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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癸卯年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세워 성장하는 해*
12월 30일까지 올 후반기 행정서식으로 상호 신뢰와 소통해야 가능합니다.
마24:1-22절) 예루살렘의 멸망
가끔 경치 좋은 관광지에 가보면,'여기는 무슨 드라마를 찍은 곳’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런 장소를 찾아가 봄으로써 다시 한 번 그 드라마를 생각해 보고, 또 마치 자기가 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잠시 느껴보기도 할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 작품의 배경이 되는 무대 장치나 촬영 세트가 있고, 또 배우들이 입는 의상이 있고, 음악이 있지만, 그래도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主人公)입니다. 어느 영화나 어느 연극이나 주인공이 죽으면, 스토리는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미 영화나 연극의 줄거리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줄거리를 모르면, 주인공이 위기에 처했을 때, 조마조마 가슴을 졸이다가도 또 내용이 밋밋하고 특별한 것이 없으면, 금방 지루해져서 언제 이 영화나 드라마가 끝나나? 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줄거리를 아는 영화나 연극은 주인공이 아무리 위험한 지경에 빠져도 안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보게 되고, 아무리 중간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워도 나중에는 모든 것이 잘 수습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끝까지 기쁜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역사나 미래를 보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역사의 줄거리를 안다면, 아무리 시대가 혼란스럽고, 도저히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나 전쟁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수습 될 줄 알기 때문에 덜 두려워하고, 덜 불안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줄거리에 대하여 전혀 인식이 없으면, 조금이라도 시대가 어려워지고, 불안해지면, 당장 미래에 어떤 불행이 닥쳐오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보따리 싸가지고 도망칠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대신 평화의 시대가 계속되면, 금방 지겨워서 하루하루 무슨 짓을 해서 이 지루한 세월들을 때울까?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이야말로 오늘날 이 어렵고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매우 꼭 필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통해서 앞으로 오는 모든 시대에 되어 질 일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첫째, 과연 우리의 미래는 낙관적인가? 비관적인가?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은 점점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할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이 점은 사실입니다. 점점 이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래에 대하여 대단히 불길한 예언을 하십니다.
미래에는 전쟁(戰爭)이 있을 것이며, 지진(地震)과 기근(飢饉)이 있을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그리고 민족과 민족이 싸울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이 예언을 하실 때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가 세계를 통일해서 전 세계가 유래 없던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을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미래에 대하여 대단히 비관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둘째,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일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여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죄를 지어도 마지막 때까지는 못 본체하고 그냥 내버려두실까? 아니면, 인간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구체적으로 간섭(干涉)을 하셔서 재앙(災殃)을 내리실까? 입니다.
그리고 셋째, 도대체 역사의 주인공은 누구냐? 는 이것입니다. 어느 영화나 드라마는 주인공이 죽으면, 끝나게 되어 있는데, 역사를 유지시키는 이 주인공이 과연 누구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답을 내릴 수 있다면, 오늘 본문이 해석될 것이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도 많이 불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Ⅰ.예루살렘 성전(聖殿)의 파괴(破壞)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미래에 대하여 대단히 낙관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것은 성경에 나타나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메시아가 오셔서 모든 악(惡)의 세력을 심판(審判)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평화의 시대가 오게 한다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로 예루살렘 성전(聖殿)은 파괴(破壞)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죽임을 당할 것을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24:1-2절)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에 망하는 바람에 불타서 파괴되어 버리고, 바벨론 포로 후에 스룹바벨이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런데 에돔 사람인 헤롯이 유대의 분봉 왕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이 스룹바벨 성전을 증축했습니다.
그러나 말이 증축이지,실제로는 옛날의 모습은 없어지고, 완전히 새로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헤롯의 성전 건축은 이미 예수님 때, 46년이 걸렸고, 그 후 계속 성전을 지어서 무려 82년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완성된 지 7년 만에 로마와의 전쟁으로 완전히 불에 타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성전의 화려하고 멋진 외모에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훌륭한 건물은 훌륭한 신앙심의 표현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전을 더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실 사람들의 우상숭배(偶像崇拜)심리와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偶像)을 숭배(崇拜)한다는 것은 그 나무나 돌이 자기들에게 복을 준다는 것보다는 그런 나무와 돌로 멋있는 상(像)을 만드는 자신들의 종교심이나 정성에 스스로 감동을 하고 자부심(自負心)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헤롯의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극도의 종교적인 자존심이나 만족(滿足)감을 줄 만한 것이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만큼 훌륭한 성전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이 예루살렘 성전을 죽은 성전으로 판정을 내리십니다. 왜냐면 바른 성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회개의 눈물이 있어야 하는데, 헤롯의 성전에는 오직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의 권위적(權威的)인 교만(驕慢)만 있었고, 성전 예배(禮拜)를 통하여 돈이나 벌려는 욕심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죽은 성전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실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스스 지킬 능력도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죽은 성전은 사람들에게 거짓된 만족감을 줄 뿐이지, 전혀 사람들의 죄를 해결하거나 하나님의 은혜(恩惠)를 임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이런 거짓된 죽은 성전은 허물어져야 사람들이 덜 속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이제부터는 어떤 성전이 참된 성전입니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공동체)가 참된 성전인 것입니다.
