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뚜벅이
이형국
우리가 없으면 아마 역사가 만 년 넘게 되돌아갈걸요. 땡볕이나 한파를 뚫고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봐요. 인간들 어떡할까요? 무거운 짐보따리를 이고 지고 옮겨야 한다고 생각해 봐요. 쉬이 상상될 겁니다. 문명이 발전될수록 인간은 게을러지죠. 힘든 짓은 하지 않으려 할거에(예)요. 인간은 조금만 늦어도 짜증 내거나 화내면서 발을 동동 구르죠.
내 친구 중 자그마한 애가 말하던데요, 그 친구 주인이란 인간은 길거리가 잠시라도 정체되면 참을성 없이 오만 욕지거리를 뱉어낸다고 하더라고요. “내 이 스마트한 바디body가 오염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라면서 비쭉였어요. 게다가 깜빡이조차도 넣지 않고 끼어들죠. 비상등도 켜지 않고 급정거하죠, 그러면 후방에서 클랙슨 빵빵 울려대죠. 개판이란 게 바로 이런 거죠. 저들이 꼴통 짓을 해놓고는 성질부리며 우리 몸뚱이를 주먹으로 막 치면서 막돼먹은 짓거리를 한다고요.
우리끼리 얘기 나눈 적 있었어요. 아예 우리가 숨어버리거나 인간들에(게) 대항하여 보이콧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들, 잠시라도 견딜 수 있을까요. 후~후~, 눈앞에 어쩔 줄 몰라 멍청해진 그들의 얼굴이 춤을 추네요. 우리는 그 사람(인간)들이 신는 자동 신발이라고요. 신발이 없는데 어떻게 다녀요.
나는 스네이크snake류는 아니지만 덩치가 큰 편이라 발도 커서 비싼 신발 신지요. 주로 인간들이 이용하는데요, 특히 아침·저녁 (러시아워 땐) 엔 숨이 컥 막힐 정도로 가슴 안이 가득하답니다. 러시아워라고 하는 시간이죠. 이 시간만 지나면 룰루랄라 두리번거리며 사람(인간)이 오가는 거리를 감상하며 다니죠. 그래도 새벽녘에(이)나 달도 없는 밤에, 인적이 드문 길에서는 늘 조심한답니다. 왜냐하면요, 뜬금없이 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인간)이나 동물이 있거든요.
나는 인사성도 발라요. 아이든 어른이든 카드로 윙크를 보내거나,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라는 말이 들리면, 서슴없이 예쁜 목소리로 인사를 하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우리 친구 중에는 나만 그렇게 인사를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한답니다. 아침부터 만남 인사를 서로 나누면 하루가 즐거워질 게 분명하잖아요. 일에 지쳐 고단한 몸을 이끌고 나한테 의탁하러 계단을 올라왔을 때, 그가 예쁜 목소리의 내 인사를 받는다면, 아마도 피곤이 반쯤은 사라질걸요.
(인사하랴, 냅다 달리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다 보면, 피곤으로 인해 몸이 물걸레처럼 축 처진답니다. 빨리 집에 돌아가 쉬고 싶어지죠. 샤워를 끝낸 후 때로는 건강식을 먹는답니다. 어떨 땐 간단한 시술도 받으며, 잠이 들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꿈결 속에서 코 고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날마다 고단치 않은 날이 없어서죠. 내일 새벽까진 푹 자야 해요. 또 하루를 시작해야 하거든요.
내 가슴에 안기는 사람 중엔 학생들(으)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골고루(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은(이) 오만 오물을 발에다 묻히고 내 몸 위를 오르지만,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답니다. 특히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이면, 내 몸뚱이는 엉덩이에 난장을 맞은 듯 얼룩덜룩하게 되지요. 우산 끝에서 흘러내리는 빗방울은 이곳저곳에서 만나 낮은 곳으로 흘러가 적셔놓습니다. (축축해서 싫어요.) 집에 빨리 돌아가 씻어야겠다는 생각뿐이죠.
