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불편하면 어떻습니까? (빌 4:11-14)
김삼환목사
우리나라 사람은 서양 사람에 비해서 신장이 짧은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키가 커야하는 운동은 자연히 불리합니다. 농구와 배구는 아무래도 키가 커야 유리합니다. 키 큰 나라들이 많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도 키가 큽니다. 서양 사람들이 대체로 큽니다. 네덜란드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키가 크다고 합니다. 지금은 크로아티아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합니다. 평균신장이 185cm입니다. 저도 크로아티아에 가보니 2m가 넘는 사람들이 흔합니다. 우리나라는 여자 농구선수 가운데 박찬숙 선수가 키가 컸고 그보다 더 큰 선수는 김영희 선수가 2m 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농구에 대한 기대를 많이 가졌는데 이 분은 키는 큰데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서 공격을 하고 코트로 돌아오는데 걸어오니까 이게 안 됩니다. 그래서
결국 그 분은 농구를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키도 커야하지만 스피드도 따라가야 됩니다. K1에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선수가 있었는데 밥 샵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키가 2m이고 몸무게가 170kg이었습니다. 쌀이 두 가마니가 넘는 대단한 몸무게입니다. 미국 콜로라도 출신인데 이분도 대단한 운동선수였습니다. 그리고 톱스타였습니다. 저도 굉장히 기대를 했는데 역시 이 분이 몸이 비대하다보니까 빨리 빨리 움직이지를 못해서 결국 얻어터지고 실패했습니다. 인생을 승리하려면 두 가지를 다 잘해야 합니다. 키도 크고 스피드도 있어야 하듯이 우리에게도 두 가지가 조화 있게 찾아오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습니다. 잘 될 때도 있고 못 될 때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도 만나고 나쁜 사람도 만나고, 성자도 만나고 악마도 만나고, 순풍도 만나고 태풍도 만납니다. 풍년도 흉년도 다 같이 만납니다. 잘 될 때도 있고 못 될 때도 있습니다. 내가 귀하게도 되고 천하게도 되는 겁니다. 웃을 때도 있고 울 때도 있습니다. 잠이 잘 올 때도 있고 한 잠도 못 잘 때도 있습니다. 건강할 때도 있고 병 들 때도 있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여름도 있고 봄도 있고 겨울도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 어려운 일이 없는 세상에서 가서 살고 싶고 그런 사람과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아무 어려운 일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건강하게 편하게 오래 오래 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충만하고 기도 많이 하고 능력 받으면 교회가 어려운 일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목회하신 곳에도 얼마나 어려움이 있고 모세 같은 지도자가 목회해도 어려움이 많고 바울 같은 목회자가 목회를 해도 어려움이 많은 곳이 교회입니다. 제가 어느 곳에 가서 세미나를 들어보았는데 목사님이 목회를 하는데 너무 질적인 교회를 만들어서 염소,같은 교인 다 잘라내고, 가룟유다 같은 교인 다 잘라내고, 발람 같은 사람을 다 잘라내고 나니 나중에는 자기 부부만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심한 목사입니다. 질적인 교회를 어떻게 만든다는 것입니까? 다 안아야 되고 다 사랑해야 되고 위로해야 되고 양육해야 되고 길러야 되고 품어야 됩니다. 예수님 같은 분도 열 두 제자 안에 가룟유다를 두었는데 가룟유다 없이 목회를 하겠다는 겁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허황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 밖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무 어려움 없는, 행복만 있는, 기쁨만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분, 교회 안에 아무 어려운 일 없이 은혜 성령 충만한 사람들만 모여서 천사같이 서로 사랑하며 교제한다고 하는 이런 허황된 생각을 가진 주의 종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나 가정이나 다 같이 이 세상에 별의 별 일들이 똑같이 일어나는 곳이 가정이요 교회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그물에 비유했습니다. 그물에는 안 걸리는 게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걸리는 게 아닙니다. 미꾸라지도 걸리고 붕어도 걸리고 가물치도 걸리고 깡통도 걸리고 스티로폼도 걸리고 빨래하던 옷도 걸리고 다 걸리는 것이 그물입니다. 오늘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누구보다 은혜 받고 능력 받은 주의 종이지만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사자의 위험도 당하고 광야의 위험도 당하고 바다의 위험도 당하고 동족이 억울하게 내어 쫓고 성에서 핍박하면 바구니를 타고 성을 탈출하기도 하고 모든 어려움을 당하였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내가 다 이길 수 있었다, 감당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감당해야 합니다.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다 참을 수 있습니다.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버리는 게 아니라 다 써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 되면 다 된 줄 알고 교만합니다. 