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워하는 대상! 일본인은 최근 사극으로 인기리에 종영된 이순신 장군이 활약하던 조선 전기 1592년부터 7년의 임진 왜란과 이후 조선 말기 1900년대 이후 일제 36년을 겪으며 민족성 감정으로 자리잡은 근원적인 민족의식의 단면일수도 있지만 어쩌면 지금의 상황에서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식민지 시대에 고통을 준 일본국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빈들이 만나본 여섯명 일본인들은 짧은 만남이였지만 그들은 상당히 순수했고 겸손한 "친절한 영자씨"가 아닌 친절한 일본인들 이였습니다.
여섯명은 15년전에 만난 미찌꼬, 5년전 재판으로 인하여 2년간 만났던 기꾸, 이청협,
올해 은사님의 덕분으로 올해 만나본 3명등 모두는 한국을 깊이 이해하고 한국을 좋아하며 일본인 특유의 친철함과 겸손함이 몸에 베인 사람들입니다.
한편 가즈와라씨는 1946년생으로 패전한 국가에서 태어난 연유로 태어나서 부터 성장기 까지 너무 많은 고생을 한 사람으로 부인과 같이 한국을 건축 설계사무소 직원을 모두 데리고 한국 여행을 마친뒤 가즈마사 건축 설게사 직원들은 모두 귀향시킨후 동경대 교환교수로 있을때 홈스테이를 한 인연으로 가즈마사 건축사 사장인 일본인 가지와라 내외가 내려와 운전을 못하시는 정교수님의 요청에 따라 기사노릇을 하면서 네사람이 만나 저녘식사부터 아침 식사까지 대접하는 동안 느꼈던 단상입니다.
가지와라 건축사는 전북대 법대 학장을 역임한 정교수를 끔찍하게 존경하게 된것은 오사카 시청 근무당시 만남에서 고창 출신의 정교수의 너무나 시골스런 모습에 반하여 고창을 찾게 되었고 이번에도 전주에 내려와 전북대와 전주 근교의 역사 유적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빈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된 사람이지만 여기에서는 그의 부인에 대하여 쓰고 싶다.
그의 부인은 전형적 일본여성의 모습으로 한정식집 초입에서부터 방안에 들어설때까지 가장 예의바른 모습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언행이 신선한 충격이였다.
40대를 지나면 용감무쌍하고 대담하며 강인해지는 한국여인들과 달리 그 부인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많은 대화가 있는 자리에서도 다소곳하면서도 절대 자세를 흐트리지 않으며 꼿꼿하게 자리를 하고(발이 저려울만한 시간을 인내함)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태도와 대화에 끼여 들때의 모습, 한숫갈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도 단정하게 다시금 몸을 여미고 단전에 두손을 모은 자세로 조심스러워 하는 그분의 태도는 입 출입시 신발위 위치까지도 세심한 배려로 정리하는 모습은 물론 옷가지의 정돈과 음식을 먹을 때도 숨죽이듯 조용한 모습에서 너무나 강력하게 일본인 여자들의 예의 바름에 내심으로 감탄 또 감탄의 연속이였습니다.
다소곳한 새신부의 모습같은 50대 중반의 일본여인은 자태도 아름다운데 얼굴 또한 30대 후반 모습을 하고 있으니 가지와라상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한정식집에서 식사후 전주에서 대표적인 국산찻집 완산다원에서 대접한
1) 오미자차와
2) 왱이 콩나물 국밥집에서 맛본 2가지 음식은
가지와라상의 고향 시즈오카현에서 판매하면 큰돈을 벌수 있다고 두 내외는
흥분하듯 감탄하며 이야기 하였고
09시 버스표에 10여분간 여유시간에 들린 우리 저축은행에 와서 커피를 마시며
3) 4%대의 예금 금리에 놀라워 하며
일본의 현금을 한국에 예금하면 여행경비가 충분하게 확보될수 있다는등
사업가다운 이야기를 들으며 경제적 이재 추구에 밝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코아에서 출발하는 인천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에 태워드리자
올겨울 꼭 가족과 함께 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흐뭇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댓글 위글은 http://cafe.daum.net/ilovehaeri에서 펌 글입니다.
"고창 출신의 정교수의 너무나 시골스런 모습에 반하여 고창을 찾게 되었고 이번에도 전주에 내려와 전북대와 전주 근교의 역사 유적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빈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된 사람~~~~~~~~~~*^^*
좋은 분들 같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고창을 올 추석에도 가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