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입사 준비를 시작하고 최종합격까지 1년 반 정도 걸렸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개인을 특정하기 너무 쉬워서 담백하게 필기 공부방법과 합격 글 위주로 작성합니다. 실무 면접도 할 말이 많은데, 시간이 허락한다면 써 보겠습니다. (써놓고 보니 논제가 너무 과거의 것들이네요..ㅠ)
1. 기본기 습득
1-1. 책
현안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당연히 중요합니다. 논술 주제는 현안으로 많이 출제가 되니까요. 그러나 결국 합격하는 글은 ‘현안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특정 사안을 논리적인+독창적인 관점에서 풀어낼 수 있는가’에서 판가름 난다고 생각합니다. 현안을 팔로우업 하는 것은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합니다. 따라서 논술 공부에서 중요한 건 사안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깊게 봐야합니다. 웹에도 좋은 글이
많지만, 하나의 주제를 방대하고 깊게 서술한 양질의 글은 찾기 어렵습니다.
아래는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큰 도움이 된 책들 리스트입니다. 당연히 "주관적"인 선정이고, 제가 언론사 입사준비를 했던 2021~2022 당시 핫했던 이슈들 위주이므로 지금과는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 / 마강래 / 메디치미디어 / 2021 (부동산 관련 논제 정리에 큰 도움)
- 2021 한국의 논점, 2022 한국의 논점 / 북바이북 / 2022 (매년 출간되는 책으로, 당해 다양한 이슈를 빠르게 정리하기에 좋음. 언론고시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께도 큰 도움 될 듯.)
- 차이, 차별, 처벌 : 혐오와 불평등에 맞서는 법 / 이민규 / 알에이치코리아 / 2021 (차별금지법 관련 논제에 도움)
- 한국의 능력주의
- 의무란 무엇인가 : 마스크 시대의 정치학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 열린책들 / 2021 (코로나 관련 이슈에 도움. 지금은 크게 도움 안 될 듯.)
- 한국의 능력주의 : 한국인이 기꺼이 참거나 죽어도 못 참는 것에 대하여 / 박권일 / 이데아 / 2021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능력주의 이슈 정리하기 좋음)
- 미디어 법과 윤리 /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 2016 (저널리즘, 취재윤리, 표현의 자유 관련 논제 정리에 큰 도움)
- 저널리즘 모포시스 / 임종수 등 / 팬덤북스 / 2020 (디지털퍼스트, 유튜브, 포털 등 저널리즘 최신 이슈 정리에 큰 도움)
-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 러셀 커크 / 지식노마드 / 2019 (보수주의 관련 고전적 개념 쉽게 정리하기 좋음)
- 지금 다시, 헌법 / 차병직 등 / 위즈덤하우스 / 2016 (헌법 관련해서 가장 쉽고 개괄적으로 설명된 책 중 하나)
- 최소한의 선의 / 문유석 / 문학동네 / 2021 (촉법소년, 엄벌주의, 회복적 사법, 법치주의 등 이슈에 큰 도움)
1-2. 신문/방송 모니터링
- 신문을 보며 키워드를 달달 외우는 방법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상식 시험을 보는 언론사의 경우 아랑의 취합에 반드시 참여 했고 실제로 큰 도움이 됐습니다.
- 신문사의 사설을 먼저 쭉 읽고, 괜찮은 생각들은 별도로 메모 해 둡니다. 손으로 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아이패드로 신문을 보고 캡쳐 기능을 활용해 정리 해 뒀습니다.
- 이후 1면으로 돌아와 그날의 주요 기사를 빠르게 읽었습니다. 논술에서 쓸 만한 중요한 팩트들은 따로 수집했습니다.
2. 논술 쓰는 스킬
시험장에서 아래 두 가지 원칙은 잊지 않고 쓰려고 했습니다.
① 글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한 마디’로 정리될 수 있어야 한다. (일관성)
② 논리력+흥미를 모두 갖추면 완벽하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 제대로 갖춰도 합격 확률은 높아진다. 즉, 논증을 훌륭하게 해내거나, 관점을 비틀어서 새롭게 쓴다.
논증을 훌륭하게 해내는건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점 비틀기’에 신경을 쏟았습니다. 같은 주제를 받더라도, 남들이 쓰지 않을 내용은 뭘까, 생각했던거죠. 다만 이건 주제에 따라 너무 다릅니다. 독특한 관점을 녹여낼 수 있는 주제가 있고, 그렇지 않은 주제가 있습니다. 실제 기출과 제가 썼던 글을 토대로 설명해보겠습니다.
