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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 CYON CF
Coming back to Black
올 가을과 겨울을 위한 컬러로 패션계는 "블랙"을 꼽았다.
디자이너에게는 수많은 영감을 표현해낼 수 있는 컬러이자 다루기 어려운 컬러인 블랙은 언제나 매 시즌 등장하고 있지만 이번 시즌 특히 더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다.
지금 가장 핫(Hot)한 광고는? 박태환의 "T"광고??? 위트넘치는 "Show"광고??
아니다. 적어도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CYON "Secret Phone" 광고가 가장 핫한 광고일 것이다.
세기의 여배우 오드리 햅번의 대표작"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한 장면을 광고 속으로 끌어들여 고급스러움과 변치않는 아름다움을 형상화한 이 CF는 단연 수많은 광고들 속에서 빛이 났다. 그리고 그 광고가 돋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뉴욕 티파니 매장의 웅장함도 아니요. 티파니의 다이아몬드도 아니었다. 바로 햅번의 블랙 드레스 때문이었다.
- 세기의 아이콘, 오드리 햅번 스타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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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드리 햅번(Audrey Kathleen Ruston)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등장한 이 유명한 블랙 드레스와 5줄의 진주목걸이, 업스타일 헤어, 버그아이 선글라스는 오드리 햅번을 불멸의 영화배우이자 패션 아이콘으로 군림하게 만들었다.
또한 햅번 스타일이라고 지칭되는 "로마의 휴일"에서의 산뜻한 단발 헤어, 비대칭으로 커트한 앞머리, 코튼 블라우스, 개더 스커트는 당시에는 센세이셔널한 스타일이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영감을 주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모델로해서 시리즈로 CF를 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입고, 걸치고, 쓰고, 신었던 모든 아이템들은 단순히 그 순간의 유행에 그친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그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와 하나의 패러다임처럼 자리잡아 버렸다.
Fashion may fade away but style remains
(패션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 - Gabrielle Bonheur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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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젠 전설이 되어버린 이 영화 속 블랙드레스는 프랑스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의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60년대의 드레스 스타일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완벽하게 세련되고 우아한 커팅과 디자인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 햅번의 의상은 세계적인 디자이너였던 에디스 헤드나 폴린 트리기어 등이 담당했었음에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햅번의 드레스~ 하면, 지방시의 이 블랙드레스를 떠올리게 될 정도로 인상깊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녀의 간결하고 심플한 스타일과 깨끗한 라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아하며 변치않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만큼 블랙드레스가 주는 이미지나 임팩트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그녀의 스타일이 대단한 것은 악세서리의 매치에 있다. 흔한 아이템이지만 대담하게 매치함으로써 실용적이면서도 센스있게 마무리해내는 그녀의 스타일링은 항상 정도를 지킨다. 샤넬이 말했던 "모자람의 미학(Less is More)"을 가장 잘 표현했던 사람은 바로 그녀였을 것이다.
실제 영화 속에서 햅번이 입었던 이 블랙드레스는 최근 크리스티 경매에서 80만 7천달러에 낙찰되면서 그 가치를 또 한번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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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네개 컷은 영화 <로마의 휴일>, 아래는 영화<사브리나>
07 F/W 시즌 많은 디자이너들이 60, 70년대의 무드에 빠져 수많은 테일러링 수트를 쏟아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드레스업했던 그 시대의 여인들에게는 현대 여성들에게는 느낄 수 없는 여유로움과 특별한 우아함이 뿜어져 나온다. 60년대 여인에게 지금의 "보호룩"이나 "히피스타일"을 입으라고 한다면 "이런 거적데기를 어떻게 입냐"며 기함할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자극적이고 힙(Hip)한 패스트(Fast)패션을 선호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디자이너들은 60년대의 우아함과 엘리건트함이 가진 고급스러움과 특별한 매력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블랙드레스에 자신의 영감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퓨처리즘, 미니멀리즘, 레트로풍 등등등... 수많은 "이즘"들이 패션계를 휩쓸어도 블랙 드레스와 만나면 우아함을 담보받게 된다.
대형 자본의 피터지는 전쟁터가 된 패션왕국에서 블랙 드레스는 "rule of Fashion(패션의 원칙)"으로 여겨지며 "드레스의 기본 공식"이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기본"은 승패를 가르는 가장 극명한 도구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유행하는 아이템이 바뀌는 지금,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트렌드에 뒤떨어지게 되기 쉽다. 하지만 영화 속 햅번의 블랙 드레스들은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것이 "블랙". 시간을 초월하는 힘이다.