그래서 덩치만 거대하고, 거짓된 만족감을 주는 이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결국 이 거대한 성전을 무너뜨리려면, 전쟁이 일어나야하고, 이 거짓된 성전을 믿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진리의 말씀이 없고, 진정한 회개의 눈물이 없는 성전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옛날에 무너져서 많은 사람들이 깔려 죽은 삼풍백화점보다 더욱 위험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단 건물(建物)이 있으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안심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옛날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옛날 이사야 때, 예루살렘에는 그나마 올바른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오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루살렘은 내 눈동자이기 때문에 내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왔다가 결국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때는 이미 예루살렘에 올바른 말씀이 없었습니다. 회개의 눈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고, 성전은 불탈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성전을 성전답게 하는 이것입니다. 성전에는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이 선포되어야 하고, 이 안에는 어떤 인간적인 장난이나 돈벌이도 허용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어떤 죄인이든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새 생명 얻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성전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씀도 없고, 기도도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죽은 성전을 없애기 위해서 전쟁의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24:3절)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어떤 면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서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은, 구약 시대가 끝나고, 이 거짓된 성전시대도 끝나고, 신약 교회(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복음의 시대가 열린다는 선언의 말씀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세상 마지막에 있을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심판에 대한 것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 이런 일이 있을 것이며, 또 주님의 임하심과 세상의 끝에 어떤 징조가 있겠느냐? 고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동시에 세상의 끝이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적인 생각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것을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끝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고, 그 사이에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복음의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Ⅱ.유대인이 받을 심판
이미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 당시의 전 세계는 로마가 세계를 통일했기 때문에 이른바‘로마의 평화시대’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즉 세계 도처에 있는 해적들도 로마가 소탕해 버렸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도 없어져서 사람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로마야말로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라고 찬양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의 미래에 대하여 상당히 비관적인 말씀을 이렇게 하십니다.
24:4-5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예수님께서는 가장 먼저 유대인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죽임으로 지금까지 죽은 모든 선지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23:35절)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가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책임을 져야 할 피는 예수님의 피와 세례 요한의 피 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했을 때는 그리스도의 피 값만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 세상에 와서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모든 선지자들과 의인들의 피를 다 감당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아이가 남의 과수원에 있는 과일을 몰래몰래 따 먹다가 드디어 붙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자기가 훔쳐 먹지 않은 것들까지, 즉 지금까지 그 과수원에서 도둑을 맞았던 모든 과일 값까지 다 물어주고서야 파출소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개입하시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인간의 문제에 개입하십니다. 우선 믿는 자들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귀찮을 정도로 개입을 하십니다.
그래서 조금만 죄를 지어도 말씀으로 야단을 치시고, 어느 때는 큰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고난의 학교에 집어넣으셔서 인생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고난 가운데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나중까지 하나님의 복(福)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미리 우리를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택하지 않으신 자는 웬만큼 죄를 지어도 못 본체 하시고, 그냥 내버려두십니다. 어느 때는 본인이 살아 있을 때, 죄를 많이 지었어도 그 죗값을 갚지 않고, 편하게 살다가 죽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꾹 참고 계신 동안 쌓인 죄가 어느 수준을 넘어섰을 때는 한 순간에 인정사정없는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때 자손들이 우리는 그렇게 심한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를 심판하시느냐? 고 항 의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재앙이 터지는 것은 조상들의 죄에 자손들이 죄를 추가시켜서 그 분량을 완성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조상을 잘 만나는 것도 복(福)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상을 바꿔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즉 우상을 선기고 첩 질을 하던 조상이라면, 그 조상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잘 알지 못하지만, 나의 아버지나 부모님 대에서 저질러진 죄에 대해서도 회개를 해야 합니다.
