 보내고, 같이 라면도 먹게 해 주고, 공부도 시켜주고 이런 과정 안에서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게 된 아이들이라는 거예요.
얼마나 기특했는지, 그런데 믿는 집안이 아니니까 여전히 부모님께 허락을 받지 못하고,
'공부하러 간다', '딴 데 간다'고 말하고 온다고 하도라고요..
애들을 다 보내고 나서 이분이 어떤 말씀을 하셨냐면,
'이제 애들이 가서 말하는 건데 사실 우리 애들이 다들 특별한 가정사가 있어요.
어떤 아이는 할머니하고만 살고, 어떤 아이는 아빠가 일 년에 한 번 오시고,
어떤 아이는 가정폭력을 당하고, 어떤 아이는 엄마가 두 명이고...
이 아이들에게 본인이 이 모임을 하면서 느끼는 작은 소망은,
이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도 있다는 것을 좀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고..
좋은 믿음의 어른이 있다는 것을 좀 느끼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 7-8년째 공부방(기도모임)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통해서 곳곳에서 소망 없어 보이는 수많은 아이들 가운데 복음이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 결국은 사랑이다
이제 마지막 이야긴데, [결국은 사랑이다]라는 겁니다.
저는 계속 전국을 다니면서 여러 아이들을 만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요즘에 여전히 아이들을 만나고 있지만, 요즘에 또 뭘 하고 있냐 하면,(오늘도 또 가야 되는 예정인데)
서울역에 가야 됩니다.
기본적으로 저의 삶은 다음세대들을 많이 만나는 일인데... 서울역에 왜 가는가? - 당연히 지하철, 기차를 타러 많이 가지만
그런데 서울역 광장에 가면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노숙인이라고 말하는 홈리스(Homeless)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또, 제 주변에서 이런 분들을 위해서 5년째, 10년째 섬기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너무 귀하게...
하지만, 저는 처음에 '이것은 내 사역이 아니야', '청년들까지는 만나지만, 노숙인 분들은 내 관심 분야가 아니야'
어떤 바운더리가 아니란 마음이 있었는데, 요즘에 만나고 있는 겁니다.
왜 만나게 되었느냐, 친한 청년이 몇 명 있는데 그 중에 포항의 한동대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리더십이 엄청 많고, 그 학교에서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본인과는 완전히 다른, 극명한 남동생이 있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집에만 있고 학교도 안 가고, 교회도 안 가고, 게임만 좋아하는 그런 남자 아이...
뭐를 하자고 하면, '싫어', '안 해', '너나 해' 이런 반응을 하는 남동생인데,
하루는 이 형이 어떻게 하다 보니까 동대구역에 갔다가 노숙인들이 보인 겁니다.
그 노숙인들에게 도시락을 몇 개 사서 드렸는데, 대부분 드리면 받는데 어떤 분이
'안 먹어', '됐어'하고 거절하셨답니다. 그래서 혹시 다른게 필요하냐고 물어봤대요.
당연히 일반적으로 돈, 담배, 술.. 이런 말씀을 하실텐데... 그런데 신기하게 어떤 분은 '나, 성경책..'
그러니까, 성경책을 달라고 하시는 이상한 분을 만난 거예요.
이후에 또 2021년도 12월에 서울역에도 학생 몇 명과 같이 가서 도시락을 좀 드리면서 얘기하다 보니까
어떤 분이 '나, 성경책...' 그러셨다는 거예요.
두 번 만났는데, 두 번의 만남 가운데 성경을 달라는 이상한 분들을 만나서 그 얘기를 동생에게 꺼낸 겁니다.
'이런 분들을 만났는데, 너도 한 번 같이 가 볼래?' 하고 툭 던진 거지요.
당연히 안 간다 할 줄 알았대요. 왜냐하면, 집이 서울이 아니고 정읍이거든요.
기차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전라도 정읍이었는데, 당연히 안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동생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간다고 해서,
결국은 그 동생 때문에, 열 명 정도 청년과 그 남동생 한 명과 같이 가게 된 겁니다.
그 남동생이 혼자 가기 뻘쭘했는지 자기 친구 한 명(고등학생)을 데리고 왔어요.
우리가 대놓고 전도하지는 않지만, 기도하고 시작하고 기도하고 끝내는데, 함께 기도할 때 이 아이가 놀라고 당황하더라고요..
따라온 친구가(자기는 무교라고 하면서) 교회 안 다니는데 따라 왔대요.
왜 왔느냐고 했더니, 2022년 1월 1일이었고 연초니까 좋은 봉사 한다고 해서 왔다는 겁니다.
우리가 약 50인분을 준비해 갔어요. 50인분을 준비해서 나눠드리는데,
아시는 것처럼 서울역에 노숙인 분들이 50명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엄청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 50인분을 그냥 풀면 5분도 안 걸립니다. 워낙 많으시니까, 그냥 막 털어 가시는데 그러면 안되니까
두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가방에 넣어 가지고 한 분 한 분 찾아가서 말을 걸면서 하나하나 드리다 보니까 두 시간 넘게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돌아다니는데, 광장만이 아니라 서울역은 출구도 엄청 많고,
지하보도도 많으니까, 다니면서 한 분 한 분 만나는 과정 안에서 어떤 분이 거기서 말을 걸었는데, 좀 다친 것처럼 보였어요.
'괜찮으세요?' 하고 물었더니 이 분이 '내가 너무 추워서 편의점에 가서 뜨거운 물을 따 오다가 데었다'는 거예요.