"사람들은 나의 옷 입는 모습을 보고 비웃었지만 그것이 바로 내 성공의 비결이었다. 나는 그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 Chanel
- TPO(Time, Place and Occa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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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린지 로한, 드류 베리모어, 스칼렛 요한슨, 시에나 밀러, 제니퍼 로페즈, 케이트 모스
코코 샤넬이 1926년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세상에 처음 선보였을 때 당시 보그는 이렇게 평했다.
"Become a sort of uniform for all women of taste."
(다양한 취향을 가진 모든 여성을 위한 일종의 유니폼이 될 것이다.)
심플하고 짧은 이브닝 드레스나 칵테일 드레스를 뜻하는 이 드레스는 샤넬이 단색 컬러에 심플한 디자인으로 실용적이게 고안해낸 룩이다. 샤넬이 리틀 블랙 드레스를 디자인하기 이전에는 블랙의 어두운 이미지 때문에 상류층에게는 상복의 색이며, 서민층에겐 벗어버리고 싶은 색으로 여겨졌으나 샤넬은 이런 선입견에 정면으로 도전해 우아한 무드의 색으로 끌어올렸다.
"화려함이란 심플한 요소를 눈에 띄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한 샤넬의 말처럼 심플한 블랙 드레스와 볼드한 쥬얼리의 매치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기본을 토대로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고 영감을 심어넣을 수 있는 이 드레스에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 리틀 블랙 드레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하면서도 꾸준히 그 매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또한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이 룩은 TPO를 무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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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자라(ZARA), 다음 두 개 H&M
그리고 블랙드레스의 또하나의 큰 힘... 그것은 디자이너와 명품이라는 레이블을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샤넬이나 지방시, 디올의 드레스가 아니어도 블랙드레스는 고유의 우아함과 도도함을 가지고 있다. 그 정도와 느낌, 감성적 차이와 존재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천박하거나 가벼워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이 자라든 H&M이든 로드샵이든 동대문표이든 간에 블랙드레스는 드레스의 레이블을 뛰어넘는 특유의 세련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샤넬이 추구했던 "경제성"이 아니었을까.
- 시간을 뛰어넘은 아름다움, CHANEL MOD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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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에게 지나친 옷차림은 있을지언정 지나친 우아함은 없다. - Gabrielle Chanel
리틀 블랙드레스의 기원을 조금씩 따라올라가면 제일 위에는 샤넬이 있다. 블랙 리틀 드레스도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트위드 재킷, 리틀 블랙 드레스, 퀼팅 핸드백, 진주 목걸이 등으로 대표되는 샤넬의 시그니처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세련되고 우아한 멋이 있다. 샤넬이 유명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에서 군림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하다.
현재 범람하는 패션용어들 중에서도 유독히 자주 들리는 말이 있다. 바로 "시크(chic)하다"이다. 세련되었다는 의미로 잘 쓰이는 단어이지만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때는 바로 샤넬과 만날 때이다. 화려하고 번잡스러운 것은 극도로 싫어하고 효율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우아함을 추구하는 이 하우스의 컨셉이 "시크하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Gabrielle Bonheur Chanel
"눈을 위한 옷이 아닌 몸을 위한 옷"
리틀 블랙 드레스는 이브닝 드레스 일색이던 시절 데이웨어로써 실용적인 실루엣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페미닌한 이미지를 가진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만약 샤넬이 보기에 좋은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블랙 드레스를 디자인했다면 스커트는 좀 더 풍성했을 것이고 허리는 드라마틱하게 조여졌을 것이며 레이스와 튤로 디테일한 장식을 더했을 것이다.
그러나 샤넬은 심플하고 거의 디테일은 거의 없는 디자인을 했으며 소재는 실크같은 소재가 아닌 저지 등의 소재를 사용했다. 실루엣은 몸에서 들뜨지 않게 자연스러운 피트감을 강조했고 스커트는 발목이 보이도록 재단되었다. 실용적인 것과 함께 몸에 착 붙는 편안함을 선사했던 것이다.
샤넬은 모자 디자이너로 파리에 입성한 후 자신의 레이블을 세우면서 일하는 여성을 위해 자유롭고 편안한 옷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그녀에 의해 여성복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지기 시작한다. "단추구멍이 없는 단추는 있을 수 없으며 단추란 잠그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 샤넬은 당시 남성의 속옷 재료로만 쓰이던 저지 소재를 사용해 실용적인 여성복을 디자인했고 코르셋과 페티코트에 갇혀 있던 여성의 몸을 해방시킨 최초의 디자이너였다.
단순하고 입기 쉬운 드레스를 표방하였으며 소매 없는 파티드레스를 디자인했다. 지금은 이것이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이느냐라 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혁명"이라 불릴 만큼 파격적인 것들이었다. 길게 늘어지는 스커트와 허리를 꽉 조이는 옷에서 벗어나 무릎 길이로 짧아진 스커트와 신축성이 있는 옷은 보수적이었던 당시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여성 옷에서 다리를 드러낸 것은 샤넬 의상이 최초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단순히 옷을 디자인해 사람들에게 입힌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가치관을 변화시켰다.