2-1. ‘독특한 관점’ 녹일 수 있는 논제
2-1-1. 2021 MBC 기출
[논지]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단 말 있다.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삶의 정상성 회복을 위한 사회적 대책 방안은 무엇이고, 방송과 뉴스는 어떤 역할 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서술해라.
→ 구체적인 디렉션을 준 논제여서, “삶의 정상성 / 사회적 대책 / 방송과 뉴스 역할”에 충실해서 쓰면 되는 글이었습니다. 핵심은 논제에 나온 ‘잃어버린 삶의 정상성’을 정의하는겁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마스크’, ‘비대면’ 이런거죠. 누구나 떠올릴 수 있고, 흥미가 당기지 않는 글이 되버립니다.
저는 트위터에서 봤던 사진과 알베르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떠올리며, 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린 정상성을 “연대하지 않는 시민 의식”으로 정의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조악하고 반박 가능한 부분이 상당히 많지만, 일관되게 쓴 점, 읽는 사람이 흥미를 느끼도록 쓴 게 필합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본문] (복기된 내용이라 문장이 조악합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감염병이 퍼진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는 페스트를 겪어내는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자기를 희생하며 환자를 돌보는 의사 리외, 우연히 여행왔다가 갇혀버렸지만 자발적인 시민들의 연대에 마음이 동한 랑베르, 페스트 이전에 우울증을 겪다가 페스트가 도지자 모두 함께 불행해졌다며 오히려 활발해진 코타르 등. 코로나19에서도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드러났다. 의료진들이 코로나 종식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동안, 누군가는 방역수칙을 쉽게 어겼다. SNS에서 유행한 사진 한 장이 그 단면을 잘 보여준다. 사진의 한 쪽에는 방호복을 입고 임시선별소에서 검사를 하는 의료진들이 있었다. 반대편에는 마스크를 벗은 채 술판을 벌린 시민들이 있었다. 코로나가 앗아간 삶의 정상성은 다름 아닌 “위기 앞에 연대하는 시민 의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위기가 닥칠 때 연대해왔다.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으로 최단기간에 IMF구제금융을 극복한 것이 그 예시다. 반면, 감염병 상황에서는 연대 대신 비난이 먼저였다. 비난의 대상을 찾기 위한 혐오도 있었다. 코로나 사태 초기, 대림동 위생 상태를 보도하며 코로나와 상관 없는 조선족들을 마치 코로나의 진원처럼 보인 르포가 그랬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자영업자와 플랫폼노동자를 향해서도 연대보다는 비난이 컸다.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임을 잊은 채, 방역수칙을 어기고 영업하는 자영업자들을 비난하기 급급했다. 비대면이 확산되며 너도나도 배달을 시켰지만, 배날노동자들의 안전은 신경쓰지 못했다. 사고와 사망이 잦아졌음에도 “빨리 와주세요”를 요청하는 이들은 많았다. 외려 오토바이 소리가 시끄럽다며 민원을 넣는 이들도 있었다.
연대 의식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민과 정부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 방역을 위해 노력한 의료진들을 향해 ‘덕분에 챌린지’가 유행했으나 감정적 동정에 그쳤다. 의료진 근무 환경의 실질적 개선까지 이어지지는 못한 것이다. ≪페스트≫의 리외처럼 일한 의료진들에게는 랑베르와 같은 평범한 시민들의 연대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덕분에 챌린지를 양적, 질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 대상을 의료진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 플랫폼노동자까지 넓히는 것이다. 시민들이 연대할 때 정부 또한 실질적 처우 개선으로 응답할 것이다. 지금은 의료진과 자영업자들이 파업과 시위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사회적 합의를 이루라는 핑계로 방역의 뒤에 숨어 이들을 충분히 돌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시민의 연대, 정부의 정책을 잇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코로나19 방역 속에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이들과 소외되는 이들을 집중 조명해야 한다. 방송법 5조에 따르면, 방송은 ‘민주적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 통합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 감염병 상황에서 민주적 여론이란 다름 아닌 ‘연대의식’이다. 지난해 JTBC의 <의료 현장의 그늘> 기획이 좋은 예시다. 의료진의 열악한 처우를 사실적으로 보도해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다. 분노의 여론은 정치인들을 움직였고 국회는 지역 의료진들을 위한 추가 예산 편성으로 응답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르지만, 미리 경험한 연대의식은 동일한 재난이 닥쳤을 때 다시 활용할 수 있다. ≪페스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페스트에 걸리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페스트에 걸리지 않으려는 일은 더 귀찮은 일이지요”. 그 귀찮은 일을 해낸 사람들을 향해 국민과 정부, 언론의 연대가 필요하다.