안하무인입니다. 그리고 방황합니다. 가정을 떠나고 길을 잃어버립니다. 모든 사람을 적을 만들고 미워하고 불평 불만합니다.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못 되면 나 혼자 못 되는 줄 알고 울고 슬퍼하고 잠을 못 자고 죽고 싶다 그러고 세상을 비관하는 것,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잘 되어도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겸손해야 되고 못 되어도 이로 인하여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좋은 일을 내게 주셨다고 생각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주님을 의지하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이겨낼 줄로 믿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정말 장애인입니다. 정신적인 장애인, 영적 장애인입니다. 좋지 못한 것은 못 보고 조금만 나빠도 다 버리고 포기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다 가져야 합니다. 다 경험해야 합니다. 오늘날 3D업종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하고(Dangerous) 이런 일은 안 합니다. 그런 직장은 안 갑니다. 사람이 그런 걸 거쳐야 모두 훌륭하게 되는데, 예수님은 그런 더티한 직업을 다 감당하셨습니다. 요셉이 어려운 일들을 거쳐서 성공했는데 젊어서 고생해야 합니다. 땀을 흘려야 합니다. 힘든 일을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하고 위험한 일을 해 봐야 합니다. 이 세상이 다 어려운 세상인데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처음부터 경험하고 참아야 합니다. 고생을 싫어하면 안 됩니다. 그런 것을 거쳐서 어려움도 잘 이겨내고 그리고 사람이 성공하면 짐이 더 무거운데 무거운 짐도 잘 감당하고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일을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성경에는 광야와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다에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울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전쟁터와 같다, 군인과 같다고 했습니다. 경주하는 경주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농사짓는 농부와 같다고 했습니다. 농사짓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경주자가 훈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그렇게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입니다. 더위와 추위와 위험과 장애물, 맹수가 이글거리는 광야가 세상입니다. 가시밭길 같은 이 광야를 걸어야 합니다. 무서운 뙤약볕을 통과해야 합니다. 풍랑이 산더미같이 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우리가 피해서 가려고 하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감당해야 합니다. 모든 성공, 모든 축복은 어려움을 통해서 올라가는 것이지 좋은 것을 통하여 좋은 것이 오지 않습니다. 잠자고 편히 누워서 무슨 성공이 있겠습니까? 다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 우리가 성공하는 것입니다.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올 때에 예수님은 이상한 것같이 생각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내게 왜 이런 어려움이 오나?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주님 은혜로 이겨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에, 부부간에 어려움이 옵니다. 왜 이렇게 어려움이 오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제 결혼 주례를 했습니다. 현직 국회의원입니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오셨습니다. 주례를 했는데 국회의원이 신부를 고르다보니 예쁜 분을 골랐습니다. 드레스도 너무 멋있고 유명한 분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한없이 모두 기뻐합니다. 그러나 저는 보면서 국회의원 아내도 별 볼이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결혼식만 끝나면 부엌으로 가야 됩니다. 그냥 직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살림살이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까? 감당해야 됩니다. 부부간에도 많이 싸웁니다. 그래서 아예 연애할 때 먼저 싸우는 게 낫습니다. 그래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결혼하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은데 둘이 그냥 아이러브유 만 해서는 큰일 납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다 감당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힘도 마음도 연약합니다. 마음이 늘 넘어집니다. ♬내 맘이 약하여 늘 넘어지오니 주 예수 힘 주사 굳세게 하소서♬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감당케 하십니다. 이기게 하십니다. 은혜주십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일어나라 걸어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김목사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일어나 걸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내 등 뒤에 계십니다. 