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각 기러기
신서영
별빛도 없는 그믐밤이다, 솟대가 조명을 받는 무대는 음산한 기운마저 감돈다. 진혼굿이라도 한판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의 외모가 범상치 않다. 바짓가랑이와 옷소매를 둥둥 걷어 올린 채 맨발이다. 기러기 한 마리도 품에 안았다. 슬금슬금 바닥을 기어 나올 때부터 기묘하기 그지없다. 신명이 나서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리는 춤도 아니다. 그의 손과 발이 바닥을 밀고 당기면서 때로는 허공을 움켜쥐고 더듬기도 한다. 마치 드넓은 바다를 느리게 유영하는 거북이처럼 보였다가 물컹거리는 몸뚱이로 세상을 밀고 가는 민달팽이 같기도 하다.
몸이 바닥에 밀착되어 있음은 더는 내려갈 수 없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새처럼 창공을 훨훨 날지는 못할지언정 벌레처럼 바닥을 기어다니는 꼴이라니. 어쩌면 그 바닥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의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일그러진 표정과 뒤틀린 몸짓, 그건 단순한 춤사위가 아니라 생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이겠다.
조촐하게 꾸며진 무대는 이 남자의 독무대다. 모노드라마처럼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말하고 그려내는 독백이 안무로 펼쳐진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흥미진진한 춤, 이를테면 그것은 오감으로 보고, 듣고, 읽는 몸짓 언어다. 내면에 잠재된 감정의 응어리를 허공에 쑥 찔러 넣었다가 다시 풀어헤친다. 그의 거친 숨소리는 물론 흐느낌조차 다 들리는 무대 속으로 관객들은 깊이 빠져든다.
어둑한 무대가 등대도 없는 밤바다라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낡은 쪽배에 몸을 싣고 큰 파도와 맞서야 하는 인간의 고뇌를 대변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온몸으로 바닥을 밀고 가는 고행에도 기러기는 손에서 놓지 않는다. 나무토막에 불과한 목각 기러기에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 마냥 처량하다. 그렇다면 기러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더는 얻을 것도 빼앗길 것도 없는 삶에 절규하는 남자의 자존감을 지키는 호신용일 수도 있겠다.
오래전에 읽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었다. 그것은 남자의 품에 안긴 기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박진감 있는 서사는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 감동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늙은 어부는 돛단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간다. 84일 동안 아무것도 잡지 못하다가 절망의 순간에 거대한 청새치 한 마리를 낚는다. 노인은 그것을 끌고 오는 도중에 상어의 습격을 받는다. 그 고기를 지켜내기 위해 상어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한순간에 망망대해 속 한없는 고난과 그 막막한 고독에 압살당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선연한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느라 노인은 아득한 추억을 끄집어내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희망의 꿈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카사블랑카의 술집에서 힘이 가장 센 흑인 남자와의 팔씨름을 떠올리기도 하고, 주기도문과 성경을 외우기도 한다. 때로는 잡힌 물고기와 친구가 되어 협상도 해 본다. 그 독백이 소설에 푹 빠져들게 하는 묘미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 남자의 춤이 그러한 독백이자 에세이인 것처럼.
소설의 결미가 압권이다. 항구로 돌아온 노인은 배를 고정하고 돛대를 챙긴다.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을 잠깐 멈추고 배가 있는 곳을 뒤돌아본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청새치는 커다란 꼬리가 있고, 등뼈의 뚜렷한 선과 검은 머리에 삐죽한 주둥이만 보인다. 살점이 다 뜯겨나간 청새치 한 마리가 그림처럼 읽혔다. 그게 인간의 삶과 무엇이 다르랴. 노인은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지쳤는지를 안다. 집으로 돌아와 이내 깊은 단잠에 빠져든다. 고기의 앙상한 뼈만 남은 낚싯줄을 놓지 못하는 노인이나, 기러기를 날려 보내지 못하는 이 남자는 그 순간을 치열하게 헤쳐 왔지만, 결국에는 다 내려놓아야 하는 빈손이 아니던가.
춤이란 서사를 담아낸 몸짓이다. 허구이며 언어의 유희라는 소설보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춤은 더 울림이 강하다고 할까. 그 남자의 춤사위는 어쩌면 무논에서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김을 매던 내 아버지 같고, 대가족 맏이로 살아온 내 남편 같아 더 안쓰럽게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 각박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묵묵히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가 바닥짐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모진 세파를 온몸으로 헤치며 살아왔을 그의 삶이 내게도 진한 울림으로 다가선다.
그의 춤은 처음부터 바닥을 헤매고 다니며 혼신의 힘을 다 쏟았다. 그러던 그가 벌떡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객석에 있는 한 관객에게 기러기를 건네주고는 왔던 길을 천천히 뒤돌아 간다. 조명에 비친 그의 뒷모습이 참 홀가분하고 편안하다. 더는 목각 기러기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만의 날개로 비상하리라. 내려놓으면 저렇게 안락한 것을 알면서도 못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소설 속의 노인도 낚싯줄을 손에서 놓고서야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듯이 말이다. 목각 기러기도 붉은 놀 빛을 등지고 서녘 하늘로 날아갈 것이리라.
장막 뒤에서는 그 남자의 긴 한숨이 파도 소리로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