요즈음은 여름인데도 내 가슴 속은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린답니다. 너무 추워요. 한여름에 춥다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겠지만, 10시간 이상 (종일) 빵빵하게 작동하는 에어컨 밑에 한 번 있어 봐요.(,) 내 말이 거짓말인가. 그런데 약간 의아한 광경도 있어요. 할머니는 일어나서 에어컨을 끄거나 온도를 높이려 (꺼줬으면) 하고, 젊은 여인네는 일어나서 에어컨을 최상으로 올리려 하더라고요. (빵빵 틀길 원하더군요.) 예쁜 아줌마, 이 비싼 유가油價(기름값 비싼) 시대에 덥더라도 좀 참으세요.
나한테 몸을 의탁하려면 수수료를 내야 해요. 나도 먹고살아야죠. 그런데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은 수수료 내는 걸 깜박깜박하실 때가 있어요. 잠시 시간이 흐른 후 (그럴 땐) “할머니, 할아버지 요금 내세요, 안 내셨잖아요.”라는 소리가 저 앞에서 들리게 되죠. 나를 온종일 데리고 다니는,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가 하는 말이에요. 그렇지만, 내 마음은 이래요. ‘나 같으면 그냥 모셔드리겠다.’
ㅎㅎ, 내가 누군지 벌써 알고 있죠?
차車는 탈 것을 뜻하는 수레이다. 사람이나 물건을 제 곳에 데려다주는 이동 도구이다. 18세기 후반에 자동차가 처음 만들어지면서 19세기에 걸쳐 대중교통수단과 이동 수단으로 정착되었다. 미래엔 직접 운전하지 않고도 운행되는 자동차도 나올 것이라 하니 기다려 본다.
자동차가 없는 세상, 이젠 상상되지 않는다.
↳ 이질감 드는 문단 (2022.07) (11.6매 1686자)
○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좋습니다.
열무김치
권자이
음식을 하다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비트를 뽑은 자리에 열무를 심었더니 소독도 한번 안했는데 깨끗하게 잘 자랐다. 보리밥에 붉은 고추,(와) 양파.(그리고) 배를 넣고 갈아서 찰박하게 열무김치를 담았다. 김치 통에 한통(가득)이다. 한여름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찬이다.
김치를담아놓고 나니 7년 전 (담으려니 오래전) 첼로를 공부하러 파리로 유학을 떠난 (간) 녀석이 생각난다. 냉면을 계절 없이 여느 때고 좋아 했다. 그중에도 이때쯤 열무김치에 말아먹는 열무냉면을(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커다란 볼(양푼)에 한가득 말아주면 몇 젓가락 안 감아올리면 (감지 않아) 그릇이 비워졌다. 학교 식당에서는 한 젓가락에 다 감아올려도 될 만큼 (냉면을) 적게 준다고 (줘서 차마) 냉면은 사먹을 수가 없단다. 돌아서면 배가 고파서란다. 갓 20대니 무쇠도 녹일 때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더 (정작) 허기지게 하는 것은 사랑의 결핍에서다.(이 아니었을까.) 잠시라도 무엇을 하지 않으면 (자꾸만)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어 따로 자를 것이 없다(하니 사랑이 고픈 게다). 녀석은 미혼모가 낳고 수녀들이 키웠다. 낳아서 (태어나) 바로 보육원으로 갔으니 엄마 얼굴도 모른다.
수녀들이 아이들 정서적인 측면에서 (희망자를 가려 뽑아) 육십 인조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희망자에 한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악기(공부)를 시킨 것이다.(시켰다.) 그렇게 해서 재능이 보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원으로 두었다가,(.) (그중) 일 년에 한 두 명은 가톨릭 재단 대학에 진학시킨다.
아이들 네 명을 먼저 요가로 인연 맺은 바이올린 교수가 저녁시간마지막 수업에 (학생 네 명을 내 요가 교실에) 데리고 왔었다. 바이올린 전공인 (초등학교) 4학년 둘, 비올라 전공인3학년, 첼로 전공으로 막 입학한 당시 고등학생티를 못 벗은, 네 명 (한) 녀석들과 요가로 인연이 되었다. (맺어졌다.) 어릴 때부터 악기를 (연주)했고 자세가 엉망이 되어도 (바르지 않아도) 누가 눈여겨 봐주지 않았으니 결리고 아파 통증을 느끼는 곳이 많았다. 네 명에 일 년치 수업료는 바이올린 교수가 부담했다.