나와 함께 하십니다. 너 울지 말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일어나십시오. 예수님은 나의 등 뒤에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 가지 일을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공도 어렵습니다. 축복도 어렵습니다. 인기도 어렵습니다. 잘 사는 것도 어렵습니다. 높은 지위도 어렵습니다. 어려운 것도, 힘든 것도 양쪽을 다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는 우리가 버려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죄요 악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아무리 좋아도 악은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성공해도 불의한 것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오는 것을 우리는 다 참을 수 있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의 힘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 모든 형편을 다 아십니다. 히브리서 2장 18절에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예수님이 다 시험을 당했습니다. 내가 울어보세요. 예수님은 “나는 더 울었다.” 하고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내가 아파서 괴로워 할 때, “나는 십자가 얼마나 아팠니? 너 그것가지고 아프다고 하니?” 피 흘리신 손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부끄러움을 당할 때, “너 뭐가 부끄럽니? 나는 수많은 사람 앞에 옷 다 벗기우고 십자가에 달렸는데 너 부끄러워 하지 마라.” “외로우니? 나는 얼마나 외로웠냐?” 모든 일에 주님이 오셔서 위로해 주십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할 수 있다, 감당할 수 있다. 버림 받았냐? 나는 제자들이 다 나를 버렸잖니? 내 동족들 내 고향 사람 다 나를 버렸잖니? 너는 뭐가 버림을 받았니?” 주님은 곁에 계십니다. “배가 고
프니? 나는 사십일을 금식했어, 너는 삼일 굶어가지고 뭐 그러느니? 나는 굶주렸다. 너 집이 없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길이 없니?” 주님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 우리의 막힌 그 길을 가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돕고 계십니다. 내가 고민한 것 주님이 고민하셨고 내가 아파한 것 주님이 아파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주님을 바라봅시다.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잠에서 깨어나고 병마에서 일어나고 저주에서 일어나고 가난에서 일어나고 불행에서 일어나고 잠 못 드는 밤, 억울하고 괴롭고 고독한 밤을 우리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슬픔도 절망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 그렇습니까? 모든 선지자, 모든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같이 그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 모세가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도바울도 다 당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6장 22절에 보면 얼마나 전도하다가 그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는 것 때문에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22절에 보면 옷을 다 벗기고 무지하게 바울을 때린 뒤에 깊은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 당시 감옥은 대체로 지하였습니다. 그 속에 들어간 사도바울은 수많은 다른 죄수와 달랐습니다. 밤중이 되어서 온 몸이 쑤시고 아프고 얼마나 어렵고 절망이지만 실라와 둘이 하나님께 찬송을 합니다.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아마 시편을 노래했을 겁니다. 시편 23편, 시편 100편, 시편 128편을 불렀을 겁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찬송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옥토가 움직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거기 있던 간수가, 수많은 죄수들이 다 탈출하게 되었으니 칼을 들고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자살하지 말라고, 우리는 안 도망간다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때 간수장이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습니까?” 많은 사람이 감옥에 오면 절망하고 소리 지르고 울고 매 맞아서 신음을 하는데 찬송하는 사람은 바울밖에 없었습니다. 교인은 다릅니다. 감옥에 가도 다르고, 병원에 가도 다르고, 어려움이 있어도 다르고, 환난이 있어도 다르고 사고가 나도 다 다릅니다. 실패를 해도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이 교인입니다. 찬송하고 기도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를 바울의 식으로 풀어야 우리가 풀어갈 수 있습니다. 나라가 어렵든 개인이 어렵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찬송할 때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6. 