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과 회상, 26) 참 생명의 길, 영생의 길(세칭 동방교)에 대한 정체성에 회의를 품다
서울구치소에서 양학식 베드로 목사가 포승줄에 묶여 호송버스로 향하는 것을 목도하였던 그날, 나는 경부선 열차에 올라 타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예레미아서나 이사야서에는 수백년 뒤에 일어날 구원의 섭리에 대해서 예언을 하였던바 다윗의 자손에서 메시아가 태어난다고 하였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고 범죄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결국 그와 그의 후손들과 지금 현재의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인간의 영혼은 창조주께로 귀속되어야 하는 창조섭리에도 불구하고 죄악의 형벌을 벗어나지 못함으로 죽음의 세계, 즉 멸망의 종착역에 도달하게 되는 가엾은 인생으로 종지부를 찍게 되었던 것이다. 군 복무시 6군단 진군교회에 다니면서 배웠던 성경말씀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죽음 그 이후는 하나님의 심판대앞에 서게 되어 누구나 그의 믿음과 행위대로 심판을 받아 영생과 영벌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기록된 성경의 말씀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 인생들을 멸망에서 구원해 내기 위해,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나와 모든 인류의 죄의 값을 대신 짊어질 구원의 메시아가 이스라엘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라고 예언서에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을 얻게 하는 다른 이름은 없다’ 라고 성경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1차는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님이 오셨고 2차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교하노씨 가문의 세칭 동방교 교주 노광공이 이땅에 와서 불심판을 행한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회의가 소용돌이 치며 나의 머릿속에서 구라파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써 또한 구원의 주 메시아로 이땅에 임했다고 스스로를 밝힌 나머지 유대교 신봉자들인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이땅에 구원의 메시아로 왔다고 증거한 것을 참람(분수에 넘치고 지나친 주장)하다고 하여 그를 죽이기로 결의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아 결국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이다. 그런데 왜 두 번째 이땅 한국에 임하였다고 하는, 메시아로 자칭하는 이래조부님(노광공)은 수원장에서 큰집으로 큰집에서 또 다른 곳으로 스스로를 철저히 숨기고 수사관들의 수사망을 이리 저리 잘도 피하여 다닌다는 소문과 그 행위는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예수님의 행적과는 정반대임을 보고 깊은 회의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노광공)가 진정 두 번째 예수님의 영으로 이땅에 재림주로 임하였다면 정정당당 어엿한 자세로 나서지를 아니하고 숨어다니고 피해 다녀야만 하는가. 그(노광공)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사주목사들 중 동방교의 제2의 지도자라고 할수 있고 기둥이라고 할수 있는 정재덕 요나단목사와 양학식 베드로목사가 메시아라고 자처하는 교주 노광공을 대신하여 이단사이비종교의 패악질을 수사하는 경찰 수사관들에 의해 죄인으로 끌려가서 재판을 받아야만 했던가. 그에 따른 허탈감이 몰려왔다. 부모형제가 반겨줄 부산으로 내려 가는 즐거워야 할 나의 휴가길이 천근 만근 무거운 발걸음이 되었던 것이다.
고백과 회상, 27) 회심, 동방교를 떠나다...
