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에 붙고 주식책을 내고 정치하면서 방송하던 사람이 왜 교육감 후보에 나왔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고승덕의 이력과 교육감은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줄곧 교육감 지지율 1위를 달리더군요. 한국사회에서 가장 비싼(?) 스펙은 다 갖고 있는 후보자가 교육감이 되면 학부모들의 자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꺼란 욕망이 작용했던 걸까요? 이후 '자식을 버린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딸의 폭로가 이어지네요. 점입가경입니다.
고승덕 사건을 보고 있자니 문득 뮤지션 루시드폴(본명 조윤석)이 떠올랐습니다. 고승덕과 루시드폴의 공통점은 서울대를 나오고 학력이 높다는 것. 차이점은 고승덕은 스펙을 발판으로 세속적 출세의 정점에 도달하고자 하나 루시드폴은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시골 가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클래식 게시판에 대중음악인인 루시드폴에 대해 써도 되는지 망설여집니다. 굳이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오래 기억되는 작품을 고전이라 지칭한다면 개인적으로 폴의 음악은 감히 고전음악(물론 장르는 대중음악이지만 )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실은 음악과는 별개로 폴의 삶의 태도를 소개하고픈 맘이 컸습니다. 개인적으로 폴은 삶과 음악이 일치하는 성찰적 음악인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루시드 폴은 서울대 공대 재학 시절 홍대 인디씬(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지 않고 소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제작한 음악, 대략 90년대 초반부터 홍대 클럽을 중심으로 주류 음악과는 다른 장르인 락, 펑크. 모던락 등을 기반으로 유행이 일었으나 cd시장의 침몰로 현재는 인디와 주류시스템이라는 이분법의 구분이 모호해짐) 을 중심으로 '미선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하다가 대학 졸업 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개인적으로 그룹 '미선이' 시절 음악과 영화 '버스 정류장' ost를 좋아했던 터라 이제 음악은 접고 본격적으로 학자의 길을 가는구나 싶어 좀 아쉬웠 했습니다. 이후 루시드 폴은 스위스 로잔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좋은 연구 성과-최우수 논문상, 관련 연구 특허 취득- 가 있었음에도 한국으로 돌아와 전업 가수의 길을 택합니다.
얼핏 듣기론 루시드폴이 전업 가수가 되겠다고 하자 가수 이적이 “너 미쳤냐” 라고 했다는 일화도 전해지는군요. 우리나라에선 아이돌이나 싸이급의 대중 가수가 아니면 전업 뮤지션의 길을 걷는게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루시드폴이 계속 학자의 길을 걸었으면 일신상의 영달은 취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되는데 과감히 접고 한국으로 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많이 공부할수록 잘 하지 않는(?) 과학자로서의 지적 성찰과 고뇌가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은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라는 루시드폴과 시인 마종기가 주고 받은 편지를 엮은 책의 한 구절입니다.
"공학자로서 저의 문제의식은 과연 공학자들이 만드는 그 무엇이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인가하는 점입니다. 그 발명이 사회에 미치는 효용과 이익은 진정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이며 인간의 삶과 행복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 어쩌면 개인의 이익 가진 자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한 것만이 되지는 않는가? 정말 그 발명이 필요로 하는 곳 구석구석에 파고 들어 그들의 명분에 맞는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약회사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신약을 개발하고, 수많은 공학자들이 연구를 해서 성과를 낸다 해도, 결국 그 많은 이익은 투자를 한 거대 제약회사에 돌아갈 뿐이지, 정말 가난하고 힘없는 수많은 환자들은 여전히 그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면서 연구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뿐만 아니라 그 개발을 위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개발도상국, 후진국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임상실험의 대상까지 되고 있지만 그들이 과연 정당한 대가와 책임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을까요? 언젠가 잠시 쓴 적이 있듯이 희생되고 있는 수많은 동물들에 대한 그들의 도덕적 의식과 책임감은 어느 정도일까요? 질문은 점점 깊어져만 갔습니다.
밥을 먹고 사는 수단이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일로서는 존중할 만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혹은 하게 될 일들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과학기술이 인류의 행복지수를 상승시키는 데에 공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버르장머리 없이 생각하고 있지요..."
보통 힘든 유학 생활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어야 한다는 통념이 있는데 루시드폴은 주변의 기대와 통념과는 전혀 상관없이 전업 뮤지션의 길을 택합니다. 아이러니한건 루시드폴이 매니아적 뮤지션에서 대중적 뮤지션이 될 수 있었던 발판은 앨범 발표 당시 박사학위를 취득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초점이 되었던 건 앨범 내용이 아니라 온통 박사학위 취득과 관련한 기사였단 생각이 드네요. 그룹 '페퍼톤스'가 멋진 앨범을 들고 대중음악계에 혜성같이 등장했을 때도 그들에게 집중되었던 기사는 카이스트 나와서 왜 음악 하느냐?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획일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란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루시드 폴은 이때부터 이른바 대중들에게 '엄친아' 이미지로 각인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루시드 폴은 서울대 출신에 해외 공학박사까지 겸비한 엄친아 뮤지션으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죠. 공중파 tv의 음악방송과 '놀러와'같은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서 썰렁한 개그도 구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유명 기획사의 아이돌을 제외하고 앨범을 내면 공중파 tv에 나올 수 있는 뮤지션은 손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아무리 음악성이 뛰어난 가수라 할지라도 상품 가치나 기획사의 능력이 없으면 공중파 방송에 설 수 없는게 현재의 대중음악 시스템입니다. 루시드 폴은 작사, 작곡, 편곡과 연주, 노래까지 가능한 가수이면서 요즘 유행하는 '엄친아' 이미지까지 더해지며 공중파 tv까지 활동하게 됩니다. 적당히 '엄친아 천재 뮤지션' 이미지 소비해가며 방송에도 나오면 대중적인 인지도가 더 올라 갈테고 그럼 앨범 홍보하기에도 수월하고 어쩌면 세속적인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일체의 공중파 tv 방송 활동을 접습니다. 앨범 홍보는 인쇄매체와 소수의 라디오 출연으로 제한하기 시작하죠. 텔레비젼에 나올 수 있는 대중음악인의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온 겁니다. 대중가수에게 공중파 방송 기회가 주어진다는건 엄청난 기회를 의미하는 건데 그런 활동을 과감히 접습니다. 대신에 노래를 만들고 소규모 콘서트를 하고 글쓰기에 매진하게 됩니다.
