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티 산장에서의 아침은 부산스러웠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 하룻밤을 보낸 트레커들이지만 각각의 출발시각은 달랐기에, 아침식사를 하는 와중에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졸린 눈을 비비며 식당에 들어섰다. 빵과 시리얼 등을 푸석한 입으로 씹는 동안 가장 큰 고민은 이제 곧 스위스로 향한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 이탈리아보다 물가가 높기로 소문난 나라인데다, 지도로 확인할 수 있는 숙소 간의 거리가 애매해 스위스를 통과하는 내내 하룻밤 묵을 곳을 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걸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시간에 운명을 맡긴 채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 엘레나 산장을 지나 이탈리아-스위스 국경인 그랑 콜 페렛으로 오르는 길.
↑ TMB 코스를 걸으며 보이는 몽블랑 산군은 변함없이 웅장한 기세를 보여주지만 연일 이어지는 트레킹 중에는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좋은 것도 계속 보면 밋밋해지는 법
보나티 산장은 레 우쉬 기점을 기준으로 TMB 코스의 절반 정도를 걸은 지점이다. 날짜 수로 5일차에 접어들고 나면 슬슬 주변 풍경에 감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몽블랑 산군을 도는 동안 나날이 다른 산세를 보여주지만, 계속 보니 비슷한 풍경으로 느껴지고 걷는 길은 초원으로 이어질 뿐이니 밋밋할 따름이다. 그래서 빠른 발걸음으로 길을 쫓아가는 일에만 치중하게 된다.
전날 보나티 산장으로 향하던 길과 별반 차이 없는 초원지대를 걷다보니 길이 좌측으로 빠지며 지그재그로 하산을 시작한다. 이윽고 식당 몇 곳이 자리 잡은 곳에 이르고 길이 도로 쪽을 향하는가 싶더니 이내 초원 방향으로 인도한다.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이정표를 만나는데 TMB 코스를 가리키는 방향으로 파란색 줄이 쳐져 길을 막고 있다. 별생각 없이 넘어가기 위해 줄에 손을 댄 순간 눈앞이 번쩍한다. 전기가 흐르고 있는 것. 그럼 어느 길로 가야하나 혼란에 빠져 있는 사이 뒤따라오던 3인조의 폴란드 트레커들을 조우한다. 그들을 잡아 세우고 줄에 전기가 흐르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니, 그들은 알려줘서 고맙다며 대수롭지 않게 배낭을 내려놓고 줄을 넘어간다. 그러면 되는 건데…. TMB 트레킹을 하는 동안 계속 느끼는 것이 나와 그들의 기본적인 생각 차이다. 길을 막아놨으니 들어가면 안되는 건가라고 고민하는 한국인과 아예 못 지나가도록 막지는 않았으니 넘어가면 된다는 유럽인의 생각. 실행하고 나면 별 것 아닌 일인데 문제를 마주했을 때의 대응에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 전기가 흐르는 줄에 대해 이야기해주자 폴란드에서 온 트레커들이 아무렇지 않게 줄을 넘을 준비를 한다.
전깃줄로 길을 막은 것은 초원에 방목한 소들을 막기 위함이었다. 트레커들은 이런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이 줄을 넘으며 엘레나 산장(Refuge Elena)으로 향했다. 해발 약 2000m에 위치한 엘레나 산장은 마당 앞으로 몽블랑의 산군이 바짝 다가서 있어 볼거리를 준다. 이곳에서 잠시 쉬고 나면 해발 500m를 곧장 올라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야 한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지나야하는 '깔딱고개'에 몸서리가 쳐지지만, 이탈리아-스위스 국경인 그랑 꼴 페렛(Grand Col Ferret)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올라설 수 있다. 주변 산군들에 흐르는 빙하의 풍경이 멋지지만 바람이 매우 거세어 오래 쉴만한 곳은 못된다. 이어 하산하는 길은 외길의 초원지대를 걷는다.
