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위크 |2009.03.27 17:5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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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삶 속에서의 사랑도 그러하건대, 꼬장꼬장한 마흔 살의 칼럼니스트가 영화에 등장한 배우에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몇 달 전, 케이블 TV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위해 건성으로 보았던 영화를 모처럼의 휴식 시간에 찬찬히 들여다보다 말이다.
문제의 영화는 <영화는 영화다>다. 이쯤 되면 눈치 챘을 것이다. 소지섭, 일명 ‘소간지’가 그 주인공이다. 남자가 남자에게 반해버린다는 건 수컷의 DNA상 지구 반대쪽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누군가와 만나 1시간 만에 결혼할 정도의 확률(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이다.
그러니 거의 기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훤칠한 키와 냉소적인 표정으로 무장한 채 스크린을 쏘아보는 그의 눈매는, 마치 <하나비>를 처음 봤을 때 기타노 다케시를 발견했던 것처럼 ‘유레카!’를 외치게 만들었다.
배우의 매력은 관객들을 얼마나 빠른 순간에 압도할 수 있느냐이다. 작고하신 영화평론가 정영일 선생님은 생전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이소룡은 최고의 배우 중에 한 명이다. 그에게 연기란 별 의미가 없다. 그는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을 집중하게 만든다. 그 이상의 연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영화는 영화다>에서의 소지섭이 그랬다. 특히나 시종일관 입고 나오는 검은색 셔츠와 수트는 온몸에 쫙쫙 감기며 수퍼맨의 쫄쫄이 패션처럼 그와 혼연일체로 움직였다. 몇몇 영화에서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생결단>에서 소매를 걷어 올려 입은 황정민이 그랬고, <올드보이>에서 듀퐁 양복을 입고 복수의 장도리를 휘두르던 최민식이 그랬다. 하지만 소지섭은 그 이기적인 기럭지로 앞선 두 배우와의 비교를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영화의 중반부, 공사장에서 자신의 똘마니와 장난스럽게 주먹질을 주고받던 소지섭이 보여준 잠깐의 미소 역시 영화의 빛나는 장면이다. 다시 태어나면 소지섭과 결혼하고 싶다는 대단히 주책없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으니, 그 감동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하시리라.
김기덕 감독이 제작하고 각본을 쓰고, 장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영화다>는 이미 극장에서 작품성과 흥행 모두를 거둬들인 작품이다. 하지만 소지섭이 없었다면 이 영화가 그렇게 많은 화제와 성공을 얻을 수 있었을까?
뒤늦은 감동 후 쓸데없는 가정법까지 동원하며 소지섭의 ‘간지’를 찬양하던 칼럼니스트에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들은 이미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그의 아우라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불행히도 칼럼니스트는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단골 헤어숍의 여자 선생님도 언젠가 자신의 이상형은 소지섭이라며 열여섯 소녀 같은 눈빛으로 먼 산을 쳐다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음악 듣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칼럼니스트는 수많은 뮤직비디오를 봐왔다고 자만한다. 그런데도 아직껏 소간지만큼의 포스를 뿜어낸 아티스트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음, 생각해 보니 ‘Vogue’ 뮤직비디오에서의 마돈나나 ‘Get Back’에서 수염을 기르고 등장한 비틀스의 멤버들 정도?
한 명의 배우를 발견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수월해질 수도 있으며, 놓치고 간 예전 영화들을 찾아보게 만드는 행복한 숙제를 주기 때문이다. 왕가위의 <아비정전>을 보았을 때 그런 기분이었고, <하나비>의 기타노 다케시가 그랬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잭 블랙이나, <케이블 가이>의 짐 캐리도 비슷한 예가 되겠지만, 사대주의적인 취향의 편협한 칼럼니스트에게 소지섭의 발견은 두 배의 즐거움이다. 이제 한국 영화를 주의 깊게 살펴볼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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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사에 이렇게 가슴벅차기는 처음이네요.. 자랑스런 울소닉 ...
다시 태어나면 소지섭과.....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는 몸은 한층 ..... 훌쩍훌쩍...
정말 넘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