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의 반성 노트
" 쿠치키씨,
저는 천상계로 올라가면 아무리 불러도 내려오지 않을 거예요.
함께 있는 동안에 제 말을 똑똑하게 듣고 마음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실천이 없는 가르침은 절대로 없으니까요."
다카하시 신지 선생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내게 부탁한 말이다.
그는 지금 이 세상을 떠나고 안 계신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중에는 모임을 만든 사람도 있고,
스승의 이름을 사칭하는 자도 있다.
악령이 붓다를 흉내내고 행세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는 그의 곁에서 일을 돕고 강연길에 동행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의 모습을 말없이 보고 듣고 실천하면서 마음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를 만난 것이 가장 큰 선물이며 행복으로 느끼고 있다.
그는 말법화한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정법이라는 법등을 켜서
영원한 생명의 길을 알려주었다.
불교와 기독교의 원점을 제시하여 만교가 귀일하는 진리를
문증, 이증, 현증으로 교시해 주었다.
그는 인간 내부에 잠든 법열의 기쁨을 많은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태우는 촛불처럼 모든 것을 바쳐 노력했다.
스승과 제자로서의 인연이 어떤 윤회과정에서 맺어진 것인지 모르지만,
그지없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쿠치키씨! 창고를 개조해서 참선 방을 만드셨네요?
주단 대신 낡은 담요를 깔았고,
책상 왼쪽에는 필통이 놓여 있고,
매일 밤 늦게까지 반성 참선을 하는군요."
처음 그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크게 놀랐다.
한 번도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없는데
내가 하는 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지적하는 혜안에 얼마나 놀랐는지,
겁까지 났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는 반성없는 생활은 정법이 아니라고 했다.
반성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향유하는 권능이며, 창조의 자유, 선택의 자유와 함께
인간이 누리고 있는 3대 특권 중의 하나다.
반성을 통해서만 반야의 문을 열 수 있다고 했다.
반성없이 선정에 들어 함부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소독을 하지 않고 수술대에 오르는 것처럼 위험천만이라고 했다.
나는 반성하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창고를 선방으로 개조하여
매일 반성 참선에 임했다.
반성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반성하는 방법도 한 가지가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입장에서 유형(기록), 무형(무기록), 정시, 수시로 머리를 써가며
지혜롭게 중단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반성을 시작하면 반드시 잡념이라는 정체 불명의 방해물이 등장한다.
잡념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아 참선을 여러 번 망친 적이 있다.
반성 참선이 아니라 과거를 회상하며 웃기도 하고 마음이 슬퍼지기도 했다.
참선 중에 회상에 잠기게 되면 급한 성미때문인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또 스스로 지어낸 잡념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모른다.
잡념을 떨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잘 되지 않자
결국에는 잡념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잡념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다시 반성을 시작하던 시점으로 되돌아온다.
처음에는 잡념과 싸움을 벌이면서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잡념이 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신의 자비라고 생각될 정도다.
같은 내용의 반성거리가 나타나도 세 번이든 네 번이든 기쁘게 반복하여 반성했다.
카르마는 어디까지 가야 그 밑바닥을 드러낼지 모를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초발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반성은 방법에 따라 여러 각도가 있어서 한정이 없다.
우선 자신의 마음속에 이런 것들이 있는지
노트에 기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절대로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2. 사물을 잘 파악하지도 않고 남의 주장에 찬성하고 나서는 일이 가장 나쁘다.
3. 어느 쪽인지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마음은
타인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혐오감을 남긴다.
4, 앞뒤를 살피지 않고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을 지껄인다.
하루 일과 중 이런 행동을 했는지 찾아보면 끝없이 많을 것이다.
사소한 일처럼 느껴지겠지만 자세히 반성해보면
자기를 전혀 모른 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반성하지 않는 쓸쓸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자신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를 세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나의 최대 결점은 성급한 마음이다.
나는 성급한 단기(短氣)를 수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연히 알고 있는데, 실생활에서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단 한 번에 고쳐보려고 덤벼든 적도 있었다.
고쳐질 리가 없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화가 나는 마음을 참아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인욕같은 너그러운 아량을 베풀기란 꿈 같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인내를 먼저 습득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인욕과 인내는 참는다는 뜻에서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전혀 다르다.
