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없었던 군대와 휴대폰이 있는 군대
- 지금도 병사들은 군대를 의무적으로 안갔으면한다. 왜 그럴까 -
지난해 후방지역의 사단을 방문해서 병사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자유시간이나 주말에 주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휴대폰과 함께한다는 답변이었다. ‘군대스리가’라고 하는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들은 그냥 과거의 추억으로만 존재할 가능성도 보였다.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 영화시청, 개인 SNS확인 등 거의 대부분은 휴대폰과 연결되었다. 후임병들은 생활관 내부에서 선임병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휴대폰 사용이 제한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이병부터 병장까지 모두 휴대폰 사용에 몰입해있어서 서로 터치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했다.
대대급 부대건물의 현관을 들어가보니 예전 군생활동안 보지못했던 새로운 장치가 있었다. 바로 병사들의 휴대폰 충전세트였다. 중대단위로 백여개의 휴대폰 충전기 선이 있고 잠금장치가 있는 보관장치였다. 개인휴대폰 사용제한 시간에는 예외없이 그곳에 반납하여 보관한다고 했다.
군대의 변화라는 것은 사회 어느조직보다도 더딘 편이다.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군대, 그러나 휴대폰이 있는 군대와 없는 군대는 확연히 달라진 느낌이다. 군대에 입대한 병사들이 겪어야하는 본질적 한계는 사회와의 단절이었다.
가족들이 같은 집안에 머물러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방에서 SNS로 서로 연락하거나, 거실의 TV를 켜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시선은 휴대폰에 집중해있는 것처럼 휴대폰은 일반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한 환경에서 생활하다가 입대한 장병들에게 휴대폰 사용은 당연하고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휴대폰을 통해서 연결되는 군대와 사회는 인간관계의 단절로 인한 두려움을 해소시켜주고 있으며, 엄지손가락을 통해 소통하는 군대바깥의 누군가에 의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크다. 고통과 절망으로 지쳐있던 마지막 순간, 열어보았던 휴대폰 화면에서 친구의 글자와 이모티콘을 보는 순간 다시 정상으로 회귀할 수 있는 것이다.
국방부는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시간을 점차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복무환경 개선 필요에 따라 국정과제로 반영하고 있는데, 현재 병사들은 평일 일과 후(18:00~21:00), 휴일(08:30~21:00)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하다. 앞으로는 사용시간을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일부부대에서 병 휴대전화 사용시간 확대를 위한 시범운영을 하고있는데, 어느 정도까지 사용시간을 확대할 것인가 여부와 함께, 부작용 최소화 대책도 수립하고 있다고 한다. 대략 금년 하반기에는 병 휴대전화 사용시간 확대에 대한 정책적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이 된다.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병역의 의무는 헌법 39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에 근거한다. 그래서 2021년 기준으로 한해동안 215,754명이 현역병으로 입영을 했고, 정부는 병사들의 급여를 2025년까지 병장기준 월 200만원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사기 및 복지 증진을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국방연구원이 육군과 해군 그리고 공군과 해병대 병사들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2021년)에 따르면 병사들의 군생활 만족도는 2017년부터 5년동안 49.9%에서 56.7%로 상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군복무 자체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는 것 같지 않다. 같은 조사에서 나타난 ‘국방의무에 대한 병사들의 인식’은 군생활 만족도와는 상이하다. 국방의무에 대한 긍정적 답변은 2017년 40.1%에서 2021년 25.8%로 감소했다.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다’는 답변은 38.2%에서 45.1%, ‘병역을 의무로 규정한 것은 잘못이다’라는 답변이 13.2%에서 18%로 상승했다.
병사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들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군대생활의 폐쇄성과 사회적 단절이 가장 큰 영향을 주고있다. 실제 부대에서 만났던 병사들은 한결같이 개인 휴대폰 사용을 적극 환영한다. 예전에는 복무를 잘하는 병사에게 포상휴가를 주는게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휴대폰 사용시간을 늘려주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군생활 만족도는 높아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휴대폰 사용시간을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것은 엄청난 징계이자 커다란 고통으로 인식한다고 했다.
사실 개인 휴대폰 사용은 장기간의 의무복무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 군대에게는 하나의 모험이었다. 휴대폰이 들어오는 순간 여러 가지의 사회적 문제들이 군내부로 유입될 것이고, 특히 보안 문제는 군대의 기강을 허물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많았다. 지금도 그러한 시각들이 여전히 살아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장병들이 휴대폰 사용으로 인하여 위치가 노출되어 대규모 피해를 입은 사례들은 휴대폰 사용에 대한 염려를 증폭시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현재 선진국 국가들의 대부분 군대, 군인들은 장교와 부사관 그리고 병사들 모두 개인 휴대폰을 사용한다. 물론 사용하는 시간과 장소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특히 작전이나 훈련시에는 사용을 제한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허용한다. 즉 휴대폰 사용은 대체적인 흐름이고 우리 군인들도 거기에서 예외가 될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병사들이 휴대폰을 합리적이고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여건을 보장함으로써 심리적인 안정과 함께 군생활의 즐거움과 활기를 배가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사기증진과 군 전투력으로 연계될 수있도록 시스템을 개발하고 여건을 보장하는 것이 최상책일 것이다.
휴대폰 사용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부작용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기준과 원칙을 수립하고 부단한 교육을 통해서 바로잡아가야 한다. 자동차 사고로 인하여 매년 3천여명이 사망을 한다. 그러나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해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을 전부 세울 수는 없는 것처럼, 휴대폰 사용이 일부 부작용을 발생시킨다고 해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거나 없었던 과거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병사들의 군생활 만족도가 높아지게 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전투력 강화로 연결될 수있다. 군 전투력은 강인한 훈련도 중요하지만, 충분한 복지와 함께 합리적이고 존중하는 군대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병사들의 개인휴대폰 사용은 이제 되돌릴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생산적인 군대문화 발전과 전투력 발휘와도 연계성을 찾아가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훗날 대한민국 군대의 역사는 휴대폰이 있기 전과 그 이후로 구분하여 기록될 것이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