지금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세상 최대의 심판이 그들의 머리 위에 준비되어 있습니다.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그 심판이 그들의 머리 위에 쏟아지게 될까? 그것은 그들이 거짓된 그리스도에게 미혹됨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이유는 유대의 독립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으면,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나서 로마와 싸워서 독립을 쟁취하자고 소리를 치고,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 거짓된 그리스도를 따라서 독립 전쟁을 벌이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몽땅 다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그토록 세계적인 대국이 되고, 전 세계를 정치적으로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로마의 옳고, 그른, 것은 하나님께서 판단을 하시도록 하고, 유다 백성들은 로마에 복종을 해야 하는데, 민족적인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쌓은 죄를 스스로 뒤집어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가 그들의 눈을 어둡게 했기 때문에 그런 멸망의 길을 갈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심판은 장차 여러 차례 오게 됩니다. 즉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꾸 죄를 쌓다보면 결국 이것이 모여서 터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대대적인 전쟁이 되기도 하고, 지진이나 화산폭발과 같은 재해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Ⅲ.역사의 주인공
인류 역사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예수님 외에 다른 주인공을 세우셨습니다. 그 주인공이 곧 신약의 교회(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대하여 상당히 좋지 않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4:9절)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얼마나 두려웠을까? 앞으로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온 세상을 뒤집어놓는 것만 해도 걱정이 되는데,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환난에 넘겨주어서 죽게 하고, 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니,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피해야 할까?
우리가 이 말씀만 들으면, 교회(공동체)의 미래가 굉장히 힘들고, 비참하겠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생각하지도 않고, 당장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왕위를 받아서 온 세상을 정복하실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장 그런 종말적 천국이 오는 것이 아니며, 제자들은 이 세상의 사탄의 세력과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세력은 결코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야말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역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4:22절)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죄가 어느 정도 다 차고 나면, 긍휼 없는 심판을 내리셔야만 하는데 교회가 있고, 아직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심판을 내리실 때도 상당히 감(感)해서 교회가 손상되거나 믿는 자들이 없어질 정도로 하시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약속이 있습니다.
24:14절)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 하면,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이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교회가 구원받을 마지막 한 사람을 전도해서 구원할 때까지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멸망당하지 않도록 붙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멸망이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때까지 교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 절대적인 명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게 되는 이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저지르는 악(惡)을 보면 당장이라도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이 내릴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증거 되는 동안 세상을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주인공은 로마 황제나 미국의 대통령이나 유명한 기업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셀(cell)공동체입니다.
Ⅳ.미래에 되어 질 일들
예수님께서는 미래에 되어 질 일들에 대하여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모든 것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보십니다. 일단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상관없이 앞으로 온 세상에는 여전히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4:6-8절)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사람들은 언제나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사실 로마라는 나라는 그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즉 최고의 문화를 가졌고, 최고의 시설을 가졌으며, 최고의 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난리와 전쟁과 지진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는 세상에서 완전한 행복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병의 증세만 완화시켜 놓고, 잠깐 일시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 죄가 있는 세상에 완전한 행복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행복하다는 것은 큰 불행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더 큰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무서운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통증이나 자각 증세가 없다면, 이것은 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암이 무서운 이유도 자각 증세가 너무 늦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난리나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마음을 흔들어서 회개시키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금 이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신앙적인 눈으로 보면, 아주 다행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도덕 건강이나 정신 건강에 대한 증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증세를 잘 분별해서 치료하면, 오히려 다시 살릴 수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환난을 당하더라도 믿는 사람들은 너무 겁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절대로 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24:22절)...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중요한 것은‘그러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에 손상이 오고, 우리가 완전히 멸망당하는 그런 시험은 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 대하여 중립적인 입장입니다. 즉 세상은 점점 더 잘 살려고 노력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가 있는 한 때때로 재앙이 올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는 자들은 완전히 소멸되거나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는 점점 더 잘살게 되겠지만, 마음은 더욱더 강퍅해질 것입니다.
24:10절)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24:12절)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놀라운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고, 점점 더 많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되겠지만, 마음은 더 악해지고, 사랑은 더 없어지고, 서로에 대한 미움은 더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이 없으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하나님의 사랑의 필요성을 느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이렇게 악(惡)하게 사는 것이 좋아서 더욱 하나님을 미워하고,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사람도 있게 됩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24:8절에서‘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재난(災難)’이라는 말은‘아기를 낳는 산고’를 말합니다. 결국 이런 외적인 어려움과 내면적인 갈증 때문에 신앙이라는 아이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이 해야 할 것은‘끝까지 견디는 이것’입니다.
24:13절)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와 하나님의 구원 사이의 갈등 때문에 끊임없이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 긴장 중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입니다.아마 외국이나 위험한 곳에 나간 가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경험하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이 해주셔야 하고,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하는데, 그것을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것이 곧 영적인 부흥입니다.
사탄의 역사는 힘을 잃고, 사람들에게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일어나서 모두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복(福)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Ⅴ.멸망의 가증한 것
예수님께서는 다시 유대의 상황으로 돌아와서 유대인들 중에서 믿는 자들이 장차 당하게 될 환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참으로 신실하시며, 우리 믿는 자들의 안전을 책임져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붙들리실 때도 제자들 하나라도 잃지 않으시기 위하여 일부러 겟세마네로 가셨고, 또 베드로가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었을 때도 일부러 그 귀를 고쳐주셨습니다.
