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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결핵 앓았던 약골소년
- 가난한 환자 돕는 의사로
- 재단법인 그린닥터스 결성
- 개성종합병원 운영 맡아
- 북한 의료수준 끌어올려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소년은 초등학교 교사인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를 7번이나 옮겼다. 박봉에 5남매 중 둘째였던 소년은 약골인 데다 못 먹어 진주남중 시절 폐결핵에 걸렸다. 진주고 다닐 땐 각혈을 하며 공부했다. 고3 때까지 지금은 추억이 된 진주의료원에서 한 달 치 약을 받아 한 번에 한 움큼씩 약을 털어 넣었다. 죽을 고비도 한 차례 넘겼다. 그때 아픔의 고통을 알았기에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봉사로 점철된 그의 삶의 출발점이었다.
재수 끝에 부산대 의대에 진학했다. 당시 183㎝, 53㎏. 뼈만 남은 멀대였다. 군의관 신체검사에서 떨어져 일반사병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역시 면제. 장삼이사라면 쾌재를 불렀겠지만 군대는 반드시 가야 된다는 신념을 가진 이 '엉뚱한' 의대생은 폐결핵 완치 후인 본과 4학년 때 다시 군의관 신체검사를 지원해 통과했다. 유부남이었던 그는 안과 전문의를 딴 후 군의관으로 입대했다. "그때 정말 행복했어요. 강원도 인제, 경남 진해, 그리고 남해안 섬들을 찾아다니며 노인들을 위해 즐겁게 의료봉사를 했지요."
1992년 부산대 의대 안과 교수로 재직할 때 그는 전국 최초로 안(眼)은행 설립을 주도하며 그의 온 가족이 가장 먼저 안구기증을 서약했다. 2년 후 서면에 안과를 개원하면서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의 백내장 수술을 무료로 해주는 등 꾸준한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그린닥터스 이사장이자 온 종합병원장 정근(54) 씨 이야기다. 재단법인인 두 단체는 정 이사장이 봉사활동을 시스템화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자 기관이다. 전자는 북한, 중국, 동남아 등 해외의료봉사를, 후자는 지역사회를 돕기 위해 각각 설립했다. 후자는 지난 4일 열린 제5회 부산시 사회공헌장 섬김부문에서 으뜸장을 받았다. 5년간 30명의 수상자 중 개인이 아닌 단체, 그것도 병원이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지역 의료계에서 봉사활동을 통한 사회공헌이 가장 활발했다는 사실을 공인받은 것이다.
정 이사장이 본격 봉사활동에 나선 것은 IMF 구제금융 때. 돈이 없어 수술을 못 받는 이른바 의료공황이 창궐할 때였다. 평소 뜻을 같이한 동료 선후배 의사 30명이 백양의료봉사단을 결성했다. "주말이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부산지역 달동네와 아동시설, 요양보호시설 등을 찾아 서민들의 아픔을 달래주었지요."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해외의료봉사로 눈을 돌렸다. 2002년 6월 월드컵을 뒤로한 채 백양의료봉사단은 첫 해외봉사지로 중국 옌볜과 옌청을 찾았다. 당시 정 이사장은 중국 땅에서 우연히 압록강 건너 강변에서 빨래하는 북한주민들을 보면서 북녘 땅에도 병원을 세워 동포들을 치료하겠다고 결심했다.
정 이사장은 봉사단체를 좀 더 체계적으로 꾸리기 위해 백양의료봉사단을 모태로 2004년 1월 국제적인 NGO인 그린닥터스를 조직했다. 의료봉사를 위한 재단법인이 국내 처음이라, 그것도 부산을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당시 복지부 담당자가 허가를 놓고 고심깨나 했다고 한다.
이즈음 북한에 개성공단이 생기면서 정부는 개성공단병원의 운영을 맡을 대북사업자를 모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이 순간을 위해 그린닥터스는 2년여 준비한 110페이지의 보고서를 제출, 서울의 유수 대형 병원을 제치고 운영권을 따냈다.
문제는 의료봉사를 위한 이동. 정 이사장을 비롯한 그린닥터스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부산서 무박3일 의료봉사를 2년간 강행했다. 월요일 밤 9시 기차 타고 새벽 서울 도착, 찜질방 숙박, 화요일 아침 개성 이동 후 종일 진료, 화요일 밤 기차 타고 새벽 부산 도착, 수요일 본업. 무보수 자원봉사라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묵묵히 수행한 것이다.
다행히 2007년부터 개성종합병원으로 합쳐지면서 새 건물도 생겨 남북의료진(북측 23명·남측 7명)이 X선·초음파기, 수술실까지 갖추고 교차 진료를 하는 꿈 같은 일이 현실화됐다.
"처음엔 북측의 의료수준이 너무 낮아 깜짝 놀랐어요. 오랜 단절로 인한 문화차이로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같은 민족이어서 곧 해결됐지요. 이렇게 6년, 그린닥터스는 개성공단에서 총 8년간 의료봉사를 통한 평화의 사절 역할을 했지요. 기부(약품 포함)와 자비 등으로 8년간 북한의 의료진 급여까지 포함해 운영비를 환산해보니 무려 65억 원이 들었어요."
이 기간에도 정 이사장의 해외의료봉사는 진행형이었다. 2004년 스리랑카 쓰나미,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 2006년 인도네시아 대지진, 2008년 미얀마 싸이클론,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참사에도 앞장서 봉사했다. 특히 2008년 미얀마에는 역시 안과의사인 부인과 아들 두 명 등 온 가족이 동행했다.
정 이사장은 올 초 대한결핵협회장으로 선출됐다. 폐결핵을 앓던 촌놈이 결핵 퇴치의 수장이 된 것이다. "북측의 결핵이 아주 심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목표를 하나 귀띔했다. "1927년 국내 첫 결핵요양병원이 있던 황해도 해주에 결핵병원을 부활시키는 게 당면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