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구체적 서사로 노래하는 사랑의 시학(詩學)
#역사속특별한사랑을오늘의시로노래하다-이령시집 『삼국유사_대서사시_사랑편』
글/김윤환(시인)
1.
사랑은 인류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감정으로 인격적인 교제는 물론 가치 있는 소통을 이루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미움’의 대립 개념처럼 오해하나 #근원적인생명적원리로볼때미움이나원망애증도사랑의범주에포괄될수있다.
문학에서 특히 시의 세계에서 사랑에 대하여 주로 두 가지 시선이 중첩되어 있다, 1차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사랑의 신 ‘에로스(Eros)’는 기원전 7~6세기 서사시에 나타난 무서운 힘과 예측할 수 없는 습격의 능력을 가진 신화를 차용하여 쾌락과 미(美)의 원동력으로 보았다. 그러나 2차적으로 플라톤(Plato, BC427~348) 은 에로스의 이해를 좀 더 확장하여 절대의 선(善)을 영원히 소유하려고 하는 차원 높은 충동적 생명력이거나 영원불멸의 인간욕구로 비롯된 낡은 것 대신 새로운 것을 남기는 창조적 기능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즉,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랑을 모든 미(美), 심령상의 미, 제도의 미, 나아가서는 교육이나 예술, 철학상의 미에 대한 덕목으로까지 승화시켜, 마침내는 미 그 자체인 이데아의 인식에까지 이르는 데 사랑 즉 에로스의 참뜻이 있다고 보았다.
2.
삶이라는 것은 어떤 공동체 안에서 육체적, 정신적 소통을 하는 것이만, 죽음이라는 필연적 사건을 통해 나는 죽음 이후에 주체가 되지 않고 이 삶을 누군가가 기억되는 대상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에게죽음이라는사건은자신의삶조차도역사의일부가되는 것을 겸허히 가르치고, 자신도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면서 풍요롭게 누군가를 알아가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시(詩)라는 예술 장르를 통해 #특정시세계를경험하려는것의심적내부에는자기탐색이라는열망이내재되어있다. 인간의 보편적 사랑의 정서 및 서사를 주제로 하는 노래를 통해 누구를 향한 혹은 목적과 목적지를 열망하게 된다. 그러나 열망은 언제나 좌절을 함께 동반하고 온다, 충족불가능성이 열망의 제1속성일 뿐만 아니라 최종속성이다. 인간의 열망(desire)은 온몸을 다해서 독점하고 싶은 사랑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사랑을이루고싶고역사를바꾸고싶은열망의불완전성을노래하는것이바로 시(詩)가 되는 것이다.
3.
#이령시집 『삼국유사 사랑서사시』 (한국관광문화콘텐츠협회, 2020. 01)은 #역사와문화의스토리텔링을시편으로재탄생시킨새로운시문학콘텐츠로주목받은시집이다. 역사와 문학, 이야기와 시의 만남을 통해 시가 사변적 영역을 넘어 시장르의 공적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게 하는 기획 시집이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는 한국 시단이 일찍이 도전하지 못했던 역사속의 특별한 사랑을 오늘의 시로 재구성하는 시창작의 새로운 도전과 그 시적 형상화의 문학적 성취가 충분히 담보되어 있어 독자는 물론 시인들과 시문학 연구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시집 『삼국유사 대서사시 사랑편』에는 고려 후기 승려인 보각국사 일연((一然, 1206~1289)이 쓴 삼국유사 중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설화를 바탕으로 전체 10장 각 5편 총5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흔히 ‘삼국유사’를 ‘야사(野史)’라 부르지만 그 내용과 역사적 의미로 볼 때 학술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대안사서(代案史書)’로 부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삼국유사’는 공적 기록이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의 발견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안사서로 읽는 것이 유용하다는 뜻이다. 사실 삼국유사는 우리 역사를 지식인의 역사에서 민중의 역사로, 사대의 역사에서 자주의 역사로 바꿔 놓은 책이다. 또한 우리 문학을 지식인의 문학에서 민중의 문학으로, 사대의 문학에서 자주의 문학으로 바꿔 놓은 책이 바로 삼국유사다.
