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살라(계 1장 4-8절) 240225 청년연합예배(민찬기 목사)
인명진 목사 + 박신진 목사
기원전 6천년 경 인류 최초의 장거리 교통수단이었던 낙타는 시속 8마일을 갈수 있었다. 마차가 발명 시속 20마일 배 이상 빨라 때 기원전 1600년경. 19C 기차 발명 시속 50마일 시대, 비행기가 발명 50년 만에 시속 250마일 프로펠러 비행기 시대, 시속 1000마일의 비행기와 1만 마일 이상의 우주 비행기가 나오는 데 불과 수십 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농경 시대에는 기다림이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려면 적어도 한 철을 기다려야 합니다. 편지를 주고 받는 것도 예전에는 몇 주를 걸려야 했습니다. 유럽에서 소식을 전하고 받으려면 속달로 해도 한 주간 이상이 걸려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메일로 바로 소식을 전하고 받을 수 있고 ,즉석 대화할 수 있으며 그림도 보낼 수 있습니다. 카톡, 인스타그램으로 매일 지구 끝에 있는 자녀들이나 친구들의 사진과 소식을 주고 받습니다.
그러니, ‘기다리라’는 것이 당연하고 미덕이던 시대는 지나갔는가?
점점 빨라지다 보니 사람들이 조급해지고 기다릴 줄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이고,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주어서 신앙생활도 즉석 은혜와 즉석 축복을 기대합니다.
강릉에서 재미있는 경험. 빠른 시대 행신역에서 ktx 타면 강릉까지 2시간. 그렇게 강릉에 갔는데, 강릉에 있는 ‘테라로사’ 커피점에 갔다 깜짝 놀랐다. 무려 카운터까지 들어가는 데 2시간, 커피 시키고 받아 오는 데 1시간, 도합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커피 한 잔 마시려고 3시간 기다려? 에이,가자!”하는 이들은 다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그렇게 줄서서 커피 마시는 사람이 구름 떼와 같이 몰려오니까 재작년 매출이 1년에 2백 몇 십 억이 올랐다고. 빠름과 기다림을 동시에 경험했던 강릉여행이었다.
기독교는 기다림 G나라를 기다리는 기다림의 사람들이다. 신앙고백도 기다림의 내용.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 부활할 것, 영원히 살 것은 모두 기다린다.
초대교회는 ‘마라나타’를 부르짖었는데, ‘주여 오시옵소서!’ 주님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교회를 역사를 이어왔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5)
<지금 이 순간을 살며> 하비에르 우엔 반 투안의 일화. 베트남 전쟁 후 온 나라가 공산화 되면서 반혁명죄로 한 남자가 체포되었다. 그렇게 끌려간 그는 13년 6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 가운데 9년 동안은 창문도,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서, 우글거리는 바퀴벌레와 쥐와 함께 지냈다. 언제 풀려날 지 가늠 못하며 그렇게 끝나가는 것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 날, 기도하다 깨닫는다. 그의 책에는 당시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 저는 체포되었습니다. 사이공에서 나트랑까지 450km 거리를 경찰관 두 사람의 호송 받으며 밤중에 여행하는 동안 저는 죄수생활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슬픔과 공포, 긴장 등의 수많은 착잡한 느낌이 제 마음을 스쳐 지나갔고 저의 식구들로부터 멀리 격리된 제 가슴은 갈가리 찢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밤의 어둠 속에서 그리고 걱정과 악몽의 바다 한가운데서 저는 조금씩 다시 깨어납니다...
중국 선교사였던 존 월시가 여러 해 동안 옥고를 치르고 자유의 몸이 된 뒤에 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나는 삶의 반평생을 기다리는 데 소비했다.” ...나는 작정했습니다. ‘나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현재의 순간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면서 살아보리라’고 그러나 어떻게? 어느 날 밤, 한 줄기 빛이 비쳤습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한 것이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했던 것처럼 하여라. 다른 공동체에 편지를 써서 보내어라.’”
그 음성을 듣고 그는 그렇게 결심했다. “나는 기다리지 않으리라. 현재의 순간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면서 살아보리라. 먼 미래를 기다리면서 현재의 순간을 무력하게 놓쳐버리기보다 지금흘러가는 이 순간의 나의 생각, 말, 느낌, 눈빛, 행동 하나하나에 사랑을 담아보련다.” 종이 한 장 구하기 어려운 감옥에서 그는 달력 뒷면에 편지를 써서 감옥 밖으로 내보냈다. 나중 그 편지들을 묶어 세 권의 책으로 출간 그중 한 권인 <지금 이 순간을 살며>에 나오는 내용. 베트남의 사도 바울,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성신학자 하비에르 우엔 반 투안의 이야기다.
