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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DEF...가 영어가 아닌 이유 (그리고 영문/영문자, 알파벳이라고 해도 이상한 이유)
퍼옴 . 민쵸샘의 글
2022-10-10 08:32:41 수정일 : 2022-10-10 08:42:36 220.♡.143.129
한글날 시즌의 한국어-한글 구별 쿨타임 돈 김에 살짝 얹어봅니다.
ABCDEF...를 영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영문, 영문자라고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자면 (해당 문화권도 아닌 한국에서) 알파벳이라고 부르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1. ABCDEF... 가 영어가 아닌 이유 : 언어와 문자는 같은 개념이 아님.
영어(English, the English Language)는 지금의 영국이 위치한 지역에서 유래하여 미국, 영국(미국을 앞에 두는게 영국인들이 기분 나쁘겠지만 현실이니까요) 등에서 공용어로,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제1외국어로 사용되는 언어를 지칭합니다. 영어는 언어이고, ABCDEF... 는 영어를 표기할 때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글자일 뿐이라서 두 가지를 서로 섞어쓰는 것은 이상합니다.
2. ABCDEF... 를 영문/영문자라고 하면 안 되는 이유
1) ABCDEF... 를 써서만 영어를 표기할 수 있는 게 아님.
영어는 ABCDEF.. 를 이용하여 표기하지만, 해당 국가의 문맹인의 경우 문자 없이도 잘만 듣고 말하며, 점자나 수화로도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 즉 영어는 ABCDEF... 를 이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사용하거나 표기할 수 있습니다. 한글이나 일본어의 가타카나를 이용해서도 표기 가능합니다. 즉 ABCDEF... 의 이용은 영어 사용의 필요조건이 아닙니다.
2) ABCDEF... 로 표기할 수 있는 언어에 영어만 있는 것이 아님 .
ABCDEF.. 는 영어 뿐 아니라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핀란드어 등등의 주요 표기법으로 사용됩니다. 심지어 해당 문화권이 아닌 언어 즉 베트남어나 터키어 등을 표기할 때도 사용하고, 베트남어도 ABCDEF..를 써서 표기하고 있습니다. 간체자를 사용하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표의문자인 중국어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서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ABCDEF.. 를 이용하여 써 놓았다고 해도 이것이 얼마든지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일 수 있습니다. 즉 ABCDEF... 의 이용은 영어 사용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3) ABCDEF... 는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이 처음 만든 것도 아니고, 영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생긴 것도 아니며, 영어 표기에 적절한 문자조차 아님.
ABCDEF.. 는 고대 로마인들이 라틴어를 표기하기 위해 그리스 문자 등 이전 문자를 참고하여 만들어낸 문자입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 등의 영어권 국가는 비록 라틴 문명권의 간접적 영향권에 있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도 않고, 생성과정에 영미 문화권이 기여를 한 바가 없기 때문에 종주국(?)으로 취급하기에도 역사성이나 정통성이 없습니다. (물론 ABCDEF..가 인류를 지배할 정도로 전파된 데에는 영미 문화권의 패권주의가 기여했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요.)
그리고 애초에 어족부터 영어와 거리가 먼 라틴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든 문자를 쓰다 보니 영어 음성체계의 표기에 최적화된 문자가 아니어서 실발음과 문자 사이의 괴리가 엄청나게 심하고, 이로 인하여 많은 영어 원어민들과 비원어민 영어 학습자들을 매우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 점은 영어를 외국어로서 익혀 본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입니다.)
라틴어를 아주 조금만 배워 보아도 발음과 문자가 (마치 한국어와 한글처럼) 거의 완벽하게 1:1로 대응하는 것에 놀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라틴어가 많이 보존되어 있는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도 몇 가지 예외만 익히면 발음과 문자가 거의 일치하여, 서너 시간만 배워도 얼마든지 처음 보는 내용을 얼마든지 소리내어 읽거나 받아쓰는 게 가능할 정도입니다. (물론 라틴어든 스페인어든 이탈리아어든 문법이 지랄맞게 복잡해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한글의 장점이라고 언급되는 중 "외국인도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장점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우수성은 별도로 엄연히 존재하지만, 적어도 "발음과 문자가 1:1 대응해서 쉽다"는 장점은 한글의 장점이 될 수는 있어도 고유의 장점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자주 비교 대상이 되는 영어와 ABCDEF..의 서로 안 맞는 관계가 매우 특수한 것에 가깝지요.
