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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설악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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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행 후 기 스크랩 [산행후기] 구름속의 산책, 설악산 화채능선을 가다.(2007.7.11~12)
킬리만자로 추천 0 조회 76 07.07.14 04:5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구름속의 산책, 설악산 화채능선 종주기


0 일      시: 2007년 7월 11일(수)~12일(목)

0 코      스; 오색약수~대청봉~화채봉~칠성봉~집선봉~권금성산장~안락암 ~비룡교~설악동 소공원

0 같이한이: 닐님, 푸른언덕님,지설님

0 자료참고: 네이버 블로거 맘짱님....

 

                  <그때의 기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 : 라스트 모히칸  OST>

   

#프롤로그: 

 산을 오른 높이만큼, 나는 낮아질려고 한다


神이 오지 말라는 곳도, 인간은 거부하고 올라선다.

山이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山은 사람의 사랑을 구속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왜 오늘도 산을 오르는 것일까?

이 더위에... 이 장마철에... 땀을 흘리면서 오른 산꼭대기에서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심신단련을 위해서 산을 오르는 것인가...

그러나 그것 뿐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나는 산을 닮으려는 것이다.


산은 늘 변화하면서도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

또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이면서도 늘 변화하는 신묘한 존재다.

그렇다.

산은 결코 체력단련을 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

놀러가는 곳은 더욱 아니다.


산은 바로 마음 공부하러 가는 곳이다.

언제나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산을 배우러 가는 곳이다


산은 언제나 그 높음과 넓음 그리고 깊음으로 나에게 무한의 깨달음을 주곤 한다.

산은 바라보는 것 자체가 깨달음이다.

 

그래서 산사람은 늘 히말라야 설산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설산의 품에 안겨 보리라.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해보고 싶다.

머지않은 시기에 반드시 히말라야 산맥을 트레킹할 것이다....


산은 내게 하나의 話頭이다.

오르고 또 올라도 깨치지 못하는 화두인 것이다.

떠나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 설악의 화채능을 머리속으로 그린다.

이번에 화채를 걸으면서 마음속의 때를 얼마나 벗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산을 오른 높이만큼, 나는 낮아질려고 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산에 안겨, 나는 나보다 못한 이웃들에게 크고 넓고 깊은 산처럼

넉넉한 이웃이 되는 꿈을 꾸어 본다.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가지 말라고 하면 더욱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철부지 아이 때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진정한 산객이 되기도 전에 출입통제지역을 넘는 위법을 저지르는 마음이 불편하다.


이 또한 산을 사랑하고, 진정한 산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자위하면서

유람기를 적는다.


 

#설악산은 山中 절세 美人이다.


설악산은 山中 美人이다.


산의 얼굴은 붕우리 峰이다. 산의 몸매는 능선이다.

산의 건강은 계곡이다. 산의 피부는 숲이다.


설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지리산과는 전혀 상반된 매력이다.

설악을 처음 알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설악은 그런 매력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다.

오히려 알면 알수록, 그동안 보지 못했던 더 많은 모르는 것들을 쏟아낸다.


오늘은 설악이 나를 부르고 있다. 

그것은 절세미녀의 은밀한 유혹과도 같은 것...... 

마음은 벌써 아름다운 여인 설악을 만나러 가는 꿈으로 부풀어 오른다.


# 강원도 원통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로 가자면 갈림길이 나온다.


‘한계령길’이라 부르는 44번국도와  ‘미시령길’이라 부르는 46번 국도가 갈라지는 곳이다.

한계령길과 미시령길 사이가 바로 ‘설악산’이고

한계령길 아래 (남쪽)은 1970년경 사진작가 성동규씨가 점봉산, 가리봉, 주걱봉 일대를
일컬어
‘남설악’이라고 명칭한 것에 유래한다.

 

태백산맥을 경계로 동쪽을 ‘외설악’, 서쪽을 ‘내설악’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정확한 개념도가 그려진다.

 

설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면 누구나 한번쯤 가고 싶어하는 능선이 바로 ‘공룡능선’이다.

그 공룡능선이 바로 백두대간(태백산맥) 중심에 놓여있기 때문에, 공룡능선이야말로

외설악과 내설악을 구분하는 경계능선이 된다.


설악산의 오른 날개 화채봉....

화채능선은 대청봉에서 시작해서 권금성 봉화대에서 끝나는 코스이다.


몇년전 공룡능선에 이어 서북능선, 용아장성을 걸어본 다음에는

가보고 싶은 욕망이 더욱 거셌던 곳.

지난 6월 30일밤, 무박으로 안내산악회를 따라 화채봉 산행에 나선 적이 있었다.

예정은 소토왕골로 올라서서 집선봉과 칠선봉, 화채봉을 오르는 코스였다..


50:50의 확률을 갖고 나선 산행 길...

장마의 초입에 나선 산행 길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예정보다 설악의 빗줄기는 거세었다.

비가 그치길 차안에서 2시간을 기다리다가 결국 대부분은 우중의 달마봉 산행,

일부는 울산바위만 다녀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10여일후, 나는 그 아쉬움을 끝내 못이겨 오늘 다시 설악산 산행길에 나선다.

이번에도 비가 올 확률은 높았다.


설악산 관리사무소에 전화도 해보고 수시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설악산 날씨를

확인해본다.

최종적으로 목요일 오전에 갠다는 뉴스를 접하곤 집을 나선다.

처음으로 번개산행 길에 나선 것이다.

지설님과 닐님을 태우고 셋이서 밤 11시가 넘어 밤 깊은 고속도로를 달린다.


차 안에서 일행들과 산행 코스에 대한 상의를 한다.