상당히 지루한 길을 내려가면 라 뻬울라(la Peula)에 도착한다. 음식과 음료를 구할 수 있는데 이제 스위스로 넘어온 터라 메뉴판 해석이 거의 불가능하다. 스위스어 표기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 더욱 영어와 거리가 멀다. 라 뻬울라를 지나면 완만한 내리막을 걷다가 계곡과 도로를 만난다. 이곳에서부터 페렛(Ferret) 마을까지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 저 다리로 계곡을 건너면 스위스-프랑스 국경인 꼴 데 발므로 가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페렛 마을에 도착하면 큰 유혹을 하나 받는다. 마을 입구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다음 목적지들인 라 포울리(la Fouly)나 프라 데 포트(Praz-de-Fort)로 갈 수 있는 것. 이 버스를 이용하면 오늘 내에 스위스 구간 중 가장 큰 마을인 샹페(Champex)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유혹이 더욱 커진다. 고민 끝에 샹페까지 못가더라도 걷는 쪽을 택했으나, 이 결정은 큰 후회가 되어 돌아왔다. 페렛 마을을 벗어나며 천둥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 비를 뚫고 제법 큰 마을인 라 포울리를 지나고, 인근의 큰 캠핑장에 이르자 비가 잦아든다. 오토캠핑장인 듯 장소도 넓고 시설도 잘 갖춰진 곳인데, 이날 일정을 끝내기에는 시간이 애매해 그대로 통과한다. 이어지는 계곡 옆길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걸었지만, 역시 한계는 프라 데 포트까지였다. 어스름이 지기 시작해 묵을 곳을 찾았으나 아쉽게도 프라 데 포트에는 오래 전에 영업을 중단한 듯한 숙소 밖에 없었다. 결국 야영할 곳을 물색하며 조금 더 걷다가 이서트(Issert)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서 배낭을 풀었다.
↑ 이서트 마을이 지척에 보이는 자리에서 야영을 감행하니 스스로도 뭐하는 건가 싶었다.
빗속의 트레킹은 추억이 되지 못한다
텐트를 치지 않고 침낭 커버만 뒤집어쓴 채 잠을 청했는데, 새벽 4시쯤 비가 내리는 기척을 느꼈다. 동이 틀 무렵에는 비가 그쳐 다행스러웠으나 배낭을 꾸려 길을 나서기 시작할 무렵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해 부담되는 하루를 예고했다. 이서트 마을을 지나 숲길을 걷는 내내 비가 오거나 짙은 안개가 끼는 등 날씨가 좋지 않더니, 드디어 샹페 마을에 도착할 때쯤에 엄청난 소나기가 내렸다. 가뜩이나 밤새 젖은 장비를 배낭 안에 쑤셔넣은 참에 온몸이 젖을 정도로 비가 오니 걸음을 이어갈 마음이 풀려버린다. 그래서 샹페 호수가 보이는 한 가게에 자리를 잡고 눌러앉고 만다. 오전부터 맥주를 주문해 마시며 짜증을 달래는데, 옆에 있던 중년의 남자가 비 내리는 호수를 보더니 "워킹 인 더 레인을 부르고 싶은 날이지 않느냐?"라는 말을 건네고 이내 자리를 뜬다. 그래, 어차피 홀딱 젖은 몸인데 짜증을 내서 무엇하랴. 그런 생각을 하는 중 비는 그쳐가고 다시 걸을 힘이 났다.
↑ 비오는 샴페스 마을을 지나가는 행인. 말 그대로 워킹 인 더 레인이다.
샹페를 지나면 한동안 가게가 없으므로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준비를 하고 이동하는 것이 좋다. 도로를 따르다가 샹페를 벗어나면 숲길과 작은 마을을 번갈아 지난다. 샹페에서 1시간 정도 걸으면 한 산장에 도착해 가벼운 식사 정도는 할 수 있다. 이후로는 산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금방 그칠 기색이 없는 비라 온몸을 적시며 꾸준히 걷는 수밖에 없다. 산길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며 이어지고 비로 인해 몸은 계속 무거워진다. 흐린 날씨에 주변 산군을 볼 일도 없어지니 그저 얼른 산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렇게 오후 내내 걸어 콜 데 라 포클라즈(Col de la Forclaz)에 도착한다. 이곳은 도로변에 가게 하나와 호텔 하나만이 달랑 있다. 값이 비쌀 것이 분명한 호텔을 피하려면 1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하는데, 하루 종일 비에 젖은 마음은 호텔에서 묵기를 희망한다. 결국 스스로에게 힘들었던 하루를 보상해주자는 생각이 들어 호텔을, 그것도 싱글룸을 지르고 만다. 가격은 133스위스프랑, 한화로는 약 15만원 정도의 부담이지만 덕분에 비에 젖은 옷을 정리하고 호화롭게 하룻밤을 보냈다.