교수로부터 먼저 아이(학생)들 (고단한) 성장배경은(을) 대략 들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경추 뼈가 튀어나온 녀석, 척추측만증인 녀석, 어깨 결림인 녀석(에다) 골반뒤틀림에(등) 증상도 다양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가장) 심각한 녀석이 갓 입학한 첼로 전공자였다.
일 년이 지나고 나니 4학년(졸업반)이던 둘은 졸업을 하고 취업해서 떠났다. 3학년이던 녀석은 4학년이 되어서(자) 바쁘다는 핑계로 그만두게 되었다. 막내인 첼로전공자만 남았다. 형들이 다 떠나고(난) 그때서야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고 녀석이 자신의 모든 신상을 틀(털)어 놓았다. 힘이 드니 도와 달라는 말이다. (접근이었다.)
이 녀석은 골반이 틀어 진거 외에도 치아손상이며, (가 시원찮았다.) 시력도 마이너스라 안과 검사도(를) 수시로 해서 안경도 교체해야했다. 더 심각한 것은 빈혈(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서 혈액 종양내과도 몇 달에 한 번식(씩) 내원해야 했다.
녀석은 어려서부터 여러 사람들 (주위의) 도움으로 살아왔던 터라, 물질적 도움은 자칫 나쁜 버릇으로 습관성이 될까 싶어 조심스러웠다. 그런 관계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하다가 녀석에게는 (그저) 몸이 재산이니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도와)주는 것이 내 몫이란 생각이 들었다. 혈액 종양내과며 치과, 안과를 (병원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요가를 집중적으로 시켰다.
혈액종양내과 주치의는 수녀라서 보험 카드만으로도 출신 성분을 안다. 그 외에는 병원을 데리고 (에) 가면 아이(간호사나 의사들이 녀석) 한번 보고 나 한번 본다.(보기 일쑤다.) 나이로 보면 녀석과 내가 28년 차니 엄마인데, 카드를 보면(상엔) 혼자로 되어 있고 영세민증이다. 이러니 때로 오해도 받았다. (다만) 혈액종양내과 주치의는 수녀라서 보험 카드만으로도 출신 성분을 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 외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들었을 것이다.) 몸이 건강하지 않아서인지 체질상 그런지 젊은 아이들 (또래들) 먹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서 더했을 터다.) 그러니 처음 유학 가서는 음식이 안 맞아서 고생했을 것이다.
학부 때는 아르바이트로 주말이면 결혼식 축하 연주를 하로(러) 다녔다. 그날은 돈도 벌고 영양보충도 하는 날이다. 커피도 안 좋아하고 피자나 햄버그(거) 대신 김밥을 먹는 녀석은 결혼식에 가도 고기랑 비빔밥을 먹는다. 고했다. 그런 녀석이 언젠가 한번은 (내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결혼식 연주가서 열무김치가 나왔기에 먹어 봤는데, 선생님이 담아 주시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어요.”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고녀석 내가 어찌 전문 요리사에 발뒤꿈치나 따라갈까 만은(마는) 나를 들었다 놨다 도하나 싶어서 (하니) 귀여웠다.’
학부시절 연주회나 콩쿨이 있으면 차는 물론이고 물기 있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화장실을 자주가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진단다. 이렇게 연습벌레였다. 한번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고백하였다.)
“선생님 저는 첼로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을 때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선택 했어요(.)”
죽을 각오로 하는 녀석을 누가 따라 가겠는가.
☜유학 후 모교에서 강의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으니 그 꿈 꼭 이루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멀지않은 장래에 (녀석이) 귀국 할 것 같다. 열무냉면은 물론이고 김 장아찌도하고 큰 양푼(밥)에 밥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듬뿍) 쳐서 열무 비빔밥도 해 줄 것이다.