3. (한국에서라면,) ABCDEF... 를 알파벳이라고 부르는 것도 부적절한 이유
영국이나 미국, 독일,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에서 ABCDEF... 를 알파벳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알파베또, 알파베 등으로 그리고 에이비씨..가 아니라 아베체, 아베쎄.. 등으로 읽는 방법은 약간 달라집니다.)
자국 언어의 표기체계를 이르는 말이니 알파벳이라고 해도 높은 확률로 자국의 문자를 가리킨다고 간주해도 무방하니까요.
하지만 한국에서라면요?
자국의 문자 체계를 알파벳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이 ABCDEF를 사용하는 국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αβγδε.. 로 시작되는 그리스 문자도 스스로를 αλφάβητο(알파베또)라고 칭하며 (그리고 이쪽의 역사가 훨씬 더 깁니다. 페니키아 문자와 따져볼 게 있지만 페니키아 문자에 모음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페니키아 문자는 아브자드-아부기다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어 그리스 알파베또 쪽이 알파벳의 시초에 가깝습니다)
абвгд.. 로 시작되는 키릴 문자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등의 표기에 사용)도 해당 문화권에서는 алфавит이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알파벳이 표음 문자 중 오래된 축에 속하고 많은 언어권에서 사용되다 보니, 그리스 문자에 기원한 라틴, 키릴 문자 뿐 아니라 언어학적으로 표음문자 속성을 가진 문자에 대한 보통명사로도 쓰이기 때문에 더더욱 혼란을 줍니다. 당장 한글부터가 영어로 번역하면 "Hangul/the Korean Alphebet"이 되니까요.
수도방위사령부에서의 수도가 한국에서라면 서울을 지칭하겠지만, 이걸 다른 나라에서 그대로 직역해서 사용하면 이게 서울인지, 워싱턴인지, 모스크바인지 알기 어려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ABCDEF..를 (영어도 아니고 영문도 아니고 영문자도 알파벳도 아닌) 로마자(또는 라틴 문자, the Roman Alphabet)라고 칭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로마 알파벳/라틴 알파벳이라고 해도 됩니다만, 경제성을 생각해볼 때 3음절로 표기할 수 있는 로마자가 가장 유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에서도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한글과 로마자 대응"으로 쓰지 절대 영문 표기/영어 표기라고 하지 않지요.
ABCDEF.. 를 생각 없이 영문/영문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영어권 국가(미국이겠죠?)의 역사적 문화적 식민지라는 것을 자백하는 습관이고,
ABCDEF.. 를 그냥 알파벳이라고 칭한다는 것도, 우리가 독자권 문화권이 아니라 로마자를 사용하는 국가(들)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자백하는 습관입니다.
영어는 언어학적으로 정말 나쁜 언어입니다.
일단 표기법 자체가 독자적이지 않고 로마자를 빌려(훔쳐)쓰다 보니 발음과 문자간의 괴리가 끔찍할 정도로 심하며 (프랑스어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그래도 영어보다는 덜합니다.)
문법 자체가 매우 비체계적이고 지저분해서 (이 분야에 있어서는 따라올 다른 언어가 없습니다.) 자국어 또는 외국어 학습자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다만 역사적인 운이 따라서 영어 사용 국가가 패권을 쥐고 있으면서 자국의 언어를 깡패처럼 세계 각국에 강요해서 현재 상황에 이르렀을 뿐이지요.
현실적으로 영어를 익히지 않고 살기가 어려워진 것과는 별도로, 영어라는 언어가 자행한 악행에 대해서는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이나 미국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영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를 영어나 영문/영문자라고 불러준다구요?
문화국가로서 주권국가로서 자존심을 걸고 다시 생각해 볼 일일 것입니다.
민쵸샘 님의게시글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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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p
유익하고 옳은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영어가 익숙해서 그런지 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좀 많죠
B1_66ER
영어 문법이 지저분한 건 맞지만 타 언어에 비해 격이나 시제 등이 비교적 간단해서 상대적으로 배우기 쉬운 것도 맞죠. 제국주의 역학 외에도 이런 언어적 특성이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게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민쵸샘
1
@B1_66ER님 인도유럽어 계통 중 제일 굴절어 특성이 마모되어 격이나 시제가 단순한 것은 아주 초급 단계에서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요인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장점조차도 발음-표기 괴리나 문법의 불규칙성으로 인하여 거의 상쇄된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그리고 불규칙성 외에도 의미전달의 불명확성 역시 큰 문제입니다. 멀리 가지 않고 독일어나 프랑스어만 해도 중급 단계만 넘으면 예외성이나 모호성이 적어서, 외국인으로서 영어보다 훨씬 쉽고 편합니다. would could should가 등장하였을 때 이게 과거시제인지 조건법인지 접속법인지 고민하고 결국 문맥을 짐작하여 때려맞춰야 하는 흐리멍텅한 지저분함에 고통받다가 이 구별이 명확한 언어를 접해 보면 얼마나 속시원한데요.