4.
따라서 #이시집에실린사랑이야기는공적기록보다더실재적이고가공되지않을사랑의이야기였음을 염두에 두고 이령 시인이 새롭게 탄생시킨 사랑의 시들을 감상해보자.
네 등 뒤에 꽃을 두는 일은 서사적이다
밤보다 깊은 새벽을 밝히는 현재의 일이다
가고 올 시간의 흔적을 보듬는 일
이별의 비수와 비가를 숨기기엔 이 계절이 너무 짧다
너를 품어 꽃을 피웠지만 자리마다 물컹하다
모든 서사는 지금, 바로지금 서정적으로 완성된다
지나보니 꽃 피고 잎 지나 잎 지고 꽃 피나
무릇무릇 사랑이라 부르던 것들이 죄다 미쁘다
너를 건너왔으니 나를 데려와야지
머리를 버리고 심장을 얻었다, 가벼웠다
흔들리던 날들이 마른 나무에 핀 꽃 순처럼 싱싱하다
울던 별들이 지면 새싹은 움 튼다
네 등 뒤에 꽃을 두고
걸어온 걸어갈 길을 벅차게 걷고 있다
- 시 「삼국유사 사랑서사시 제1장 - 백률사 편」 일부.
이 시는 백률사에 얽힌 이차돈의 사랑이야기를 절의 입구에 숲을 이룬 대나무를 소재로 그린 시편 중 종절(終節)에 속하는 부분이다. 마치 이차돈의 별리(別離)를 쳐다보는 관찰자적 시점으로 그려져 있지만 마치 이차돈이 환생하여 시인의 영혼 속에서 부르는 절창으로 들린다,
오늘날 시의 흐름이 시인과 대상 간의 조화보다 그 사이의 균열을 표현하는 것이 마치 새로움으로 대접받는 듯한 조류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시는내면과대상이서로유기적으로화응하고있고대상사이에파열음은찾아볼수없을정도로시대를초월한사랑의서사와시의기능을아주자연스럽게보여주고있다. 사실 사랑은 시작될 때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역사이건 개인사이건 사랑이 꽃필 무렵 이미 내부에서는 균열과 파열 양상 속에서도 어느 순간 충만한 현재적 이미지로 포착하고 표현하는 것 또한 시의 으뜸 되는 기능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관점에서 이령 시인의 시편들은 포기할 수 없는 시의 본래적인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서사의 배경이 과거라 할지라도 순간에 드러나는 시적대상의 충만한 현재형을 통해 가장 근원적인 성찰의 깊은 웅덩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만파식적 듣고 자란 서라벌 백률송순, 황룡이 승천하듯 굽이굽이 내달린 곳, 자추사 흰 피도 찰나에 지고 찰나에 지는 줄 그 누가 알았으리.’로 시작하여 ‘머리를 버리고 심장을 얻었다, 가벼웠다 / 흔들리던 날들이 마른 나무에 핀 꽃 순처럼 싱싱하다’라는 표현은 이차돈이건 이차돈이 아니건 사랑의 극점에 닿아야 깨달을 수 있는 선험적 시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5.
다시 #대상에몰입하는이령시인만의시적진술 을 들어보자
어느 사내가 첫사랑을 절단 낼 수 있을까, 어느 여인이 첫 사내의 절연을 잊을 수 있을까
반짝이는 윤슬에도 그이의 피돌기가 출렁인다. 천하를 구하려 해룡이 되었다는 남자와 그이의 심장이고 싶었던 여자 사이엔 천년의 시차가 있다지. #이별은사랑이전에시작된다네이별까지가이미사랑이라네.
#영원이라는, 내 편,견을 사랑하네, 뿌리가 닿지 않아도 온몸을 사르는 꽃, 그는 언제든 어디든 있다는 듯 수인사를 건네는 부평초로 피고.