↑ 지도에 없던 산장에서 마주친 스위스 소녀. 현대의 알프스 소녀에게는 휴대폰 안테나가 더욱 중요하다.
7일째 아침, 날씨는 여전히 흐렸지만 더 이상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어느덧 스위스 구간도 막바지에 이르고, 다시 프랑스로 들어갈 길이 멀지 않았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길을 나서니 발걸음은 숲길로 이어진다. 초반은 평지에 가까운 길을 걷지만 다리를 통해 계곡을 건너면 오르막이 시작된다. 점심 즈음까지 산장이 있는 콜 데 발므(Col de Balme)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길을 계속 오르다보니 2시간 만에 산장이 나타난다. 지도의 거리상 콜 데 발므일 수는 없어 확인해보니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작은 산장이었다. 이곳에서 잠시 쉬는데 산장 주인이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물어본다. "한국"이라고 대답하자 반가운 내색을 하며 "내 딸이 한국에서 공부를 했다"며 와이프를 부른다. 서투른 영어로 대화를 이어보니 큰 딸이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할 동안 주인의 와이프도 2년을 한국에서 보냈단다. 큰 딸은 한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캐나다로 갔고, 본인은 다시 스위스로 돌아왔다는 것. 그들은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었지만 단지 내가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친밀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나려하자 "앞으로 이어지는 길에 돌이 많고 얼음도 있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한다. 다시 만날 일이 없을 테지만 잠시 함께 있는 시간만이라도 배려해주는 그 마음이 고맙다.
바윗길을 걷고 얼음길을 지나는 동안 짙은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시야가 짧아지니 답답해지고 아무리 걸어도 콜 데 발름의 산장이 보이지 않으니 마음만 급해진다.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던 산장은 2시간을 꼬박 걷고 나서야 나타났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온통 안개투성이에 바람마저 심하게 부는 추위에 몸을 녹이기 위해 산장으로 들어섰다. 늦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주인 할머니에게 음식 메뉴를 달라고 하는데 영어를 모르는지 도통 알아듣지를 못한다. 손짓으로 먹는 시늉을 해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어 난감한데,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트레커가 내 말을 통역해 전달해준다. 산장의 손님이라고는 나를 포함해 달랑 둘 뿐이었어서, 그가 아니었으면 한참 실랑이를 할뻔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식사를 주문했는데 가격에 비해 양이 너무 적어 실망스럽다. 그 사이 한 외국인 트레커가 새로 들어오더니 나에게 "이곳 음식은 어때?"라고 묻는다. 느낀 그대로 "먹을 만은 한데 양이 턱없이 작아"라고 답해줬더니,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이내 턱없이 작은 샌드위치가 나오자 나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게 눈 감추듯 샌드위치를 해치웠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이런 곳엔 오래 있으면 안된다"고 속삭인 뒤 산장을 빠져나간다. 그의 말대로 나도 산장을 나와 길을 재촉한다.
↑ 종일 비를 맞은 다음날인 7일째 오전에는 다행히 날이 개었다.
다시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여정
콜 데 발므는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이다. 산장을 나서자마자 이어지는 길은 드디어 다시 프랑스로 들어선다. 그와 동시에 점점 날이 개이니 풍경마저 급변하는 느낌이다. 웅~웅~ 소리를 내며 지나다니는 케이블카의 소리를 들으며 저 아래 보이는 마을로 하산한다. 콜 데 발름에서 1시간 30분 여를 걸으면 레 뚜르(le Tour)에 도착한다. 근 이틀 만에 산에서 내려서니 마치 트레킹을 모두 끝낸 듯한 착각이 든다. 또한 이 마을은 샤모니 무료순환버스 01번의 한쪽 종점이기도 하여 당장이라도 샤모니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완주를 포기할 트레커가 어디 있으랴. 미련을 꾹 누르고 다음 코스를 이어간다.
↑ 보나티 산장을 출발하며 계속 보아왔던 초원지대를 지난다.
