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 ☆
2023년 7월 30일 주일 예배
( 인도,설교: 정성욱 선교사 )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들에게
새날과 주님 안에서 안식할 수 있는
주일을 주시고 마지막때를 맞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의 온라인으로
다함께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 드리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저희들에게 주시는 말씀의
은혜 받게 해주시고 저희와 가족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주옵소서!
응답해 주실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모두 한주간도 평안하셨는지요?
오늘도 성경 말씀을 한장 봉독하며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 본문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오늘 본문말씀 1절~3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을 위해
제가 선교 유럽 선교 여행 중에 잠시
갔었던 계시록에 일곱 교회가 있는
터키지역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서
칭찬받는 디모데를 제자와 영적인 아들로
삼고 함께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이처럼 선교여행은 성도들과
사역자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저도 성도분들의 도움과 헌금이
있었기에 이번 일본 선교가
가능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일본 선교여행을 계속 가게 된다면
가능하다면 그때는 저도 동역자들과
함께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4절을 보시면
바울은 지난 선교여행에서
개척한 교회를 순회하며 예루살렘
회의의 훈령이 적힌 사본들을
그곳 사람들에게 전달을 하였습니다.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바울 사도는 순회 선교 여행을 하며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한 규례들을
각 교회의 믿는 사람들에게 전달을
하였던 것입니다.
마지막때를 맞은 지금은 저와 우리
부받사 교회가 지금까지 하늘의
새예루살렘성에서 결정한 규례들을
인쇄물 사본으로 만들어서 각 교회의
믿는 사람들에게 전달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규례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이번 일본 선교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짐승의 표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새예루살렘 규례를 일본어 전도지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전령이 되어
각 교회의 전달을 하러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5절 말씀을 보시면
규례를 받은 교회들이 믿음 안에서 더욱 굳건해지고 그 수가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이처럼 짐승의 표를 받지 마라는
말씀은 교회를 굳건하게 하고 그 수가
날마다 늘어나게 하는 사역인 것입니다.
이어서 6~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저도 이와 같은 체험을 한적이 있습니다.
청년 시절 중국선교를 떠나려고 하였으나
여러 사건들로 인하여 중국으로 가지
못하고 동남아시아로 선교를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8~10절 말씀입니다.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위에 환상은 우리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유명한 사건이지요.
그런데 이 사건은 마지막때를 맞아
우리나라에서도 발생을 하였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글을 가져왔습니다.
"한국교회는 대체로 1884년을 그 원년으로 잡는다. 이는 그해 6월말에 감리교 선교사 맥클레이(R. S. Maclay)가 선교의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기 위해 방한하였고, 9월에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알렌(H. N. Allen)이 최초의 상주 선교사로 입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그 이전부터 국내에도 기독교의 복음이 수용되어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자생적 공동체를 형성하며 전파되고 있었다. 그리고 국외에서도 몇몇 한국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 세례를 받고, 선교사들을 도와 성경을 번역하고, 한국교회를 형성하고, 선교사 유치운동을 벌이는 등 실제적인 복음전파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일본에서 있었던 이수정(李樹廷, 1843-1886)의 개종과 활동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조선교회의 선구자가 되는 마케도니아 사람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이수정은 한국의 기독교 수용과 관련해 몇 가지 점에서 크게 공헌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성경번역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한국교회가 성경중심의 신앙을 구현할 수 있는 하나의 토대를 제공했다.
기독교로 개종한 후 이수정의 최대 소망은 성경을 조선민족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는 그의 회심에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신비한 꿈이 계기가 되었다. 이수정은 홍문관 관리로 있던 중 일어난 임오군란 때, 위기에 처한 중전 민 씨를 구출한 공으로 신사유람단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1882년 9월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개화된 선진문물과 농업기술을 시찰하고 연구할 목적이었다. 물론 그 여정에는 친구 안종수가 소개해 준 츠다센(津田仙) 박사와의 만남도 잡혀 있었다. 츠다센 박사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매우 유명한 농학자였다.