요한, 인생의 노래가 끝나갈 때 오늘 본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 말씀을 깊이 읽다 보면 그는 그 아픔의 시간을 사랑의 노래로 가득 채우고 있음에 놀라움을 갖게 합니다. 열두 제자중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어린 교회를 가슴에 품고 사역하면서 많은 고통을 당하였던 그는 도미티안 황제 박해 때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에게해 중간에 있는 밧모섬에 유배되었다.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시기를 AD 94년경 전후로 잡는다.
로마제국 시대, 밧모 섬은 종교, 정치범들을 귀양 보냈던 유배지였고, 한번 갇히면 황제의 특명이 아니면 풀려날 수 없었다.
더욱이 그 섬은 거의 바위로 덮여 있어 나무가 많지 않아 땔감이 부족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에 떨고, 여름에는 바위가 품어내는 열기 때문에 오래 견디기가 어려운 그런 곳이었다. 본문은 그런 자리에서 인생의 노년을 보내던 노사도가 고난 가운데 있는 소아시아 교회에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도 요한은 어린 교인들과 함께 AD 60년대, 네로 황제의 박해로부터 AD 96년까지 15년 동안 권좌에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까지 온몸으로 고난을 경험했다. 권력자의 핍박과 회유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왔지만 그곳에서 생을 마감 할 시간에 서 있었다.
3C 말 문헌인 빅토리아누스의 <요한계시록 주석>에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의 정죄로 밧모 섬 광산에서 복역하는 중 이 계시를 보았다”고 전하고 있다. 상상력을 동원해 생각해보면, 팔순 노구를 이끌고 요한은 그날도 광산에서 돌을 깨고 있었을 것. 10절에 그렇게 노역에 시달리다가 주일이 되었다. AD 321년 이후 주일이 휴일이었으니 그날도 끌려가 아침 일찍부터 돌 깨고 옮기고, 주의 날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점심시간 석광산에 식사가 배달, 어쩜 요한은 가까이 지내는 간수에게 부탁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제가 섬기는 G을 예배하는 날인데 점심시간에 여기서 예배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예배가 시작. 함께 예배자도 없었고, 그의 가슴 벅찬 설교를 들어줄 교인도 없다. 인생이 끝나가는 시간, 인간적으로 행복하지도 성공도 아닌 어쩜 원망할 상황에서 주의 영에 이끌려 예배한다.
지금도 함께 하신다. 그도 인간인데 그런 상황이 힘들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 캄캄하고 암울한 땅에 하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 어두운 방에 한 자락 빛이 비취어 오자 모든 것이달라졌다. “주 G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8절) 시간의 시작도, 마지막도 G의 것. 지금 어두운 시간을 보내지만 모든 끝은 G께서 결정하신다. 알파와 오메가 되심은 유한적인 존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그분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보시고 미래를 보시는 분이시다.
요한계시록은 G에 대한 표현을 가장 대표적인 표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1:4) 이 표현은 자주, 반복적으로 사용(1:4, 8, 4:8, 11:17, 16:5) 우리말 번역 11장 17절 시제 순서 따라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라고 번역 헬 원어는 본래 현재를 강조하는 특성을 담고 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주...” 시제 순서를 따르지 않고 “지금도 계신 분”을 강조. 계시록의 설교자는 줄기차게 한 가지 사실을 강조. “주님은 지금도 계신다.
주님은 지금도, 오늘도 역사하신다.” G이 안 계신 것처럼 보이는 시간, 인생의 노래가 다 끝난 것 같은 시간, 원하는 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시간, 모든 게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한밤중과 같은 시간에도 주님은 함께 일하고 계심을 강조한다.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의 일화. 즐겨 부르는 <멀리 멀리 갔더니> 찬양은 한국교회 초기에 한국인을 위해 만들어진 찬양. 윌리엄 피셔가 만든“I am trusting, Lord, in Thee”라는 곡에 윌리엄 베어드(William M. Baird, 배위량) 선교사의 부인, Annie Baird(안애리)가 가사를 붙인 찬송. 배위량 선교사는 1890년 12월 18일, 결혼식 올리고 바로 그날 오후에 조선을 향해 출발 두 달간의 긴 항해를 마치고 1891년 1월 29일에 부산항에 도착했다. 1891년 9월 부산 선교 스테이션을 개설,
부산진교회와 영서현교회
(초량교회)를 시작했다. 부산 땅에 파란 눈 가진 서양 선교사는 그들뿐이었으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1892년 7월에 딸 낸시를 선물을 받았다. 낸시는 그들에게 주신 하늘의 큰 위로였다. 베어드 선교사는 1년에 7개월 이상을 아내를 혼자 남겨 놓고 밀양, 경주, 울산, 대구, 상주, 안동까지 순회전도여행. 언젠가 전도여행 중 딸 낸시가 아프다는 기별을 받는다. 얼마 전 책을 집필하다가 이때의 일기(1894년 5월 7일 자)를 읽으며 눈물이 나왔다.