레 뚜르에서 식료품을 구매하고 싶었지만 식당들만 눈에 뛸 뿐 마트 같은 곳은 보이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한 곳 정도는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산길에 접어들 때까지 끝내 마트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좀 비싸더라도 식당에서 뭔가 사올걸'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산 입구에서 길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앞으로 나올 산장을 기약하며 다시 산을 오른다.
레 뚜르를 지나며 약해졌던 마음을 다잡으라는 뜻인지 오르는 길이 만만찮다. 같은 시간에 이 구간을 걷는 트레커가 없는지 산을 오를수록 인적이 드물어진다. 심지어 프랑스로 들어서며 쾌청해졌던 날씨가 점점 흐려지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이내 시커먼 바위들이 길 앞을 막아서며 옹색해보이는 철제 사다리가 여기가 길입네를 알리고 있다. 때마침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하며 위기감을 형성한다. 사다리를 잡고 올라갈 때 번개라도 친다면? 산중에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약해지며 겁이 덜컥 든다. 급히 사다리를 잡고 바위 하나를 넘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사다리가 나타난다. 방법이 없다. 능선까지만 오르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계속 가는 수밖에.
능선에 오른 후에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길은 편해졌지만 이정표에 표기된 시간 상 호텔이 있다는 플레제르(Flegere)까지 가기는 불가능해보였다. 결국 플레제르까지 1시간 남았다는 이정표 앞에서 고민을 한다. 시간이 늦더라도 플레제레까지 갈 것이냐, 아니면 이곳에서 야영을 할 것이냐. 그런데 날씨가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갑자기 비가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다른 생각을 할 것 없이 얼른 텐트를 설치해 TMB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 빗속에 야영을 감행한 후 마지막 날 아침. 몽블랑 방면으로 온통 구름이 가득 찼다.
밤새 비가 내리는 것 같더니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날씨는 여전히 흐려 길을 재촉할 이유를 제공했다. 1시간을 걸어 플레제르에 도착하니 그제야 트레커 차림의 사람들이 다시 보인다. 그들의 뒤를 쫓아 여유롭게 걸을 생각이었는데 다시 소나기가 내리며 일을 망친다. 사실 TMB 완주를 고집한 이유 중에, 샤모니 숙소에서 올려다보던 브레방(le Brevent)에서의 풍경을 기대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지겹게 내리는 비와 짙은 안개는 10m 앞도 보이지 않는 하얀 백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결국 브레방을 지날 때는 지나든가 말든가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었다.
↑ 산 아래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며 금방이라도 내려설 것 같지만 이 자리에서 2시간 이상을 걸어야 레 우쉬에 도착할 수 있다.
브레방을 넘으면 기점이자 종점인 레 우쉬까지 내리막이다. 벨 라찻 산장(Refuge de Bel Lachat) 즈음에 이르자 서서히 날씨가 풀리며 산 아래 마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저기까지만 내려가면 TMB 종주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지는데, 직선으로 하산하는 것이 아닌 능선을 따라 서서히 내려가는 길이다보니 기분처럼 금방 하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오후 6시가 가까워올 무렵에야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뒤에서 내려오는 트레커들이 산길을 달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니 샤모니로 가는 버스의 막차 시간이 머리를 스쳤다. 만약 버스를 놓친다면 샤모니까지 걸어가는 일은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레 우쉬에서 하루를 묵는다면 돈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속력을 내어 달렸다. 흙이 깔린 산길에서는 그나마 괜찮았으나, 산을 벗어나자 버스정류장까지 도로를 따라야하는 일이 고역이었다. 막판에 비지땀을 흘려가며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시간을 확인해보니 막차까지 2대는 남아있다. 이 허무함을 어쩔까 싶지만 달리기를 시전한 트레커들이 달린 이유도 모른채 따라 했으니 그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저 '아까 달린 것 때문에 내 무릎 연골이 1mm는 닳았을거야'라고 자책하는 수밖에. 2013년 여름 휴가를 빌미로 계획한 TMB 트레킹은 이렇듯 다소 냉소적인 기분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완주를 하겠다는 무리한 일정을 짜기보다는 유럽의 트레커들이 즐기는 방식처럼 2~3일 정도의 트레킹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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