또한 그녀는 간결함, 경제성, 실용성을 추구하면서도 언제나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짧은 판탈롱, 메탈소재 단추, 남성용 셔츠, 카디건 수트, 포켓 디테일, 재킷을 여성복에 끌어들였지만 언제나 페미닌한 H라인을 고수했고 어깨에 매는 숄더백을 디자인 해 핸드백으로부터 손을 자유롭게 하면서도 퀼팅을 이용해 고급스러운 손맛이 느껴지게 했다. 그녀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시대를 앞서가 단순한 시대의 흐름으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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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패션은 단순히 옷 입기의 문제가 아니다 - 07 S/S Chanel
그러한 코코 샤넬이 하늘로 떠난 후 샤넬 하우스는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고 샤넬의 소유주였던 알랭 베르트하이머는 칼 라거펠트에게 샤넬 하우스를 맡기게 된다. 이렇게 샤넬은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쓰게 된다. 라거펠트는 쿠튀르부터 기성복, 코스메틱에 이르는 방대한 라인의 브랜드를 끊임없이 실험하는 단계를 거쳐 감각적이고 실용적인 것들로 채워나가기 시작했고 트위드, 블랙 앤 화이트, 파인 쥬얼리 등의 샤넬의 시그니처를 이용해 대비와 모순을 시도해 드라마틱한 컬렉션을 선보이게 된다.
그리고 20세기 가장 축복받은 디자이너로 꼽히는 그는 샤넬의 제2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써내려갔다. 샤넬이라는 클래식하우스와 트렌드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능력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08년도에 들어서면서 칼 라거펠트는 트위드와 샤넬 수트에 집중하고 있어 블랙 드레스는 예전만큼은 보기 어려워졌지만...그의 지난 07 S/S 컬렉션에서의 리틀 블랙 드레스를 본다면 분명 샤넬 하우스에 그만한 적임자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간결하고 심플한 라인, 당시 트렌드에 걸맞게 마이크로 미니 길이를 고수하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에서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는 고집, 튤을 사용했으면서도 페미닌하면서 귀여움까지 고루 갖춘 완벽한 드레스였다.바꿀 수 있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을 그대로 지키는 용기, 그리고 이 두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 이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하우스의 디자이너 자리를 맡는 현대 디자이너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이다. 하지만 이것을 고루 구분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몇 되지 않는다. 그러한 점에서 "샤넬"이라는 여자의 영원한 로망을 지켜나가고 있는 라거펠트의 능력은 가히 대단할 뿐이다.
패션의 요소를 활용하여 새로운 패션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것은 패션에 대한 열정이다. 90년대 식으로 말하자면 이 요소들은 음악에서 작곡을 하는 데 필요한 노트와도 같은데,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소명은 샤넬에 새로운 시각적 사운드를 부여하냐는 것이다. - 칼 라거펠트
- 예상을 뒤엎는 요소를 갖추었을 때 그 패션은 성공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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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08 F/W Dior, Valentino, Chanel, Stella McCartney, Calvin Klein
한동안 패션계를 흔들었던 장식적이고 화려한 컬러 팔레트와 플로랄 프린트의 향연, 아티스트와의 조우는 잠시 한 쪽으로 밀어둔 채 디자이너들은 다시 블랙을 가장 중요한 컬러로 등극시켜 놓았다. 하지만 90년대의 미니멀리즘과는 다르게 색상의 단조로움을 보완해주는 디테일이 강해진 것이 특징이며 아방가르드한 실루엣, 다양한 프로포션으로 좀 더 현대적인 감각을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모든 화려함에서 한걸음 물러난 갈리아노는 뉴룩을 재건했고 발렌티노는 새로운 페미닌함의 정의를 써내려가기 시작했으며 잠시 주춤했던 샤넬의 블랙은 역시나 신선한 소재와 시도로 가득했고 심플한 재단이 돋보였던 스텔라 맥카트니의 튜브드레스는 더할나위 없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역시 21세기 최고의 심플함은 캘빈클라인이이었다. 군더더기없는 실루엣과 아주 작은 디테일만으로도 여자의 라인을 극적으로 살려줄 수 있는 매력을 지닌 드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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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 08 F/W Narciso Rodriguez 아래 : 08 F/W Karl Lagerfeld
비어있는 공간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 공간은 정적인 것들로 적절하게 채워져야 한다. - Chanel
내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한 지인은 세상에서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타이포그래피를 주로 디자인하는 언니는 언제나 심플한 것이 가장 아름답고 질리지도 않으며 고급스러워 나와 모두를 만족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위해 항상 고민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것에 금방 매력을 느끼고 좋아할 수 있지만 쉽게 질려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미니멀리즘이 탄생하면서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패션에 밀착된 미니멀리즘은 간결하고 깔끔하며 건조하지만 시크한 매력이 있는 것으로 시각적으로 아름다웠으며 입기에 편했고 무엇보다 유행을 타지 않을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 실용적인 디자인의 본고장인 뉴욕에서는 여러 디자이너가 탄생했는데 그들 중 한명이 나르시소 로드리게즈이다.