츠다센 박사를 만난 이수정은 그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고, 신약성경도 선물로 받게 되었다. 이수정은 그 성경을 읽던 중 하루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 꿈 속에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한 사람은 키가 크고 다른 사람은 작았다. 이수정을 찾아온 그들은 자신들이 걸머지고 온 보따리를 벗어 주었다. 그가 “이것이 무엇이냐”하고 묻자, 그들은 ‘책’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그가 “이 책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 책들은 당신 나라의 모든 책들보다도 가장 중요한 책들이다”라고 그들이 답하였다. 이에 그가 “그것이 무슨 책인데 그러느냐?”고 묻자, 그들은 “성경책이다”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난 이수정은 큰 충격을 받았다.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책, 성경책.” 꿈에서 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과 또 그 보따리 속에 가득 들어 있던 책들을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다. 그 꿈이 마치 하나의 신비적인 계시처럼 여겨졌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자원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고, 이어 1883년 4월 29일 부활절에는 야스가와(安川亭) 목사와 조지 낙스(George W. Knox) 선교사의 입회 하에 로겟츠죠교회(露月町敎會)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는 일본에서 거행된 조선인 최초의 세례였다. 그가 일본으로 건너간 지 7개월 만이며, 그때 그의 나이 40세였다. 비록 이수정의 세례가 이국 땅에서 행해진 일이기는 했지만, 아직 조선정부가 기독교 수용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고, 또한 그가 정부의 고급 관료였다는 사회적 정치적 신분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목숨을 걸었던 것과 진배 없었다.
이 사건은 일본 기독교인들은 물론 재일선교사들에게 큰 기대와 감흥을 일으켰다. 이 소식은 일본의 「칠일잡지」(七一雜誌) 제19호 (1883. 5. 11)에 자세히 실릴 정도였다. 더구나 그들은 베일 속에 쌓인 신비의 나라로 알려진 조선에 선교할 기회를 다각도로 모색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재일 미국성서공회 총무 루미스(H. Loomis)는 이수정의 개종을 “근대선교사상 가장 괄목할만한 사건으로 너무 좋아 믿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기독교로 개종한 후 이수정은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성경을 번역하라”는 하나님의 음성과 루미스 선교사의 제안으로 성경번역에 착수했다. 성경은 이수정을 회심하도록 이끈 도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천주교가 조선 선교에서 실패한 것도 성경이 없는 선교를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가톨릭 선교사들이 조선 민족에게 성경의 말씀을 맛보지 못하게 한 것은 중대한 잘못이었다(이덕주, 105). 따라서 이수정은 무엇보다도 성경을 조선민족에게 주고자 했으며, 그것은 그의 최대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이수정의 성경번역은 소위 현토성경(懸吐聖經)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이는 한문성경에 토를 다는 이른바 한한성경(漢韓聖經)으로, 당시 한국의 식자층에 인기가 있던 방법이었다. 1883년 5월에 시작된 현토성경은 그해 6월말까지 신약전체를 완성할 수 있었다. 현토성경은 이후의 번역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당시 동경의 유학생에게는 물론 국내에 유입되어 지식층의 환영을 받기도 했다.
이수정은 현토성경이 끝난 6월말부터 마가복음을 택하여 한글성경 번역에 들어갔다. 이는 이듬해 4월에 완역되었고, 인쇄소 사정 등으로 간행이 지체되다가 1885년 2월 요코하마에서 1천부가 발행되었다. 이수정은 후에 누가복음도 번역했으나 출판되지 않았고, 감리교 선교사 맥클레이의 요청으로 <감리교 요리문답>도 번역하여 1천부가 출판돼 국내에 널리 유포되었다.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의 출판은 한국 선교사로 임명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일본에 도착하는 때를 맞춘 것이었다. 요코하마에 도착한 그들은 이수정으로부터 2개월 간 한국어를 배우고 그해 4월 5일 부활절에 제물포에 도착했던 것이다. 이때 그들의 손에는 바로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이 들려 있었다. 이수정의 성경번역이 그들을 비롯해 이후에 오는 내한 선교사들이 보다 빠르고 쉽게 선교활동을 벌일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준 셈이다.
이처럼 한국의 기독교 수용은 먼 이국 땅에서부터 착실히 준비되고 있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성경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의 실체를 체험한 복음의 선각자들이 민족복음화를 위해 무엇보다 성경보급이 시급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성경번역을 그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명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수정과 선교사 유치운동
이수정은 “한국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리고 그는 1886년 5월 당국의 귀환명령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반역죄의 죄목으로 처형되면서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이로써 그는 50세도 채우지 못하고 지상의 생명을 마감했지만, ‘한국기독교 역사상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되어 신앙의 순례자들을 비춰주고 있다.