1안) 아주 날씨가 좋을 경우: 토왕성폭포에서 소토왕골~화채봉

2안) 비가 그칠 경우: 둔전골이나 오색에서 ~대청~화채능선~권금성~안락암 코스

3안) 비가 계속 내릴 경우: 삼척 도계 성황골 용소굴 답사...


삼척 도계 성황골

 

도계읍 고사리에서 남동쪽 두리봉·육백산 사이로 6~7㎞ 뻗어올라간 성황골.

인적 뜸하고 오염원도 거의 없는, 보기 드문 산골짜기. 상·하류에 걸쳐 볼만한 바위경치를

두루 거느렸으면서도  일반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오지전문 산꾼이나 용소굴과  이끼폭포에 반한 사진꾼만 간혹 찾아들 뿐이다. 

중·상류쪽엔 길이 없어, 밧줄·계곡신발 등을 갖추고 본격 계곡 트레킹을 해야 하는 곳이다.

다리품을  좀 팔아야 하지만, 최상류와 중·하류를 따로 둘러보는 게 안전하다.


등등으로 의견을 모았다.

일단 출발이다. 모든 상황은 현지에 가서 결정할 것이다.

 

 ▲이른 새벽 오색약수 온천지구 풍경

 

# 설악으로 가는 길은 바로 내 자신에게 가는 길


중부지방의 날씨는 쾌청하다.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밤늦은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린다.

대관령을 앞두고 빗줄기가 비치더니 대관령엔 제법 굵은 빗방울이 차창을 때린다.

고갯마루라서 그렇겠지...내려서면 괜찮겠지...

스스로 자위하면서 또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설악산을 찾아든다.


밤을 도와 승용차나 버스에서 새우잠을 자고, 새벽에 야간산행부터 시작하는 무박산행은

피곤하기 그지없다.

야영의 즐거움도 없고, 여유로운 휴식도 없다.

오로지 그곳에 가고싶다는 일념만이 무박산행의 고단함을 극복할 수 있다.

 

밤새 달려온 고속도로를 뒤로하고 ‘38선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으로 졸음과 피곤을 쫓는다.

어둠에 잠긴 밤 바다는 제법 높은 파도가 일렁인다.

하얀 거품을 일으키면서 파도가 해변을 때린다.


새벽 3시가 넘어 설악에 도착했다.

설악은 온통 어둠에 잠겨있다.


행락철의 어수선함과는 전혀 다른 태고의 적막감이 설악을 덮고 있다.

간간이 가랑비가 뿌린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 비가 그칠까...

비가 그치길 기다리면서 목우재를 넘어 척산온천지구에 있는 숨두부 집을 찾는다.

목우재는 토왕성폭포를 보는 전망대와 같은 달마봉에 오르는 들머리이다.  

울산바위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소공원 북쪽에 솟아 있는 달마봉(達磨峰, 635m)이다. 


척산온천 지구의 6000원 짜리 숨두부 집. 밥과 반찬이 모두 맛있다.

다시 설악동으로 넘어온다.

목우재를 넘으니 어둠속으로 토왕성폭포의 흰 물줄기가 확연하게 보인다.

일행 모두가 순간적으로 소리지른다.

와!!!!...

창을 열고 잠깐 내다본다...


장맛비속 밤새 내린 비로 엄청난 수량의 물이 폭포에 넘쳐난다.

정말 장관이다.

차를 세우고 토왕성폭포의 위용을 한참동안 감상한다.

토왕성을 보지 않고 어찌 설악을 보았다고 하겠는가?

토왕성을 친견(親見)하지 않고 어찌 설악을 안다고 하겠는가?

그 장엄한 토왕성의 광경에 넋을 빼앗긴 채 한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설악동엔 점차 날이 밝아온다.

오늘 등산 코스에 대한 상의를 한다.

그러한 잠시 ‘지설’님이 오색에 있는 ‘푸른언덕’님과 통화를 한다.


날씨와 등산코스에 대한 상의를 한후, 그 분과 합류하여 오색에서 대청에 올라 화채를

넘는 것으로 결정한다.

차를 오색으로 돌린다. 푸른언덕님과 조우한다. 

오색에서 식당에서 도시락을 주문하고 차를 온천지구에 주차한다. 


갑자기 비가 더 쏟아진다.

하늘을 보니 지나가는 비 같다. 30여분을 기다리니 비가 그친다.

드디어 시작이다.

 

  ▲ 오색 통제소


# 산을 오른 높이만큼 나는 낮아질 수 있을 것인가...


6시 50분  오색통제소를 지난다.

늘 밤에만 통과했던 오색통제소....

밝은 아침에 보는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꼬박 20년이 되었다.


1986년....처음으로 대청봉 등산을 위해 오색에서 하룻밤을 잔 이후 처음이다.

설악산 대청봉이라는 글자가 써있는 입구의 큰 바위는 변함이 없다.

 

오색으로 내리는 계곡엔 물이 많다.

등산로는 정돈이 잘되었다.

여기서 제1쉼터까지는 대부분 너널길이다.

비에 흙이 거의 씻겨 내려갔기 때문이다.


재작년과 작년의 연이은 태풍피해는 설악에 너무도 깊은 상처를 안겼다.

일부는 복구되었지만 예전의 설악의 진경을 회복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갑자기 ‘푸른언덕’님이 급체 현상을 보인다.

‘닐’님이 소지한 수지침으로 손가락을 딴다. 역시 산행경력이 묻어있는 솜씨다.


급할것이 없는 오늘 산행일정이다.

쉬엄쉬엄 대청을 오른다.

제1쉼터라고 부르는 넓은 공터까지는 가파른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무릎 관절에 무리를 주는 돌계단길이 가장 싫다. 