부산으로 내려 가는 경부선 열차안에서의 내적 싸움은 계속되었다. 지성, 실천, 복종, 순교라는 천국열쇠를 받아야만 한다는 각오로 두 번째 메시아로 임한 이래조부님(노광공)에게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서약하고 맹세한 바가 있어 참 생명의 길, 영생의 길(세칭 동방교)을 일순간에 부인하고 배도하기는 너무나 미련이 남아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고 참 생명의 길, 영생의 길(세칭 동방교)이 가짜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이 길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마음의 한편으로는 또 다른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후 1여년이 지나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한 후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동방교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생활을 하게 되었고 주일날에는 부산의 초량12교회에서 예배(성례식)에 설교를 준비하여 제단에 서서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봉독하고 기도를 올리고 동방교의 진리말씀을 증거하곤 하였다. 세칭 동방교에서는 설교를 ‘진리말씀을 한다’ 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진리말씀이라니... 어이없는 작태였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내가 군에서 제대할 당시는 벌써 세칭 동방교의 내부사정이 혼란스럽고 이탈자들의 고소 고발사태가 이어져 분위기가 뒤숭숭하고 부산지방에서는 김인경 입다목사를 위시한 간부들이 몸을 피해 잠적해 있던 상태이고 그시절에 나와 함께 생활했던 세칭 동방교의 남자 전도사들이 대부분 군복무 연령인지라 모두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하여 제대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남자 전도사로는 군복무를 마친 내가 유일하였으므로 주일날 초량12교회의 예배시간에 집회를 인도하고 진리말씀, 즉 설교를 담당하곤 했었다. 군 복무시 6군단 군인교회에서 신학을 전공했던 군종부 요원들이 고참순으로 돌아가면서 말씀을 준비하여 병사들에게 설교하였던 것을 상기하고 신앙서점에 가서 유명목사들의 설교집을 구입하여 기성교단 목사들이 하는 것처럼 흉내를 내어 설교를 하였던 기억이 선하다.
문제는 1970년대 중반쯤에 이른 그즈음에 동방교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세칭 동방교의 교주 노광공은 이미 1968년도에 당뇨병으로 사망한 후 그의 차남인 2대교주 아브넬 노영구가 세칭 동방교의 교주 행세를 하고 있었으나 이탈신도들의 고소고발에 의해 은둔생활에 들어갔고 사주목사를 비롯한 간부들이 피신하고 구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2대교주 아브넬 노영구는 어느 여신도와의 동거행각으로 숨어지내던 시기였다. 그런 당시에 이봉상 갈렙전도사가 전면에 나타나 전국의 각지역을 맡아 매주 순회를 다니던 소위 순회자들에게 2대교주 아브넬 노영구의 지시를 하달하고 지성금 현금뭉치를 집합하여 2대교주인 아브넬 노영구에게 보고하는 일을 맡아 있었는데 그러한 중요직책을 담당하던 당시에 알게된 세칭 동방교의 내막을 전 순회자들에게 폭로하고 순회자들은 전국 각 지역의 전도사들에게 그 사실을 전달하여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함으로 세칭 동방교의 ‘이래조부님 노광공’이 한갓 이단사이비종교의 수괴에 불과하다고 밝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이후 세칭 동방교 2대교주 아브넬 노영구(노광공의 차남)는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피신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동방교를 위해 목숨바쳐 충성하겠다 라고 하여 부모형제를 버리고 고난을 무릅쓰고 일념으로 봉사하였던 전국의 교역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는 사건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세칭 동방교인 좁은길의 이단사이비에서 목숨걸고 따르던 사람들이 제각기 새삶을 위해 새로운 인생여정의 길을 찾아 뿔뿔이 제갈길을 찾아 나가게 됨에 따라 그 모든 사실을 알게된 나도 나의 길을 찾아 미련없이 세칭 동방교 좁은길을 하직하고 그 허망한 길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은 기성 제도권 교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올바른 신앙의 길을 가려고 기도와 찬양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오늘도 보무도 당당히 힘차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고백과 회상, 28) '아브넬 노영구'의 생뚱맞은 지시 하나