이수정은 세례를 받은 지 일주일 만인 1883년 5월 8일부터 일주일간 도쿄에서 열린 ‘제3회 일본 기독교신도 대친목 대회’에서 조선을 대표하여 기도했다. 한국어로 드려진 기도였지만, 이수정의 기도는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감흥을 일으켰다. 그때 거기에 참석했던 무교회주의자인 우찌무라 간죠(內村鑑三)는 <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그때의 감명을 이렇게 적고 있다.
“참석자 중에 조선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은둔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일주일 전에 세례를 받고 자기나라의 의복을 항상 착용하는 기품이 당당한 명문가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나라말로 기도했는데 우리는 그 마지막에 ‘아멘’하는 소리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 기도는 무한한 힘을 가진 기도였다.… 우리들의 머리 위에 무엇인가 기적적이요 놀랄만한 사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온 회중이 느끼면서 다같이 감동되고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이수정은 대회 중에 그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요한복음 14-15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신인감응(神人感應)의 이치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신앙고백을 했던 것이다. 즉 믿음이란 인간의 신앙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감응으로 보고, 그러한 현상을 등(燈)과 심지, 종과 망치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구원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이치(理致)의 통달을 강조하는 불교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수정의 신앙고백문은 한국 기독교인 최초의 것으로 한문 575자로 되어 있으며, 일본의 기독교계 잡지인 <육합잡지> 제34호(1883. 5)와 <칠일잡지> 제8권 22호(1883. 6.1)에 수록되어 있다.
그가 신앙고백문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감응에 대한 한 비유는 다음과 같다. “등잔의 심지(燈炷)가 타지 않으면 빛이 없을 것입니다. 이 등잔의 심지는 곧 도를 향하는 마음이요 불붙는다는 것은 믿는 마음을 말합니다. 불은 하나님의 감응을 말하는 것으로 믿는 마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감응을 받을 수 없으며, 심지는 등이 없으면 있을 수 없으므로, 등이 없을 때는 빛을 볼 수 없을 것이며,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이덕주, 조이제, 22-23).
한편, 기독교로 개종한 이수정은 재일선교사 및 일본기독교 지도자들과 폭넓은 교제를 가졌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를 활용하여 성경번역 및 내한선교사 유치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여기에는 선교사 조지 낙스(George W. Knox)와 루미스(H. Loomis)의 도움이 컸다. 물론 당시 일본교회 내에는 한국선교론이 대두되어 한국선교사를 자원하는 자까지 나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수정은 일본교회에 의한 한국선교를 강력히 반대하고 미국 선교사 유치운동을 전개했다. 조선에는 반일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서구문명을 일본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미국으로부터 수용해야 한다는 문화적 욕구도 곁들여 있던 것 같다.
사실 제임스 그레이슨(James H. Grayson)이 언급처럼, 개화기에 적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특히 개신교는 발전된 산업 국가들의 종교와 동일시되었다”(Grayson, 127). 그러한 맥락에서 독실한 불교도였던 김옥균도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이 기독교와 서구의 문물을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후 이러한 생각은 한국이 문호를 열고 개신교가 한국에서 놀랍게 확산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수정의 미국선교사 유치운동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수정은 앞서 언급한 재일 미국선교사들의 도움으로 1883년 7월 미국의 선교잡지, 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에 처음으로 조선을 소개했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그는 낙심하지 않고 다시 그해 12월에 2차로 동일한 선교잡지에 선교사 유치운동에 관한 글을 게재했다. 이수정은 여기서 먼저 ‘기독교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지구의 어두운 구석’에서 이교도의 삶을 살고 있는 조선민족의 참담한 현실과 그로 인한 복음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어 그는 자신이 기독교인으로 개종 후 조선의 복음화를 준비하며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있으며, 몇몇 한국인 신자들과 함께 ‘조선에 미국선교사를 파송해 줄 것’을 위해 밤낮 기도하고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계속해 가톨릭의 조선선교와 그 수난 등을 언급한 후, “지금이 조선에 복음을 소개하는데 가장 황금의 기회”라고 적고 있다.