하지만 어쩌랴! 길을 가다가 보면 힘들고 거친 길도 만나는 법. 


 

                     

 

 

 

 

 ▲ 산행시작후  약 50분이 지난 7시 42분  제1쉼터를 지난다.

 

  ▲7시 59분.  끝청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정표 뒤가 들머리) 에 접어든다

 

  ▲8시 26분에 설악폭포에 도착한다.  폭포의 상단부

 

설악폭포 한참 못미처 계곡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설악폭포다.

설악폭포는 여름에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를 때 땀을 식히며 쉬어가는 곳이다.

대청봉에서 2.6km 떨어진 곳에 있다. 수량이 제법이다.

역시 폭포는 비온 직후 물이 많을 때가 가장 장관이다.

사진 몇장을 찍고 잠시 휴식을 갖는다.


21년전인 1986년 가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처음으로 대청에 오르던 날.

오색에서 올라오면서 설악폭포 너럭바위에 앉아 점심을 해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그시절...그리운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지나간다.


 

 

  ▲설악 폭포의 하단부

 

 

 

 

 ▲지설님의 강쥐 그림 배낭커버


발끝에 점차 힘이 들어간다.

발이 땅을 밀어내고 땅이 발을 밀어낸다.

서로를 밀어내며 오르길 두어 시간.


아무리 높이를 높여도 시야가 트이지가 않는다.

계곡 아래에서부터 내뿜는 가스가 온통 사방을 가로막는다.


고도를 높이면서 빗방울이 또 떨어진다. 걱정이 앞선다.

벼르고 별러 찾은 산행길인데 가는 장이 장날이다.

 

배낭커버를 하고 계속 진행을 한다.

그런데 앞서가는 지설님의 배낭커버가 잼있다.

지난번에는 무심결에 지나쳤는데 자세히 보니 강쥐 그림이 그려있다.

한참을 웃는다.


별렀던 화채능의 그림같은 풍광을 온 몸으로 볼수 있다는 생각을 일찍 접어둔다.

그냥 등산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역시 설악은 진지하고 준비한 자에게만 그 속살을 보여주나 보다.


대청봉에 오르기 직전 가랑비가 멈추었다. 다행이다.

오전 10시 20분 대청봉에 도착했다. 쉬엄쉬엄 걸어 3시간 30분 소요됐다.


 

 

 

 

 

 

 ▲대청봉에는 아무도 없다. 다람쥐만이 산객을 기다린다.


꼬리에 털이 송송 일어선 귀여운 다람쥐 한 마리가 이리저리 뛰놀고 있었다.

대청봉에는 아무도 없다. 다람쥐만이 산객을 기다린다


등산객이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다람쥐이다.

손에 먹이를 들고 있으면 손바닥까지 올라온다.

사람이 동물들의 본성도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면서 대청봉에서 기다린다. 

대청봉은 청봉(靑峯) 또는 봉정(鳳頂)이라고도 부르는데 공룡릉, 화채릉,서북릉 등과 같은 

설악산의 주요 능선들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대청봉은 죽음의계곡과 천불동계곡, 가야동 계곡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대청봉에 올라서면 날씨가 돌변하기 일쑤다.

대청봉에는 태풍수준의 바람이 불어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구름도 변화무쌍해서 순식간에 설악산을 감춰버리곤 한다.


대청봉 주변에는 온갖 야생화의 천국이다.

이름을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많다.

기다리기 지루한 마음에 이곳저곳 다니면서 수십종류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는다.


1시간이 기다려도 하늘은 열리지 않는다.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한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하늘이 열리길 기다린다.

 

 

 

  구름이 중청 고갯마루를 타고 넘는다.

대청봉에서 중청대피소까지는 약 600m의 거리다.

대피소 바로 뒤에서 서북릉과 소청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있다.


중청대피소는 진달래가 활짝 필 무렵의 봄철이나 단풍이 울긋불긋 물드는 가을철에는

등산객들로 발을 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등산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늘도 잠시 열렸다가 닫혔다가를 반복한다.


구름만 걷히면 기가막힌 운무의 바다가 펼쳐질 것이다.

화채능 너머로 속초시와 석호인 영랑호, 청초호....그 뒤로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일 것이다.

10분...20분...30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도 대청봉의 ‘기’를 받고 있는 기다림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셈이다...

그새 몇몇 등산객이 대청을 찾는다.

판에 박힌 증명사진 한두장을 찍곤 바로 떠난다.


하늘도 잠시 열렸다가 닫혔다가를 계속 반복한다.

정말 감질 맛 난다.


설악이 쉬고 싶어 하는 ‘휴식년제구간’을 밟으려고 하는 탓일까?

설악은 좀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앞으로 걸어 갈 길들이 몸 안에 새겨지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화채봉과 칠성봉에서의 조망, 칠성봉에서 바라다보는 천화대리지, 공룡능선,

범봉, 멀리 마등령까지, 반대편 노적봉을 오르는 ‘한편의 詩를 위한 길’까지…

아! 다 부질없는 노릇이다.


구름이 가득찬 하늘을 올려다볼 뿐,

대청봉에서 기다린지 무려 2시간 30분이 넘었다.

시침은 1시를 향해가도 있다.

더 이상  머물 겨를이 없다. 미련을 털고 길을 재촉한다.

 

  ▲설악산 능선 개념도

 

 #설악의 오른쪽 날개, 화채능선


풍수지리상으로는 설악의 산세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산세’를 지녔다고 한다. 

대청봉이 닭의 머리이자 부리요, 서북능선이 왼쪽 날개,

화채능선이 오른쪽 날개, 그리고 공룡능선이 닭의 몸통이 되는 셈이다.

용아장성이 시작되는 봉정암은 설악의 심장이자 알이다.