군복무를 마치고 나는 다시 좁은길(세칭 동방교) 부산 초량12교회에 출석하였다. 그러나 초량12교회(성전)는 내가 군입대하기 3년전의 분잡스럽던 분위기가 아니고 무언가 휑 하니 빈것같은 얼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아마도 좁은길(세칭 동방교)의 2대교주 아브넬 노영구와 사주목사들 그리고 간부급들이 이탈신도(세칭 동방교 신도)들의 고소고발에 의해 구속되고 또는 수사기관의 수배령이 발동됨에 따라 거처를 옮기고 은거하는 상태였기 때문이리라고 생각 되어졌다. 소위 심판주이며 메시아로 두번째 이땅에 임한 이래조부님(노광공 교주)을 절대적 신으로 섬기며 목숨바칠 각오로 충성봉사하여 오던중 이래조부님이라고 신격화된 노광공교주가 거짓날조된 심판주요 메시아라고 밝혀진것 때문에 큰 풍파가 일어났던, 이름하여 이봉상사건이 발발 하기전까지는 나는 한결같은 층성심으로 부산 초량12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군에서 제대한지 수개월이 지난뒤 2대교주 아브넬 노영구로부터 당시의 순회자를 통하여 나에게 지시사항이 하달되었다. 내용인즉 느닷없이 안동에 있는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을 탐방하고 그 서원 앞마당에 있는 작은 돌맹이 7개를 주워서 위로(서울)올리라는 것이었다. 때는12월 초겨울이였다. 나의 직감으로 선교사님(2대교주 아브넬 노영구)이 내가 순종하는지 안하는지를 테스트 하는 것이라 짐작하고서 지시대로 행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런데 20대 중반인 여신도 대기자 한명을 나와 같이 동행하여 지시를 이행하라는 것이었다. 지시를 전해받은 다음날 아침 바로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안동행 시외버스에 그녀와 함께 동승하여 출발하였다. 얼마쯤 달리는중에 동행하는 그녀가 나에게 동방교 생활중에 겪은 지나온 발걸음을 돌아보며 나에게 고백하듯 느닷없이 하는말이 그녀가 자살을 시도한적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놀라서 "왜 자살 하려고 하였어요?" 하고 물었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저가 있잖아요, 어느날 본의 아니게 연단받는(행상하는) 중에 물건을 사주겠다고 따라오라고 하는 어떤 남자를 따라갔는데 그 외간 남자에게 그만 당하고 말았어요. 그때부터 죄책감에 시달리며 죽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살을 시도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차! 하는 황당함고 안타까운 생각에 머리가 멍해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정색을 하고 타이르듯 조근 조근 이야기 했다. "아니 그것은 강제로 당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기에 내가 저지른 죄악이 아니므로 따라서 본인은 죄를 의도적으로 범한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살을 한다면 그것은 내가 나를 죽이는 살인죄를 짓는 것이 되고 자기가 자신을 죽인 살인죄는 죄사함을 받지 못하니까 절대로 자살하려는 맘을 앞으로는 갖지 말아요!" 라고 일장 훈계성 충고를 하였다. 그랬더니 그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과 안도감을 느낄수 있었다. 드디어 버스는 안동에 당도하였고 우리는 안동 좁은길 성전(세칭 동방교 안동교회)으로 찾아 갔는데 그야말로 소규모의 교회로서 방 한칸의 좁은 개척교회였다. 그곳의 세칭 동방교 안동교회 여자 전도사는 나에게는 다른 숙소를 정하여 주어서 피곤하던중 곤하게 취침을 잘하였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서 같이 동행한 그녀(대기자)와 같이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마침 아침부터 흰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발목까지 눈속에 묻히는 것이였다. 첫눈이라 기분이 아주 좋았다. 퇴계 이황이 유학(儒學)으로 제자를 배출했던 조선시대 선비의 얼이 베어있는 유명한 도산서원을 둘러보고서 눈에 덮혀있는 도산서원 앞길에서 작은 돌맹이 7개를 나도 주웠고 그녀도 돌맹이 7개를 주워서 부산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내려온 순회자에게 이름을 적고 밀봉하여 2대 교주 아브넬 노영구에게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교주 아브넬 노영구의 지시라는 말에 절대 복종했던 그 멍청하고 어리석었던 시절을 오늘 새삼 회상해보는 것이다.
