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오 헨리(O. Henry).
그의 단편 소설들에서는
인생 낙오자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주로 삶의 밑바닥을 부랑자같이 떠돌며
남들에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인생 루저들이나 아웃 사이더들을
단골로 다루는 편인데
그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허를 찌르는 반전과 유머가
무릎을 딱 치게 만들고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서
유쾌함과 함께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으며 책을 덮게 만든다.
그를 만나본 적은 없어도
그는 인생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 같다는
것을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겠다.
그렇기에 마음이 아픈 자들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일 것 같다는
친근감과 편안함이 들어
그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오 헨리의 풀하우스
(O. Henry's Full House ,1952)라는
영화에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여져 있다.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은
너무나 유명한 내용으로
메말랐던 감성에 촉촉한 단비가
뿌려지는 듯한 벅찬 감동에 젖게 된다.
옴니버스 중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경찰관과 찬송가>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경찰관과 찬송가
겨울엔 감옥이지
나름대로 뉴요커인 노숙자 소피는
공원 벤치에서 몸을 뒤척였다.
한기를 느껴서였다.
날이 저물자 한층 바람이 차가워지고
먼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는
이제 때가 왔음을
무언으로 경고해 주고 있었다.
모피코트가 없는 여인들이
남편에게 한없이 상냥해지는 계절,
겨울을 앞두고 있었다.
이젠 추위를 피해 따뜻한 섬으로
가야 할 때를 의미했다.
길거리에서 얼어 죽는 것은
결코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섬'이라는 것이
따스한 지중해 어느 섬쯤 될 것이라
상상하면 곤란하다.
소피는 어디까지나 거리의 사람이었고,
애당초 그런 거창한 꿈 따위는 없었다.
그저 가장 추운 석 달간을 감옥(섬)에
들어가면 숙식이 저절로 해결되므로
그에게는 그것이 소박한 희망 사항이며
연례행사였던 것이다.
그다지 거창한 꿈이 아니었기에
실행에 옮기는 일도 까다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참에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 실컷 먹고
'날 잡아 잡수' 하면서 모르쇠로 일관하면
그다음은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원하던 바, 섬(감옥)에 간단히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1차 도전은 보기 좋게
실패를 해버리고 말았다.
일단 웨이터에게 가로막혀 입장조차
하질 못 했던 것이었다.
하긴 눈칫밥이 얼마인데 딱 봐도
노숙인 티가 나는 소피를
닳고 닳은 웨이터가 쉽사리 들여보내겠는가?
한껏 무시당하며 걷어 차인 소피는
발밑에 놓여있는 돌멩이 한 개를 주워들고
어느 상점 진열장을 향해 냅다 던져버렸다.
곧 뛰쳐나온 주인이 범인을 찾으려
두리번거리자 소피는 일부러 그 앞에 서서
'내가 그런 짓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느냐?'
'날 잡아가요'
라는 표정으로 한껏 힌트를 줬음에도
주인은 아예 상대조차 해주지 않고
마침 전차를 타려고 부지런히 뛰어가는
어느 남자를 범인으로 착각했는지
그를 뒤쫓아 가기에 바빴다.
하는 수 없이 다른 대책이 필요했던
소피에게 완벽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길 건너에는 험상궂게 생긴 경찰이 서 있었고
앞에는 웬 여자가 하릴없이 두리번거리며
서 있었던 것이다.
소피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여자 옆으로 바짝 붙어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모욕감을 느낀 여자가 까딱하고 손짓을 하면
바로 앞에 있는 경찰이 득달같이 달려오겠지.
그러고는 소피를 바로 낚아챌 것이었다.
정말이지 성공 확률 백 퍼센트라고
확신할 만큼 좋은 찬스를 맞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 일마저도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여자가 적극적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뿔사. 그 여자는 거리의 여자였다.
안 그래도 그녀는 소피 같은 남자를
찾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다.
이 일, 저 일 다 실패하고서
마음이 다급해진 소피는 닥치는 대로
소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서 와서 빨리 잡아가 주길 바라며
극장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되는대로 막춤까지도 줬는데도
이상하게 경찰들이 순둥순둥하기만 했다.