물론 그 불명확성이 문학적으로 활용하거나 유머에 사용되기도 합니다만..
어휘 측면에서는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다 보니 유의어가 불필요하게 무한정 많아지는 것이 또 사용자와 학습자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물론 이것도 뉘앙스를 풍부하게 만든다고 볼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외래어를 흡수해놓고 외래어 어휘들의 근원을 지워서 영어 단어가 아닌 것조차 영어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도 패악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어의 문화적 미적 가치는 영국 요리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영국 요리가 영어와 비교하면 저평가된 것 같기도 하고요.
B1_66ER
@민쵸샘님 영어 외에 개인적으로 라틴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공부해 봤는데, 영어가 얼마나 배우기 쉬운(?) 언어인지를 역설적으로 깨달았습니다.
티피
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문해력이 좋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ABC를 로마자라고 불러야한다는 내용이 두괄식으로 적혀있었다면 조금 더 읽기 편했을 것 같아요.
하민아빠
티피님// 리플덕분에 결론을 이해했습니다 ^^
빠빠기
한글날 좋은 글이네요~
삭제 되었습니다.
-Felix-
오 생각해볼만한 좋은글, 감사합니다!!
/Vollago
용가리우스
영어의 철자와 발음 괴리가 큰 건 빌려서 쓰는(?) 문자라서가 아니라 문법이나 철자 개혁을 할 중앙 기관이 없어서입니다.
한국어도 계속 문법과 표기법이 바뀌고 있습니다. 읍니다/습니다 말고도요.
민쵸샘
@용가리우스님 공적인 기관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대기에는 옥스포드나 웹스터 등의 출판사 또는 학교들이 웬만한 나라의 중앙 기관보다 더 강한 영향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비영어권에서 국립국어원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까요 아니면 옥스포드나 웹스터를 들어본 사람이 많을까요? 그냥 태생부터가 노답인 언어고 문자라서 그런겁니다. // 한국어도 문법과 표기법이 빠르게 변하고는 있네요. 제가 몇 번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30대인 제 이전 직장 후임은 꿋꿋하게 앞자석 뒷자석을 고수하네요.
용가리우스
민쵸샘님// 영어권의 사전은 사람들의 사용을 정리하는 입장이죠. 독일어처럼 ß를 ss로 바꾼다거나 하는 걸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ghost의 철자에서 묵음인 h를 뺄 수 있을까요??
moxx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만 영어와 라틴어는 같은 어족(인도유럽어족)이기는 하죠^^;
중간에 갈라졌다가(로망스어계, 게르만어계) 영어가 프랑스어를 통해서 상당부분 로망스화 되기는 했지만요.
같은 어족이나 친척 언어에 대비하여 영어가 단순해진 점과 복잡해진 점을 모두 고려해서 영어는 고대영어와 프랑스어의 크레올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더군요.
민쵸샘
@moxx님 영어는 게르만어라고 분류하기에는 게르만어에 특징적인 문법을 다 뭉개고 로망스어의 문법요소와 로망스어의 고급 단어를 너무나 많이 받아들였고 그렇다고 로망스어라고 분류하기에는 게르만어의 기초어휘나 문법특성을 또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를 가장 많이 로망스어화된 게르만어라고 하고 프랑스어를 가장 많이 게르만어화(영어화)된 로망스어라고 하는데 물론 프랑스어도 영어 빼고 나면 정말 지저분하고 추한 언어이긴 하지만 (영어만큼은 아니지만 상당 기간 패권을 누렸던 국제어라서 그런 거겠죠.) 영어만큼 심하지는 않습니다. 음식으로 따지면 프랑스어가 막걸리맛 바닐라 아이스크림 정도라면 영어는 민트초코묵은지김치찌개 같은거에요.
같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해있다고 해서 영어와 라틴어가 같은 분류에 들어간다고 하면, 아메바도 진핵생물이니 (원핵생물인) 대장균보다는 (진핵생물인) 사람에 훨씬 더 가깝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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