“우리가 막 저녁 식사를 끝내고 환자 몇 사람을 볼 때 연락원이 집에서 편지를 가지고 왔다. 로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알리는 이 편지를 여행 중 노상에서 나에게 전달하지 못하여 찾아 헤매다가 들고 온 것. 편지에는 그날 아침에 로지에게 발작이 있었고 즉시 집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난 몇 가지를 지시하고 즉시 온 힘을다해 집으로 향했다...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걷는것 같았고, 수십 톤에 해당하는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눈물이 복받쳐 올라왔다...
주일 아침, 로지는 G의 자녀이며 우리의 바람은 G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기도하면서 로지를 G의 손길에 위탁했다. 정오쯤 G께서 로지를 데려가시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깊은 물속을 헤쳐지나가 본 사람 말고는 누가 그때의 슬픔과 아픔을 알까!... G께서 로지를 데려갈 권리가 있으며 나는 로지를 데리고 있을 자격이 전혀 없다고 하루 종일 고백하려고 애썼다. 계속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로지를 내게 맡겨주심에 G께 감사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무거웠다.
5월 13일 주일 저녁, 로지가 자는 시간 8시경 로지를 G품으로 데려가셨다...
로지는 편안히 잠들었다... 아버지 저는 불평하지 않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아이가 당신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저희에게 맡겨 두셨기 때문에 저는 그를 저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을 데려가셨습니다... 저는 이 땅에서 울고 있지만 그는 가장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천국에서 노래할 것입니다.”
1894년 5월, 딸 낸시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만약 미국에 있었다면 살릴 뇌수막염 때문이었다.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
그 슬픔 중에도 베어드 선교사는 선교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며칠 후 북쪽으로 떠났다. 부인 애니 베어드 선교사는 혼자 남아 깊은 외로움과 슬픔에 잠겨 있었다. 고국과 가족을 떠나 복음 때문에 멀리 조선 땅까지 왔다. 남편은 지금 순회 전도 위해 멀리 멀리 가 있었다. 사랑하는 딸도 다시는 볼 수 없는 멀리 멀리 떠나보냈다. 그러한 아픔과 눈물을 담아 쓴 것이 “멀리 멀리 갔더니”라는 찬송시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워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그 아픔의 시간, 주님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고, 주님 손에 붙들리기를 원하였지요. 사도 요한도 고통 가운데 교회, 힘들고 답답한 시간을 보내는 교회에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주님께서 너희를 다스리고 계신다!”
어려움과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들이 믿음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손에 붙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를 세웠던 것은 그의 경험도 아니었고, 연륜도 아니었다. 주님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그다음 말씀을 보면 소아시아의 교회에게 주시는 G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노 설교자는 지금 받은 말씀을 전할 수가 없어 그것을 편지로 써 보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부복하는 성도, 교회만이 어려움 속에서도 승리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선교사 부부는 오전에 결혼식 마치고 그날 오후 선교지를 향해 달려갈 정도로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고, 부산과 경남북의 내지선교를 개척 선교의 초석을 놓고 수많은 교회를 세웠으며, 나중 평양으로 선교지를 옮겨 그곳에 숭실대학을 세워 근대 교육의 초석을 놓았다. 열정으로 불타 어느 선교사보다 많은 사역을 감당고, 본국에 보낸 선교 보고 횟수를 단연 앞선다. 그런데 지난겨울, 그에 대한 문헌을 찾아 연구하다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매년 그렇게 많은 선교 보고서를 보냈던 그가 1917년에 거의 없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1914년, 부인 애니 베어드 선교사는 암에 걸려 치료차 혼자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병세가 심해져 치료를 포기 40일이 넘는 그 먼 뱃길을 달려 다시 조선땅으로 돌아왔다. 조선 땅에 묻히기 위해서, 미국에서 죽게 되면 자기 장례 때문에 조선에서의 남편의 사역이 잠시라도 중단을 원치 않아서였다. 1916년 6월 9일, 52세의 나이로 세상 떠나 평양 땅에 묻혔다. 아내가 세상 떠난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1917년도 선교 보고가 줄어든 것.
