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세계에서 상대를 복종시키는 방식은 맞짱을 떠서 제압하는 것 외에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세계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할 것이다.
폭력이라고 하는 원초적 방법외에도 금력, 권력, 지위등으로 표상되어지는 파워에 의한 것이
있을 수 있고, 말로서 상대방의 정신 세계를 압도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힘에 근거한 폭력으로 지배하는 방식과 말씀에 근거한 구원으로 지배하는 방식은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두 힘의 벡터는 같은 방향을 지향하며 더욱 강력한 힘으로 존재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놓여져 길항작용을 하며 결국엔 소멸해 버릴 것인지
영화 ‘이끼’는 해답의 한 단면를 보여 주고 있다.
전직 형사 출신의 이장 천용덕(정재용 분)은 현 사회의 처벌 시스템으로는 인간을 교화시킨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죄(방화, 살인등)를 저지른 전과자들을 새로운 영토에서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의 통과의례는 가혹하리 만큼 잔인한 폭력적 구타인데 이것은 마치 기독교에서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한 세례의식의 환타지이다.
그리고 폭력에 의하여 인간을 길들인다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자인하며 유목형(허준호 분)을 끌어들이는데...
유목형 역시 월남전에서의 살인에 대한 상흔으로 괴로워 하며 지내던 중 성경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삼덕 기도원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으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있던 중이었다.
새로운 영토에서 유사 가족의 형태를 띠며 이장에게 절대 복종을 하며 지내던 이 들에게 유목형의 부음을 듣고 달려온 아들 유해국(박해일 분)이 나타나면서 이 마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근대화 이후 가족이란 스위티 홈이란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동일성의 장 (場)을 이루며 이질적 타자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가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랑 혹은 충성이 존재해야만 하는데 천용덕이 새롭게 구축한 그들만의 城에서도 타자에 대한 밀어냄과 구성원간의 충성이 과잉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해국의 집요한 성격은 마을 사람들의 기이한 배타적 태도 때문에 오히려 마을에 머물게 한다.
유해국은 마을에 머물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 싼 의혹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이장과 마을 사람들의 미스테리한 관계의 비밀이 드러난다.
과연 유목형은 이장 천용덕과 그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크리스찬에게 구원의 말씀은 신앙의 핵심일 터이지만 성경 말씀 대로만 살라고 하는
근본주의자들의 모습은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을까?
교회에 와서 세속의 삶을 회개하고 복음의 말씀을 듣고 가지만 또 다시 현실 세계에서는
적당히 욕망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오늘날 예수가 교회에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천용덕과 그 마을 사람들은 유목형의 말씀을 듣고 감동하며 심지어 생식까지 하며 지내지만
결국은 유목형 몰래 육식을 하며 읍내에 나가 성적 욕망을 충족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그 일을 계기로 유목형은 천용덕을 칼로 찌르려고 하지만 천용덕의 계략에 말려 신적인
존재로서의 가치가 상실되어 진다.
결국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유목형은 불편한 존재이고 또 다른 면에서 가해자이기도
한 셈이다.
영화 이끼는 인간 본성의 그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원작 만화에서는 이영지(유선 분)가 그다지 부각되어 있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상당히
비중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아버지의 부음을 전한 사람도 그녀이고 유해국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주는 것도 그녀이다.
하지만 그녀 또한 유해국에게는 알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이장 천용덕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에게 몸을 허락하기도 하는 이영지는 사실 유목형에게
구원을 받았다고 실토한다.
그러니까 몸은 허락했을 망정 영혼까지 천용덕에게 허락한 것은 아니다.
가공할 폭력세계에 접해 있으면서도 그 외부에 자신의 정체성을 접속시키며 끝내
절대 권력에 포섭당하지 않는 정신을 나는 진정한 여성성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경쟁과 효율이 난무하는 학교 현장에서 나는 나의 정체성을 외부에 접속하지 못한 채
그 내부 시스템에 접속하면서 현실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영화의 엔딩 장면은 이영지가 이장이 쓰던 집(마을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별장 같은 집)을
소유한 모습으로 그려지면서 크레딧이 올라간다.
강우석 감독은 스릴러 영화의 관습처럼 열린 결말을 화두로 던지면서 끝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력의 주체가 바뀌며 마을은 새롭게 꾸며지고 있다는 변주인 것일까?
영화 이끼는 스릴러 적인 반전의 묘미는 약하지만 인물의 캐릭터가 살아 있고,
스토리 텔링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열어 놓고 있고,
정재용의 청년시절과 노년 시절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분장 기술이 뛰어나며,
만화적 느낌이 확 묻어나는 미장센도 멋지게 연출 되었고,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음악과 효과 음향도 수준급이다.
그런면에서 강우석 감독은 대중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드를 읽어내고 연출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영화는 확실히 재미있다.
첫댓글 전에 고등학교 홈피에 올린 글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해서 현학적으로 쓰고 말았네요
역쉬~ 말발이 현란해. 영화 평론가가 따로 없네. 영화 광고 그냥 흘려 보았는데, 읽고 나니 영화가 보고 싶어졌네. 꼭 찾아서 봐야쥐. 보고 내 의견 올릴게~
아 ~ 예리해 예리해! 영화 이끼 꼭 보고 말테야요. 나는 나의 정체성을 외부에 접속하지 못한 채
그 내부 시스템에 접속하면서 현실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이부분에서 짠한 건? 현실을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으로 자위하는 내 모습이기도 하기에... ㅠ ㅠ
전에 이글을 보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랐고 며칠전 시댁에 가서 하룻밤 자는 사이 TV에서 이끼를 보았는데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몰라 다시 이글을 봅니다. 유목형은 왜 이장을 칼로 찌르려 했는지. 기도원엔 왜 집단으로 살해 되었는지 도무지 모르는 것 투성이~, 재미도 없고 난해하고 미스테리를 기대했는데 시시하고. 근데 보거스님의 설명을 보니 좀 알것 같네요. 우리나라 영화도 이렇게 설명해 주는 곳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같은 사람한테는. 참고로 예전에 보았던 심은하 한석규 주연의 미스테리 영화 있었는데 그것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지금도 궁금해요. 갑자기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시간되시면 그것도 설명 좀 부탁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