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권력에 취하면 책임을 다하지 않게 됩니다. 우기가 끝나자 잠시 중단되었던 암몬과의 전쟁(10:14)이 재개되었습니다. ‘왕들’이 출전하는 전쟁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왕궁에 머물면서 요압과 군사들만 원정을 보냈습니다. 아람까지 꺾고 권력이 커지면서 왕의 도리를 등한시 한 처사였습니다. 혹시 ‘이 나이에, 이 지위에 내가 그것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맡은 사명을 불성실하게 이행하진 않습니까?
2-4절 권력에 취하면 권력을 남용하며 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게 됩니다. 다윗은 한 여인의 목욕 장면을 봤을 때, 거기서 눈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다윗은 그 여인이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충신 우리아의 아내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마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뭐든지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다윗은 멈추지 못하고, 결국 밧세바를 데려와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권력에 취하자, 사울의 옷자락을 자르면서도 괴로워하던 그의 양심(삼상 24:5)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5절 죄는 반드시 뼈아픈 결과를 낳습니다. 다윗은 욕정을 채우고 나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겠지만, 밧세바가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말았습니다. 죄를 지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창 3:4)은 착각입니다. 죄는 반드시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6-13절 권력에 취하면 귀가 둔해집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서 밧세바에게 생긴 아이가 우리아의 아이인 것처럼 꾸미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아는 “하나님의 궤와 상관인 요압과 동료들이 모두 전장에서 야영하고 있는데 어찌 저 혼자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잘 수 있겠습니까?” 하며 끝내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모습을 보고 그의 말을 들으며, 전쟁에 나가지 않고 왕궁에서 부하의 아내를 범한 자기 잘못을 깨닫고 뉘우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우리아의 충정이 불편할 뿐이었습니다. 내 잘못을 지적하는 말들이 그저 거슬리기만 한다면 권력에 취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