루시드 폴은 작년까지 종로 북촌 한옥마을에 기거하면서 생명 의식을 듬뿍 담은 앨범을 냅니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소외된 것들에 대한 애정과 위로의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루시드폴이 올해 들어 서울 생활을 버리고 제주도 시골에 들어가서 영농수업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네요. 북촌 마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던 생활은 영 성에 차지 않았나 봅니다.
루시드 폴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음악을 하고 농사를 배우고 음악과 작물을 키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고 싶은 사람' 이라고 하네요. 각박한 도시생활에 찌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전원에서 한가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런 생활은 돈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더군다나 그냥 텃밭이나 가꾸면서 유유자적하게 살길 원할 테구요. 특히나 한국사회에서 학벌의 정점을 찍고 그에 걸맞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계층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루시드폴은 현재 시골로 들어가 열심히 영농 교육을 받으며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고승덕과 루시드 폴 - 둘 다 서울대를 나오고 돈이 되는 분야의 박사학위가 있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인데 한분은 자신의 이력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감투까지 욕심내느라 무리한 상황이 발생해서 곤욕을 치르고 있군요. 한편 루시드폴도 자신의 이력과는 별반 관련없는 새로운 일 -정직하게 땀을 흘리고 사는 삶이지만. 힘들어서 잘 하려 하지 않는-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이상주의자란 비현실주의자가 아니다. 현실을 회피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상만 품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이상주의자란, 희미한 가능성을 믿고 삶을 움직여가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고 폴은 말합니다.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몸으로 체득한 그의 감성이 어떤 음악을 만들어낼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시적인 가사가 얼마나 더 깊어질지 기대가 됩니다. 루시드폴은 생활과 음악이 일치하는 몇 안 되는 뮤지션이자 성찰하는 정직한 지식인이란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발표한 앨범 중 '검은개'의 가사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유난히 추워진 오늘 밤
검은 개 한 마리 나를 바라보네
밤처럼 까만 눈동자에
어릿한 두 줄기 달빛이 떴구나
눈물 말라붙은 얼굴
낮은음자리처럼 곱게 말린 꼬리
저녁은, 아니 아침은 먹은 걸까
알 길이 없구나
가지처럼 야윈 몸 낙엽처럼 마른 등
도망치듯 사라진 계단 위로
부는 칼바람보다 더 내가 두려웠는지도 몰라
어디서 잠이 든 건지 기다려도 보이지 않는 너
혼자 울고 있지 말고
같이 울자
우리 집으로 오너라
첫댓글 마른 몸
우리집으로 오너라 에서 울컥 했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푸른 하늘님 마음자락 닿는곳이 어딘지 보이는 듯 합니다.
예전에 <물이 되는 꿈> 이란 노래를 참 좋아해서 자주 들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들어봐야겠네요~
리더십은, 리더 자신의 도덕성과 정의, 책임감 없이는, 그 시작조차도 꿈도 꿀수 없는 것이다 - 마이클 샌델
완전 동의~!!^^
"미안하다!"
소피아빠님 혹시 제 댓글이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는지~? 그렇담 앞으로 주의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저도 한 때 루시드 폴 노래 참 자주 들었었는데, 이름만 다시 들어도 반갑네요.
좋은 얘기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말러 이외의 작곡가거나 클래식의 장르가 아니더라도 멋진 뮤지션, 공유하고픈 음악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할 일이죠~ 정말 오래전 일이군요. 영화에 심취해 있던 시절, 우연히 본 포스터가 맘에 들어 극장에서 본 <버스 정류장>. 영화의 분위기가 맘에 들더군요. 게다가 그때 흘렀던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납니다. 루시드 폴에 대한 소개와 삶에 대한 시각이 엿보이는 진정성어린 푸른하늘님의 글, 잘 감상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물이 되는 꿈 이 음악은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도가 사상을 현대 음악으로 구체화한 느낌이에요^^ㅋ 폴님의 노래는 듣고 있으면 참 마음이 평화로워져요^^
고클에도 같은 글 올리셨지요? 곡 가사가 시 수준이네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네~도리안님, 고클에 올렸습니다^^
혼자 울고 있지 말고
같이 울자
우리 집으로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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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떠올라라...
아! 브리앙님.....ㅠㅠ
@푸른하늘 ㅠㅠ
ㅠ ㅠ
아...제가 정말 좋아하는 폴님이에요^^ 인디시절 노래가 더 가슴에 오래 맴돌긴 하지만 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가사라...^^
미선이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정말 아...세월이 야속해요 ㅠㅠ 그런데 콘서트는 정말 좀 지루하긴 하답니다 ㅋㅋㅋ
그 분의 성찰이 약업계에 있는 저로서는 진심 100프로 공감이 가요...제약회사(이하 등등^^::)는 인류의 행복 따위는 큰 관심이 없는 것이 확실해 보이네요.
좋은 글 정말 감사드려요, 간만에 또 예전 앨범 꺼내 들어봐야 겠어요^_^ 말러카페 분들은 다들 글솜씨가 장난 아니심...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