2-1-2. 2022 mbn 기출
[논제]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한 생각
→ 여가부폐지에 대한 글들도 당시 논술을 준비했던 수험생들은 하나씩 써두었을 것 같습니다. 찬성과 반대 별로 주장과 근거가 너무 많은 논제인데요. 저는 이걸 한번 비틀어봤습니다. <경향신문> 칼럼에서 ‘여성가족부’가 아닌 ‘여성부’가 필요하다, 여성과 가족을 언제까지 붙여놓을거냐, 라는 칼럼을 인상깊게 봤는데, 그걸 거의 그대로 가져와 살을 붙였습니다. (원문을 찾아보려했는데 안보이네요 ㅠㅠ)
뻔한 주제에 뻔하지 않은 글을 써보려 했고, 칼럼처럼 “여성가족부 페지해야 돼. 근데 흔히 말하는 차별을 부추긴다는 이유때문은 아니고, 여성과 가족을 붙여놓는건 구시대적 발상이기 때문이야” 라는 주제로 썼습니다.
[본문]
돌을 던져 쇼윈도를 박살내고 우체통에 폭발물을 넣는다. 경마장 말 앞에 뛰어드는가 하면, 감옥에 잡혀가서는 단식투쟁을 하다가 코로 음식물이 강제 투입되기도 한다. 테러리스트의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초,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 영국 서프러제트들이다. 그 결과, 영국은 1928년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인정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떨까.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참정권을 갖는 것이 당연해졌듯이 성별에 따라 사회ㆍ경제활동에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 현실은 다르다.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2020년 기준 31.5%로, OECD 국가 최상위권이다. 2021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성격차지수에서도 156개국 중 102위를 차지했다. 궁극적인 성평등을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이 사회와 가정에서 동일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나,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가부장제의 그늘이 짙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과 가족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통치하는 것은 여성을 가정의 틀 안에 종속시키는 행위에 불과하다. 가정 밖 여성의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하게 막는다. 남성이 주로 경제 활동을 하고 양육과 가사를 여성이 전담했던 과거의 유물을 답습하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지금의 형태로 남아있는 한 완전한 성평등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다. 2030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대표적 안건인 저출생 대책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가정에 가두지 않을 때 오히려 자녀를 공동 양육할 기반이 확고해진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도가 높은 스웨덴은 합계출산율이 1.7인 반면, 가부장 문화가 강한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는 1.2~1.3에 머무는 것이 그 증거다.
문제는 지금 정치권이 주장하는 ‘여성가족부 폐지’의 방향성이 여성 권리 신장이 아니라는 데 있다. 여가부 폐지는 ‘이대남’을 정치세력화 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역차별에 대응하는 논리로 나온 공약이다. 정치의 주된 목적이 갈등을 모아 해결하는 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려 정치가 갈등을 조장한 결과다. 이렇게 만들어진 젠더갈등 프레임은 여성이 겪는 구조적 차별을 보이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남성이 역차별을 겪는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이나, 이는 성 격차를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백래시’에 해당한다. 팔루디는 <백래시>에서 반페미니즘적 반격이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세우는 선제 공격”이라고 했다. 온갖 가짜뉴스의 온상이었던 여성가족부는 그 희생 대상으로 가장 적합했다.
백래시를 이겨내고 여성이 사회에서 억압받는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려면 여성을 가족에서 떼어낸 ‘여성부’가 필요하다. 여성가족부의 역할 중 ‘여성’을 제외하고 가정ㆍ청소년의 기능만 남기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전체를 폐지할 필요는 없다. 일례로 여가부에서 5년마다 발표하는 ‘건강가정기본계획’은 모든 국가 정책에서 참고할 사안이다. 지난해 발표된 4차 계획의 골자는 1-2인 가구로의 변화에 있다. 이런 가정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는 부처가 없다면 부동산, 교육 등 굵직한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워진다. ‘여성부’가 또 다른 성차별 논란을 격화시킬 것이 우려된다면 별도의 부처를 두지 않는 대신 성평등을 국정 주요 목표로 삼고, 정부 전 부처에서 이를 주류화 하면 된다. ‘젠더 주류화’가 수사에 그치지 않도록 철저한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여성가족부가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말은 반만 진실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각종 성범죄가 만연했던 시기, 여성의 권리가 절대적으로 빈약했던 시기에 출범해 여권 신장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과 ‘가족’을 분리해야 할 때다. 여성가족부의 캐치프레이즈인 ‘평등을 일상으로’는 여성이 온전한 여성으로 존재할 때 현실이 될 수 있다.
2-2. ‘독특한 관점’을 녹이기 쉽지 않은 논제
누구나 비슷한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주제들도 있습니다. 이런건 ‘사례’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유리합니다. 풍부한 사례와 비유로 글의 맛을 살려줘야 합니다. 이런 논제들은 충분히 ‘예측 가능’ 하기 때문에, 평소에 논술을 대비하면서 완성 글을 써두고 현안에 대해 충분히 숙지가 된 상태여야됩니다.
