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후에서 1980년 까지 세계는 가장 안정적인 호황을 누렸다.
특히, 미국은 모든 산업이 안정적이고 평등한 임금 체계였다.
농업 역시 소농 중심의 가족농이 많았다.
오래전 방송 되었던 미국 드라마 ‘월튼네 사람들’은 그 시절 미국 농촌의 이야기다.
한국은 ‘월튼네 사람들’을 모방 하여 ‘전원일기’가 방송 되었다.
그러나 두 드라마 모두 더 이상 방송되지 않는다.
1980년 레이거니즘과 대처리즘이 시작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FTA 자유무역 이 등장했다.
마약의 국제 유통은 전 지구적인 현상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사회적 불평등은 너무나 심해졌다. 따라서 노동운동 역시 급격해졌다.
각국 간의 무역 불균형 역시 심해졌다.
공공 부분 역시 민영화 되기 시작했다.
한전도 역시 다른 기업처럼 경쟁이 필요하고 .이익을 내야 했고, 주식회사가 되고 증시에 상장이 되었다.
공공 기업의 원래의 목적은 경제적 수익과는 상관없는 공익이 목적이다.
그전까자 공공기업의 적자라는 개념은 생소한 것이었다.
정부의 관리하에 있던 은행들이 전부 민간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때부터 은행원의 임금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정부 관리 하의 은행들은 수익에 별관심이 없었으나, 민영화 되면서 예대마진이나 파생 상품에 주력을 하게 되었고, 국민들의 이자 부담은 더욱 늘어났다.
보호무역이 자유무역으로의 변화는 엄청난 부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기업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공장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수출 주도의 삼성전자는 세계적 기업이 되었다.
FTA 덕분이다.
FTA는 승자 독식이다.
FTA는 기술이 강한 기업만이 살아 남는다.
한미 FTA의 지적 재산권은 가수의 수입을 상승 시켰다.
노래 잘하는 BTS도 그래서 세계적인 가수가 된 것이다.
농업 부분의 FTA는 인정 많던 농업을 살벌한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더 이상 ‘전원일기’ 나 ‘월튼네 사람들’ 같은 드라마는 존재할 수 없다.
농촌은 오로지 돈이 되는 환금 작물과 비닐하우스의 천지가 되어 버렸다.
농업이 제조업이 되어버렸다.
FTA 덕분에 한국의 기업들은 오로지 수출만이 살 길이 되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승리하는 기업과 무너지는 기업들이 극명해졌다.
수출과 기업 경쟁의 落水效果는 국가 전체에 골고루 분배되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기업 내에서의 임금의 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FTA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는 공산 국가 마저도 새로운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
더 이상 공산주의 국가는 없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부터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는데, 그 즉시 한국은 IMF의 위기 속으로 빠져야 했다.
그것의 원인은 평범한 노동자의 잘못이 아니었다.
멀쩡한 외환은행 마저 그때 미국의 BLACK MONEY의 손으로 넘어가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당했다.
신자유주의는 서비스업 마저 불황에 허덕이게 되었고, 지역 경제의 불균형은 더욱 심해졌다.
국가 채무 역시 엄정나게 늘어났다.
대표적 신자유주의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이 된다고 믿었으나,
그것이 원인이 되어 세계 1, 2 차 대전이 터질줄은 아담 스미스도 예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각국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보호무역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때부터 자유무역이 시작되기 전까지 각국은 안정된 경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이 또래들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과거를 그리워한다.
그렇게 80년대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 시절 한국은 보호 무역을 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과거는 없고, 과거는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