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책만 읽다 보면 말랑말랑한 책을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새로운 책을 찾기보다는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고르게 된다. 새로운 책을 고르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이기도 하고, 읽다가 실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예전에 읽었던 책 중 다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번에 떠오른 책은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뇌의 신비로운 작용으로 인하여 읽은 지 근 사십 년 만에 다시 읽어볼 마음이 든 <러브 스토리>(1970)는 내게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 고등학생 시절 영어 공부를 위해 읽은 첫 장편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성문종합영어에 나온 지문과 그보다는 길지만 청소년용으로 축약된 얄팍한 영어책만 읽으며 갈증을 느끼던 나는 본격적인 소설 읽기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중에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영화를 통해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던 데다가,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 않고 줄거리도 단순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원서를 바로 읽기는 버거우니 고른 것이 영한 대역본이었다. 왼쪽에는 원문이, 오른쪽에는 번역이 실려 있는 책이었다 (아니 그 반대였던가?). 내가 시도한 방법은 우선 한글로 읽고 내용을 머리에 넣은 뒤 영어로 읽으며 머릿속에서 한글 내용을 영어에 겹쳐보는 것이었다.
읽다 보면 한글과 영어가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나 번역 수준에 대해 평가할 만큼의 실력은 없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고1 가을에서 고2 여름에 걸쳐 대략 네다섯 번 정도 읽은 듯하다. 나중에는 한글은 보지 않고 영어만 읽어도 머릿속에 번역이 떠오르는 정도가 되었다. <러브 스토리>를 여러 번 읽은 덕에 이후 학교의 영어 시간과 대입 영어시험에서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종이책은 이제 구하기 어려울 것이고, 혹시나 하여 아마존에 가니 킨들버전이 있다. 50년이 넘은 책이라서인지 값도 원화로 7천 원 남짓에 불과하다. 50주년 기념판이라고 되어 있고 에릭 시걸의 딸이 쓴 서문이 앞에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은 서문을 읽고 어릴 적 읽을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이 출판된 1970년 당시 격렬히 진행되고 있었던 미국의 문화 전쟁이 멀리서 들리는 총성처럼 올리버와 제니의 러브스토리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 미국은 세대간 문화 전쟁이 한창이었다. 2차 대전에서 고생한 대가로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50년대부터 꽃피기 시작한 소비문화와 물질주의로 나타났다. 이 소비문화를 바탕으로 광고업계가 급성장했는데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매드 맨>(Mad Men, 2007-2015)이다. 광고업체가 몰려 있던 뉴욕 매디슨 애비뉴(Madison Avenue)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매드맨이라고 불렀는데, 소비문화의 정점에서 광란의 파티를 벌이던 사람들을 뜻하는 중의적인 의미도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물질주의에 반대하며 대안 문명을 찾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으나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더욱 격렬해지는 시기가 있는데 서구에서는 1950년대에서 70년대가 그 시기라 할 수 있다.
2차대전 중 아버지의 부재를 겪으며 자라난 세대는 부모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반발이 점점 커졌는데, 그 반발은 부모 세대가 선정적이라며 눈살을 찌푸린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부터 물질 문명을 거부하고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히피문화, 그리고 전쟁(베트남전)을 반대하는 반전운동과 흑인과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운동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제임스 딘을 일약 스타로 만든 <이유 없는 반항>(1955), 히피의 바이블이 된 잭 캐루액의 자전적 소설 <길 위에서>(1957), 더스틴 호프만의 <졸업>(1967)이 히트작이 된 이유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60~70년대는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변혁의 시대였다.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세계지배를 공식화하는 사건이었고, 그에 대항하여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공산진영이 뭉쳤으나 생산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인간의 기본적인 이기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어설픈 시스템이었기에 공산진영의 패배는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승리와 냉전 체제는 그에 대한 반발도 가져왔다. 60년대는 일본의 전공투, 프랑스의 68혁명, 미국의 학계와 문화계를 휩쓴 매카시즘, 마틴 루터 킹으로 대변되는 흑인민권운동,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케네디 암살 등 보수와 진보, 극우와 극좌의 충돌로 점철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올리버와 제니의 사랑 이야기는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구체적인 사건은 나오지 않지만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그 의미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만큼 행간에 배어 있었다.
예를 들어, 소설의 초반에 올리버의 아버지는 아들의 하키 게임을 관람한 후 식사를 하던 중 느닷없이 요즘 젊은이들은 평화봉사단에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나중에 그가 평화봉사단 단장을 맡기로 되어 있음이 드러나지만, 당대 독자는 여기서 당시 대학생들이 베트남전에 대한 징집 연기 수단으로 평화봉사단에 참여했음을 떠올렸을 것이다.
올리버 배렛 4세는 미국의 건국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조상을 가진 명문가의 자식이다. 이런 가문은 대대로 보스턴에 사는 데 올리버의 집이 바로 그 경우다.
반면 제니퍼 캐빌레리는 그리 넉넉지 않은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딸이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유럽, 동유럽의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대거 몰려든 시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이니 제니퍼의 조상도 그 무렵에 미국에 넘어 왔을 가능성이 크다.
제니퍼는 그런 환경에서 래드클리프에 입학했으니 수재 중의 수재라 할 수 있다. (남학생만 받았던 하버드에서 여학생 교육을 위해 만든 학교가 래드클리프다. 이 소설이 나올 때까지도 분리되어 있었으나 이후 하버드에 합쳐졌다.)
