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불사七佛寺 아자방亞字房(국가민속문화재)
칠불사는 순조 30년(1830) 화재로 전소된 것을 183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후 1907년 칠불사 전체가 토비의 난으로 훼손된 것을 중수했고, 1949년 여순 사태 때 국군이 공비근거지가 될 것을 우려해 불태운 것을 1981년 중건한 것이다. 1976년 아자방지로 지방유형문화재 제 144호로 지정됐다. 이후 발굴조사 후 복원한 후 국가민속문화재로 승격됐다.
아자방의 구조는 특이하다. 평면이 한자 ‘亞’자처럼 생겼다고 아자방이라고 불린 것이다. 방 가운데 十자 형 통로가 있고 양쪽에 50㎝ 정도 높이로 ‘ㄷ’자 형태로 높여 놓았다. 양쪽 ‘ㄷ’자 부분은 벽을 향해 앉아 좌선하는 곳이고 가운데 十자 형 통로는 좌선을 하다가 굳어진 몸을 가볍게 걸으며 풀어주는 경행처經行處라고 한다. 아자방처럼 온돌이 탁자처럼 올라간 것은 회암사 서승당지, 미륵사지 고려시대 유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좌선을 하는데 적합한 구조라 조선 후기까지 내려온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이유로 칠불사 아자방은 내가 한옥을 공부하기 시작한 때부터 주목했던 곳이다. 그러나 인연이 닿지 않아 못가 봤다. 아자방은 지방문화재였는데 발굴조사를 거쳐 온돌을 새로 놓으면서 국가민속문화재로 승격됐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승격된 것을 기념해서 초파일인 5월 15일까지 개방한다고 해서 2월 말에 다녀왔다.
다녀온 후 발굴조사보고서와 아자방을 소개한 책과 기타 자료들을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자료를 살펴봤으니 글을 쓰려 했지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이유는 이것이 국가지정문화재로 될 만한 것인가에 대해 회의가 생긴 것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지방문화재가 맞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칠불사가 오래 전부터 선맥을 이어온 절이라고 하지만 ‘아자방에 대한 기록이 과연 맞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자방이 한 번 불을 때면 100일 갔다는 이야기는 그냥 전설일 뿐이고. 온돌 이야기보다는 선방으로서 특별한 구조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나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자방의 신비함을 일반인들이 기록으로 접하는 것은 1939년 9월 8일 동아일보 <천년아자방의 신비>기사가 처음 일 것이다. 이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암내庵內에 아자형亞字形으로 된 이중온돌방二重溫突房이 있는데 신라지마왕新羅祗摩王八年 담공선사曇空禪士가 축조築造한 것이다. 천유여년千有餘年의 장구長久한 歷史역사를 가지고 현금現今에 지至하기까지 일차一次의 개수改修한바 무無하였으니 한번 불을 때이면 三日間은 온기溫氣가 골고루 지속持續된다는데 고석古昔 우리의 교묘巧妙한 예술藝術에 탄복歎服할 따름이다.”
이 기사가 확산되면서 아자방 신화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발굴조사보고서를 보면서 더 깊어졌다. 발굴조사보고서를 보면 고려시대 유구인 초석이 발견돼 아자방이 고려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은 확인됐다. 그러나 그 이전의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아자방 발굴조사 결과로 보면 아자방의 건축 연대는 고려시대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아자방이 신라시대부터 이어왔다는 것은 전설일 뿐이다.
발굴조사보고서를 보면 고려시대 초석배열이 현 건물 가운데 있다. 고려시대 초석이 원래 건물 중간에 있었다면 그리 크지도 않은 건물 가운데 기둥이 있는 이상한 구조가 된다. 보고서에서 고려시대 아궁이 흔적이 나왔는데 고려시대 건물 가운데 기둥이 있었다면 온돌의 고래 배치가 지금처럼 될 수 없다. 일단 고려시대 온돌 흔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온돌은 조선시대 후기의 온돌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발굴조사결과를 보면 동아일보에서 언급한 2중 온돌구조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자료로 볼 때 칠불암 아자방은 건립연도가 고려시대를 넘지 못하고 현재 온돌은 조선시대 후기 온돌이다. 또한 100일간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그냥 전설일 뿐이다. 이런 발굴조사 결과와 이미 조선 후기 건물도 불에 타 소실된 것을 1981년에 중건한 것이다. 그런 것을 고려할 때 1971년에 ‘아자방지亞字房址’라는 이름으로 지정된 지방문화재가 맞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자방이 특이한 구조라는 점에서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그러나 1900년 이후 화재 또는 멸실로 두 번이나 복원했고, 그 과정에서도 조선시대 온돌을 제대로 복원한 것인가 하는 것도 밝히지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신라시대 때부터 있었다는 전설만 가지고 아자방에 대한 가치를 확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추신 : 칠불사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아자방과 똑 같은 구조를 가진 아자방이 하나 더 있다. 이 건물은 아자방 온돌을 제대로 복원을 하기 위해 먼저 시험적으로 지은 것이다. 이렇게 시험해보고 지었다는 것은 다른 문화재복원사업에서도 참고할 만한 것이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 하동 칠불사 아자방/하동군‧극동문화재연구원/2019
- 천년의 비밀 아자방 온돌/김준봉/어문학사/2022
- 회암사의 건축/양주시립회암사박물관/2018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千年亞字房의 神秘/동아일보/1939.09.08.
추가 글 :
아자방에 다녀온 분이 “주지스님 말씀이 온기가 한 달 이상은 지속된다 합니다. 아궁이 크기, 나무를 잔뜩 넣은 뒤 입구를 막고 공기를 조절하는 방식에 많은 동감이 있었습니다.”라는 댓글이 있어 답변한 것을 다시 정리한 글이다.
집에서 온기를 보전하려면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이 열손실방지다. 열손실을 줄이려면 우선 건물자체가 단열이 잘돼야 한다. 옛날 한옥은 단열에 문제가 있었다. 이번 새로 고쳐지은 아자방은 이중창을 만드는 등으로 단열과 열손실 문제를 보완했다.
다음으로 불 땐 후 열기가 빠지지 않은 시설을 했다.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를 보면 불을 들인 다음 적정온도가 된 후 공기가 들어가는 모든 곳을 막아버린다. 그러면 그 열이 오랜 동안 보존된다. 여기도 그런 시설을 했다. 우선 아궁이를 막는 것은 기본적인 방법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아궁이에는 문을 달아 놓는 경우가 있다. 바깥공기가 유입되는 것은 막기 위함이다. 아자방에서는 굴뚝으로도 공기가 빠지지 못하게 회전하는 철판을 시설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아궁이에 불을 들인 다음 수직으로 서있던 철판을 90도 회전시켜 굴뚝을 막아 공기가 새는 것을 차단했다.
무엇보다 땔감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천년의 비밀 아자방 온돌>이란 책에서 과거에는 지게를 지고 아궁이로 들어갈 수 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면서 아궁이를 크게 했다고 한다. 이것은 땔감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따뜻함의 기본은 투입된 에너지가 얼마인가다.
큰방을 촛불하나로 데울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예전보다 따뜻하게 지내는 것도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좌선하는 곳은 단차이가 있다. 진흙과 돌 등으로 쌓아 만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온기를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조건들이 어우러져 아자방 온기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