힘든 시간, 어떻게 이겨냈을까? 부부에게 첫 아이 세상 떠난 1894년 가장 힘들었던 시간. 찬송이 만들어진 때 가장 힘들었던 때, 1895년. 어려울 때 간구의 마음을 찬송에 담은 것.
나는 갈길 모르니 주여 인도하소서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하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하소서.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 어려움의 시간, 주님께 붙들리기를 간절히 소원했다는 말이지요.
아이같이 어리니 나를 도와주소서힘도 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주소서 힘도 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주소서
마음 심히 슬프니 나를 위로하소서 의지 없이 다니니 나를 위로하소서의지 없이 다니니 나를 위로하소서
무슨 이야기입니까? 주님 손에 붙들리길 원했다. 아내가 세상 떠난 후 거의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다는데, 아내가 남긴 그 찬송 부르며 고백했지요. 그렇게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나 힘차게 사역하다가 1931년 주님 품으로 갔다.
오늘 말씀은 그때 사도 요한이 주님의 날에, 주의 영에 이끌려 예배 드리고 있는 광경. G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그 답답한 삶의 자리에 하늘이 내려옵니다. 감격하는 그를 주님의 영이 그를 천상의 예배 자리로 끌어올리십니다. 거기에 먼저 간 사도들이 서 있다. 먼저 간 성도들도 서 있다.
거기에는 주기철, 손양원, 윌리엄 베어드 목사님도 보좌 곁에 서 있다. 계 4-5장 말씀에 천군 천사들과 함께, 먼저 간 성도들과 함께 가슴 벅찬 찬양 올려드리고 있다. 그렇다. 예배의 자리는 바로 그런 자리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의 예배를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고 땅이 하늘로 올라가 잇대어지는, “하늘과 땅이 잇대어지는 신비”로 규정.
주의 영에 이끌려 말씀이 들린다.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인다. 들리지 않던 음성이 들린다. 주의 영에 이끌려 지금도 살아계시고 오늘도 내 삶을 다스리시는 주님이 보인다. 언제 교회가 어려워졌나? 큰 건물과 좋은 시설이 없어서였을까? 쾌적한 환경과 좋은 음향과 영상 장비가 없어서였을까? 주의 영에 이끌리지 않았을 때 교회는 언제나 위기 가운데 놓였다.
모든 것이 무너질 상황이었지만 주님의 영에 이끌려 하늘을 보고 있다. 그 설교자가 그가 보았던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양털같으며, 그의 눈을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나는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맑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의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13-16절)
성도들과 함께 우뚝 서 계시는 분을 보고 있다. 전에 갈릴리 바닷가에서 뵈었던 모습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과거에 그분은 수수한 옷 입었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는 맨발 주님은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왕의 모습이었다. 엄위에 찬 심판자. 감격하여 엎드렸고, 숨이 막힐 것 같은 전율에 죽은것 같이 되었다. 그때 G의 말씀이 또 들려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17절).
주님은 교회 사이를 거니시며, 모든 형편을 아시고 교회와 인생을 다스리신다. 그 고백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 모든 것이 세워진다. 그 고백이 약해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인생도, 가정도, 교회도, 나라와 민족도 무너진다. 그것을 알고 인정하며 사는 것이 신앙이다.
작년 이때, 저는 미 한 한인교회 주일예배에서 전할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다. 미 장로교회 소속 한인교회로는 제일 규모가 있었고, 남미, 중국, 동남아, 북한, 아프리카 선교에 헌신하던 교회였다. 성도들과 함께 캄보디아 선교지에 다녀오신 후 무리가 되어 목사님이 갑자기 세상 떠났다. 심장마비였다.
후임 담임목사 청빙 하다 마음들이 나뉘어 큰 어려움 가운데 있었다. 마음이 나눠진 교회에 어떤 설교 해야 할지 고민에 말씀 준비가 힘들었다. 설교가 잘 풀리지 않아 고심하다 한 동시를 읽다 미소가 번졌다. 갑자기 확 열리는 느낌.
“할머니 큰방 벽에 걸린 시계가 잔다”“그냥 놔두라 좀 쉬구로 지는 언제 쉬어 보겠노”
“할머니는 시간 어떻게 알려고 그라노” “하늘에 걸린 시계 보면 되지”
모내기 하소 콩 심으소 장 담그소 김장하소 팥죽 끓이소
하늘에 걸린 시계가 알려주는 대로 살다 보니 참 바쁘게 살았는기라.
