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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인텐[10년 10억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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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맞벌이 부부의삶 조선시대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가 있어 퍼옴 - 노비제도? 노예제도?
시나몬카푸치노 추천 3 조회 1,061 23.11.13 09:37 댓글 4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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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11.13 10:13

    첫댓글 노비가 노예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생겨난 일입니다 노비에 관해 조금만 알면 중세 유럽의 농노와 오히려 비슷해요 ㅡ ㅡ;;

  • 작성자 23.11.13 10:21

    네 그 얘기도 본문에 있습니다. 농노와 비슷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있구요.

  • 23.11.13 10:26

    @시나몬카푸치노 전공자가 아니면 깊이있게 공부하기 어려워요 겉으로 드러난 면만 보면 농노와 노비는 구별이 됩니다만 농노 노예 노비 모두 공통점 차이점이 있지요 그러나 분명히 노비와 노예는 다릅니다 이걸 같다고 주장하는 건 억지에요

  • 작성자 23.11.13 10:34

    @빨간꼬리여우 일단 이 글을 알게 된 경로가 역사 전공자의 블로거이고 이 정도면 노예로 봐야하지 않나 하는 결론… 참고로 그분은 정치적으로 무당층.

    전 사관 논쟁에는 별 관심없는데 아무래도 예민한 주제를 건드린 것 같네요

  • 23.11.13 10:35

    @시나몬카푸치노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슈렉이나 관심가질 주제라고 생각했어요 ㅎㅎㅎㅎㅎ

  • 작성자 23.11.13 10:37

    @빨간꼬리여우 네 슈렉님 생각이 궁금하네요. 사실 전 노비냐? 노예냐?보다 노비 수가 그렇게 많았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 23.11.13 10:41

    @시나몬카푸치노 중세유럽은 아예 모든 백성이 농노였는데요 ^^ 그리고 조선시대는 시기별로 노비에 대한 개념, 인식 차이가 커서 전체를 가지고 많았다 어떻다 논하는 게 별 의미없어 보여요

  • 23.11.13 10:55

    @빨간꼬리여우 본문 안보신 듯..

    중세유럽 농노도 매매가 가능했었나요??

    사람을 말처럼 사고팔고 해서 노예와 다름없다는 뜻이구먼...

  • 작성자 23.11.13 10:56

    @빨간꼬리여우 이것 저것 찾아보니 사유재산권 및 예속 정도에 따라 조선 노비를 농노로 볼 곳이냐 노예로 볼 것이냐는 분명 시각차가 있을 수밖에 없겠네요.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 이병도가 파놓은 함정에 걸렸군.
    웃고 갑니다 ㅎㅎ

  • 작성자 23.11.13 10:24

    역시나 예상했던 댓글… 이런 식의 비꼼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근거를 들어 반박하기 귀찮으시면 이딴 댓글 쓰지 마세요. 참고로 전 사관 논쟁에 과심 없고요 사실관계만 알고 싶을 뿐입니다.

  • 23.11.13 10:48

    성리학도 그 자체가 쓰레기라기보다 기득권이 악용하면서 변질되지 않았을까요?
    암튼 헬조선은 사실이었다.. 다시 한번 알게되네요.

  • 작성자 23.11.13 11:00

    주희 대략 검색만 해본 정도지만 완전 비호감이네요

  • 23.11.13 11:01

    @텐인텐아카데미 일본보다만 나으면 헬이 헤븐이 되나요? ㅋ

  • 23.11.13 13:35

    @텐인텐아카데미 조선은 19세기 망하기 직전까지 지옥이었던거니 다르죠.

  • 23.11.13 10:54

    틀린 지적은 아니네요. 씁쓸한 일이죠.

    우리나라 기득권층은 노비제 유지를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내용들이 역사책을 통해 종종 확인이 되는데, 그런 기록을 읽을 때마다 씁쓸합니다.

    가령 고려 말 몽골간섭기의 일인데, 정동행성 평장정사로서 고려에 파견된 활리길사(게오르기스, 기독교 신자여서 기독교 계열 이름을 가짐)가 고려의 노비제(일천즉천법 : 부모 중 하나라도 노비라면 자녀도 노비가 됨)가 과도하다 여겨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양인이면 자녀를 양인으로 만들어주려 하였더니 고려 조정에서 크게 반발합니다.