짐승들 중에서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짐승이 양이라고 합니다. 양은 목자가 인도해 주지 않으면, 도무지 위기를 헤쳐 나갈 수가 없는 짐승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난리와 난리의 소문은 듣겠지만 끝은 아직 아니라고 하시면서 짐을 싸서 도망칠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대로 예루살렘에는 30년 동안 평화가 있었고, 그동안 예루살렘 교회는 세계에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리 겁을 집어먹거나 도망칠 필요는 없지만
24:15절)...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는 산으로 도망을 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것은 다니엘이 예언을 한 것입니다(단11:31,12:11 참조).다니엘서에‘멸망케 할 미운 물건’이라고 했는데, 결국 우상(偶像)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우상이 성전에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을 세운 사람은 구약 시대에 므낫세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결국 구약 성전이 바벨론에 망한 것은 므낫세의 우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예언한 것은, 나중에 시리아의 총독이 된 안티오커스 에피따누스라는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우고 절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죽였는데, 그 사건인 것으로 봅니다.
특히 이 안티오커스 에피파누스라는 사람은 성전에 돼지 피를 뿌리기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을 말할까? 어떤 사람들은 로마인들이 성전 앞에 우상을 세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다른 복음서에서는‘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눅21:20)
아마 이 당시 가장 큰 우상은 역시 돈이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돈을 벌기 위하여 장사하는 것보다 더 가증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죽고 난 후에 핍박의 바람이 불 때에 교인들은 미련 없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여러 곳에 흩어지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성전이 장사를 하고,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은 거부한 것은 돈이라는 우상을 성전에 모신 것입니다. 실제로 로마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예루살렘이 에워싸이는 것을 보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 생각나서 포위를 한번 풀었을 때, 요단강을 건너 광야로 피난하여 목숨을 건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피했다가 많이 죽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정식으로 가결했을 때, 이미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게 된 것이었고, 많은 크리스천들은 이 때문에 한국전쟁이 일어난 것이라고 보고, 깊이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땅에 공산군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남한으로 피난을 와서 남한에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결국 기독교가 돈이나 권력에게 아부하고 굴복하는 것이 멸망의 가증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수시로 우리들에게 피할 때를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환난의 날에 피할 수 있는 요령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선 첫째는 성이나 집(아파트)에 집착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4:16-18절)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일단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면 그곳은 죽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피하는 곳으로 피하지 말고, 신앙의 공동체로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재물에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유대인들은 지붕 위가 평평해서 여기서 묵상도 하고, 기도도 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환난 날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들어가지 말고, 자기 영혼 하나만 살리라는 것입니다. 밭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환난을 당했을 때는 집(아파트)이나 옷이나 공장 같은 것을 건지려고 하지 말고, 자기 영혼이 가장 잘 살 수 있는 길을 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나옵니다.
24:19절)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전에 어떤 부흥사는 이 구절을 해석하기를 '아이’가 죄를 말하는데, 죄를 배거나 죄를 키우는 자는 심판받는다는 뜻이라고 해석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멋대로의 해석입니다. 일단 성경은 아이를 배거나 키우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단지 임산부나 젖 먹이는 자는 가장 보호가 필요한 자인데, 환난 날이 오면, 이런 자들까지도 봐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이 가까울 때에 결혼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환난 때, 결혼을 하는 것이 더 보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지 간에 일단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암산부나 젖 먹이는 자는 환난 때에 대단히 불리할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실 전쟁이 나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여자와 아이들입니다.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어버리니까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굶거나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주워야 합니다. 아무튼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지, 일어나면, 여자나 아이들도 절대로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도망하는 날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겨울에는 전쟁을 하지 않고, 쉬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전쟁이 나면, 유대인들이 쉬어야 하기 때문에 전쟁을 못하는 것입니다. 안티오커스 아피파누스는 안식일에 공격을 했는데, 유대인들이 전쟁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많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전쟁이 터지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무서운 경고의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 믿는 자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행복에 도취되어서 영적으로 잠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잠들어 있으면,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결국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깨어서 영혼의 파수꾼의 사명과 말씀의 등대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 절대로 사탄이 우리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려워 말고 매일 매일 우리 마음의 성전을 지키며, 주님의 음성을 잘 들어서 환난을 면하고, 또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401장 *주의 곁에 있을 때*
11/28 자 행정서식5.6호 첨부와 셀(cell)카페에 관한(긴급알림3)
▷추계(秋季)성례전은 순종행사로 12/30일까지 *대심방* 국내-국외 스마트폰으로 (지역. 장소.날짜.시간)을 조정하여 초청하는 셀(cell)가족 순으로 출장 시행합니다. 아니면
▷후반기는 필(必)히 행정서식을 12/30일까지 작성제출해야 소통하는 교갱원소속 A급 셀(cell)로 새출발 할 수 있지만, 계속 비협조와 불통하는 셀(cell)의 경우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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