풍수지리에 의한 설악의 형상을 보면 화채능선은 닭의 오른쪽 날개이다.

닭의 부리로 쪼아 먹을 수 있는 사정거리에 해당하는 오른쪽 날개 겨드랑이 밑이

죽음의 계곡이다. 

그 누가 이곳을 죽음의 계곡이라 명하였는가....


죽음의 계곡은 대청봉에서 희운각으로 곧바로 내려오는 능선의 바로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자주 눈사태가 일어나는 곳이다. 

이 계곡에서는 설상훈련과 빙폭 훈련을 할 수가 있어서 히말라야 8천 미터급

등정을 위한 해외원정대들이 전지훈련차 많이 찾는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종종 등반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1969년에는 한국산악회원 열 명이 죽음의 계곡에서 해외원정을 위한 훈련을

 하다가 눈사태를 만나 목숨을 잃었다. 

죽음의 계곡 루트는 1956년 8월 한국산악회원 전감(田堪)씨가 최초로 개척한

이래 아직 뚜렷한 등반로는 없다.


죽음의 계곡은 바로 닭의 목에 해당한다. 

닭의 목에 먹이가 될 만한 것이 붙어 있을 때, 닭이 그것을 쪼아 먹는 것은

당연지사. 닭의 먹이는 죽음의 계곡을 오르려고 하는 사람일 터...


화채능선 종주시에 큰 기점으로는 대청봉-1253봉(만경대갈림길)-화채봉(샘터)-

칠성봉-소토왕골 샘터-집선봉-권금성통제소이다. 


‘화채(華彩)’, 꽃처럼 고운 빛깔을 수놓은 능선을 일컬음이다.

화채능선은 설악산의 VIP석이라고 한다.

자연휴식년제로 오랫동안 등산코스를 개방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보존상태가  

뛰어나다. 

또한 곳곳에 협곡과 절벽으로 인해 일반 등산객들이 개별적으로 산행하기는 위험하다. 


설악의 멋진 풍경사진등은 대부분 화채능선에 찍은 사진들이 많다고 한다.

화채능선을 찾는 사람은 산꾼보다는 사진작가들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조망이 빼어날 뿐만아니라, 화채능선은 항상 출입이 통제돼 왔던 설악의

성역과도 같은 곳이다.

설악 매니아들 중에서도 화채능선 한번 가보는게 꿈이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산악 전문가와 은밀히 떠나는 산객이 종종 있다.

우리도 그중 하나이다.

 

 

#설악산 최고의 VIP코스, 화채능선


대청봉 맞은 편에 화채릉의 대표적인 봉우리인 화채봉이 솟아 있다. 

화채능선(華彩綾線)... 화채릉은 일명 동북(東北)능선이라고도 한다, 

대청봉에서 동북쪽으로 권금성까지 8km에 이른다. 

대청봉에서 화채봉(華彩峰, 1,320m)), 칠성봉(七星峰, 1,077m), 집선봉(集仙峰,

920m)을 

지나 권금성(權金城)까지 세찬 기세로 뻗어가고 있는 줄기다.


권금성 봉화대에 이르면 그 이후 하산 길은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 가든지,

아니면, 안락암 옆에서 시작되는 급경사 길로 걸어 내려가야 한다. 

이 길은 야간이나 악천후에는 위험하다.

그 외에는 하산을 위한 다른 샛길이 없다. 

물론 암벽하는 사람이라면 자일하강하면 되겠지만.....


우리는 화채능선 종주를 계획했다.

대청봉에서 권금성 안락암을 거쳐 직접 육로로 하산하기로 한 것이다.

비록 조망을 즐기진 못하더라도 온전하게 화채능의 모든 것을 밟고 싶은 마음이었다.


봄이 되면 화채봉 일대는 얼레지가 만발하여 연보라빛으로 물든다고 한다.

봄철 설악산엔 얼레지가 지천이다.

산중 미녀인 설악산에 ‘바람난 여인’ 이라는 꽃말을 가진 얼레지가 많은 것도

기이한 인연이다.

화채봉에서 동쪽으로 송암산(松岩山, 767m)까지 뻗어나간 능선을

화채동능선(華彩東綾線)이라고 한다. 


화채동능선과 대청봉에서 관모봉으로 뻗어내린 능선 사이에 있는 골짜기가 둔전골이고,

화채봉 동북쪽으로 흐르는 계곡이 피골이다. 

 

서산에 지는 햇빛 한줄기가 산마루에 걸려 있는 봉우리가 화채봉과

집선봉 사이에 있는 칠성봉이다. 

칠성봉 동쪽에 함지처럼 움푹 들어간 분지를 함지덕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화전민들이 살았던 곳이다. 


칠성봉 동북쪽 산기슭에서 발원하여 노적봉(露積峰) 오른쪽으로 흐르는 계곡이

토왕(土旺)골이다. 

토왕골에는 육담(六潭)폭포, 비룡(飛龍)폭포, 토왕성(土旺城)폭포 등 세 개의 폭포가 있다.

신광폭포(神光瀑布) 또는 토왕폭(土旺瀑)이라고도 하는 토왕성폭포는 설악산을 대표하는

3대 폭포 가운데 하나로 칠성봉 북동쪽 계곡 450m 지점에 있다.

석가봉과 문주봉, 보현봉, 문필봉, 노적봉이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3단 연폭(連瀑)은 멀리서 보면 마치 하얀 비단을 바위에 펼쳐놓은 듯하다. 

토왕폭은 겨울철 산악인들이 빙벽훈련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칠성봉과 권금성 가운데 있는 집선봉은 수직절리의 암봉들이 밀집되어 있어 

마치 선녀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집선봉(集仙峰) 이란 명칭도 거기에서 얻었다.


