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조교실의 성공을 위한 전제 조건
추창호
1. 여는 글
시조가 700여년간 사장되지 않고 꾸준히 발전해 온 것은 우리 민족 정서를 체질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과연 시조가 계속 발전하고 자기의 위치를 고수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문학의 위기가 거론되고 장구한 역사를 가진 문예지인 '현대문학'이 고사 직전에 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책이 문학이 시가 읽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예증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볼 때 타 장르에 비해 독자층이 엷은 시조의 경우는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옛시조 몇 수를 배우고는 '시조는 재미 없다', '고리타분하다'는 등의 편입견을 갖고 졸업하는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시조의 미래는 더욱 암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해서 지금 자라나고 있는 컴퓨터 세대들에게 시조는 우리 고유의 민족시이기 때문에 아끼고 발전시켜나가야한다고 애국심에 호소할 수도 없는 일이다.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먹혀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들 스스로가 시조가 우리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문학 형식이고, 읽으면 읽을수록 씹을 맛이 있다는것을 깨달아야 한다. 즉 시조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클라식 음악을 처음부터 즐길 수는 없다. 클라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감상안을 길러야 가능한 일이다. 시조 또한 마찬가지다. 시조의 참된 맛을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감상안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렇다고해서 그들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들이 오지 않으면 우리가 가야한다.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와 같은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바로 '동시조교실'이다. 동시조교실을 통해 어릴 때부터 시조와 친숙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또한 시조의 참맛을 아는 감상안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조교실의 성공은 바로 시조의 미래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조교실은 우리 시조시인들이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안될 지상 최대의 명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동시조교실에 대한 관심이 시조시인들 사이에서 증폭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울산의 작은 운동 동시조교실'과 느티나무의 동시조교실...그리고 광주, 창원 등 각지에서 동시조교실을 위한 첫걸음들이 조심스럽게 모색되고 있음은 눈여겨 보아야 할 일이다.
2. 동시조교실의 목적
동시조교실은 시조시인을 양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시조를 친근하게 여기고 즐겨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즉 시조의 참맛을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주어 시조를 친숙하게 생각하고 즐겨 읽도록 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시조의 틀로 나타내는 즐거움까지 느끼게 된다면 더할 나위없는 일이다. 그런 과정에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위대한 시조시인으로 성장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3. 동시조가 성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
감수성이 강한 어린 시절에 시조의 즐거움을 알게 한다는 것은 평생동안 시조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다는 말과 같다. 그만큼 동시조교실은 중요하다. 그럼 이런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조교실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하는가?
첫째, 현 교육과정에 좋은 현대 동시조가 많이 수록되어야 한다. 지금 초등학교 국어 교육과정에는 옛시조 몇 수만 수록되어 있다. 교훈적이고, 딱딱한 내용의 옛시조 몇 수를 배우고 졸업하는 학생들이 과연 시조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 이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시조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질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지엽적으로 동시조교실을 운영하여 그 부족된 부분을 메꾸기 위해 노력한다고해도 그것은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한 학교라는 큰 틀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따라서 일찍부터 좋은 현대동시조를 우리의 교육과정에 많이 수록하여 일찍부터 가르쳐져야 한다. 이런 일을 위해서는 시조시단에서 힘을 합심하여 그 이론적 근거와 당위성을 정립하여 교육인적자원부에 건의하여 우리의 생각이 초등학교 국어과 교육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그 가르치는 방법이 잘못되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시조의 형식지도가 초등학교에서 어렵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교육학자인 브루너는 연령층에 맞는 아동들의 지식 수준에 맞게 학문을 번역하여 가르친다면 어린아이들도 과학자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시조 교육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시조를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번안하여 가르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시조를 가르치는 교수 방법을 개발하고, 그 교수 방법을 교사들에게 연수시켜 아이들에게 적용시킬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학생들에게 3장 6구 12음보가 어떻고, 글자수가 어떻다는 둥 흔히 어른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주입식으로 가르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
셋째, 동시조교실은 학생을 상대로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와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편견과 인식을 제고하게 만들어야 한다. 울산 병영초등학교에서 동시조교실이 성공하게 된 것은 학교 학생 학부모가 삼위일체가 된 결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정적인 사명감을 가진 교사가 필요하다. 따라서 동시조교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각 학교마다 시조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을 가진 교사를 교두보로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넷째, 시조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보상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다. 시조를 배움으로써 자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동시조사이트인 '느티나무'에 시조월드에서 힘을 실어주어 아이들의 사기를 진작시킨 것은 그 좋은 예 중의 하나일 것이다. 또 각종 시조백일장에 참가하여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다각적인 방향에서 그 방법을 모색하여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준다면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동시조교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정보의 공유화와 인터넷사이트의 활용이다. 동시조교실을 언제까지나 한 학생에게 제공할 수는 없다. 그들이 졸업하고 난 후라도 언제든지 시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컴퓨터 세대인 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동시조사이트가 지금보다 많아져야 한다. 또 그러한 동시조사이트는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닌 초 중 고 등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운영되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동시조교실을 통해 얻은 노하우, 좋은 동시조에 관한 자료 등의 정보 공유가 필요하며, 네 것 내 것을 따지지 않고 각 사이트끼리 서로 왕래하고 협조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져야 할 것이다.
4. 닫는 글
우리 시조의 미래는 동시조교실의 성공에 달려있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동시조교실의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쉬운 일이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동시조교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을 모으는 일부터, 지도하는 방법까지...하면 할수록 매우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다행히 각 지역에서는 동시조교실에 관심을 갖고 오래 전부터 노력해 오신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힘을 합치어 전국적으로 체계적으로 그 운동이 활성화되고 뿌리내려졌으면 한다.
울산의 작은 운동 동시조교실을 회원들과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앞으로 이러한 동시조교실에 대한 관심과 활발한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동시조교실이 더욱 활성화 되고 발전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끝으로 이제까지 동시조교실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조건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그 보다 우선적으로 선행해야할 일은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동시조를 많이 창작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좋은 동시조를 아이들이 많이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게된다면 동시조교실의 반은 성공한거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역량있는 시조시인들이 앞장 서서 동시조에 깊은 관심과 창작 노력이 필요함을 부언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