고백과 회상, 29) 내가 본 동방교의 인물들에 대한 단상(斷想)
■정재덕 요나단목사
좁은길(동방교) 지도자중에 노광공교주 다음으로 제2인자였고 언어구사력이 뛰어났으며 예화를 실감나게 잘 하였다. 설교를 할 때 기승전결의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표현의 대가였다. 감성적으로 심령의 변화를 유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전형적 목사 스타일로써 안경을 끼었으며 항상 청중(신도)으로부터 동정을 구하기 보다는 그의 설교가 청중(신도)을 사로잡는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할수 있다.
■양학식 베드로목사
좁은길 지도자중에 정재덕 요나단목사와 같은 사주목사로써 동급이라고 할수 있으나 성격이 난폭한데가 있고 어떤 스토리를 전개함에 있어서 논리적이지 못하고 키포인트만 찝어 말하는 스타일이었으며 단도직입적 논술로 말하자면 직설적 화법을 사용하였다. 유연하지 못하고 강한 어조로 사람의 심경을 욱박지르는 특성이 있었다.
■오인숙 헤레나장로
그녀는 인텔리형의 마스크로 젊은 시절엔 미색이 있었다고 보나 어떤 연유에서 였는지는 모르나 일찍 동방교를 떠났고 나이 들어서는 가끔 동방교의 부산초량12교회에 나타났으며 풍기는 인상은 조용한 편이었고 포근한 어머니같은 성품으로 온정이 있었다.
■김숙자 사로맨장로
노광공교주의 일대기를 소개할때는 언제나 울상을 짓는 모습으로 애절하게 표현하였다. 신도들앞에 서서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인도 할때는 엉덩이를 좌우로 살짝 살짝 흔들어 대는 폼이 아주 일품이였다. 신도(성민)들의 눈과 귀를 주목시키는 집중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김인경 입다목사
시력이 좋지않아 항상 대학노트에 검은 싸인펜으로 글을 크게 적었다. 그는 시력이 많이 약하였으므로 필기한 노트를 눈 가까이 대고 읽으며 전달하였고 마칠 시간이 임박하였을 때 항상 ‘시간상 관계상’이란 어구를 잘 사용하였다. 그리고 윗 양복 저고리 포켓에 엄지 손가락을 밖으로 내고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은 포켓속으로 찔러넣는 폼을 잘 하였다. 잘못한 신도들은 체벌할 때 침을 손바닥에 뱉어서 뽈따구를 잘 때리는 그만의 특유한 습관도 뺄수가 없다. 노광공의 지시를 지키려는 충성심이 돋보이는 자였다.
■김태문 삼손목사
키도 크고 코도 컸다. 경상도 사투리가 가관인데 말하기 전 서두에는 ‘무씬노무(무슨놈의)’란 사투리를 갖다 붙이는 습성이 있다. 제단에 서서 말을 할 때 논리성은 없으며 툭 툭 말을 뱉는 식으로 던졌다.
■권병찬 아마샤 전도사
차분한 감이 있다고나 할까, 그의 눈동자를 보면 사물을 아름답게 보는듯한(심미안적) 일면이 있었다.그의 표현중 예를 든다면 나뭇잎이 하늘거리는 것을 보면 눈으로는 볼수없으나 바람의 세기와 어느방향에서 불어오는지를 알 수 있다 라는 표현에서 느낄수 있었다.
■박민집 요셉목사
항상 숨이 가쁘고 헐떡이는 모습이 안스러울 정도로 폐질환이 깊어져 가고 있었으며 가래침을 휴지통을 옆에 놓고 쉼없이 뱉어내었다. 그런데 위생관념이 희박하여 그가 입을 댄 숟가락으로 자기의 남은 밥을 ‘더 먹게나’ 하면서 남의 밥그릇에 인정스럽게 떠주는 것을 자주 보았다. 차례제를 지내는 절기때 몸이 불편함으로 전신목욕을 할수 없어 세수대야에 더운물을 방안에 떠놓고 하체를 씻는 모습을 목격한바 있다. 요셉목사의 묵과할수 없는 성경적 크나큰 오류는 신약의 로마서에 “하나님 아버지를 아바아버지라 부르짓느니라”는 해석을 아버지의 아버지라고 했기때문에 할아버지가(이래조부님) 된다고 신도(성민)들에게 가르치고 주입시켰던 것이다.