25사변 때도 주의 종들이 부산에서 모여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유엔군을 보내 주신 것처럼 성도는 문제의 접근이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그 때에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간수장을 전도하고 모든 옥문이 열려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내게 오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바랍니다. 내가 병 들 수 있는 것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병든 침상에서 기도하면 병마가 물러가고 천국이 올 줄로 믿습니다. 내게 가난이 오는 것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가난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감사하고 성령 충만할 때 가난이 물러가고 축복이 찾아옵니다. 밤중에 기도할 때 새벽이 왔지 않습니까? 쇠사슬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축복의 문을 열어주셔서 복음 전도하는 손이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행복할 때 노래하고 불행할 때는 웁니다. 우리는 반대입니다. 우리는 불행할 때도 노래하고 슬플 때도 노래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노래는 세상의 노래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찬양은 세상의 노래가 아닙니다. 나이트클럽에 가서 흐느적거리는 그런 노래가 아닙니다. 누가 불러주는 노래가 아닙니다. 내 안에서 나오는 찬송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
상도 천국으로 변하도다.♬ 찬송하면 변하는 거예요. 다 저주가 물러가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 사람은 춤을 추는 걸 보면 부르스를 부르면서.. 우리 성도들은 노래방에 안 갑니다.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나 즐겁게 늘 부르리 이 노래를 부를 때에 큰 평화 임하도다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이 노래를 부를 때에 큰 평화가 임하도다. 여러분! 주님이 주신 은혜로 찬양하면서 욥의 시험도 이기고 다윗의 환난도 이기고 야곱의 고생도 이기고 바울의 환난도 극복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어려운 일 하나도 안 당하려고 교회에 나옵니까? 아닙니다. 어려움을 당해도 이기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천사같이 흰옷 입고 그렇게 아무 걱정 없이 살려고 교회에 나옵니
까?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환난이 더 많습니다. 믿음도 지켜야 돼요. 세상 사람은 육신의 삶 하나도 어려운데 우리는 영육을 다 지켜 땅에서도 복 받고 천국까지 가려고하니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예수 안에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한 것이 어렸을 때 너무 어려운 가정에 태어난 것을 너무 감사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저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용기가 있어서 이 생활을 다양하게 해결을 하는 거예요. 없다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습니다. 천하가 다 먹을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면서 산에 가서 수많은 열매를 따 먹고, 가을이 되면 머루, 다래, 으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산밤들이 많습니다. 먹을 것이 많습니다. 숲에 가면 개구리들이 많습니다. 개구리 가운데는 먹는 개구리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을 잡아서 때리면 쭉 뻗습니다. 그것을 허리를 잘라서 껍질을 벗겨 구워먹습니다. 물에 가면 물고기가 있습니다. 수많은 물고기를 어떤 가운데서도 장비가 하나 없지만 잡아냅니다. 왜? 주님이 함께 하시는데
못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물고기를 다 잡아낼 수 있습니다. 물의 모양이 천 가지 만 가지로 변하고 고기의 종류가 수백 가지로 바뀔지라도 다 적응해서 잡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눈으로 나아가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나는 장비가 없으니 못하겠다, 고기가 빠르니 못 잡겠다, 물이 많으니 못 잡겠다,’ 그런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스물 네 시간, 밤에나 낮에나 어디서든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메뚜기도 많이 잡아먹습니다. 메뚜기는 여름에는 잡기 어려운데 가을이 되어 서리가 내리면 메뚜기들이 다 기절을 합니다. 그래가지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면 가서 막 주워가지고 자루에 넣어서 그걸 볶아 놓으면 겨울 내내 먹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먹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고구마 캐간 집에 가서 고구마 싹을 뒤에 가서 뒤지면 찾아낼 수 있고 땅콩 캐간 집에 가서 캐고 남은 찌꺼기를 또 찾아내면 나옵니다. 다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집은 가난하고 이불은 하나이지만 그 하나 가지고 열 명이 덮고 자고, 해바라기같이 뺑 둘려서 자고, 다 사는 길이 있고 자는 길이 있습니다. 