2-2-1. 2022 YTN 기출
[논제] 최근 법원이 '최소침해원칙' 근거로 방역패스 일부 집행정지 판결 내림. 유럽 몇몇 국가에서도 방역패스는 논쟁거리. 방역패스 사례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헌법상 기본권은 어느 범위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기준과 근거를 논해라.
→ 방역패스가 한창 기사들을 장식할 때여서, ‘위드코로나’ 관련해서 써둔 글을 현장에서 복기했습니다. 이런 주제는 정말 ‘예측 가능’ 하기 때문에, 사례를 얼마나 많이 모으고 외우고 있냐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는 여기서도 나오네요 ㅎㅎ)
[본문]
우리나라는 헌법 제 37조를 통해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기본권의 제한을 용인하고 있다. 즉 국가의 역할은 어떤 기본권도 무제한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는 가운데 여러 기본권을 조화롭게 조정하고 신중하게 검토하는 데 있다. 방역 상황에서는 국민 생명 보호가 최우선 순위에 있다.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기타 기본권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는다. 37조에 나오는 ‘본질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헌법 학자들의 의견도 갈린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방역 정책으로 인해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될 때 ‘본질’은 감염병의 유행 상황과 진행 경과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될 수 있다. 방역패스 시행 여부 또한 국민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과 방역의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2022년 1월, 현 상황에서 방역패스는 득보다 실이 많다. 생명권 보호의 효과는 미미한 반면 미접종자의 자기결정권 침해는 뚜렷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19로 인한 사망자의 90% 이상은 60세가 넘는 고령층이다. 생명권 보호를 위해서는 고령층의 감염을 최소화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백신패스를 미접종자 전원에게 확대한다고 해서 특별히 고령층 감염에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마트, 백화점 등 일상적인 다중이용시설 출입을 제한하는 데 까지 확대하는 것은 사실상의 백신 의무화 조치로, 과도한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 공익을 위해 백신 접종률을 높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미접종을 선택한 이들에게 접종을 강요할 수는 없다. WHO에서도 백신의무화는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접종 독려를 위해 모든 방법을 써본 뒤 최후의 수단으로만 나와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백신패스를 시행한다면 그 적용 대상과 범위는 최소화 되어야 한다. 적용 대상은 고령층으로 한정시키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아직까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10대 청소년들이나 중증 비율이 낮은 2030 청년까지 묶어서 제한하는 것은 효율성 외 이점이 없다. 범위 또한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노래방 같은 고위험시설과 고령 인구가 집중되는 곳으로 한정하는 것이 좋다. 사법부 또한 코로나 초기에 비해 침해되는 기본권을 폭넓게 인정해주는 추세다. 각종 집회의 자유까지 엄격하게 제한했던 시기를 지나, 방역패스가 미접종자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리는 때가 됐다.
결국 방역 상황에서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이란 생명권과 방역의 지속가능성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감염병 상황을 묘사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페스트에 걸리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에 걸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은 더 피곤한 일이지요.” 코로나 국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생명권의 침해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국민들이 피곤한 노력을 지속하도록 강요할 명분은 없다. 이제 방역의 목표는 전파 방지가 아닌 피해 최소화와 사회 기능 유지에 두어야 한다. 확진자가 증가할 때마다 수위를 높여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에 위배된다.
2-2-2. 2022 mbc 기출
[논제] 코로나1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세계 경제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현상'이 국내 경제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 사회적으로 어떠한 정책을 세워야 하는지 논리적, 체계적으로 논해라.
→ 이 주제를 받은 수험생들 대부분 벙 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걸 알면 내가 금융당국을 갔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원론적인 주제이니, 답변도 원론적일 수 밖에 없는 글을 쓰되, 글의 맛을 살리고, 남들이 안 쓸 법한 현안 (IRA, 산업계 이슈)을 많이 인용해봤습니다. 하루이틀전 신문에서 본 숫자들이 기억에 남아 썼던 것, 경제 관련 책에서 '가마우지 경제'라는 단어가 인상깊어 인용해 둔 점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 쓰다보면 어려워질 수 있는 주제인 만큼, 논리적 틀은 ‘현상 제기 – 원인 - 근본원인 – 해결책’ 이라는 고전적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게 썼습니다.