- 시 「월지와 재매정에서」 일부
이 시의 배경이 되는 ‘월지’는 신라문무왕때 축조된 연못이다. 안압지로 불리기도 한다, 통일신라말기 고구려 왕건에게 견훤의 침입을 막아달라고 도움을 청한 굴욕과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다, ‘재매정’은 김유신의 생가터에 있는 우물인데 ‘재매’는 김유신이 여동생의 딸과 결혼하여 맺은 부인이자 질녀가 되는 여인이다. 이러한 특별한 서사를 지니고 있는 두 연못의 사랑서사 중 김유신의 사랑을 그린 시편이다, ‘천하를 구하려 해룡이 되었다는 남자와 그이의 심장이고 싶었던 여자 사이엔 천년의 시차가 있다지. 이별은 사랑이전에 시작된다네. 이별까지가 이미 사랑’이라고 김유신과 재매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사랑은 이미 천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의 시인과 독자에게도 사랑이라는 희열과 슬픔은 어느 시대이건 ‘영원이라는, 내 편,견을 사랑하네, 뿌리가 닿지 않아도 온몸을 사르는 꽃,’이라고 펼쳐 보이고 가장 높은 사랑의 음역대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사랑의 생태 과정을 통해 역사의 근원적 의미까지 보여준다. 그렇게 사랑의 연못은 고통을 품은 채 자신의 깊이를 더해감으로써 소리 없이 우는 법을 지키고 완성해간다. 이렇게 고여 있거나 묻히기 위해 #시인은뼈아픈역사와사랑의비애를삼국유사에서찾아낸자신의사유를제공 하고 있는 것이다.
6.
시의 궁극적 가치가 삶의 의미와 본질을 새롭게 재발견케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령 시인의 넓고 깊은 품이 있는 시의 세계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 새순이 돋는 것처럼
이젠 나도 무뎌져 다발성의 통점들을 다독일 줄 안다
정작 이 말을 부려놓고 난감한 건 도무지
증명할 수 없다는 거다
저 꽃대를 거쳐 갔을
이유 없이 휘몰아쳤을
허락없이 내 창을 흔드는 저 바람의 거처를
저도 모르게 피고 지는 이유를 물을 수 없다는 거다. 다만
쉬이 마침표를 찍지 못 할 계절이 몇 해는 더
반복될 거라는 확신만이 선명하게 돋음될 뿐.
- 시 「월지와 재매정에서」 종절 부분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시의 궁극적 기능은 새로운 깨달음과 감각의 갱신을 통해 삶의 의미와 본질을 재발견하는 데 있다. 특별히 인간의 역사는 공들여 지켜야할 사랑과 자유 같은 영원한 가치들이 탐욕과 폭력에 의해 훼손되고 더러는 억압되는 구조적 모순과 함께 이어져 왔다, 그러한 고통의 자리를 온통 쾌락과 소유욕으로 채워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인이 제시하는 성찰의 가치를 소중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시인은 역사 속에 발견한 인생의 비애를 자연 사물을 통하여 오늘의 노래로 들려줌으로 시인의 소명에 혼신을 쏟고 있음이 보인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 새순이 돋는 것처럼 / 이젠 나도 무뎌져 다발성의 통점들을 다독일 줄 안다’고 전제했지만 이내 화자는 ‘정작 이 말을 부려놓고 난감한 건 도무지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고백 자체가 영원한 자기애와 인간애의 갈증을 확연히 보여주고 ‘쉬이 마침표를 찍지 못 할 계절이 몇 해는 더 / 반복될 거라는 확신만이 선명하게 돋음될 뿐.’이라고 #막다른골목에서있는영혼들에게마치부활의희망을전하며위무하는 낮은 속삭임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7.
이 시집에서 단순히 남녀 애정사에 얽힌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신라의 왕릉을 보며 권력의 흥망성쇠의 허무만큼이나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애민(愛民)’이 ‘애민(哀愍)’으로 느끼게 되는 그의 시 한 구절을 감상해보자
능(陵)의 개화는 도굴꾼의 촉에서 시작됐다. 느티, 모란, 왕버들도 아닌 사슴의 맞가지에 걸린 창이며 산 위의 산 위의 산인 세움 장식의 엇가지, 달개장식 귀걸이, 왕릉을 지키고 선 솔잎도 이곳에선 모조리 날이 섰다.