☜풋내기 첼리스트라고 했지만 이제 세월만큼이나 성숙한 연주자가 되었겠지. 따라서 내면세계도 잘 익은 열무김치처럼 숙성되었으리라 (된 젠틀맨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음식을 하다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 단문이 좋긴 하나 따로 떨어진 문장
○ 사랑이 깔려 있어 흐뭇합니다.
운전대
배정행
남편은 평생 우리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운전 면허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운전면허증이 있는 간부들에게 기름 값 지원을 한다고 해서 급하게 따긴 했다. 공대 졸업생 답게 한(단)번에 필기 시험과(와) 기능 시험을 통과했다. 도로 주행 연수는 돈 들이지 않으려고 먼저 면허증을 딴 내가 해주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남편이 먼저 면허증을 따고 아내에게 운전 연수를 해줄 것이다. (운전에 서툰 맹꽁이 아내가 답답한 나머지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긴 한다.) 한번은 앞서 가던 차가 갑자기 멈추더니 운전석에서 여자가 내렸다. 도로 한 가운데서 내리다니 무슨 급한 일인가 싶었다. 뒷(뒤)차들이 봐주지 않고 경적을 계속 울려대자 조수석에서 남자가 내리더니 급하게 운전석으로 올라갔다. 여자는 위험하게도 달리는 차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위험하게) 도로를 빠져 나가고 있었다. 남자가 천천히 차를 몰면서 여자 뒤를 따라가며 타라고 외쳤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달아나듯이 떠나버렸다. 급한 일은 아닌 것 같고 뭔가에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아 보였다. 추측해 보건대 운전 연수 때문에 생긴 싸움이 아닐까 싶었다. (하긴) 운전 연수해주던 남편이 하도 무시하고 화를 내서 이혼까지 갔다는 부부도 있었다 하니 (한다.) 연수 받다가 (그 여자도) 오죽 열 받았으면 아내가 길 한가운데서 차를 버리고 내렸겠는가 싶었다. 물론 나의 일방적인 추측이기는 했지만.
공간지각능력이 남자보다 천성적으로 뒤떨어지는 여자들은 운전에 있어서는 남자를 당하지 못한다. 남자들은 따로 운전을 배우지 않고 곁눈질로 봐둔 솜씨로도 운전을 할 만큼 방향 감각과 기계 다루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10대 소년들이 아버지 차를 몰고 나와서 사고를 치기도 하는 것이다. 10대 소녀들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남편은 도로주행 첫 날부터 팔공산까지 갈 정도로 운전 실력을 뽐냈다. 그것도 덜덜 떨지도 않고 시원하게 엑셀레이더를 밟으면서 말이다. 나는 운전 천재라고 추켜 세웠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시험 다 통과하고 나서는 단 한번도 운전대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교통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들라면 건강 염려증과 예민한 성격 때문이라고나 할까.
반면에 나는 운전하는 걸 좋아했다. 34(30여)년 전에 면허증을 따자마자 바로 차를 샀으니 짐작이 갈 것이다. 그때만 해도 여자들이 운전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어쩌다가 좁은 골목에서 다른 차와 마주치게 될 때면 오도 가도 못하고 (오금이 저렸다.) 진땀 뻘뻘 흘리고 있는 나를 향해 남자 운전자들이 "여자가 집에서 솥뚜껑 운전이나 하지 뭐하러 차를 몰고 나와?" (진땀 뻘뻘 흘리고 있는 나를 향해 남자 운전자들이 주던 모욕적인 언사가 생생하다.) 라며 심한 모욕을 주기도 했다.
사회의 이런 편견에 맞서면서 일찍 운전을 시작한 나는 남편에 이어 두 딸도 운전 연수를 시켜주었고(다. 덕분에) 그들은 모두 쉽게 시험을 통과했다. 다른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운전에는 남다른 자신감이 있었기에 내가 운전하는 것을 본 많은 (그러기에) 사람들이 (나를 보고) 택시 운전사 해도 되겠다던가 대리 운전 알바해도 되(너끈하)겠다 라며 농담을 해대곤 했(하였)다.