[본문] (당시 복기를 너무 대충해놨는데... 흐름만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공이 배 위에서 낚시를 한다. 낚싯대는 없다. 가마우지라는 새가 물고기를 낚는다. 새의 목구멍에는 실이 연결돼있다. 새가 물고기를 잡으면 낚시꾼은 실을 당겨 삼키지 못하도록 한다. 재주는 새가 부리고 이득은 낚시꾼이 취한다. 우리 경제를 두고 가마우지에 비유한다. 서울의 랜드마크가 된 롯데타워는 우리 건설 역량이 집약된 시설이다. 그러나 고층 건물에 필요한 주요 기술은 스위스, 일본, 미국 등 선진국으로부터 수입해왔다. 코로나, 우크라이나 사태 등은 전 세계에 다 영향을 미침. 우리도 피해가긴 어려움. 물론 금리인상처럼 단기간 물가 잡기 위한 정책 필요하지만 중요한 건 그 다음. 위기는 반드시 또 온다. 그때를 대비한 장기전 필요.
근본 원인 : 수출 중심 제조업 기반 산업구조. 과거 산업화시대에는 고부가가치 제품 창출해 냄. 지금은 아님. 제조업 비중 25% 이상으로 영국, 미국 등 주요 국가보다 높지만 2019년 기준 노동자의 근속연수는 5.9년으로, OECD 평균인 9.5년에 못미치는 꼴지 수준. 즉, 저부가가치 제품으로 바뀌었고 소규모 기업들이 많다는 뜻. 거기다, 수출 자체가 중국, 미국 등 특정 국가에만 지나치게 편중되어있음.
해결책 : 성장 공식을 R&D 중심으로 바꾸는 것. 정부가 주도해서 대학, 기업 R&D 지원 해줘야 함. 기술 수출 국가 목표로.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우리 기업들은 중국에 많이 진출, 공장 세웠지만 중국은 더 이상 우리 공장을 필요로 하지 않음. 그 사이 R&D 역량을 쌓았기 때문. 디스플레이산업 주도권을 중국에 뺏긴 이유도 R&D때문. 그러니, 파도를 보지 말고 조류의 흐름을 보자. 우리는 기술 수출국 될 역량이 있다. 나로호 때 해외 기술 빌려썼지만 누리호 때 우리 기술 개발한 것 보면 알 수 있다.
나아가, 낚시 풀을 넓히자. 여러개의 강에서 낚시를 하는 것. 즉, 공급망 다변화. 특정 국가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가 IMF외환위기, 싸드보복, 요소수사태를 만들어냄. 지금은 미국 시행하는 IRA에 적극 참여해야 함.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전기차 산업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데, IRA에는 북미 또는 미국 동맹국 제조 부품이 일정부분 들어가야 보조금 지급하는 정책 있음. IRA는 중국 의존도를 줄여줄 수 있는 기회. 뿌리가 깊으면 거센 파도가 와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2-3. 비슷한 글을 여러 주제에 접목
‘암호화폐’가 한참 이슈일 때, 완성된 글을 하나 써놓았습니다. ‘암호화폐’를 주제로 2021 한국일보 필기와 2021 TV조선 필기를 합격했습니다.
- 2021 한국일보에서는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문제와 해법’을 물었는데, ‘암호화폐’를 ‘청년 기회 박탈’ 문제의 해법으로 가져와 썼습니다. 사실 제가 쓴 글에 저도 동의하지 않고, 논리도 약했던 것 같아 올리기 부끄럽지만.. 그래도 필합 한 글이니 올려봅니다.
- 같은 해 TV조선에서는 ‘암호화폐의 가치’를 서술하라는 논제가 나왔습니다. 경제적 가치에 대해 쓰는 것은 전문지식이 필요하기에, 저는 기존에 한국일보때 썼던 글과 거의 비슷하게 해서 ‘청년층들에게 신분상승 기회를 주는 사회적 가치가 있다’ 는 식으로 썼습니다.
[2021 한국일보 논제] 본인이 최고 결정권자라고 가정하고,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이며 해법은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서술하시오.