집선봉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암봉들이 솟아 있어 화려할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  집선봉 맨 북쪽 암봉이 권금성이다

 

 ▲ 화채능선 등산로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금지 표지판

 

# 구름속의 산책...설악 화채능선

 

오후 1시 화채능선에 내려선다.

대청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옛날 대청봉 벙커 대피소 (2007년 2월 철거) 옆을

지나 '북동쪽'으로 흐르는 능선 초입길이 있다.

이곳으로 들어가 200m 정도 걷다가 보면,  옛날에 헬기장으로 사용했던 넓은 공터가 나온다.

 

이 넓은 곳에서 작은 오솔길이 사방 팔방 어지럽게 나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아무런 이정표가 없어서 화채능선을 가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헤맸다고 한다.

그러다 들머리 길을 잘못 들어 관모산 가는 능선 (관모능선)으로 빠지기 일쑤였다.


지금 그곳엔 아이러니하게 화채능선 등산로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는 출입금지 구역이 많다.

그러나 대게 그곳에는 역설적으로 이곳이 출입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금지 표지판이나

현수막이 있게 마련이다.

표지판 바로 뒤가 화채능선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길은 제법 가파르다. 산세의 험함을 알려주고 있다.

육산길이라 부드러운 낙엽길이나,  대청봉에서 내려오는 수직의 경사만큼 고도가 낮아진다.


네 사람이 앞뒤서거니 하며 스틱으로 몸을 앞으로 밀어낸다.

맑은 공기의 흐름을 폐부 깊숙이 집어넣으며 싸목싸목 나아간다.

짙푸른 녹음이 우거진 설악의 숲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태고의 원시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오가는 이가 단 한사람도 없다, 서로 주고받는 말들도 없다.


이 능선을 타고, 하염없이 30분정도 내려오면 주능선길 오른쪽으로 빠지는 샛길이 나타난다. .

무심코 걷다보면 눈에 띄지 않아 쉽게 지나치게 된다.

이 오른쪽 샛길이 바로 둔전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주능선길이나 둔전골로 빠지는 샛길이나 폭이 30~40cm정도밖에 안되므로 눈에 잘 안 뜨인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록을 보면 대청에서 시작하지 않고,

둔전골로 올라와 이곳에서 화채능선을 시작해도 계곡산행과 능선산행 두가지를 모두 맛보는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평균 걸음으로 약 1시간30분 정도를 지나면 1253봉이 나타난다.

중간중간 지도를 확인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나는 1시간 10여분이 걸렸다..


 ▲ 1253봉에서 양폭산장 내려가는 갈림길 들머리...   붉은색 시그널이 보인다

 

 

# 세상을 잊고 살면 어떠랴, 세상이 날 잊으면 또 어떠랴


화채에 깊이 들어갈수록 태초의 자연이 고개를 들게 만든다.

곳곳에 멧돼지 흔적도 나타난다.

눈대중과 발끝의 감각으로 등산로를 인지할 만큼 다복다복 우거진 길이다.

신작로가 아닌 점선으로 이어진 화채능선이 해와 해를 더해 간직해왔던 속살을 드러내 보인다.

 

1253봉이 중요한 이유는, 양폭산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1253봉을 왼쪽으로 우회하면 만경대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만경대는 설악산 3개의 만경대중에서 외설악 만경대이다.

이 길로 내려서면 양폭산장 앞으로 떨어진다.

 

이 만경대로 내려가는 길은 연속된 릿지길로 상당한 험로이다.

선답자들은 야간이나 악천후에는 가지말 것을 권고한다. 


이 갈림길에서 한 20~30분 정도 더 가면 화채봉이 나온다.

14시 32분 화채봉 하단에 도착했다.

 

 ▲무속인들인지, 산사람들인지 누가 만든지 모를 제단이 보인다


화채봉 정상 조금 못미쳐, 2~3개의 비박 캠프사이트가 있다.

그리고 지금은 길이 희미해서 쉽게 잘 찾지 못하지만, 화채봉 직전 캠프사이트

근처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떨어지는 샘터로 가는 길이 있다고 한다. .

한 5~10분정도 내려가면 넓직한 공터가 나오면서 심마니터라는 샘터가 있다고 한다. 

샘터 옆에도 텐트 2동 정도를 칠수 있는 캠프사이트가 있다고 한다..

 

화채능선 길은 화채봉 제일 꼭대기 정상을 지나지는 않는다.

정상부근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그냥 넘어간다.

화채봉 제단에서 100여미터 정도 진행하면 너덜길이 있다.

너덜길 입구에는 큰 바위 덩어리가 있다.

너덜 바위지대가 정상에 오르는 길목이다... 조망이 전혀없어 정상을 오르지 않고 직진한다.


날씨가 좋을 경우 화채봉 정상에 올르면 대청봉 뿐만 아니라 공룡능선까지

훤히 보이는 것이 가히 일품이라고 한다.

 

전문 작가들의 사진을 보면 정말 환상적이다.

공룡능선에서 바라 본 화채봉과 어디 비교하랴!

이곳은 설악산의 양쪽 날개 중 오른쪽 날개로서 좌청룡이 공룡능선이라면 

우백호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희운각과 천불동 계곡은 구름아래 덮혀 있다.

저 안개와 구름너머에는  이름모를 바위들이 구름위에  우뚝 솟아 있을 것이다.

이 신비의 비경을 보려고 극히 오기 힘든 곳을 은밀히 온 것이다.

마음속으로 눈 앞에 펼쳐질 풍경을 그려본다.

 

 

▲사진에서 빨간 줄로 그려놓은 곳이 앞으로 가야할 능선길의 개략적인 모습이다.