#절대권력은백성의꽁보리밥보다금세공이돋을될 때, 왕이 신으로 둔갑할 때, 법이 흥하고 덧널처럼 비밀이 쌓일 때 그리고 #우민(愚民)이 #그덧이실상덫인줄모를때라
실상 황금의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날선 촉, 아닌 것이 어디 있었을까?
-시 「왕릉 ‘天馬 다시 날다 展’ 가는 길」 초장 중
역사의 기록은 언제나 권력을 차지한 자의 편에서 재구성된다, 그러나 삼국유사가 지닌 이야기의 맥락이 민중의 시각에 있었다고 볼 때 권력의 흥망성쇠는 권력을 빼앗긴 자의 비애만큼이나 그에 속한 백성들의 고통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는 죽음을 상징하는 왕의 무덤 그 역사적 마디 사이에 있는 백성의 수난과 눈물을 기억하도록 유도하지만 왕능이 지녔던 유물에 대한 우민들의 탐욕도 엿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절대 권력은 백성의 꽁보리밥보다 금세공이 돋을 될 때, 왕이 신으로 둔갑할 때, 법이 흥하고 덧널처럼 비밀이 쌓일 때 그리고 우민(愚民)이 그 덧이 실상 덫인 줄 모를 때’라고 일갈하고 시대의 권력이 백성을 애민하지 않고 우민으로 만들어 갈 때 그 우민이 권력을 패망으로 인도하는 역사적 순리(順理)도 보여주는 성찰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시이기도 하다.
8.
#시인의사랑과인생에대한사유나시적상상력의경지를보여주는 고백적인 시 한편을 더 감상해보자.
꽃으로 피었다
진하지 않는 향을 담고, 길고 두터운 기다림에 몸서리치는 넌.
무수한 말을 숨겨두고, 손가락마다 화분을 품었다
너는 울렁대듯 허공을 움켜쥐었다
바람이 일었다 일순 잠잠해졌는지. 흔들리던 나를 향한 악수를 거
두었는데
숲에서 잠자던 꽃대가 휘었다
누구도 숨길 수 없는 표정을 우리는 지금이라 부르지만
또 더러는 감춰야만 하는 손길이 꽃이 되는 내일.
무엇이 저리도 깊어 표정이 소리가 되는 걸까
-시 「왕릉 ‘天馬 다시 날다 展’ 가는 길」 중
#단정하고도심미적인정형양식을잘갖추면서도다양하고깊이있는상상력을보여주는 이령시인의 이번 시집은 객관적 서사를 바탕으로 시인만의 시선과 감각으로 인상적인 장면을 재묘사하는 가운데 대상을 향한 가없는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아가 깊은 깨달음의 시어(詩語)법을 제대로 형상화하는 시적 경륜을 보여주었다. 특히 시인이 지닌 연민과 사랑과 깨달음의 진술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시대를 넘어 시인의 상상력에 깃들인 따스함과 깊음과 오래됨의 미학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연민과 사랑의 마음이 추상적 시어에 실려 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구체에 담겨 전해져오는 드문 풍경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9.
‘사랑’에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적 의미 외에도, 시대적이고 지역적이고 계층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사랑’에 관한 #시의양상역시포괄성과특수성을잘통합하여그범주를설정한시집으로평가할만하다.
역사적인 것과 새로움이라는 것을 잘 융화시킨 삼국유사 대서사시 사랑편이 시를 좋아하는독자에게나 시인에게 좀 더 많이 읽혀지기를 기대하며 시집의 말미에서 시인이 읖조린 이 구절을 시의 역설적 희망으로 마음에 담는다.
‘내 손을 떠난 어제. 오늘은 내일의 씨앗
바람이 불면 바람을 업고 천둥이 치면 천둥을 이고
#흔들릴때흔들릴수있는용기가없다면한생을다건너도꽃이될리없다’
-시 「멸망의 조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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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시와문화] 제55호 (2020년 가을호)
#김윤환(시인)
1989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그릇에 대한기억』,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 『이름의 풍장』외, 논저 『한국현대시의 종교적 상상력 연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