운전대를 잡는 것이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남편이 운전하지 않고 나 혼자운전해서 장거리 여행을 할 때면 너무 피곤해서 눈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만 같을 때도 있었다.) 처음부터 꿋꿋하게 운전대를 잡지 않았던 남편은 그럼(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미안한 마음만 가질 뿐이었다. //서울 살 때는 명절 때마다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서 차를 몰고 내려와야 했다. 귀경 차량이 밀리기 시작하면 서울에서 대구까지 7시간 이상 걸릴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조수 석에 앉아서 눈 꾹 감고 앉아 있는 남편이 얼마나 밉던지. 천연 기념물이라고 일찍이 시 동생들이 별명을 붙여 줬었지만 나는 그럴 땐 남편이 꼭 타임머신 타고 날아온 크로마뇽인 같아 보였다.
내가 이런 고통을 호소하자 한 친구가 말했다. 내가 자동차 운전대를 잡으면서 우리 집안의 모든 운전대를 잡은 것 아니냐고.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가족은 집안 대소 사의 결정은 모두 내 뜻에 따라 주는 경향이 있다. 어떨 때는 뭐든지 내가 결정하는 대로 따라하는 (따르기만 하는) 남편을 보고 딱하다는 듯이 딸들이 이런 말을 (주제넘게 핀잔) 하기도 한다. //"아빠! 제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좀 살아 봐!" //그러면 남편은 이렇게 (대수롭잖게) 대답한다. //"난 너희 엄마 따라하는 게 더 마음 편해.“(")
(못 말리는 남편이 아닐 수 없다.)
집안의 하나뿐인 운전대를 남편이 아닌 내가 잡았다는 (잡은 건 맞다.) 말은 주도권을 (내가) 쥐었다는 뜻이기도 하고(다는 건) 더 많은 짐을 진다는 뜻도 될 것이다. 여행은 물론이고 생활의 모든 로드맵을 내가 만들어 가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일이니까. 시 동생에게 언젠가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마누라한테 다 맡겨라. 그래야 집안이 평온하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나한테 운전대 맡긴 건 아닐텐데(것이다.) 꼭 그래서 그런 것 처럼 말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남편이 얄밉기도 하지만 뭐 그 말도 틀리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힘들긴 하지만 은근히 그 맛을 즐기는 걸 보면(니까.)
남편은 걸어서 40분 안에 드는 거리라면 걸어 다니는 걸 좋아했다. 시골 출신이라서 걸어서 학교 다닌 시절을 겪어서 그런지 직장을 걸어 다닌 적이 많았다. 차 타고 5분 거리도 차 몰고 출근하는 직장 동료들을 보면 혀를 끌끌 차곤 했다. 걸어서 출 퇴근하면 운동 따로 하지 않아도 되고 건강에도 좋을텐데 왜 그렇게 어리석게 사는지 모르겠다며 비아냥 거렸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것이 인간에게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자율 주행 자동차가 상용화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다음에는 자율 주행 기능이 있는 차를 사고 싶다. 안구건조증이 심해서 장거리 운전할 때 고통이 심한데 자동차가 알아서 나를 안전하게 싣고 가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걱정도 된다.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자동차에 실려 다니다가 공간 지각 능력, 인지 능력에 시력까지 퇴화되어(되면 어떡하나.) 뇌가 고양이 만큼 작아진 나의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지면 낭패다.)
미래엔 날아다니는 자가용을 타고 다닐지도 모른다. 드론을 이용해 사람을 실어나르기도 한다니까 이도 머지않은 일이(다.) 고 보니 나도 죽기 전에 타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된다. 모쪼록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거대한 조류족의 출현으로 새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면 자연은 또 한바탕 혼란을 겪게 되리라. 어쩌면 우리는 새들을 영영 못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문단 나누기 : 시인성 및 가독성 확보
↳ 한 스페이스 들여쓰기, 빡빡하면 숨 막힙니다.
자동차 예찬
이지연
버스나 배를 타면 멀미를 한다. 날씨가 덥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10분 정도의 짧은 거리에서도 속이 메스껍다. 그래서 (차가) 꼬부랑길을 가(달리)거나 1시간 이상 장거리를 가기라도 (운행)하면 필히 멀미약을 먹거나 (패치를) 붙여야 한다.