밤에는 쥐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지, 우리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쥐가 떼를 지어서 집에 들어오면 저한테서 살아 나가는 쥐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잘 잡는지 모릅니다. 밤중에 일어나 불을 켜고 쥐들을 한 곳으로 모읍니다. 가마니 뒤로 다 몰면 쌀자루를 했던 부대로 한 쪽에 갖다가 구멍을 열어 놓고 어머니가 붙잡도록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저쪽 뒤에 가서 작대기를 가지고 휘저으면 쥐들이 다 그쪽으로 쏜살같이 들어가면 묶어다가 내려치면 그냥 죽습니다. 그 안에 있는 것 몽땅 잡습니다. 우리 집에 들어 와서 살아가는 쥐가 없습니다. 다 잡아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살면 이 세상이 그렇게 좋고 재미있을 수가 없습니다. 제 손으로 다 합니다. 감자도 삶고 밥도 하고 떡도 하고 빵도 굽고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김치찌개도 합니다. 빨래도 합니다. 어느 것이 따로 제 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일도 하고 어머니 일도 하고 동생 일도 하고 우리 어머니가 제 동생들을 낳으면 전부 제가 뒷바라지 했습니다. 물을 가져다가 밥해가지고 어머니 드리고 삼일동안 다 해드리면 어머니는 그 이상 계시지를 못하고 사일이 되면 밖에 나오셔서 밥을 하셨습니다. 다 제가 했습니다. 우리는 다 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다 해야 합니다. 한여름이 되면 얼마나 날씨가 변화가 많은지 모릅니다. 여름에는 참으로 할 일이 많고 어렵습니다. 보리타작도 해야 됩니다. 소나기가 오면 일기예보가 없으니까 저 쪽에 소나기 내리는 걸 보고 10분 내에 집에 있는 것을 다 정리해야 합니다. 마당에 널어놓은 보리를 비 맞으면 안 되니까 한 순간에 몇 가마니를 쏜살같이 모아서 안으로 들여 놓아야 되고 지붕위에 있는 고추를 전부다 한 순간에 점프해 가지고 타잔같이 올라가서 다 끌어내려서 집으로 넣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물이 많으면 그 물을 건너야 합니다. 생명 걸고 건너야 합니다. 거기에 왜 비가 오느냐? 왜 물이 많으냐? 그런 원망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적응할 수가 없습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적응하고 추위가 오면 겨울은 겨울대로 적응하고 소나기가 오면 소나기가 오는 대로 적응하고 다 형편대로 적응해야 됩니다. 무슨 불만이 있습니까? 하루 종일 일 하다가 집에 돌아와서 식은 밥 하나 있으면 그것 먹고 자는 거예요. 누가 무슨 불평불만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교회에 가면 얼마나 핍박이 많은지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주일날 한 시, 두 시 되어서 끝나면 그 동리 사는 분들은 바로 들어가지만 저는 우리 마을까지 올라오려면 얼마나 거리가 멉니까? 배가 고픈데 집까지 올라와 봐야 누가 저를 반겨줄 사람도 없고 그냥 찾아서 감자 하나 식은 것 먹고 끝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리고 아버지한테 교회 갔다 왔다고 해서 얻어터지고 그래도 울지도 못합니다. 바로 또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해야지 무슨 불만이 있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불만하면 안 됩니다. 다 적응해야 합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책 하나 못 펴보고 그 다음날 다시 학교에 갑니다. 제가 공부를 못한 것이 머리가 나쁜 게 아닙니다. 다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서 공부하는 걸 절대 결사적으로 반대하는데 제가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습니까? 예수 믿고 거기서 공부 다 해 낸 겁니다. 할렐루야! 감당해야 합니다. 저녁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버지가 무서워서 12시 넘어서 아버지가 주무실 때까지 못 들어갑니다. 밖에서 벌벌 떨고 기다리다가 아버지 주무시는 걸 확인하고 어머니가 사인하면 그 때 들어갑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믿음을 안 지키면 됩니까?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있었기에 저의 목회생활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때 불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저는 무슨 빽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누가 저를 도와줄 이도 없는데 이렇게 좋은 자리가 오겠습니까? 명일동 종점에 여기서 개척했지만 너무 감사하잖아요? 제게 종점이라도 주신 은혜가 너무 고마우니까 감사함으로 하면 다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영주 영광 여자 중 고등학교, 좋은 학교를 내게 주겠어요? 아무도 맡을 이가 없으니까 거기서 지도자들이 와서 이걸 맡아달라고 해서 맡으면서 일류학교를 만든 것입니다. 성소병원은 어떻습니까? 전설의 고향 같은 걸 맡았습니다. 누가 제게 좋은 병원을 주겠습니까? 못 쓰는 것 다 맡기는 겁니다. 다 안 되는 것 갖다 주면 가져다가 좋게 만드는 겁니다. 원주 수양관을 보십시오. 아무 쓸모없는 곳, 소먹이는 소 우리 간을 가지고 만드는 것 보세요. 제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평하지 마십시오. 왜 불만이 그렇게 많습니까? 부부간에 왜 불만이 많습니까? 장가가서 사는 것만 해도 기적인데 뭣 때문에 불만입니까? 나 같은 게 장가갔다는 게 기적 아닙니까? 우리 집에 색시가 있다는 게 기적이 아닙니까? 