인내는 일시적으로 타협한 아욕의 독을 먹고 있는 ' 참음 ' 이고,
인욕은 이해와 용서로써 조화를 기다리는 사랑의 ' 참음 ' 이다.
지금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지만,
그때는 화를 참기위해 책상과 의자를 붙잡고 몸을 부들부들 떨기도 했다.
처음 반성을 시작한 때가 1971년 5월 이었다.
그때는 반성이란 말 자체가 생소했고,
참선자세를 취하는 데도 상당한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다.
참선이 잘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우선 자세만이라도 만들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으니 차츰 마음 깊은 곳에서 반성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일어났다.
정법 강연에 주로 등장하는 것이 ' 반성 ' 이었다.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해서 열심히 들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머리로만 이해가 되었다.
그러다가 강연을 듣던 중에 " 이것이다.' 하는 힘이 불끈 솟아오름을 느꼈다.
그 후 참선방을 만들기 위해 일찍 퇴근해서 기쁜 마음으로 창고를 고치고 반성을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50년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성격을 수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게 뭐 그리 어렵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조차도 힘들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반성을 하면서 어려운 벽에 부딪힐 때마다 회의를 느꼈다.
' 반성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무엇때문에 사서 고생하는가.
즐겁고 재밌게 보내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이렇게 고민하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정법강연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사명을 떠올렸다.
우리 인간은 모두 영혼을 정화하고 카르마를 수정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힘들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각자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명제를 잊어버린 채
틀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만일 영혼의 정화를 소홀히 하면
그것은 바로 자기 배신이며 약속 위반이다.
힘들 때마다 처음에 반성을 시작하던 결심을 생각하며 반성 자료를 기록했고,
참선동안 느꼈던 것을 가슴 깊이 명심하고 실천으로 옮겼다.
반성 참선을 한 후,
반성 노트에 잘잘못과 느낀 점을 기록해 나갔다.
같은 내용이 되풀이되어도 구애받지 않고 차례차례 실천해 나갔다.
지난 과거를 5년 단위로 나누어 반성했지만 치밀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인관계를 반성하는 면에서는 치밀했다.
* 부모와 나
* 아내와 딸과 나
* 형제 자매와 나
* 친척과 나
* 이웃 사람과 나
* 친구와 나
* 학교 선생과 나
* 직장에서의 나
* 사장과 나
* 회사 상사와 나
* 부하 직원과 나
* 거래처와 나
* 군대생활과 나
* 나를 도와준 중국사람과 나
* 특정 여성과 나
이와 같이 대인관계를 더욱 세분화하여 한 항목을 가지고
더 이상 반성할 것이 없을 정도로 진지하게 반성했다.
첫 번 째 항목에 대한 반성이 석연치 않을때는 다음 항목으로 나가지 않았다.
반성한 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거짓되고 허영에 가득차 있는 추악한 내 모습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일목요연하게 보게 되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남을 위선적으로 대하면서도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내 잘못이나 나의 추악함보다는 남의 잘못을 들춰냈던 것이다.
실망과 자괴감에 빠져 나락에 떨어져 있을 때.
고통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를 지켜보고 있는 수호령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연속적으로 반성을 하는데,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인간이 얼마나 결점이 많은 존재이며,
자신이 가장 우월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기억나는 사람을 모두 기록하는 방법도 있다.
소개를 받아 단 한 번 만났던 사람까지도 열거해보았다.
만난 장소, 시간, 계절, 환경 등과 함께 적어 반성의 자료로 삼았다.
지금까지 나를 중심으로 관찰했던 반성을 상대의 입장, 나아가 제 3 자의 입장에서
관찰하는 방식으로 뒤집어 보기도 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반성이란 어렵고 꽤 귀찮은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단지 생각일 뿐 실제로 실천을 해보면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에,
혹은 읽는 동안에도 문득 떠오르는 자신의 잘못이 있으면 책을 잠시 덮어두고
반성을 해볼 것을 당부하고 싶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머리로만 생각할 뿐 실천에 옮기는 것을 귀찮게 여겨,
시작도 못한 채,
끝나버리는 좋은 아이디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생각나는 사람들의 이름만 열거했을 뿐인데 놀라울 정도로 이름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단편적이긴 하지만
장소, 시간, 대화내용, 사건, 분위기, 환경, 등이 선명하게 떠올라서
다시 한 번 놀랐다.