[본문]
국가 발전이 답보상태에 있을 때 변화를 이끄는 것은 청년들이었다. 독재쟁권을 끝내고 민주화를 주도한 것도 대학생들이었다.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점은 청년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2030은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강명은 소설 ≪표백≫에서 이들을 표백세대로 정의한다. 산업화도 민주화도 이미 이루어져 더 이상 손볼 곳 없는 순백의 세상, 새로운 담론을 만들지 못한 채 거기에 동화되려는 세대라는 뜻이다. 해법은 이들에게 색을 입혀 희망을 되찾아주는 데 있다. 최근 2030이 중심이 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시장의 활성화가 그 예시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은 가장 큰 원인은 내집마련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은 2017년에 11년에서 2020년에는 15년으로 뛰었다. 2인 가구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5년을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것이다. 희망을 잃은 청년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디지털로 재빨리 눈을 돌렸다. 지금의 청년들은 어릴적부터 주기적인 금융위기와 정부 주도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학습한 세대이다. 이들의 탈중앙적 특성은 암호화폐의 개인성과 맞닿아있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쓴 백서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중앙의 개입 없이 당사자 간 거래가 가능한 가상자산이다. 여기에 매력을 느낀 청년들은 어른들이 무너뜨린 사다리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 활성화가 좋은 해법인 이유는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에 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실제로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결합한 가상자산에 투자를 시작했다. 플랫폼 기업이 만든 금융서비스는 전통 금융권이 제공하는 금융상품에 비해 훨씬 소비자 맞춤형이다. 페이스북에서 자체 개발해 유통중인 세계화폐 ‘리브라’가 대표적이다. 우리 정부 또한 거대 플랫폼 기업들을 활용해 블록체인 기술 선점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는 청년들이 암호화폐 시장에 유입되며 쌓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청년들에게 희망도 주고 미래 먹거리도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다.
물론 지금의 불안정한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한계가 있다. 투기가 아닌 투자가 되도록 정부에서 시장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블록체인은 장려하되 가상자산은 규제한다는 지금의 정책은 두 마리 새를 모두 놓치는 격이다. 먼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청년들이 올바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은 신용정보회사 와이스레이팅스를 통해 각각의 코인들의 신용등급을 공개하고 있다. 또한 잡코인의 난립을 막아 청년들의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 일본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플라이어에는 5개의 코인만 거래된다. 100개 이상의 코인이 거래되는 한국의 거래소와는 다른 모습이다.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청년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알려줘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길의 폐해는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기성세대가 할 일은 청년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어떤 색으로 역사에 등장할지 지켜보고 응원해 줄 일이다.
3. 기타 글들 (시험장에서 쓰진 않았지만 스터디에서 호평 받은....;)
[논제] 흉악범죄 피의자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의 얼굴과 실명 공개는 저널리즘 윤리라는 기준에 비춰볼 때 바람직한지에 대해 논하라.
“저희 OOOO는 범죄 피의자의 인권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언론에서 흉악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때마다 내세우는 논리는 비슷하다. 여론은 “가해자 인권보다 피해자 인권이 더 중요하다”며 여기에 화답한다. 피해자의 삶을 무너뜨린 가해자 또한 신상이 공개되며 일상생활을 박탈당해야 맞다는 것이다. 신상 공개를 통해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분노를 누그러뜨린다. 그런데 범죄 사건을 다루는 언론이 꼭 해야 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범죄의 근본 원인을 파헤쳐 세상에 알리는 일이다. 언론은 범행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다루고 재발되지 않도록 여론을 환기시킬 책임이 있다. 여기에는 신상을 공개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취재와 고통이 따른다. 보도를 통한 신상 공개는 언론이 여론에 편승해 관심을 끌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범죄자 신상 공개를 인권 프레임으로 다루면 끝없는 논쟁만이 남는다. 공개냐 비공개냐, 피해자냐 가해자냐. 이분법의 딜레마 속에 언론의 꽃인 탐사보도는 빛을 잃는다. 언론이 선제적으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가해자의 인권에 있지 않다. 여론의 분노를 온 사회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쪽으로 끌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분노의 방향을 잡아줄 힘이 있다. 그 힘을 신상 공개와 같은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으로 시청률과 조회수를 올리는 데 사용할 것인가. 혹은 범죄가 우리 사회의 어떤 고질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지 알리고 근본적 변화를 만드는 데 활용할 것인가. 저널리즘 윤리에 비추어본다면 후자다. 언론의 날카로운 펜 끝이 향하는 곳은 개인이 아닌 사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피의자 신상 공개를 통해 대중의 분노를 풀어줄 경우 이후 보도와 사건 양상이 엉뚱한 곳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신상이 공개되면 피의자와 관련된 수 많은 증언이 쏟아져 나온다. N번방 사건에서 피의자 신상 공개의 서막을 알린 SBS의 조주빈 관련 보도가 그랬다. 원만하지 못했던 교우관계, 높은 학점의 모범생, 학보사 편집국장 이력. 범죄의 본질과는 상관 없는 조각이 모여 가해자에게 서사가 부여된다. 다른 언론들도 이에 발맞춰 일제히 가해자 관련 추측성 보도를 쏟아낸다. 그 모습이 원래 악마였다면 그럴만했다며 함께 손가락질하고, 평범했다면 그것 나름대로도 대중의 흥미를 끄는 요소가 된다. 피해 사실과 범죄 행각은 부차적 요인으로 작아진다. 구조적 원인을 분석한 기사를 내놓아도 이미 사건이 가십거리로 전락해버린 후 일지 모른다. 엉뚱한 곳을 향한 분노는 2차 피해를 만든다. 2006년 미국에서 신상정보가 공개된 성범죄자 34명의 리스트를 만든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 중 2명을 살해했다. 성범죄자 소유의 집으로 이사했다가 무고한 사람이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범죄도 하나의 이야기라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중 ‘절정’의 단계에 터져야 할 것은 신상 공개가 아니다. 분노의 끝에 신상이 공개 되면 국민들은 일시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마치 분노가 정의를 세운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서사의 결말에는 찝찝함이 남는다. 신상 공개 이후 과정에서 관심이 급격하게 식기 때문이다. N번방의 보도 또한 주동자들의 신상이 차례로 공개되며 사람들의 분노가 차츰 가라앉았다. 반면 공개 이후의 과정과 근본 대책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분노가 해소된 이후의 모든 과정에 지속적 관심을 주기보다는 국가와 수사기관에 그 역할을 전적으로 떠맡긴 탓이다.
