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훈 사진 시집, 『빛과 어둠의 정치』 / 시인동네
임지훈 사진 시집 | 빛과 어둠의 정치 | 문학(시) | 변형국판 | 232쪽 | 2019년 9월 27일 출간
값 18,000원 | ISBN 979-11-5896-435-1 03810 | 바코드 9791158964351
시와 사진의 가장 시적詩的인 행간을 거닐다
임지훈 사진 시집
『빛과 어둠의 정치』
■ 책 소개
2006년 《미네르바》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한 임지훈 시인의 사진 시집 『빛과 어둠의 정치』가 출간되었다.
임지훈 시인은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엄선하여 시적(詩的)인 순간을 만든다. 사진 사이사이로 행간을 만들며 흐르는 아포리즘은 한 편의 시가 아니라 한 권의 시로 세워진다. 사진을 읽고, 문장을 눈으로 보는 여러 감상이 더해져 시와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는 풍성한 시간이 이 책 속에 흐르고 있다.
제1부 〈빛의 미끄럼틀을 타고 온 순간들〉에서는 자연 풍경을 더듬는 햇빛의 시선을 담았다. 빛을 당기면 어둠이 딸려 내려오고, 어둠을 열면 빛이 쏟아지는 명암의 세계에 체온과 온기를 불어넣어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자연의 비유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형태를 재구성하는 시인의 섬세함이 돋보이며, 동시에 자연의 광활함을 문장에 꾹꾹 눌러 담아 표현한다. 제2부 〈그때 당신이 거기 있었네〉 시인이 여행에서 만난 찰나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시인은 낯선 피사체에 우리가 대입할 수 있는 여러 대상을 떠올리게 만들면서 시와 사진 사이에 가능성을 거처로 마련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빛과 어둠이 아로새겨진 우리 삶 자체의 풍경일 것이다. 시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사진에 다 담겨 있지 않은 세계를 둘러볼 수 있고, 시인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문장이 가진 무한한 의미의 세계로 나아가볼 수 있다. 빛과 어둠의 팽팽함 속에서 길어 올린 시인의 시적(詩的)인 순간이, 우리 가슴에 묻고 살아가던 시적(詩的)인 시간에 종을 울리는 것이다.
■ 추천사
여기, 살아있음에 눈 마주칠 수 있었던 문장과 사진들이 있다. 빛으로 기워 올린 풍경과 어둠으로 가려낸 얼굴들, 그것들이 한데 섞여 아름답고도 쓸쓸한 표정을 재구성한다. 사진이 그리는 말이 있고, 말들이 풀어놓은 사진이 있기에 우리는 헷갈림을 자처할 수 있다. 그 간결한 행간 속에서 오래 걸어보는 것이다. 다정한 사이처럼 가까웠다가도 처음 본 사이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걷는 행간이 빛과 어둠의 마찰로 이루어진 순간은 뒤돌아봐도 다시 볼 수 없다. 그래서 이 사진 시집이 건네주는 순간들을 놓치기 어렵다. 하루 내내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가, 오랫동안 매달리고만 있던 침묵을 날카롭게 스치는 대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빛을 달라고 하면 어둠을 쥐여 주고, 어둠을 달라고 하면 빛을 흩뿌리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꼭 살아있는 것들과 눈 마주 치기 위해 살아가는 것만 같다. 이 책을 떠나오면서 나는 이상한 생기(生氣)를 눈동자에 깊게 심었다. 짐작이 아닌 눈빛으로 이토록 선명한 세계를 다시 바라보기 위해.
─서윤후(시인)
■ 책 속에서
내 살점을 모르는 짐승이 파먹고 있다.
나는 언제까지 시(詩)가 뿌리는 이 조소(嘲笑)를 눈감고 고스란히 받아야 할까.
(p129)
빛을 지향하는 모든 조직은 계급사회로 존속된다
(p93)
지상의 어떤 그림도 천상의 그림과 무게가 같을 수 없다.
매미와 뻐꾹새 같이 울고 있는 숲을 걸을 수 있었다면 가득한 마음의 나라를 걸었노라고 고백하여도 된다.
(p178)
■ 시인의 말
풍경이 흩어져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인의 눈은 솔잎 끝의 물방울이 된다. 고도의 집중력과 파인더는 닮아 있다. 피사체는 아무런 예고 없이 몸을 돌려 누워버린다. 바다는 그렇게 모로 누워 지느러미나 수평선이 세계를 방관하며 흘러가고 있는 것을 다시 방기하고 있다. 때문에 몸을 돌리기 직전의 바다를 찍을 수 있는 집중력과 기다릴 수 있는 애정이 요구된다.
일기를 쓰듯 북한산에 올랐다. 늦여름의 매미를 보는지 잠자리 날개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사팔뜨기의 그 저녁부터 물소리가 다시 살아나 흐르던 새벽까지 매일 산에 올랐다. 비가 오면 우산 아래에서 눈이 쏟아지면 눈보라가 켜는 해금 속으로 미끄러지며 설움이 북받치면 그 설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물소리가 이끄는 대로 산에 올랐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를 공부하지 않았으나 물을 가득 싣고 흘러가는 말을 듣고 싶었다. 물빛, 물소리, 나른한 물길을 잠깐 재워 주는 화강석 빛깔의 물의 침대, 진폭이 넓은 그늘의 시간. 빽빽한 아침의 숲을 만났지만 뜻은 알 수 없었고 파인더가 나를 두고 혼자 물과 출렁거렸다.
사진집을 정리하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읽었다. 내가 그늘로 살았고 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그늘 속에 남아 있기를 원해서 그대로 내버려둔다.
제1부는 꼭대기에서 울린 말이 물에 튕겨 흐르는 것을 받아 적은 기록이다. 제2부는 세상을 떠돌 때 내가 피사체와 자리를 바꾸어도 무난한 사진으로 채웠다. 사진과 시는 쓸쓸함과 왜, 라는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담겨 있는 소쿠리다. 세상 풍경 속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살아있는 모습이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아프고 모자라고 짧은 영육 또한 오늘만큼 거대하고 무겁다.
2019년 처서
임지훈
■ 저자 소개
임지훈 시인
부산에서 태어나 동아대를 졸업했다. 대학신문에 단편소설을 연재하였고 동아문학상에 시와 수필이 각각 당선되었다. 해외플랜트 공사 관련 업무 차 중동 및 아프리카, 동남아, 유럽 등 50여 개 나라를 방문하며 사진과 시를 써왔다. 2006년 《미네르바》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미수금에 대한 반가사유』가 있다. 2018년 한국문인협회 작가상을 수상했다.
E-mail: jhl-8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