    이 때 등장한 논리가 <세조구제>입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할 당시 몽골은 내전 상황이었는데, 고려 항복사절의 대표인 고려 태자가 당시 정통성이 다소 부족했던 쿠빌라이 쪽 진영에 가서 항복을 하자 쿠빌라이가 '당태종도 굴복시키지 못한 나라(고구려와 고려를 동일시함)의 태자가 스스로 와서 항복하니, 이는 나에게 내리는 하늘의 뜻이다' 라면서 엄청나게 기뻐합니다. 그래서 쿠빌라이가 내전에서 승리하고 대칸에 즉위한 뒤, ① 자신에게 왔던 고려 태자(고려 원종)의 아들(충렬왕)을 자신의 사위로 삼고, ② 고려의 풍속을 함부로 고치지 않겠다(불개토풍)는 것을

  • 23.11.13 11:08

    약속합니다. ②번을 달리 '세조구제' 라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세조'는 원 세조 쿠빌라이를 뜻함)

    이 세조구제를 고려의 왕과 신하들이 들먹이면서 활리길사의 노비제 개혁에 딴지를 건 겁니다. "원나라 창건주나 다름없는 쿠빌라이칸께서 고려의 풍속을 함부로 고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걸 당신(활리길사)이 어기겠다고? 정말??"

    그리고는 고려 조정은 활리길사가 노비 신분에서 양인으로 바꿔 준 사람들마저 다시 노비로 바꿔 버립니다.

    뭐, 조선이 얼마나 노비제 유지를 위해 노력했는지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조선 후기에 노비제가 약화되는 건, 다른 나라에서와 비슷한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즉, 상공업의 발달, 시장경제의 확대로 노비보다는 임금노동자가 더 나은 경제상황이 발생하였기에 노비에 대한 수요보다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 노비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노비도 결국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 이라면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까요.

  • 작성자 23.11.13 11:19

    @수돌예돌 내 재산, 기득권 지켜야 되니요 ㅜㅜ

    글 올릴 땐 몰랐는데 ‘노예‘라는 말에 반발하는 학자가 많은 모양이네요. 조선 노비의 경우도 스펙트럼이 좀 있구요. 중세시대 농노 ~ 노예 그 사이 어딘가. 노예라는 지위 자체도 나라마다 시대마다 약간씩 다르고요.

    조선이 노예 사회가 되면 큰일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일본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까봐서?인가 싶네요

  • 23.11.13 11:31

    @시나몬카푸치노 노예라는 단어가 갖는 '노예제 사회'의 부정적 뉘앙스 때문에 그럴 겁니다.

    일찍이 칼 마르크스가 인류역사의 발전 단계를 원시공산제 - 고대노예제 - 중세봉건제 - 근대자본주의 - 미래의 공산주의..... 라는 식으로 구분했을 때에 미래의 공산주의 같은 꿈도 희망도 없는 헛소리는 배제하더라도 그 앞부분의 분류는 꽤 일리가 있다고 여기는 역사학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걸 기준으로 각 나라의 역사발전단계를 구분하곤 했는데, 고대노예제에서는 노예가 주된 노동력이었고, 중세봉건제는 농노가 주된 노동력이었으며, 근대 자본주의가 되면 노동자가 주된 노동력이 됩니다.

    이 틀을 전제로 할 때에 "한국사에서는 조선 말기까지 노예 중심의 사회였다" 라는 말은 "한국사는 먼 고대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전혀 발전이 없이 정체된 역사였다. 왜냐? 계속 고대노예제 사회를 유지했으니까!" 라는 말처럼 들린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노예제 사회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발하고, 반박하려고 노력합니다. 노비가 노예보다는 농노에 가깝다는 소리도 고대노예제보다는 중세봉건제가 더 발전된 사회라는 전제를 깔고 하는 발언의 뉘앙스도 있습니다.

  • 23.11.13 11:32

    @시나몬카푸치노 그런데 칼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론은 이미 비판받고 있습니다. 그건 유럽의 특수한 발전 단계를 설명한 '특수이론'일 뿐, 인류의 모든 역사에 적용할 '일반이론'은 아니라는 거죠. 나아가 원시시대가 과연 평화로운 공산제 사회였는지도 의심받고 있습니다. 청동기시대는 물론이고,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도 전쟁이나 대량학살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거든요.

    조선의 노비가 (유럽 로마제국 등의 고대 노예제 사회에 존재했던) 노예냐, (유럽 중세에 존재했던) 농노냐를 따지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어짜피 역사발전 5단계론은 유럽에나 적용할 논리일 뿐, 동아시아나 한반도에 적용할 수 있는 논리도 아닌데요, 뭘........

    노비가 Slave 로 번역될 수 있다는 본문 내용이 크게 무리한 주장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Slave 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범위가 생각보다 넓거든요.

  • 23.11.13 11:42

    @수돌예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르크스 이론에 대해 감히 읽어볼 엄두도 못 낼 수준이라 막연한 상상이긴 한데요. 마르크스 이론이 틀렷지만 일부는 맞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어쨋든 초기자본주의에 비해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복지제도가 있는 것은 마르크스 사회주의 영향이라고 볼수 있지 않나 합니다. 스웨덴등 우리나라가 선망하는 북유럽식 복지도 기존 자본주의에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일부 수용해서 이뤄진게 아닌가 합니다.

