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동자를 보는 내 눈동자
정끝별
눈동자는 보이는 것을 따라 움직인다 우리는 눈동자가 잠시 머문 것을 본다
그런데 눈동자에 안 보이는 것은?
행불된 생각을 볼 땐 눈꺼풀이 바삐 깜빡이고, 다르게 부는 바람을 볼 땐 눈
썹부터 들썩이고, 오리무중 마음을 볼 땐 눈꼬리가 먼저 올라간다 눈동자가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너를 보려면 내 눈동자부터 가려야 한다 눈동자는 가까이 있는 것만을 보려
하니
네가 없는 한밤을 지날 때도 두 눈꺼풀을 닫아야 한다 그림자가 그러하듯
그런 밤이란 있고도 없는 것이라서 안 보거나 못 보아야 건널 수 있으니
긴 잠을 든 너를 만나러 갈 때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바삐 가느라 네가 눈동
자를 열고 잠들었다면 살며시 닫아주어야 한다 내 눈물 그치면 너는 가길!
중력을 벗어나려면 눈동자에 든 눈독부터 덜어내야 하고, 다른 삶을 살려면
눈꺼풀을 내린 후 눈동자의 뒤편을 바라봐야 한다 꿈에 든 눈동자는 우주의
뒷면으로 돌아들기에
안 보이는 것을 보려면 보이는 것을 안 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네 눈동자를 볼 때 내가 눈을 감는 이유
정끝별
전남 나주 출생. 1988년 《문학사상》(시),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평론)로 등단.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는이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