또한 그는 정부도 대외 통상정책을 펴고 있으므로,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허용치는 않을지라도 기독교인을 찾아내어 박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후 다음과 같이 요청하고 있다. “여러분의 나라는 기독교국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보내지 않으면, 나는 다른 나라가 그들의 선교사들을 급히 파송하리라 생각하며, 또한 그러한 가르침들이 주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을까 하여 걱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나는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분들이 파송하는 선교사들을 돕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MRW, (1884. 3): 145-46].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글은 미국교회가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실행위원이던 맥윌리암스(D. W. McWilliams)가 이 글을 읽고 선교헌금 5,000불을 내놓으면서 조선 선교사 파송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도 거기서 감동을 받아 한국선교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수정이야말로 가장 처음으로 한국에 선교사를 유치한 최대의 공로자’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하는 헌신이 어떤 결실을 거두게 되는가를 보게 된다.
조선의 마게도냐인 이수정
세례 후 이수정은 츠다 박사와 일본교계 지도자들, 외국인 선교사들과 지속적인 교제를 통해 기독교 진리에 가까이 나아갔다. 그는 도쿄 외국어대학 조선어학과 교수로도 재임했는데, 일본 교회잡지 ‘칠일잡보(七日雜報)’와 일반 신문, 기관지 등은 그에 관한 기사를 자주 내며 투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높은 보수의 보직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수정은 이런 것들을 거절하고 요코하마에 주재하고 있는 미국 성서공회 총무 루미스(H. Loomis) 선교사와 함께 성경번역에 착수했다.
1884년까지 그들은 한문성서에 한국식 토를 달아 우리말로 번역하여 읽었던 ‘현토한한(懸吐漢韓)’으로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번역하였다. 1885년에는 그중 마가복음을 국문으로 번역, 미국성서공회의 자금지원으로 인쇄, 간행했다. 이는 서울말로 된 국한문 번역이라는 점에서 만주 등에서 활동했던 로스 선교사의 서북어 한글 번역과 달랐다. 미국의 ‘바이블 소사이어티 레코드’ 1885년 5월호에는 이수정이 번역한 주기도문이 게재되었다. 이 역시 로스 선교사의 주기도문이 있지만 한국인 최초의 번역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무엇보다 이수정이 개신교 선교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것은 이 땅에 선교사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그는 ‘조선의 마게도냐인’이었다. 그는 1883년과 84년에 ‘조선의 사정(Condition of Corea)’이라는 서한 형식의 글을 기고해 조선 선교의 긴박성을 호소했다. 루미스와 녹스 선교사는 이것을 미국의 ‘바이블 소사이어티 레코드’와 ‘미셔너리 리뷰’에 발표했다.
“우리나라 1천만 동포는 아직까지 참 하나님에 대하여는 알지 못하고 이교도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아직까지 구세주의 은총을 입지 못하고 있습니다…나는 매우 진지하게 여러분들이 여기 조선 선교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과 상의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을 일본에 보내 스스로 조선 선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는 다른 민족들이 선교사를 보낼 것이라고 우려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이 나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 주기를 간구합니다. 만일 나의 요구가 허락된다면 나의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종, 이수정.”
이수정의 호소문, 언더우드를 부르다
이수정 이전에도 중국과 일본 주재 선교사들이 동일한 요청을 했지만, 이수정의 호소는 조선인의 요청이라는 점에서 중요했다. 이수정의 편지는 젊은 신학생들의 마음을 조선으로 돌렸고, 뉴저지 뉴브런즈윅 신학대학생 한 명이 선교를 자원했다. 그가 바로 언더우드였다. 언더우드는 자신이 속한 RCA교단과 미국 장로교에 파송 요청 편지를 보냈다.
“저는 해외 선교 사역에 나서려 하고 있었지만, 몇 개월 전 조선인들 중에 선교사를 파견해 달라는 진지한 호소를 읽기 전까지는 어느 선교지로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글을 읽고 내 마음은 떨리고 흥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조선에 보내시려 말씀하시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부부는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그들은 이수정을 만나 한국어를 배우고, 그가 번역한 국문으로 된 마가복음을 들고 인천 제물포항으로 입국했다. 조선은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전에 자국어 성경을 가진 선교 역사상 보기 드문 나라였다.