결국 절정 단계에서 언론이 터트릴 것은 ‘범죄의 구조적 원인 분석’이 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사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피해자와 연대하며 비슷한 범죄를 막을 수 있도록 물길을 터주어야 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김씨의 경우 정신질환을 이유로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 범행 동기에 주목한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덕분에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범죄가 있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가해자의 악마화, 서사 부여가 빠진 자리에는 연대와 추모가 싹텄다. 따라서 신상 공개는 죄형이 확정된 후, 사법 정의가 이루어졌음을 선포하는 상징적 의미로써 ‘결론’에 배치되어야 마땅하다. 언론에서 성급히 나설 문제는 아니다.
[논제]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차별금지법을 도입해야 한다면 그 기준과 범위에 대해 쓰고, 도입에 반대한다면 이유와 대안을 제시하시오.
[본문]
법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지 가치에 의해 굴러간다. 개별 국민의 자유 침해를 최소화 하면서도 사회 전체적으로 평등 수준을 높여나가는 것이 법의 역할이다. 우리 사회가 차별을 대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차별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을 고치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하다. 다만 법에만 의지해 차별 여부를 결정할 경우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평등의 원칙을 위해 개인의 취향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럽지만, 고용, 교육, 주거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만큼은 자유가 평등의 원칙에 어느 정도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차별 금지에는 윤리와 법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
고용, 교육, 행정 서비스 등 공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법적 금지가 필요하다. 단순 불쾌감을 넘어 실질적 불이익으로 이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 편의점 사장이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를 내면서 ‘페미니스트가 아닌 자’라는 조건을 붙인 것은 실체적 불평등이 드러난 사례다. 이처럼 기회의 평등을 박탈하는 차별에는 법이 개입할 수 있다. 이때 차별의 영역은 예외 없이 포괄적이어야 한다. 차별에 예외를 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영역에 차별이 실재한다는 증거다. ‘성적 지향’이 논란이 되니 이를 빼고 법을 제정하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 또한 모순이다.
다만 아무리 공적 영역이더라도 합리적 사유가 있는 차별까지 처벌해서는 안 된다. 차별금지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미국의 ‘민권법’에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차별은 허용하는 예외 조항이 있다. 일례로 1980년대 미국에서는 몸수색 시 남성 교도관에 의한 성폭행 사례가 급증하자, 여성교도관 비율을 높이는 조치를 내렸다. 남성을 차별한다는 반발이 있었으나 재판부는 복역자의 사생활 보호와 안전을 위해 필요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차별금지법은 무엇이 합리적인 차별이고 무엇이 부당한 차별인지 가르는 기준을 제시해준다. 기업 면접에서 여성에게 군대 관련 질문을 하는 등, 차별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한 우리나라에 관련 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다.