간질(뇌전증)이 있어서 쓰러져서 데고 그래서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제가 '약을 발라 드릴까요?' 하니까, '괜찮아' 하셨어요.
그래서 '혹시 다른 것 뭐가 필요하세요?' 물어봤더니, 그분이 '나, 나 성경책'.........
12월에도 만났을 때 성경책을 달라고 하셨고, 그래서 그분께 드렸어요.
그 분 말고도 여러 분께 성경책을 드렸는데, 때마침 그 남동생이이랑 무교인 친구가 같이 있어서
'야, 이분 말고도 다른 분들도 성경책을 달라고 하시는데, 갖다 줄래?' 했더니 '네, 좋아요' 하더니 가져오더라고요..
그 아이들이 다른 분들한테 갖다 드렸어요.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 꼭 믿음이 충만하고 좋아서만 쓰시는게 아니라
우리를 그런 현장 가운데 동참하게 하심을 통해서 뭔가 믿음을 보게 하시고 자라게 하신다는 것 느꼈고,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벌써 1년 반이 넘었고, 오늘도 갈 예정입니다. 좀 있다가 가서 애들하고 같이 어르신들을 만나야 되는데,
어떤 것을 느꼈냐면, 처음에 이분들이 물건만을 원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만나다 보니까, 그분들이 말벗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말벗" - 그분들이 물어 봅니다. 우리에게 혹시 어디 계시냐고 물어보고 많은 반응을 보이십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내가 왜 그러냐?' 그러시고, 어떤 분은 5월이었는데, 술 먹고 우시더라고요..
왜 그러시느냐고 물었더니, 아니 내가 집 나온지 5년이 넘었는데 쌍둥이 딸들을 못 본다고 우셔서~
때마침 그 때가 5월 8일이 얼마 안 남아서 카네이션을 가져갔었거든요..
그런데 참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정말 다양한 사정으로 나오신 분이 많구나..
어떤 분은 이런 분이 있었습니다.
항상은 아니지만, 가장 많이 드릴 때는 150인분을 준비해서 드린 적이 있어요.
그때 다 끝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어떤 분이 '아, 아 미안한데....' 하면서 말을 걸어 오셨어요.
저는 그분이 아파서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너무 배가 고프다고... 저는 배가 아프다는 줄 알았는데, 배가 고프다고 하셔 가지고...
'죄송한데, 저희가 지금 다 나눠드리고 남은 것이 없다'고 했더니
오늘 한 끼도 안 먹었다고 그러시는데 마음이 짠해서 남은게 없고 지금 성경책만 있다고 하니까 이분이 말씀을 암송하더라고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을 암송하면서 갑자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말씀을 암송하시는데,
어떤 느낌이었냐면 자꾸 뭘 달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뭘 좀 사 드리긴 했는데,
알고 봤더니 이분이 예수님을 믿는 분이었고, 젊었을 때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몇 억을 날리고 죽을까 하다가
그때 어머니가 70 넘으신 분이었는데 차마 죽지 못하고 살아 있다가
술 먹고 거의 알콜중독이 되었다가 나중에 어머니 돌아가신 이후에 나왔다는 분이었어요.
다양한 분들을 만납니다.
어떤 분들이 쩌어기 어디 가면 노숙자들이 많이 있대요. 쩌기 어디 가면....
갔더니, 그때도 추운 날이었습니다. 날씨가 영하 13도, 14도 넘는 날이었는데, 어떤 공원 광장이었거든요.(서소문 공원이었나..)
엄청 많다는데, 그날은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어떤 벤치에 누가 누워 있어요.
그런데 너무 추운 날이잖아요.. 그 추운 날씨에 죽으면 어쩌나 싶어서 막 뛰어갔더니, 동상이었어요.
그 옆에 뭐라고 쓰여 있었냐면, '노숙자 예수'(homeless Jesus)라고 쓰여 있었어요.
이 홈리스 조각상은 미국, 카나다, 스페인, 인도, 세계 각지에 널리 퍼져 전세계에 100 여개나 설치되어 있답니다.
작가의 원래 뜻은 마태복음 25장 40절에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는 구절에 감동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 이곳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이 단 한 명도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답니다.
계속해서 아이들과 만나다 보니까 이제는 청년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도 많이 와서 같이 섬깁니다.
이 일을 왜 하게 되었느냐면, 그 남동생 때문에 하게 되었던 거지요..
그 남동생이 감사하게 요즘에 저희가 시킨 것도 아닌데..(작년에 고3이었어요) 대학을 안 가고, 직업학교를 다녔어요.
남자 아이인데, 제빵기술을 배워서 우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빵이나 쿠키를 구워 와서 나눠드리기도 합니다.
하루는, 지나가다 어떤 분에게 가서 그 동생이 말을 걸고, 그분이 맨 발인 거예요. 그러니까 본인의 신발을 벗어 신게 하더라고요.
이 친구가 최근에, 5월에 올린 글이 하나 있습니다. 엄청 뭉클했는데, 요즘에는 교회도 다니고 많이 바뀌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어요.
"처음에는 한 두번 하고 말겠지 하고 생각한 이 노숙인 사역이 점점 커져서 1년 5개월이 넘었다" 하면서
"매번 힘들었지만 나를 부르셔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기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내가 바뀌기 시작한 계기도 노숙인 사역을 시작했던 것 같다.
이 사역은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다. [주님이 다 하셨다.] [주님 최고!]"
이렇게 바뀌어 가더라고요...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우리 주변에.. 부모님 중에도 '얘는 답이 없어. 소망이 없어'라는 말을 하는 분이 분명히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