   칠성봉을 유심히 봐두면 좋은 기점이 된다.

 

 

 

 

 

 

 

 

 

화채능을 지나면서 빗방울이 또 떨어진다.

잦아들 때도 되었건만 궂은비는 무심하다

대청에서 화채봉까지는 등로가 확연하지만, 화채봉을 지나서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많지 않다. 


잡목이 많아 방해가 심하고, 여기저기 긁히기 십상이다.

거의 몇십미터 간격으로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이 보았다.

아마 설악산의 모든 멧돼지가 이곳에 모여 있는 듯 하다.


화채봉에서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가 많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화채봉을 지나자마자...약간의 난코스 한개가 나온다. 

넓은 바위가 나타난다. 커다란 바위가 등산로를 떡하니 막고 서 있다.

바위 위로 넘어가던지, 바위 밑쪽으로 내려 섰다가 다시 등산로로 올라야 서야한다. 

마땅한 스탠스나 홀더가 없어서 초보자들은 좀 어렵다.

아래로는 짧은 벼랑이다.


위험 구간을 지나면 마치 정글속을 지나는 구간을 만난다.

외국 영화에서 본 밀림 속 정글을 헤집고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능선상 잡목의 괴롭힘이 점점 심해져 간다.

아마 사람들이 안다닌 길이라 그런지 세차게 찔러댄다.

손으론 헤치고, 다리로는 찔리고 하며 길을 이동한다

빗방울은 더욱 굵어졌다.


화채봉을 내려서는 길은 심한 경사 길이다.

이번 장맛비로 등로의 지반이 약하고, 낙석의 위험이 매우 크다.

돌을 피해가며 밟으며 힘들게 걷는다.

길도 아닌 길을 나무 줄기나 뿌리등을 잡으며 내려온다.


여기서 내려오다가 중간 정도에서 좌측으로 붙어 좌측능선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계속 내려가면 길도 없는 피골상류로 내려 갈 수도 있다.


길이 희미할 경우, 무조건 좌측 길을 잘 찾아야 된다.

길만 찾으면 칠성봉까지는 외길이므로 그리 어렵지 않다.


화채봉을 지나 짐승들이나 다니는 듯한 길을 따라가다 어느정도 걷다보면, 조망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화채능선 앞으로 가야할 능선길이 전부 내려다보인다고 한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따르면 아주 조망이 빼어난 곳이다.

멀리 동해바다, 울산바위, 백두대간 황철봉까지 조망이 탁 트이는 이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계속 구름속의 산책이다.

다시한번 마음속으로만 눈 앞에 펼쳐질 풍광을 그려본다.

 


원시 밀림을 헤치고 가다보면 넓은 바위가 또  한번의 경치를 만끽하게 해준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아본다.

안개속에 우뚝 솟은 바위, 절벽 사이에 고고한 자태를 자아내는 소나무가  너무 아름답다.

사진을 찍고 아래로 내려다보니 아찔한 직벽이다.

조금 더 암릉을 지나면 칠성봉이 나온다.


14시 52분 칠성봉 하단에 도착한다.

 

   ▲칠성봉 하단의 이정표

 

 

 

 

# 산도 서있고 나도 서있고... 

  단지 움직이는 것은 비와 바람과 구름뿐...



칠성봉 근처에 다다르면 눈 앞에 보이는 정경은 사뭇 달라진다.

공룡능선에서 보면 뽀족하고 우뚝 솟은 바위가 있는데 바로 이곳 칠성봉이다.


등로 왼쪽은 천길 낭떠러지다.

용아장성의 축소판이다.

경치에 취해서, 아니면 한눈팔다가 추락사 한 사람이 여럿이라고 한다.

칠성봉 정상은  넓은 암반과 송곳니처럼 뾰족하다.


칠성봉 정상 역시 대단한 조망터이다.

전문작가들의 많은 설악산 풍경사진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멀리 바라다보이는 조망이 최고인지라, 이곳에서 전문 사진 작가들이 설악산 풍경을

몰래 촬영하는 곳이라니 과연 그럴듯하다.


구름사이로 끼고도는 설악의 계곡과 노송, 구름위에 우뚝 솟아 잘 진열된 바위들의

풍경들 액자에서 많이 본 운해들이 이곳에서 찍은 듯싶다.

 

칠성봉 넓은 암장 밑으로 해서 오른쪽으로 돌아 칠성봉을 지난다.

칠성봉에서 토왕골로 이어지는 바우능선이 장엄하게 이어진다.

칠성봉 주변에서는 날이 좋으면 저 멀리, 화채능선의 종착역인 봉화대도 보이고,

케이블카 승강장도 조그맣게 보인다고 한다.     

   

칠성봉에서 우측으로 돌아서 급경사를 지나 칠부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30~40m정도의

슬랩을 가로지르는 코스가 2개 나타난다.

트레버스 형태로 경사도가 좀 있다. 초보자들은 간단치 않다.

하기야 화채능선을 올 정도면 산행 초보자들은 아닐 것이다. 


야간이나 악천후에는 아주 조심해야할 구간이다.

두번째 슬랩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나무위에 쇠로 막든 체인이 매달려 있어서

그걸 잡고 내려 설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팔이 짧은 여성의 경우에는 손이 닿지도 않는다.

자세히 바위를 보니 홀드가 충분하다.

닐님이 앞장서고 푸른언덕님에게 홀드의 위치를 알려준다.

대단한 산행경력이 엿보이는 순간이다.

푸른언덕님은 아침부터 급체현상을 보이더니 하루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다.


칠성봉을 지나서 중간에 소토왕골로 흐르는 샘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집선봉으로 내려선다...