반면 개인의 신념 또는 사적 대화에서 드러나는 차별까지 법으로 규제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앞서 소개한 구인 사례와 달리, 소개팅 자리에서 페미니스트 여성에 반감을 드러낸다 해서 법적 제재를 가하기는 어렵다. 차별적 발언이 윤리적 비난으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한 불이익이 불명확한 상황에서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까지 쉽게 앗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종교단체의 설교 속 동성애 혐오 발언 또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더라도 위법 행위가 되기는 어렵다. 이처럼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적 영역에서의 차별은 사회적 비난, 즉 윤리가 개입되어야 한다. 정신적 피해가 있다 할지라도 이는 명예훼손 등 기존에 있는 법의 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결국 차별 문제는 법과 윤리의 상호작용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1996년, 여성발전기본법에서 성희롱을 처음 법제화 했다. 법이 20년 넘게 시행된 덕분에 사회는 변했다. 이제 일터에서든 학교에서든 성희롱 할 자유는 누구에게도 없다. 법이 모든 차별을 해결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공적 영역에서의 법적 제재가 국민 전체의 윤리 의식을 높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반대로 국민의 윤리 의식이 법을 이끌기도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청원이 10만명을 넘겨 국회가 논의를 시작한 것이 그 예시다. 동성혼 합법 판결을 이끌어 낸 미국의 대법관 긴즈버그는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봐야한다”는 말을 남겼다. ‘시대의 기후’를 만드는 것은 시민의 역할이다. 차별 문제에 대입해본다면, 혐오 발언 또는 차별 행위를 두고 윤리적 비난을 할 수 있는 사회ㆍ문화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법은 이렇게 만들어진 시대의 기후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논제] 장애인 이동권 시위
시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그 이름 자체가 ‘시간’을 뜻하는 그리스 태초 신 중 하나다. 일년이 365일이고 하루가 24시간이듯, 크로노스의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카이로스는 제우스신의 아들로, 기회의 신이라고 불린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있을 때 한 시간이 일 초 같은 것. 반대로 고통중에 한 시간은 일 년 같을 수 있는 것.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선택과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충만한, 혹은 빈약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시간을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한 인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기회를 활용하는 방식이 곧 그의 삶을 결정한다.
개념환승. 지하철 내 다른 호선으로 갈아타는 경로가 짧은 역들을 일컫는 철도동호회의 은어다. 서울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충무로역. 계단 하나만 오르내리면 30초 환승이 가능하다. 휠체어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어떨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같은 구간을 환승하려면 5분이 넘어간다. 그 사이 떠나보내는 열차까지 생각하면 공평하게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은 잔인하다. 서울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 94%가 허상인 이유다. 그와 반대 지점에 있는 단어는 ‘막장환승’이다. 성인 남성이 걸어서 5분 이상 걸리는 종로3가역의 1-5호선간 환승이 대표적이다. 다시말하면, 이동에 제약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서울지하철은 ‘막장’과 같다. 카이로스가 기회의 신이라고 하나, 어떤이들은 기회를 활용할 기회마저 박탈당한다.
크로노스의 칼 같은 공평함에 막힌 이들이 휠체어로 지하철을 막아섰다. 시외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를 확대 해 달라, 이런 요구는 모두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목소리다. 남들처럼 자아실현이 하고 싶으니 카이로스의 시간을 누리게 해 달라는 주장까지는 가지도 못 한다. 그저 이동할 수 있게 해달라, 우리에게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이동권을 실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당연한 요청이다. 당연한 목소리를 행동으로 보여주는그 순간, 역설적으로 이들에게도 카이로스의 시간이 흐른다. 세상을 향해, 여론을 향해, 정치를 향해 목소리를 낸다. “여기 우리가 있다”며 존재를 알린다. 시간이라는 기회, 그 잔인함을 최대한 활용해 제 편으로 만든다.
장애인들이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비장애인들은 불편을 겪는다. 회사에 지각하고, 약속에 늦고, 심지어 가족의 임종을 지켜야 할 자리에 늦기도 한다. 이는 크로노스의 불편함에 가깝다.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나 버스를 타면 비용과 시간이 다소 들 수 있겠지만 그것이 존엄성의 문제, 시간 활용 기회의 문제까지 확대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동권 시위를 하는 장애인들을 향해 “시위의 방식이 잘못됐다”며 핀잔을 주는 것은 동료 시민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관점이다. 장애인들을 기본권을 실현하는 동료 시민으로 보지 못하고 시혜가 필요한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것이다. 나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좀 더 온건한 방식으로 시위를 하라는 것은 내 시간만 소중하니 당신에게 아무것도 내줄 수 없다는 강자의 발악이다. 동료 시민의 카이로스 시간을 위해 스스로의 크로노스 시간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는 것. 연대는 여기서부터 싹튼다.
4. 맺음말
합격하면 길고 자세한 후기를 남겨야겠다 마음 먹었는데.. 너무 늦어졌네요. 거기다가 별로 친절하지 못 한 후기가 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어느 후기든 마찬가지지만, 이것도 하나의 예시고 방법이지, 꼭 합격을 보장하는 방법은 아닐테니, 각자의 방법을 잘 찾아서 원하는 꿈을 이루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언론고시를 시작했고, 아랑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된다면 면접 후기편도 꼭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첫댓글 배울 점이 많은 글입니다..!
후기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후기와 합격글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 내용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귀한 합격글 공유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후기 덕분에 많은 분들이 도움도 받고, 필기합격의 영감을 받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소중한 글 너무 감사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