미국의 유서 깊고 부유한 가문 출신의 남자와 가난한 이민자 출신의 여자가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하버드다. 그러나 결혼까지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헌법에 평등을 못박으며 건국된 나라 미국에서도 계급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니퍼는 하버드가 싼타클로스의 선물 주머니와 같다고 한다. 원하는 것이 다 담겨 있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거두어지는 선물 주머니. 올리버의 청혼은 프랑스로 유학가기로 했다는 제니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나온 것이지만 그 말 자체는 진심이다. 올리버와 제니퍼가 부모 시대보다는 조금 더 평등한 시대로 한 걸음 나아가기로 함을 보여주는 표시다.
서로에게 시의 한 구절을 읽어주는 것으로 주례사를 대신하는 두 사람의 결혼식도 종교의 권위에서 벗어나 남녀간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신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니와 대비되는 올리버의 어머니는 유서 깊은 집안 출신으로서 명문 여대를 다니다가 결혼하기 위해 중퇴했다. 중매결혼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결혼 후 남편의 말에 절대 순종한다.)
고등학교 시절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당연히 주인공 올리버의 심정에 더 공감했고 아버지의 심정이 어떤지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 내 나이가 올리버의 나이와 더 가깝기도 했고 소설이 올리버의 일인칭 시점에서 서술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을 썼을 때 작가 나이 역시 올리버의 아버지보다는 올리버에 가까운 30대 초반이었다.
그러나 올리버와 제니 또래의 자식을 둔 지금 다시 읽어보니 올리버 아버지의 심정이 보인다. 올리버는 아버지가 늘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아버지는 과묵한 편인 데다가 부자지간에 대화도 많지 않다. 그러나 대여섯 시간을 운전하여 아들의 하키 게임을 보러 가는 아버지이며,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는 아들에게 늘 대화를 먼저 시도하는 아버지다. 아들이 지원한 로스쿨에서 합격 통지가 아직 안 오자 알아봐줄까 하고 제안하는 아버지이며, 아들이 베트남 전에 징집될까봐 평화봉사단 얘기를 슬쩍 흘리는 아버지다.
즉, 아들의 안위와 장래를 생각하고 부모로서 해줄 것이 무엇인지 최대한 찾아보려는 아버지의 심정은 여느 아버지와 똑같다. 오래 전에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다.
아버지(와 그 세대 전체)에 대해 반항하기만 하던 올리버는 부자지간을 이어주려 애쓰던 제니가 불치병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것이 계기가 되어 아버지와 화해를 한다.
<러브 스토리>는 인류의 영원한 테마인 남녀의 사랑, 그리고 부모 자식간의 갈등과 화해라는 흔한 주제를 담은 소설이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소설이 인터넷도 없던 시절 순전히 입소문으로 삽시간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보편적인 주제라도 어떤 시대에는 더 큰 울림을 일으킬 때가 있는데 이 소설이 출간된 1970년이 바로 그런 시대였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적으로 세대간 갈등이 격심했던 시대, 구체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발이 격렬했던 시대, 그러한 시대였기에 올리버와 제니의 사랑과 부자지간의 화해가 더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
시대에 따라 울림의 크기에 차이는 있을 지언정 인류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되풀이 되고 변주될 주제인 남녀의 사랑과 부모 자식의 갈등과 화해... 아주 오랜만에 <러브 스토리>를 읽으며 이 오래 된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Th0-EJDEdmQ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3.1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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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었습니다 ^^
좋은 저녁 되십시오.
7천원짜리 킨들 버전 솔깃하네요
나온 지 오래된 책들은 상당히 저렴하더군요.
러브스토리 내용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흡인력 있는 호중님 글~ 넘 잘 읽었어요^^ 읽는 시기에 따라 느끼는 람정이 달라지는거 같네요~ 딸이 있는 지금의 저도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
기회가 되면 한 번 다시 읽어보시죠. 또 다른 느낌일 겁니다.^^
전 학생때 주말의 명화로 러브스토리를 봤었는데... 줄거리가 ost를 따라오지 못한 느낌...그냥 음악만 남았어요. 워낙 유명하니~
근데 대학때 영어공부한다고 읽은 그 후 얘기를 다룬 올리버 스토리는 좋았어요.
<올리버 스토리>도 재미있죠. 거기에 그려진 홍콩의 저임금 노동의 과실을 선진국이 따먹고 있는 현실은 장소만 달라졌을 뿐 지금도 여전하지만요.
전 얼마전에 유툽에서 영화로 다시봤어요
옛날엔 여주 알리맥그로우가 그닥 미인형이 아니라고들 입방아 했는데
다시보니
매력있다고 생각했고 하버드 캠퍼스에서
지금도 마트에 보이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딸기잼과 땅콩버터를 빵에 발라먹는 장면이 나와서 깜놀했네요 ᆢㅎ
늦은밤 이글을 놓칠 뻔 했는데 잘보고 갑니다~~
우연의 일치로군요. 영화는 다시 보지 않았기에 딸기잼과 땅콩버터는 기억나지 않네요.ㅎㅎ
Snow Frolic들으니
고등시절이 ㅎㅎ
방송반 pd였는데
2교시 쉬는 시간 직전 함박눈이 내려서
이 곡을 틀었다가
(방송은 점심시간에만)
교무실 불려가 혼났지요
학생들에게 엄지척!받았지만 ㅎㅎ
방송반 때 그런 잠시의 일탈이 많았죠.
제가 고등학생 때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금지곡이었는데 친구가 집에서 LP를 가져와 틀었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전 어릴때 이상했던게 올리버의 대학생활이었어요 나중에 마이클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이해가 되었답니다 ㅋ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포레스트검프의 여주이름도 제니 ^^
이 소설이 발표된 후 10년 정도 동안 여자아기 이름 중 제니퍼가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책을 다시 읽어보라 하셨는데 영화를 다시 보고 싶네요. ^^
뭣도 모르던 사절-중학교-때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면 아주 새롭겠죠.
영화는 소설과는 꽤 다를텐데 하도 오래 전에 봐서 기억이 안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