항상 자취하면서 혼자 해 먹다가 밥을 해주는데 세상에 이런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불을 하나 갖다 놓고 늘 뒹굴고 똘똘 말아가지고 자다가 방석을 깔아주고 하니까 잠이 안 오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모든 게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왜 불만합니까? 조금 불편하면 안 됩니까? 교회생활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성가대, 항상 잘 해서 감사합니까?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좀 지휘를 못하면 어떻습니까? 세상에 설교를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항상 잘 해야 됩니까? 실수할 수도 있고 이 말 저 말 할 수도 있지요. 감사해요. 감사 감사. 할렐루야!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자녀에 대해서도 “이만하면 너무 감사하다. 너무 고맙다.” 오늘 대한민국 세계에서 최고로 복 받았다고 하는데 여기서 불만하면 어디 가서 사시려고 그럽니까? 이렇게 좋은 나라 만들어 놓고 불만하면 어디 가서 사시려고 그럽니까? 우리는 나라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선조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에 필라델피아에 스티븐 지라드 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분은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회사의 사장이 토요일에 말합니다. 내일은 화물이 들어오니까 다 나와서 일을 하라고 합니다. 지라드는 “나는 교회에 나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안 된다고, 나오라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하고 꼭 주일마다 같이 교회에 가는데 못 나옵니다.” 그러니까 사장이 화를 내면서 내일 안 나오면 너는 해고라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올 때 부부간에 손잡고 나오는 것도 예쁘지만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손잡고 나오는 것이 제일 아름다운 겁니다. 나를 낳아주신 우리 어머니, 내 오줌 똥 갈아주시고 나를 축복하시고 사랑하는 우리 내 어머니를 부축해서 내가 어렸을 때 힘없는 나를 붙잡아준 우리 어머니, 그 어머니가 연로하신데 그 어머니 안고 모시고 교회에 오는 것, 어머니를 업고 교회에 나온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것이 부모님 모시고 나오는 겁니다. 그걸 잘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늦으
막에 효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별 게 아닙니다. 아버지에게도 잘 하고 어머니에게도 잘 하세요. 우리 아버님은 우리 교회 개척하고 여기 나오셔서 25년을 항상 2층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저는 주일 저녁이 되면 종일 설교하고 바빴지만 12시에 집에 들어가는데 집에 들어가서 아버지께 “아버지! 한 수 합시다!” 저는 자고 싶지만 아버지하고 바둑을 한 시간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께 좋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좋아하는 걸 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바둑 두면 바둑을 두고, 화투 치면 함께 화투를 치면서 아버지께서 좋아하는 걸 해야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바둑을 한 시간 두고 두 시가 되어서 자러 들어갑니다. 항상 주일이 되면 저녁에 마
치고 아버지와 시간을 가졌습니다. 늘 두다가 우리 아버지께서 서울 현대병원에서 암으로 진단을 받으시고 안동 성소병원으로 내려가시는데 우리 집에는 마지막이었습니다. 집에 오셨습니다. 저와 또 바둑을 두셨습니다. 아버지와 이제 헤어지는, 이제 내려가시면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를, 저하고 세 판을 연속해서 두었습니다. 제가 다 져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저한테 이기고 내려가시는 것을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아버지한테 이길 수도 없고 질 수도 없고, 이게 마지막 두는 것이다.’ 아버지가 편찮으신데도 얼마나 정신력이 좋으신지 그래서 성소병원에 입원을 하시고 돌아가시기 한 주간 전에 저는 교회의 모든 일을 두고 아버지와 한 주간을 같이 하면서 바둑을 두었습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겁니다. 부모에게 잘 하십시오. 저는 잘 못했습니다. 잘 한 것 없습니다. 하나도 잘 한 것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잠간이라도 가졌던 그런 시간이 너무 좋고 어머니와 가졌던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이 지라드는 어머니를 잘 모시고 믿음 생활하다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전 필라델피아에 제일 잘 살고 축복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 잘 하십시오. 어려울수록 잘 하십시오. 부모님을 어려울수록 잘 모십시오. 그러면 복이 여러분에게로 다 옵니다. 좀 불편하면 어떻습니까? 부모님이 좀 편찮으시면 어떻습니까? 잘 해드리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거룩한 주의 날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어려운 일도 너무 너무 잘 참고 이겨냈는데 우리는 좋은 것도 못 참고 어려움도 못 참고 오늘 우리는 너무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의 은혜가 성령으로 함께하여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 모두 이기고 승리하여 이 세대를 통과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