인생은 대인관계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속에 놓여 있는 나와 상대방의 입장을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보았다.
상대방의 모습을 통해서 내 마음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다.
친구나 가족,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반성하는 방법은 둘도 없는 좋은 방법이다.
사람이나 사건이 다른데도 말이나 행동을 통해
나의 결점이 되풀이되어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반성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마음에 새긴 후
실천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또다시 잘못을 반복하고,
더 많은 잘못을 만들게 될 것이다.
반성,
개전,
실천,
의 되풀이가 지속되어야 온전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반성을 몸에 익히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 결점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결점을 수정하기 위해 깊이 생각한 후
행동으로 옮겼다.
1, 남에게는 엄격하다.
2,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3, 다른 사람 앞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양보한다.
4, 남의 말을 가로챈다.
5, 의심이 강하다.
6, 결심이 쉽게 서지 않는다.
7, 한번 결심한 일이라도 남의 말에 따라 자주 바뀐다.
8, 생각보다 말과 행동이 앞선다.
9,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10, 핑계와 구실이 많다.
11, 금방 뜨거워졌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같은 감정파다.
12, 사치가 심하다.
13, 다른 사람을 내 능력이상으로 동정한다.
14, 청중 앞에서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15,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다.
16, 사소한 일에 마음을 많이 쓴다.
17, 실패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낙담한다.
18, 자주 공상에 빠진다.
19,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까다롭다.
20, 응석꾸러기다.
21, 불평불만이 많다.
22, 남을 비판한다.
23, 집요하게 남을 원망하고 미워한다.
24, 자기 본위의 강한 결벽증이 있다.
25, 남이 보는 데서는 나서지 않는다.
26, 생각없이 말을 많이 한다.
위 사항들을 적은 후에 내게 해당되는 것이 있는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해당 사항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하고 있을 때였는지
곰곰히 살펴보았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결점을 알아내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한다.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지만 반성 참선을 거듭하며
작은 것 한 가지라도 붙들어 뿌리가 뽑힐 때까지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는 굳은 결심으로 반성 참선에 임했다.
그때는 단전호흡을 하면서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과거는 반성할 재료로 가득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반성은 남은 생애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참회를 해도 모자랄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반성을 완전무결하게 깨끗하게 끝내려는 마음가짐으로 덤벼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지나친 욕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조그마한 일이라도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반성하고 있다.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했지만,
매일 반성할 일들이 생겼다.
이런 생활은 평생을 해도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급한 성질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날이 없었는데,
이렇게 매일 반성의 생활을 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우쭐대고 있을 때였다.
"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반성은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아난 손오공만도 못합니다.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아주 조그마한 일입니다.
자만하거나 자랑스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뭘 꾸물대고 있습니까?"
수호령은 우쭐대고 있는 내게 엄하게 화를 내며 꾸중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해보니 수호령의 말은 당연했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이렇게 향상되었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대단한 착각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동안 힘들 때마다 수호령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반대로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이나
한결같이 반성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불교와 인연이 닿은 불자라도 반성 참선을 내일로 미루다가 인생을 마치는 경우도 많다.
그 중에는 반성 참선과 같은 마음 수행은 출가한 스님의 몫이라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자도 있다.
붓다는 출가한 스님을 상대로 설법한 것이 아니고
일반 대중을 상대로 설법했다.
불교는 자력으로 성불하기를 가르치는 것이었지,
부처에 매달려 구걸하는 타력신앙을 가르치지 않았다.
맹목적인 믿음이나. 광적인 믿음은
인간이 만들어 낸 신앙이며, 신리와는 거리가 멀다.
절이나 교회에 가서 남이 보는 앞에서는 열심히 기도를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기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다.
또 기도를 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을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지 않고 건강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자세다.
타력 신앙에 매달리지 말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반성이란 지난날의 생각과 행위를 되돌아보고 신의 뜻에 맞는지 안 맞는지
마음속으로 묻고 대답하여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다.
단지 과거를 회상하여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반성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여 영혼의 단계를 높일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여유로워질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다.
- 부처님 손바닥에서 30 년,,,쿠치키 다케도-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