능선을 벗어나 좌측길로 들어서서 약간 내려오면 소토왕골 샘터가 나오고

여기서는 소토왕골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날이 좋으면 이 길로 내려갈 수도 있고, 반대로 올라올 수 도 있다.

 

비에 젖은 암반은 미끄럽다.

시야는 더욱 나빠졌다.

비 구름이 아래로 내려온 듯하다.


조심조심하면서 암릉길과 육산 길을 번갈아 진행한다.

직선보단 곡선, 수평보단 수직의 길을 오르내림이란 고된 일이다.

가로로, 세로로 길을 잇는다.

 

 

 

 

 

 

 

     암릉지대 곳곳에는 솜다리(에델바이스)가 피어있다.

 

 

15시 20분 칠성봉을 지나 30여분 정도 집선봉 암릉지대를 진행한다.
암릉지대 곳곳에는 솜다리(에델바이스)가 피어있다. 용아장성 주변에서도 그랬다.


아마 우연의 일치인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에델바이스가 왜 수직 단애 주변에만 피어있는 것일까.

늦 봄에 주로 피는데, 이곳의 날씨가 그러한가.


천길 단애의 상층부에서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 방향을 내려다본다.

이 자리에 이렇게 서서 백만년을 흐르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든다.


산도 서있고...나도 서있고... 단지 움직이는 것은 비와 바람과 구름뿐이다.

비와 바람과 구름, 오직 그들만이 나를 내치지 않고 이 자리에 같이 하고 있다.

 

비록 조망이 없더라도 영화속의 한 장면이다.

마냥 꿈길을 걷는 듯 나는 이 산길에 취해 있었다.

가슴시리도록 크게 쉼 호흡을 한번하고 날등을 내려선다.

 

칠성봉에서 집선봉 날등지대를 지나 이제 마지막으로 권금성을 향해 간다.

길이 확실치 않은 곳이 두어곳 있다.

첫번째 안부에서는 왼쪽, 두번째 슬랩지역에서는 오른쪽으로 크게 돈다.

 

자세히 보면 역시 슬랩의 돌이 닳은 흔적이 보인다.

트레버스를 하면서 사람이 다닌 흔적이다.

겨울에 아이젠에 긁힌 자국이기도 하다.

 

한시간 이상을 더 진행해서야  16시 47분, 권금성에 도착했다.

 

 

 

 

 

 

 

 

 

 ▲권금성의 성벽 흔적

권금성은 둘레가 약 3.5km에 이르는 고대 산성이다. 

신라시대 이전에도 양양과 간성에 고대부족이 있었다.

설악산은 이 고대부족의 진산(鎭山: 전시에 군사적 대응을 위해 올라가는 산)이었다.

 

산성은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에 계속 고쳐 쌓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권금성의 아랫부분은 고대 부족국가 시대의 성이다.

권금성은 이 부족이 맨먼저 쌓은 성으로서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다.

설악산성(雪嶽山城), 옹금산성(擁金山城), 토토성(土土城)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성벽이 거의 다 허물어지고 성터만 남아 있다.

암봉 정상부의 80칸이나 되는 넓은 반석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이 산성은

천연의 암벽 요새지로 정상에는 실료대(失了臺)와 방령대(放鈴臺)가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옹금산석성(擁金山石城)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권금성은 설악산 꼭대기에 있으며, 석축이다.

둘레는 1,112척(尺)이고 높이는 4척(尺)이었는데, 지금은 반쯤 무너졌다.


예전에 권(權)씨, 김(金)씨 두 집이 이곳으로 피난한 까닭에 권금성이라고 이름하였다는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온다.


낙산사 기록에 몽고가 우리 나라에 쳐들어 왔을 때, 이 고을에서는 설악산에다

성을 쌓아서 방어하였다고 나오는데, 그곳이 여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權金城在雪嶽頂石築周一千一百十二尺高四尺今半頹落俗傳昔有

權金二家避亂于此故名洛山寺記所云天兵蘭入我疆是州於雪嶽山築城守禦疑卽此)'는 기록이 보인다.


또 신라시대 권장군과 김장군 두 장수가 난을 피하기 위해 이 산성을 쌓았다는 전설에서도

권금성이란 이름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낙산사기(洛山寺記)' 인용에서 몽고군이 쳐들어왔을 때 백성들이 이곳에 성을 쌓고 피난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권금성은 적어도 고려 말 이전에 축성된 산성임을 알 수 있다.

 

▲권금성의 성벽 흔적

 

 

# 온몸을 움직여 토해내는 땀과 거친 호흡으로 얻는 풍경의 발견


권금성 가까이에 이르면, 옛날 권금성 성터로 돌을 쌓아놓은 곳을 지나게 된다.

권금성 직전에 또 슬랩 암반이 크게 열린다.


길이 없어졌다. 그때 뒤돌아서 가지 말고, 왼쪽 옆으로 암반을 자세히 살피면,

슬랩에 가는 틈이 이어져 있다.

그 가는 틈을 홀드삼아 이곳을 따라 암반을 가로질러 가면, 비로소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암반에서 내려올때, 주변에 은폐, 엄폐물이 없다. 전신이 모두 노출된다.

이 위치에서는 봉화대에 올라온 관광객들의 떠드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한 크기로 생생하게 들린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엄마!!  저기봐, 저기!!   어떤 사람이 저기서 내려와!! "

산꾼들을 보고 하는 소리 들린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마지막 슬랩지역에 서니 젊은 학생들 일행 십여명이 보인다.

그들이 우리 일행을 보고 손을 가리키면서 뭐라고 떠든다.


숨을 래야 숨을 곳이 없어서 무작정 빨리 통과하는 수밖에 없다.

조심조심 내려오면, 등산로 끝나는 곳에 권금성통제소 오두막집이 딱 버티고 서있다.