아이가 둘이 되고부터는 남편 없이 외출하기가 힘이 들었다.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리라는 일념으로 온갖 핍박을 참아내며 남편에게 운전연수를 받았다. 오너드라이버가 되고 부터는 남편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시간이 없다는 남편에게 함께 가자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도 아이들과 나들이를 할 수 있었고, 부부싸움을 심하게 한 날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친정집으로 내달릴 수 있게도 되었다.
하지만 초보운전자가 탈 없이 운전을 하였겠나. 아들이 태어나던 해에 뽑은 신차를 몇 번 부딪고, 스크래치를 (흠집을) 냈다. 자동차에 상처가 생길 때마다 차에 가졌던(를 향한) 남편의 애정도 식어갔다. 마침내 남편으로부터 외면 받은 차는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어부지리로 갖게 된 자동차는 나와 아이들의 튼실한 발이 되었고, 멀미를 잠재워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운전이 능숙해진 시점까지도 운전만 알았지 차는 몰랐다. 어느 날 도로 위를 달리던 자동차 보닛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당황하여 남편에게 (황급히) 전화하니 카센터에 견인하라고 했(하였)다. 렉카차를 불러 카센터에 가니(사장이 혀를 끌끌 차면서) 엔진이 타서 수리는 불가하고 교체 해야 된다고 했다. 엔진 오일이 없는지도 모른 채 운전한 내 잘못이었다. 만 10년이 채 되지 않은 차였지만 고가의 엔진을 교체하여 다시 타느니 폐차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폐차장에(서는) 전화했더니 고철 값을 제시했다. 고철 값만 받고 넘기기에는 너무 아까웠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폐차장 사장님 (측) 말을(요구를) 따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사장님이 보내준 견인차를 타고 자동차를 매단 채 폐차장으로 갔다.
폐차장에는 찌그러지고 부서진 폐차들만 있었다. 제일 앞자리에 주차된 우리 ‘크레도스’는 늠름한 멋쟁이로 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은 외관이었다. 그날 그곳에서 유독 광택이 났고 수려했다. 주인을 잘못 만나 생을 일찍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철 값을 받아들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났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본 자동차 모습이 잊히지 않아 마음을 추스르는데 한동안 애를 먹었다.
타던 차를 갑자기 폐차하는 바람에 (값싼) 중고차를 급히 구입하였다. (손에 익지 않아) 아이를 등굣길에(서) 급히 운전하다가 충돌사고를 냈다. 아이들을 매일 태워야했기에 남편이 불안했던 (남편은) 모양이었다. 몇 년 후에 세단보다는 사고에 안전한 SUV 차로 바꿀 것을 권했다. 운전하기에 버거울 것 같았지만 남편의 권유대로 세 번째 차는 SUV 차로 뽑았다. 안전하고 튼튼한 차로 무사고로 (하여) 아이들 고등학교까지 (무사고로) 등하교를 시켰으니 SUV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아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자동차도 나이가 들었다. 10살이 넘어가며 소음이 심해졌다. 차주가 자동차를 정갈하게 타지도 않았기에 이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SUV가 수명을 다하면 자그마한 세단을 타고 싶다. 네 번째 자동차는 내가 구입하는 마지막 차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세단이 수명을 다하면 면허증을 반납할 생각이다. 누리던 것을 누리지 못해 (차 없는) 불편함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장담은 하지 못하겠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기는 법이다. 아이들이 효도 품목으로 자율주행차를 거론한다면 ‘못이기는 척 받아줘야 하지 않을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셔 본다.
○ 군더더기 문장 정리하기
장모 미소
(장모표 미소)
이연희
내 머릿속에 계산기가 바쁘게 돌아갔다. 아침 먹으며 중고차 가격을 묻는 물음에 사위가 웃음 참는 것이 보였다. 표정과는 다르게 말을 해도 난 다 알 수 있다. 내가 누군가 눈치의 여왕 아니던가.