■임능주 애훗목사
동절기에 벙거지 모자를 덮어쓰고 길거리 난전 중앙동 국제회관 옆길에 탁자를 놓고 생업인 도장을 새기는 업을 하였다. 생업을 유지해가면서 동방교의 목사직을 감당하였다. 신도(성민)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하는 중에 긍정과 부정을 물을때는 ‘기리 같아나 손을 들어 보세요’ 하는 물음을 ‘손을 쳐들어 보세요’ 라고 이북 방언을 사용하여 곧잘 한바탕 웃음을 터져 나오게 하였다.
■김병구 마태목사
능글스러운 말솜씨를 지녔다. 아마도 지방 일간지 신문사의 비정규 신문기자로 생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어그막도 잘대며 경찰도 따 돌릴수 있는 말재주가 있었다. 그러나 좁을길의 룰을 벗어난 개인행동으로 인하여 1대교주 노광공이 세상을 떠난이후 2대교주 아브넬 노영구 시대에 들어와서는 김병구의 자기 개인 주관대로 움직여 결국 상부의 눈밖에 나게 되였고 무너진 질서를 잡기위한 2대 교주 아브넬 노영구의 지시를 받은 행동대원들에 의해 밤중에 갑자기 납치되어 서울의 어느 대기처 구석진 곳에서 발가벗겨 폭행(심판)을 당하던중 그 행동대원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틈을 타서 얼마나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지 거의 알몸으로 도망쳐 나와 인근 파출소로 달려 들어가 신변보호 요청을 하고 폭행(린치)에서 구사일생 살아나왔다고 증언하였다.
■이일우 니고데모목사
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다말장로의 남편으로 목사의 직분을 가지고 있었고 동방교에 몸담기 전에는 인장업(도장새기는 일)을 하였다. 치아가 뻐드렁니로써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으며 항상 입이 휑하니 벌어지는 모습인데 얼굴은 악의가 없고 선하게 보였다. 대중을 리드하는데는 다소 역부족으로 탑리더로 나서기는 다소 힘든 상태였다. 그러나 한때 좁은길(세칭 동방교) 즉, 기독교대한 개혁장로회의 총회장을 지낸 바 있다. 붓글씨가 일품이였고 신도들 앞에서 설교할때는 항상 천정위를 쳐다보는 습성이 있었다.
■이봉상 갈렙전도사
서울 외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한 경력이 있었다. 그는 식견이 있고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동방교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현장확인까지 해보는 철두철미한 성격을 간과할수 없다. 그는 교주 노광공이 메시아가(전지전능한 하나님) 아닌 것을 밝혀내어 동방교내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가정과 부모형제를 초월하여 사이비 이단사설에 꿰여 일생을 허황되게 보낼뻔 했던 선남선녀들을 바른길로 가도록 선구자적 역할을 유감없이 해내었던 귀한 인물이였지만 한편으로는 좁은길(세칭 동방교)을 죽기까지 따르기로 작정하여 이래 노광공과 그의 차남 아브넬 노영구를 말세의 심판주요 메시아로 변함없이 신봉히는 목회자들과 구성민들(오래된신도)은 이봉상 갈렙전도사를 지칭할때 좁은길(세칭 동방교)을 배도하여 악한 사탄의 역사를 일으킨자, 몹쓸 인간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래 나사로장로
동방교의 험상궂은 깡패같은 스타일의 인물로서 정재덕 요나단목사를 심판할때 김태문 삼손목사와 더불어 그를(정재덕) 발가벗겨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에 주동적 역활을 했으며 유난히 눈이 가늘게 찢어져 포악스럽게 보였다. 또 부산 경남일대에서 동방교의 룰을 어기고 자기 맘대로 생활했던 김병구 마태목사를 밤중에 부산의 초량12교회에서 납치하고 서울로 압송하여 발가벗겨 폭력을 가하는 행동대장의 역활을 담당하였다.