일본인에게 선물로 받은, “온 세상 환히 비추는 말씀”
이수정(李樹廷)은 전라도 옥과현에서 1843년 대학자 이병규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의 큰아버지는 천주교의 탄압으로 순교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장원급제하여 상경하였으며, 조정의 역사기록가로 활동을 하던 중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를 만나자 그 당시 병사들이 민비(閔妃)를 살해하려고 할 때 극적으로 민비를 구출했다. 조정에서는 민비를 구출했다 하여 ‘선략장군(宣略將軍)’이란 칭호를 받았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제2차 신사유람단 비수행원으로 일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1882년 10월, 이수정 일행은 인천을 떠나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도쿄(東京)에 들어가게 됐다. 도쿄에 도착한 이수정은 비수행원이었기에 자유롭게 개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곧 도쿄에 있는 일본인 교계 지도자 츠다(津田仙) 박사를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진리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수정은 츠다에게 인삼을 선물로 전하였다.
“저는 이 선물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4세기경에 구다라(百濟) 왕인(王人) 박사가 일본에 한자와 유교를 전해 주었지만 그 은혜를 갚지 못한 무례한 백성이 되었는데 저는 이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대신에 제 선물을 받으세요”
츠다가 전해 주었던 선물은 한자로 된 신약전서였다. 츠다는 이 선물을 이수정에게 전해 주면서 “이 안에 있는 예수는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이수정은 신약전서를 선물로 받고, 즉시 숙소로 돌아와서 성경을 읽는 중에 마태복음에 나온 족보기록을 보고 자신이 믿어야 할 종교라는 것을 깨닫고 기독교로 개종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 이수정은 츠다에게 기독교로 개종하겠다는 말에 무릎을 치면서 “이제 조선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츠다의 소개로 일본인 목사 소다(長田時行)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이미 이수정은 성령이 함께하여 성경에 큰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을 했고, 소다 목사의 소개로 1883년 4월 29일 주일 아침에 동경 노월정교회(현 芝敎會=시바교회)에서 일본인 야스가와(安川亨) 목사와 낙스(G. W. Knox) 선교사에 의해 세례를 받게 됐다(이 교회는 도쿄 긴자센 전철을 타고 도라몬역에 하차하면 나온다).
이수정이 세례받은 그 해 5월, 전 일본기독교대회가 도쿄에서 모일 때 그가 조선을 대표해서 한국어로 대표기도를 하였는데, 이날 대회에 출석했던 일본인들은 다같이 “아멘”으로 끝을 맺었다. 그 다음날에는 요한복음 15장을 읽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였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미국 선교사들은 이수정의 신앙고백을 접하고 새로운 조선 선교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이 때 이수정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활동하고 있던 미국 성서공회 총무 루미스(H. Loomis) 선교사의 부탁을 받고 성경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마가복음서를 번역하고 있는 한편, 조선에서 온 30명 유학생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다. 이수정의 활동으로 도쿄에 온 유학생들이 모두 개종하고 그의 지도를 받으면서 성경공부에 임하였다. 이들의 집단적인 개종으로 1883년 말에는 도쿄에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30여명이 매주일마다 성경학교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그 학교를 ‘도쿄주일학교’라 불렀다.
또한 일본에 있는 동안 미국 선교사들의 사역에 놀란 이수정은 미국교회를 향하여 선교사를 보내 달라는 ‘선교사 유치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수정은 일본교회 목사와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1883년 7월과 11월 2회에 걸쳐 미국교회에 서신을 보냈다. 이 서신은 지난날 조선에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천주교를 믿었던 이야기를 서두로 시작하여 얼마 있지 않으면 조선에도 신앙의 자유가 올 것임을 강력하게 피력한 내용의 서신이었다. 이 서신은 곧 미국교회의 선교잡지에 소개되었으며, 이 잡지를 읽은 미국교회의 젊은 실업자 청년 맥윌리암스는 곧 5천 불을 헌금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선교의 열정이 밖에서 서서히 대두되자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미국 감리교 소속 맥클레이는 곧 이수정, 김옥균 등과 접촉하면서 한국 선교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바로 1884년 6월 24일 맥클레이는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한 즉시 김옥균을 만나 한국에서 문화사업으로 교육사업과 병원사업을 할 수 있도록 고종(高宗)에게 허락받아 줄 것을 요청하였다. 김옥균의 노력과 맥클레이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져서 두 가지 문화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받고 7월 8일 조선을 떠났다.