통제소 안에 사람이 없다.

평일이고, 케이블카가 머지않아 끊어지는 저녁무렵이다.


통제소 오른쪽에는 가는 흰밧줄을 엉성하게 쳐 놨을 뿐이다,

통제소에 사람이 있다면...그냥 통제소 무시하고 오른쪽 권금성 케이블카 에서 올라오는

계단과 권금성 산장사이로 빠져나가야 한다.

그리곤 일반 관광객들이 오르내리는 길에 합류해야 한다.

 

 

 

 

 

  실제 권금성에서는 성의 흔적을 볼수가 없다.

  성곽은 출입통제  지역인 위험지역을 지나 10여분 올라서야 볼수 있기 때문이다.

 

 

  ▲권금성에 학생으로 보이는 다정한 연인들이 정겹다.

 

 

권금성 주변에는 흐린 날씨로 인해 관광객이 별로 없다.

학생들 예닐곱 명이 전부이다.


케이블카 편도 티켓은 없다. 옛날에는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한다.

아예 매표소도 없다.

다른 분의 산행기를 보면 ..화채능선을 타고 내려온 등산객은 '과태로'를 물지 않기 위해서,

대개는 케이블카 직원한테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저......표를 잃어버렸는데요...  ㅠㅠ”

어쨌든, 대개의 결론은 왕복요금 받고 (현찰로) 케이블카를 태워준다.


권금성 케이블카는 거리 1200미터, 고도 800미터를 채 3분도 걸리지 않아 안전하게

대피소로 올려다준다.


나는 아직 이 케이블카를 타보지 않았다.

미동도 없는 몸은 자유롭고 편할 것이다.

그러나 눈은 단조로울 것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그림은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부족한 까닭이다.


온몸을 움직여 토해내는 땀과 거친 호흡으로 얻는 풍경의 발견이 어찌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내가 없으면 열매도 달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일행은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다. 그냥 안락암으로 내려선다.

권금성 대피소가 바로 보인다.

산장지기인 유창서(69세)씨는 산꾼들에게는 유명인사다.

‘반달곰’이란 별칭의 그분은 짙게 기른 수염과 베레모로 설악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

  

 

 

 

 안락암은 지척이다.

17시 29분 권금성 케이블카 아래 안락암에 도착한다.

 

바로 노적봉과 토왕성폭포 상단이 보인다.

안락암 대웅전 뒤로는 설악동으로 내려서는 등로가 있다.

케이블카가 설치되기 이전 권금성을 오르내리는 등로였다.

 

  ▲권금성 아래 안락암에 있는 무학송.

    이 자리에서는 노적봉과 토왕성폭포의 상단이 보인다.

    짙은 물안개로 폭포는 보이질 않고 소리만 천둥처럼 요란했다. 

 

 

 

 

 

 

 

 

 

 

 

40분 정도 급경사를 내려선다.

길은 몇군데 수해 때문에 유실되었지만 뚜렷하다.

머리위로 케이블카가 오르내린다.


18시 07분 비룡교에 도착했다.


온종일 비를 뒤집어 쓴 일행이지만 모두 표정만은 밝다.

설악산은 여전히 운무로 신비함을 감추고 있다.

설악의 풍경을 뒤로한 채 설악동매표소를 나서며 다른 차를 불러 오색으로 향한다.

오색 온천장에서 하루종일 비에 젖은 몸을 간단히 씻는다.

삼겹살로 저녁을 한 후 대전으로 돌아온다. 



6시 50분  오색통제소

7시 42분  제1쉼터

7시 59분  끝청으로 올라가는 갈림길

8시 26분  설악폭포

10시 20분 대청봉 (쉬엄쉬엄 3시간 30분 소요)

           대청봉에서 휴식

13시 00   화채능선 초입

14시 11분 만경대 (양폭산장) 갈림길

14시 32분 화채봉 하단

14시 52분 칠성봉 하단

15시 20분 칠성봉 ~ 집선봉 암릉지대

16시 47분 권금성 도착

17시 29분 권금성 케이블카 아래 안락암 도착

18시 07분 비룡교 도착

 

 

#에필로그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다.


꼬박 24시간을 설악에서 보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설악을 가슴에 담은 채 귀로에 오른다.


이제는 설악산을 떠나야 할 시간...... 

한동안 설악산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슴속에 담아 두었다.

하지만 막상 설악산을 떠나려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번 화채능선 산행은 내게 신대륙 같은 또 하나의 발견을 한 셈이다.

개척자가 미지의 땅을 밟을 때처럼 환희가 이와 같을까...  

아무리 멋진 말과 유려한 글이라도 좋은 풍경과 감동의 마음을 대신할 수 없는 법....

머리속으로 거듭 몽환적인 오늘 산행의 실루엣을 그려본다.

오늘은 무중산행(霧中山行)으로 시작해서 우중산행(雨中山行)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아마 나는 석달도 못가 화채의 고운 단풍에 젖어있을 것이다.

“잘 있거라 설악아...내 다시 오리니.”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창 꽂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 하지도 않으리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희망의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 황지우 詩人 -

 

                                                               

 

 

 

 

 

 

   전장 320m..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웅장한 토왕성 폭포..

일명 토폭..

겨울철에는 빙벽코스로도.. 매니아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으며..

설악산 내에서 천화대와 함께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이다..

조만간 가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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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7.16 17:36

    첫댓글 잘보고 멋있고 좋아보이네요 자료 감사하고요....

  • 07.07.19 23:57

    화채능선을 함 타보고 싶어도 통제구역인 관계로 못타보았는데 자세히 써놓으신 산행기를 보니 가본겄이나 진배 없읍니다. 아주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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