■김중식 아브라함전도사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머릿기름 포마드를 빤질 빤질하게 바르고 다니던 키가 작은 사나이였다. 부산지방에 순회자로 가끔 내왕한적은 있으나 나와는 깊은 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부산의 사상8교회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늙은 노모를 홀로 두고 빈집 초월하여 서울의 대기처로 들어가 교주 노광공에게 충성을 다하였으나 그도 결국에는 동방교를 떠나고 말았는데 칠십이 넘은 노년에 다시 마누라의 손에 이끌려 세칭동방교에 출입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대충 1970년대를 전후한 초창기의 좁은길(세칭동방교)을 견인했던 지도자급 인물들을 내가 경험하고 느낀바에 의하여 살펴보았다.
고백과 회상, 30) 동방교인들에게 고함, 하나님을 믿는 자의 올바른 자세
초창기의 좁은길(세칭동방교)을 견인했던 인물들이 타지방에도 많이 있지만 서울 중앙무대와 우선 부산지방의 지도자급 인물을 대충 살펴보았다. 지금 현재는 오랜세월동안 기하 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축적된 엄청난 경제력을 기반으로 상당한 성장과 진보가 일어났고 새롭게 동방교의 면모를 구축하였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좁은길(세칭동방교)의 교회를 다스리고 인도하는 과거를 경험하고 현재를 힝쓰고 살아가며 미래발전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지도자급 인물에 대해서는 차후에 서술 하기로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노광공과 그의 차남 노영구 1~2대 교주가 두번째 심판주 메시아가 아니고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미천한 한 인간(피조물)임을 깨달아야 한다(좁은길 초창기때의 신앙노선에서 이탈하여 노광공 교주 자신의 영광과 욕망에 빠져 씻을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고 생을 마감했던 그허망한 세월을.....!
제발 믿음의 대상을 2천년전 나와 너! 우리 모두! 나아가서 세상만민! 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없이 십자가에서 못밖혀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셔서 다시 오실 이 세상에 무덤이 존재하지 않는 진정한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성경대로 전하고 가르치며 믿고 행하여 진정한 섭리에 바르고 공명정대한 길로 인도하는 좁은길의 지도자(목회자)가 되어서 다음세대와 손자 손녀 후대들에게 참된 신앙의 유산을 물려 주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되며 언젠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최후 부름을 받았을때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송받을 만한 인물들로 자리 매김 하길 간절히 바라 마지 않는 바이다 ! 따라서 더 이상 노광공 1대 교주와 2대 교주 노영구에게 신적권위를 거론하며 신세대(신성민)를 배제하고서 오래따라온 구세대(구성민)들과 목회자들이 재단을 향해서 큰절(배례)을 몇번이고 심지어 몇 백번을 행하는 자가당착을 제발 그만 하기를 신신당부하는 바이며 전설과 같은 신격화한 행위를 180도 수정하기를 아울러 첨언 하는 바이다.
구약시절에 거짓 메시아 바알신을 절하고 섬기다가그의 추종자와 지도자들이 엘리야가 섬기는 참 신 여호와 하나님의 불의 역사가 나타나 참 하나님임을 증명한 후에 거짓메시아를 섬겼던 그 지도자와 추종하는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역시적 사실을 재삼 상기 하면서 거짓에서 단호히 돌아서서 과거에 잘 모르고 오류를 범하여 많은 순진무구한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을 실족시킨 그 큰책임을 절대 회피할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지난날 예수그리스도외에 동방교 교주 노광공이하 노영구를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전하고 역설했던바 I(나), YOU(너) EVERY BODY(모든 사람, 즉 구성민 신성민), 과거 현재 지도자 목회자들은 모두가회개하고 구원의 주를 향한 정체성을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확실히 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