그의 컬렉션은 드리스 반 노튼 만큼이나 고집스럽고 이브 생 로랑 만큼이나 우직하며 카리스마있다. 절대로 굽히지 않을 것 같은 바짝 날이 서있는 그의 컬렉션은 날렵한 드레이핑과 간결한 실루엣으로 대표되는 쇼이다. 그런 그의 쇼에 등장한 리틀 블랙 드레스는 그의 단정함에 약간의 볼륨과 여인의 향기가 불어넣어져 한없이 페미닌했다. 또한 샤넬 컬렉션에서 트위드 수트에 집중한 만큼 자신의 레이블에 블랙 드레스를 등장시킨 라거펠트의 컬렉션은 그 어느때보다 웨어러블했으며 그가 지향했던 실험적인 실루엣은 없었지만 대신 쿠튀리에의 손길이 느껴지는 드레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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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08 F/W Lanvin, 세번째부터 Balenciaga
샤넬 블랙드레스, 디올의 뉴룩, 이브 생 로랑의 르스모킹으로 이어지는 패션계의 혁명적인 사건들은 언제나 원래 있던 것을 다르게 생각하게 되면서 발발되었다. 단순한 미니멀리즘도 아니고 클래식함을 따르는 레트로풍도 아니면서 메탈릭하고 샤이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만 보고 퓨처리즘으로 나누자니...지금 쏟아지는 드레스들은 난해하고 봅잡하며 다층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 레트로 퓨처리즘이다. 그리고 이 레트로 퓨처리즘은 가장 광범위하고 크게 떠올라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으며 디자이너들을 끌어들였다. 볼륨과 러플을 가장 잘 다루는 귀여운 알버 엘바즈의 랑방은 비대칭 어깨 절개를 이용하는 동시에 반짝이는 소재의 드레스로 화려하면서도 아름답고 섹시하면서도 고전적인 이미지의 퓨처리즘을 구현했고 퓨처리즘의 선봉장이었던 발렌시아가의 드레스는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게 드레스와 퓨처리즘이 결합했다. 너무 완벽하고 멋져서 어떠한 감탄사도 나오지 않고 헉~ 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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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08 F/W Versace, 네번째부터 Bottega Ven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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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YSL, Jil Sander, 마지막 Louis Vuitton
나는 이브 생 로랑의 완벽하게 날카로운 테일러링 자켓이 좋고 질 샌더의 완벽한 핏의 수트가 좋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덜컥 살 수는 없다. 그래서 매 달 끊임없이 인고하는 세월을 견디며 통장 잔고와 씨름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규칙적인 것은 매달 날라오는 카드 고지서라는 것과 크게 한방 지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연구를 담보하는지 또한 알고있다.
살까 말까를 비교하고 재보고 난 다음, 세일기간을 틈 타 실제로 구매하기까지는 보통 두 어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내가 구매하는 것들은 아주 베이직하거나 포멀하거나 클래식하거나 유행을 타지 않을 것들로 정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내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바로 "리틀 블랙 드레스"이다. 한동안 주변 사람들로부터 "블랙 드레스 매니아"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블랙 드레스만 구입했던 나는 수집의 경지까지 다다르고 나서야 구입을 중단하게 되었다.
내 어머니는 "맨날 똑같은 옷만 사"라며 핀잔을 주시기도 했지만 내 생각엔 내가 가지고 있는 블랙 드레스는 다 다르다. 나의 20여 벌 블랙 드레스는 소재와 컬러감부터 디자인과 실루엣, 피팅감과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것이 비슷하지도 않을뿐더러 저마다 풍기는 이미지도 다 다르다. 하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 바로 시간이 흘러도 촌스럽지 않고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블랙 드레스는 고가를 주더라도 좋은 소재의 고전적인 디자인을 산다. 돈을 적게 들여 잠깐 입는 옷과 비싼 돈을 주고 오래 입는 옷은 분명 다르다. 그런 면에서 블랙 드레스는 고가를 지불해도 절대 아깝거나 후회하지 않을 훌륭한 아이템이다.
"사치는 내부가 외부만큼 아름다울 때 존재한다. 력셔리의 반대말은 빈곤이 아니라, 조약한 취향이기 때문이다." -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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