그후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서 1884년 12월에 요꼬하마복음인쇄소에서 출간을 하였다. 이때 이수정은 일본에서 언더우드(H. G. Underwood)와 아펜젤러(H. G. Appenzeller) 선교사를 만나 간단한 조선문화 조선어를 가르쳤으며, 만반의 준비를 했던 이들은 인천에 상륙할 때 마가복음서를 가슴에 안고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오후 제물포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조선 선교에 공이 컸던 이수정은 보수파의 유혹을 받고 1886년 5월 28일 귀국하자 곧 관원에 의해 체포되어 울산에서 44세의 젊은 나이로 처형됐다. 이수정을 연구했던 오윤태 목사는 그를 순교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비록 처형을 당하였지만 조선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후 125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는 엄청난 축복을 받은 백성이 되었다."
"니지마조(新島襄) 기념관에 가면, 이수정의 신앙고백적인 시(詩)가 남아 있다. 이 시는 이수정이 도시샤대학의 설립자이자 목사인 니지마조의 설교에 감동을 받고 그에게 써 준 것이다. 이 싯구 속에서 이수정의 잔잔한 신앙고백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人有信心如木有根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있는 것은 나무에 뿌리가 있는 것과 같고)
不有仁愛根枯木萎 (사랑함과 어짐이 없으면 그 나무뿌리가 마름과 같도다)
愛之於心如水潤根 (사랑하는 마음은 물과 같아서 뿌리를 윤택하게 하나니)
秋冬葉落其根不朽 (가을과 겨울에 나뭇잎이 떨어져도 그 뿌리가 마르지 아니하고)
當春發生花榮葉茂 (항상 봄과 같아서 싹이 나고 꽃이 만발하여 잎에 무성하도다)
敬天信道花爲成實 (하나님을 섬기고 도(복음)를 믿음은 꽃이 열매됨과 같으니)
壘壘滿枝孔甘且碩 (가지마다 늘어진 열매로 즐겁고 풍성하여)
幹如松栢霜雪不凋 (줄기는 송백과 같아서 서리와 눈에도 시들지 않도다)
이수정이 예수님을 믿고 죽기까지 신앙생활을 했던 기간은 불과 4년이다. 그러나 그 짧은 기간에 그는 불꽃같은 믿음의 길을 걸었다. 사도 바울이나 일본인 츠다센 그리고 이수정의 모습은 수 십년을 믿었어도 여전히 나약함에 눈물 흘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이 무엇인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이고, 주님을 대신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우연히도 이수정은 저와 비슷한 나이에
제가 살고있는 울산에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이처럼 저는 복음의 빚진자로 이수정이
조선 선교를 위해 갔었던 일본으로
마지막때를 맞아 다시 복음의 빛을
비추려고 선교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일본 선교를 준비하며 어느
자료를 보니깐 1549년 일본에
기독교가 전파된 후 선교사 뿐만 아니라 20~30만명의 일본 기독교인이 순교를
당하였던 순교의 나라였습니다.
저는 이번에 일본어로 되어있는
부받사 전도지와 함께 복음의 플랜카드를
후쿠오카현 일대에 붙일 계획입니다.
제주도와 경주 전도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복음의 자동차와 복음의
플랜카드는 그곳에 교회를 세우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번에 일본어 전도지 2천장과
특별히 복음의 플랜카드 120개를
가져가는데 이것은 일본의 교회
120개를 세우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주민들의 신고등으로
복음의 플랜카드가 일부 제거를 당한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해석하여 교회가
순교를 당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수정 처럼
제가 젊은 시절 선교갔었던
마케도니아인이 되어
성도분들에게 요청을 합니다.
"일본으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요."