바로 설교가 풀리는 것을 경험했다. 시를 읽고 마음에 깊은 충격이 들어 잠시 밖으로 나가 보았다. 7월 중순, 미 동남부 하늘은 푸르고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태양은 장엄하게 빛났다. 하늘 보는데 마음 깊은 음성이 들렸다. ‘하늘에 걸린 시계를 보면 되지...’ 1C, 어둡고 캄캄하던 시간, 교회에 주시는 하늘의 메시지도 그렇다. ‘하늘에 걸린 시계를 보면되지...’
그렇다. 너무 바쁘고, 내 생각과 주장이 너무 강하고, 거기 매몰되어 살다 보면 우린 잠시 고개 들어 하늘의 시계를 볼 여유도 없이 달릴 때가많다. 그러다가 지치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마음 상하고, 상처를 입기도.
오늘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오늘은 흔들리고 있는 연약한 제자들 가운데, 교회 가운데 성령님께서 임하신 날. 성령님은 교회 안에 계시고, 성도들 안에 계신다. 계속 기억나게 하시는 분.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늘 성령님을 바라보고, 소통하고,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랐다. 말과 행동, 생각에서 그분을 앞서지 않으려고 몸부림쳤고, 주의 영에 이끌리려고 노력했다. 성령님께 컨트롤 받기를 원하여 엎드렸다. 그때 그들은 복음의 능력을 가진 교회가 되었다.
혼자서 외로운 자리에 서 있었다. 평생 달려온 결과가 죄수로 중노동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을 외로운 노년이지만 주의 영에 이끌려 그의 노래는 이어진다.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성도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 일어선다. 그러나 한번 갇히면 황제의 특별사면이 아니면 풀려날 수 없는 죄수였다. G의 말씀을 받았으나 들어줄 성도가 아무도 없는 설교자였다. 주저앉습니까? 아니다. 붓을 들어 G의 말씀을 편지로 쓴 것이 요한 1, 2, 3서고, 계시록이었다.
인생의 모든 것이 접히는 그 시간, 그의 사랑 노래는 계속되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노라. 그 때문에 나는 밧모섬에 유배되어 인생 마지막인 줄 알고 열심히 마지막 노래를 불렀었노라....” 그것이 끝인 줄 알아서 그의 노래는 더 깊어지고 뜨거워져 노래를 더 부르도록 연장해 주신다. 황량한 섬에서 그는 노래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셨다.
AD 96년, 그 강력한 권력자였던 도미티안 황제가 정적에게 암살 당한다. 새 황제의 특별사면으로 사도 요한은 풀려나고 에베소로 간다. 거기서 그의 노래는 계속되었다. 초대교회 지도자였던 제롬이 그 상황을 기록으로 상세하게 전해 줍니다. 백발이 성성한 요한은 기력이 쇠하여 다른 도시에 있는 교회에까지 말씀을 전하러 갈 힘이 없어서 주로 에베소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였다. 강한 햇빛이 쏟아지는 어느 여름, 어두침침하고 허름한 지하 예배실에 교인들이 모였다.
주옥과 같은 J의 설교를 직접 들었던 주님의 사랑하시던 그 제자가 설교를 시작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서로 사랑하라…” 그 설교가 지난주 설교와 같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예배 후 교인들이 다음 주엔 다른 설교를 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다음 주일, 설교단에 선 그 노사도는 그렇게 설교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것은 우리 주님의 명령이니라.’ 그의 설교는 짧아졌지만 메시지는 더 뚜렷했다.
김재진 시인의 에세이 집,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는 우리의 남은 시간을 생각하게 만들고, 그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혼을 바쳐 사랑하고픈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죽어도 용서 못 할 어떤 사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남은 날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살기에 너무 바빠서, 뭔가에 너무 매몰되어서 미처 생각 못한 시간과 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책에서 시인은
“하루는 길지만 일주일은 짧고, 한 달이나 일 년은 그보다 더 짧다. 어느새 일 년이 가고, 어느새 인생의 시계가 황혼을 향해 움직일 때 정말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질 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누군가 받아들이고, 누군가를 토닥거리며 보낼 시간은 얼마일까? 마음 졸이지 않고, 슬프지도 않고, 사랑할 날이 내겐 정말 얼마나 남았을까?”
사랑할 날이 얼마일까? 이 책은 시인이 20년 전 쓴 시에서 따온 것.
그 시는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까닭 없이 자꾸자꾸 눈물만 흐르는 밤 길에 서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네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20년 전에 쓴 시를 다시 꺼내 책 제목으로 삼은 것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시인은 더 사랑하면서 살려고 노력했다. 사랑할 날은 얼마나 남았을까? 물음 앞에 초대교회 노 설교자는 다시 일어서 어려움 가운데서 성도들은 다시 일어선다. 그것이 우리 이야기이면 좋겠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