  • 작성자 23.11.13 11:43

    @수돌예돌 원시시대가 평화로운 공산제 사회? 정말 그게 사학자들의 중론이었나요? 전 절대 아닐거라 보는데요. 혼돈의 도가니탕이면 몰라도

  • 23.11.13 12:13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전 솔직히 원글 보며 노예나 노비나 뭐가 그리 중요해서 이리 길을 글게 쓰나? 했거든요.
    솔거노비는 노예, 외거노비는 농노로 여기면 어떨까 싶어요. 노예는 slave이고 농노는 serf로 서로 단어가 틀리네요.
    수돌예돌님 말씀을 들어보니 식민사관과 연관이 되는군요. 이영훈이야 미개한 조선을 일본이 근대화 시켰다는 논리로 접근하는 자니까 들으나 마나 하는 소리일것 같구요.

  • 23.11.13 16:13

    @살쫙쫙↘돈쑥쑥↗ 그것도 역사발전단계론의 프레임에서 못 벗어나는 것에 불과합니다. 조선의 주된 생산수단인 노비를 노예라 보면 조선을 낮추어 보는 것이고 농노라 보면 덜 낮추어 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죠.

    조선이 덜 발전된 부분이 있다면 그냥 그대로 인정하면 됩니다. 하지만 조선에 노비가 많았고 그게 노예의 성격이었다 한들, 그것으로 단순하게 조선이 동시대의 다른 지역 국가들보다 뒤떨어지는 사회였다는 결론이 나올 수는 없겠죠.

  • 작성자 23.11.13 16:20

    @수돌예돌 관련 자료를 찾아 읽ㄹ수록 농노보다는 노예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외거노비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하지 않은 것 같고 농노였다고 보는 측의 자료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요

  • 23.11.13 16:49

    @시나몬카푸치노 원시시대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던 시대' 로 묘사하는 흐름들이 과거에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역사학자는 아닙니다만) 장 자크 루소 같은 경우였고, 이후에도 학계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가령 저희가 고등학교 다닐 때의 한국사나 세계사 교과서에서도 전쟁 같은 건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던가요? 신석기 시대까지는 잉여생산물이 발생하지 않아 사회계급도 없고 노예도 없이 평화롭게 공동체 생활을 했다는 뉘앙스를 교과서에서도 풍겼던 거죠.

    말하자면.... 온 마을 사람들이 팀을 짜서 다 같이 매머드 사냥한 뒤, 그 고기를 나이 지긋하고 현명한 촌장의 지시에 따라 온 마을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 가져 배부르게 먹은 뒤에 여자들이 모여 그 가죽으로 옷을 짓고 하는 그런 원시공동체가 청동기 시대 이전의 평화로운 원시의 모습이라고 <상상> 한 거죠.

    이러한 평화로운 원시시대의 인류를 '고귀한 야만인들'(Noble Savage) 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고고학 발굴의 결과는...... 고귀한 야만인도 없고, 평화로운 원시시대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 23.11.13 16:49

    @시나몬카푸치노 유럽에서도 대규모 전쟁은 청동기 시대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생각했으나, 점점 신석시 시대의 대규모 전쟁이나 대학살의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고, 북미에서도 석기 시대 인류의 학살 현장 같은 것이 발견되었지요.

    동아시아의 경우에도 청동기 시대 이전의 신석기 시대 문명들이 발굴되기 시작했는데, 가장 유명한 요하 유역의 홍산 문화의 경우에는 돌로 쌓은 성벽의 흔적 등 마을 단위를 넘어선 규모 있는 전쟁을 대비한 흔적들이 보입니다.

    평화로운 원시시대라는 게 과연 존재했을 지도 의문인 거죠. 평화로운 원시시대라는 것 또한 일종의 '신화'일 수 있다고 봅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3.11.13 11:58

    전 역사에 등장하는 요순시절이란 게 진짜 실제했었을까 싶어요. 일반백성이 그나마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지구의 일부 지역에서 근대 복지국가 되면서나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고요…

    아버지가 오래 전에 족보 정리하시면서 돈 주고 양반 샀을지도 몰라 우스개 소리 하시더라구요. 그랬거나말거나 ㅎㅎ

  • 23.11.13 11:31

    본문과 댓글들 잘 읽었습니다. 글쓴님께 죄송하지만 정치적인 면이 궁금해 이영훈이라는 사람을 찾아 보았습니다. 노비 논쟁에 뭐가 뭐가 맞느냐는 저는 모르겠고 이영훈은 조선에 대해서 폄하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는 일본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기 위함이엇다는 것을 알게 되네요. 일본이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기여한 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를 가지고 일본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한다는 것은 억지주장이긴 하죠.