저는 이번에 후쿠오카현 일대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국내로 잠시
들어와 다시 일본 2차 선교여행으로
오사카 일대를 다니며 복음을 전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도쿄로
일본 3차 선교여행을 떠나고
4차 선교여행은 최북단인 훗가이도
삿포로시 일대로 선교여행을 떠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지 일본으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것일까요?
제일 좋은 것은 일본 선교사로
헌신을 하는 것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보내는 선교사로 일본 선교를
하는 저를 후원으로 기도로 도와주는
것이 아래의 말씀의 순종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사도행전 16장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이어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성도님들께 기도를 부탁하기는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루디아 여인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일본은 800만의 우상이
있는 귀신의 나라입니다.
귀신들의 공격과 일본 당국에
잡히지 않도록 특별히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우리의 복음 전파로
일본에 있는 뭇 영혼들이
구원을 받도록 성도님들의 중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호를 받아
일본 선교와 국내와 세계선교를 하는데
막힘이 없도록 성도님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사도행전 16장은
40절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숫자 사십은 요나 선지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앞전 설교에서 언급을 하였듯이
저는 요나의 사명을 받아 일본 선교를
떠납니다.
요나 3장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저는 요나가 탔던 배를 타고
토요일 저녁에 일본 선교를 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산국제여객선에서
승선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녁 7시 7분
경에 전북 장수군에서 4.1(3.5)에 지진이
발생하여 대기실에 있던 수백명의
사람들의 휴대폰에서 지진알림이
울렸습니다.
앞전 설교에서 말씀을 드렸었지요.
요나가 사십일 뒤에 니느웨가 무너진다고
외치고 그날 저녁에 니느웨에 지진이
발생하여 요나의 외침과 신의 진노로
여기는 지진으로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했을 가능성이 크다구요.
그런데 요나의 사명으로 일본을
떠나기 위해 승선을 기다리는 중에
지진이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지진 강도도 요나가 외쳤던
40일간과 비슷한 4.1에 지진이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일본에도 수시로 지진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순회 전도일기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지진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예수님과
같이 밤낮 3일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탄 같은 이름이 들어간
제우스투어에서 티켓을 구입하여
제일 하등급인 2등석으로 일본으로
가게 되는데 배는 저에게 요나가 3일
동안 있었던 고래뱃속으로 느껴집니다.
제가 살고있는 울산도 예로부터
고래의 도시인데 이처럼 저도 영적으로
고래 뱃속에 들어가 일본으로 가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요나 2장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그리고 저는 이번 선교 특성상
주로 야간에 선교를 하기 때문에
체크인 아웃이 있는 호텔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낮에 폭염 땡볕속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려고 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저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요나도 니느웨에서
말씀을 외치고 땡볕속
텐트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요나 4장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어떤 사람들은 저를 보고 마지막때
바울과 같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아무튼 바울도
텐트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부받사 교회 단톡에서는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2017년도 일본의 개신교 신자수는
60만명으로 인구대비 0.47%입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매년
꾸준히 줄어 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현재 일본 교회는
주일학교가 오래전에 사라졌고
노령화가 되어 무목교회로 목사가 없는
교회가 많으며 일본 교회는 날이
갈수록 쇠퇴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많은 악을
행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복음도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아무튼 최근 교회 단톡에만 올린
경주 전도 영상에서
복음의 발자국을 남기자고
말씀을 드렸듯이 그리고 오늘 소개한
믿음의 선조 이수정을 본받아서
이제는 우리 대한민국과 우리를
통해서 일본에 복음이 전파되길
기도합니다.
일본 선교를 위해 기도를 부탁 드리기는 이번에 복음의 플래카드의 양면테이프를
붙이는 작업을 하면서 우연히도 무릎꿇고
절을 하듯이 복음의 플랜카드에
양면테이프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순간 아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빌립보서 2장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아멘 할렐루야!
우리 부받사 교회와 우리와 동역하는
교회들을 통해서 온세상의 많은 영혼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주를 경배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마라나타!
❤️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 부받사 교회와
동역하는 교회 성도들과 힘을
합하여 일본 선교를 갑니다.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일본과
온세상의 마지막때 복음이 전파되게
해주시고 특별히 일본의 영혼들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제가 일본에서 선교하는 동안 저의
가족과 우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교회를 지켜 보호하여 주옵소서!
응답해 주실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곧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