알고 보니 오늘은 예일대생들이
자축하는 일이 있어서
웬만한 소란쯤은 눈감아주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나 뭐라나...
하루 종일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아
낙심하며 걷던 소피의 눈에
우산을 가게 앞에 두고 안으로 들어가는
신사가 한 명 들어왔다.
때는 이때로구나 싶어
잽싸게 그쪽으로 가서 우산을 집어 들었다.
좀도둑질이라도 해서 경찰에게
잡히리라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나 운수가 사나운 날은
무슨 일이든 되질 않는 것인가 보다.
이마저도 만만치가 않았다.
바라던 대로 소피의 좀도둑질이
경찰에게 걸려 심문을 받고 있던 차에
가게에서 나온 신사가 말하기를
"사람이란 다 실수할 때가 있지 않겠소?
이것이 당신의 우산입니까?
나는 우연히 우산을 주웠을 뿐입니다."
마치 장발장의 은수저 도둑질을
덮어주며 경찰을 돌려보낸 주인 같은
관용을 베풀어 준 탓에
소피를 우산 도둑으로 잡은 경찰은
잔뜩 무색해져서 돌아갔고 소피는
또다시 낙심에 빠졌다.
어느새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빈속이 쓰려왔다.
날은 춥고 갈 곳도 없어 눈물이 찔끔 나오는데
어디선가 거룩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피는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고풍스러운 건물의 창문으로는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오고
주일날 잘하려고 연습하는 오르간 소리가
풀이 죽어있는 소피의 마음을 후벼파고 들었다.
아, 그곳은 교회였고
들려오는 그 소리는 찬송가였던 것이다.
엇갈린 축복
문득 소피는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를 떠올렸다.
그때는 엄마도 계시던 시절이었지.
장미, 야망, 친구... 때묻지 않던 시절,
익숙하던 단어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소피는 아주 오랜만에 감상적인 무드에
빠지게 되어 뭔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 그럴 때도 되었어.
타락한 자신과 무용지물이 된
자신의 재능들을 떠올려 보고
새로운 기분을 느낀 소피는
모처럼 바람직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새사람이 되어야지.
그렇게 하기에 좋은 때가 된 것이다.
소피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언젠가 일을 주기로 했던 사람을
찾아가겠노라
마음을 굳세게 먹고 있었다.
바로 그때,
경찰 한 명이 소피 앞으로 다가왔다.
소피와 마찬가지로 이 경찰도
자기의 할 일을 생각해 내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인가 보다.
경찰은 아까부터 철책 앞에
수상하게 서있던 소피를 계속
주시하고 있다가 그를 붙잡은 것이고
이튿날 소피는 삼 개월간 섬에
감금한다는 판결을 받게 되었다.
소피가 마음을 가다듬고
새사람이 되어보겠노라고
결심한 그 순간,
그렇게 노력해도 실패를 거듭했던
'겨울에는 감옥에 들어가기 작전'이
마침내 딱 성공을 하고 만 것이다.
어느 노숙자의 불운한 사건이
다분히 우울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타고 흘러가다가
갑자기 수직 낙하하듯
반전의 결말에 이르는 아이러니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든다.
소피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생의 아이러니를 종종 맛보지 않는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계획대로 되지 않아 낙심했던 상황들.
인생이란 그런 거지.
운명의 장난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 인생의 하루를 오늘도
그럭저럭 잘 버티고 살았구나.
명작이 가지고 있는
녹슬지 않는 위대함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등장 인물에 나를 이입하며
삶의 통찰과 위안을 얻게 된다.
첫댓글
영화를 보는듯
주인공의 속타는 마음이
느껴져서 재미있게 읽었네요~ㅎ
오 헨리의 풀 하우스
기회가 되면 보세요~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무비님 의 명품 해설에 오헨리의 "풀하우스" 영화 한편
잘 본 느낌 입니다. 무더위 견인해 성큼 달려온 한여름 을 잘 이겨 내시고
활기찬 일상 되시길 바랍니다. 무비님 ~~
명품 댓글에 감사 드립니다^^
아침숲의 청량함으로 등장하신 아침숲님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하시고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