  • 23.11.13 11:48

    2222222

  • 작성자 23.11.13 11:53

    333 암요. 식민지 정당화도 절대 안되지만 일본을 무조건 부정하고 조선의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미화하는 태도도 꼴불견이죠

  • 23.11.13 11:34

    양반가문이라고 자랑하는집 족보도 엉터리인 경우가 허다
    하다지요 제대로된 족보가 한손 안에 꼽힌다는 족보학자의
    말에 거의대부분 집안은 평민 내지는 노비로 이해하는게
    정확하다 여기기로 했어요

  • 작성자 23.11.13 12:48

    *우리모두 노비의 후손*

  • 23.11.13 12:00

    외가 양반.. 외삼촌 양자 들여 재산 지키고 제사 모시게 하고
    딸인 울엄마에게 한 푼도 안 남기고 혈압으로 갑자기 가신 외할머니.
    평생 자식보다 가문의 제사 신경 쓴 엄마가 미웠네요.

    시집 정리 할 때 제기며 족보(100만원) 5권도 버렸는데 조선이 아닌
    지금 사는게 축복이라 생각해요.

  • 작성자 23.11.13 13:15

    시집 간 딸은 남의 집인 사람. 양자라도 아들이면 내 집안 사람. 딱 그거네요. 가문이 뭐라고.. ㅜ

  • 23.11.13 12:28

    대대로 양반인 집안은 모시는 사당인지 비석같은게 있대요. 그게 없으면 양반 아니라고 하더군요.

  • 작성자 23.11.13 13:16

    그것도 돈으로 만들지 싶은데…

  • 23.11.13 12:42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노비 비율이 엄청 높고 취급도 거의 동물만도 못한 매매를 했다고 하네요. 말씀하신 족보도 많이 사고 팔고..
    일례로 양반 비율이 충청도가 7프로쯤. 경상도는 4프로로 알고 있어요.
    지금 후손들은 대부분이 노예 출신이라는 얘기죠.

  • 작성자 23.11.13 13:18

    충청도가 전국에서도 높은 편이었죠?

  • 23.11.13 13:14

    조선이 노예제사회였다는 주장은 제임스 팔레를 위시한 미국 유럽역사학자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한국학자들은 반대 의견을 제시했구요. 노예제사회가 조선의 미개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이걸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20세기 내내 일군의 막스 역사학자들이 세계사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역사를 한 가지 모형으로 단순화시키는데 몰두했는데 21세기가 되면서 역사 발전의 다양성이나 상대성이 인정되면서 조선 노예제 논쟁은 예전에 비해서 중요하지 않은 논쟁이 되었어요.

    저도 조선이 사회구성체상 노예제사회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선은 노예제 생산양식을 위한 환경이 부재한 사회였습니다
    노예제 생산양식은 고도로 상업화된 목적의 생산에서나 발생합니다.(미국 남부의 면화생산, 주로 광산업 등에서)
    노예를 이용한 생산은 강한 채찍과 감시의 관리 체제를 발생시키는데 조선에는 이런 감시체제가 없었습니다.
    당시 노비가 비천한 처지이긴 했지만 그들도 엄연한 농촌 사회의 구성원이었어요.

    조선의 노비가 비록 노예의 상태로 비참한 삶을 산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존재를 이유로 조선을 노예제 사회로 볼 수는 없을 듯합니다. 단지 노예제 사회의 성격이 있었다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어요

  • 23.11.13 13:06

    아울러 조선을 농노제사회라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농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과 노비가 토지에 긴박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농노제사회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여기서 농사지으며 주어진 의무를 다하란 제도예요. 하지만 조선에서 양반 계급은 농민이나 노비에게 토지를 나누어주지 않았어요. 중세 유럽의 농노는 땅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조선의 농민은 땅을 떼이면 유랑걸식했지요.

    유럽의 농노와 조선의 노비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서유럽의 농노가 토지에 예속된 노동력인 것과 달리 조선의 노비는 인신적 예속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서유럽 농촌사회의 경우 재산상속 과정 중에 재산이 분할되더라도 보유토지만 분할될 뿐이지만, 조선의 노비는 인신적 예속성으로 인하여 하나의 재산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임신한 여비와 배속에 태아까지 각기 다른 상속주에 의해 분리 되어 가족해체가 빈번히 일어났어요. 노비의 노예적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이지요.

  • 작성자 23.11.13 13:10

    @슈 렉 논란인 부분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 읽으신 분들 슈렉님 댓글도 꼭 읽어보셨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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