몇 년 전 일이었다. 인생 2막으로 꽤 수입이 괜찮던 방과 후 강사를(직을) 과감하게 던지고 남편과 훌쩍 (집을) 떠났다. 15박 17일의 미국과 캐나다 여행을 끝내고(에) 캐나다 캘거리의 딸 집에 갔다.(들렀다.) 밤에 도착해서 다음 날 '레이크 루이스'로 출발했다. 여행은 리듬이 깨지면 안 된다고 쉬지 않고 바로 다음날 출발했다. (이튿날 바로 사위 집) 널찍한 SUV차를 아무런 생각 없이 타고 다녔다. ('레이크 루이스'로 출발하였다.) 며칠간 로키산맥의 곳곳을 둘러보고 시내 구경도 했(하였)다. (사위가 있어 편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SUV가 아닌 승용차로 바뀌어서 물으니 (고개를 갸우뚱하니 사위가) 렌터카라고 한다. 며칠 동안 타고 다녔던 (SUV)차도 렌터카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렌트비용이 아까워 가슴이 오그라드는 듯하다. 그런 줄 알았으면 반납하라고 하고 좀 덜 돌아다닐걸.(,) 눈치 없이 군듯해서 미안해진다.
딸이 캐나다 온 지 일 년 남짓하다. 학교 내의 아파트라 차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해 차를 사지 않았단다. 교내는 뚜벅이로, 시내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단다. 관광은 친구 차나 렌터카를 빌려서 다녔단다. 어미 마음으로 헤아려 보건대 장학금으로 모든 걸 충당하려니 경제적인 여건이 안 된 듯하다. 딸 부부의 마음을 헤아리니 가슴이 아리다.
며칠 후 남편은 귀국하고 나는 곧 태어날 손녀의 시중을 위해 남았다. 넓은 나라에서 애를 키우려면 차 없이는 안 되는데. 차 마련할 궁리에 내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가기 바쁘다. 딸한테 중고차 가격을 알아보라 하고 속으로 대충 계산을 끝냈다. 아침 먹으며 사위한테(에게) 적당한 가격의 차를 알아보라고 했다. 딸이 미리 귀띔을 했던지 사위가 말로는 사양을 하는데 표정은 아닌 듯 하다. (비져) 나오는 미소를 억지로 참는 것이 다 보였다. (내가 누군가, 눈치의 여왕 아니던가.) 그 얼굴(모습)을 보니 나도 (‘)장모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내) 비상금(을) 털고 남편한테 구원 요청했다. 아들한테(에게)도 이쁜 조카 맞이 기념으로 축하금 보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래저래) 돈이 대충 준비되었다. 처음엔 극구 사양하던 사위도 중고차를 알아보느라 들랑날랑 바쁘다. 기분이 좋아 전화 목소리 톤이 다르다. 적당한 가격의 차를 알아보고 시간 약속해서 (뻔질나게) 보러 다닌다. 심지어 친구랑 (제법 먼) 에드먼턴 주까지 간다.
며칠을 바쁘게 다니더니(만에) 드디어 결정했단다. 찻값에 부대비용까지 넉넉하게 돈을 이체해줬다. 고등학교 교사가 타던 차인데 가난한 유학생이라 했더니 거의 500불이나 깎아줬단다. 더 고마운 건 먼 길 마음 놓고 가라고 기름까지 꽉 채워 주더란다. 그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 (그러긴 해도) 새 차가 아니라 사위한테 조금 미안했다.(하였다.) 하지만 무턱대고 새 차를 사기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만삭인 딸은 남겨두고 사위와 시승식을 했다. 큼직한 SUV차가 신나게 운전하는 사위처럼 (SUV차가) 듬직하게 느껴진다. 기름은 꽤 들겠지만 덩치가 크니 일단 속은 시원하다. 렌터카는 조심스러워서 몸이 움츠려(러)드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몸을 쭉 펴겠다. 내 마음도 몸과 이하동문이 되었다.
사위에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나의 선물은(이) 중고자동차였다. 비록 중고차이지만 (새 차는 아니지만) 장모의 사랑이 담겨서(을 먹고) 한동안 씽씽 잘 달릴 수 있을 거라 믿었(는)다. 딸 가족의 앞날이 환하게 밝기를 바라며 쳐다보는 내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부처님을 닮진 않았을까.) (아니라면 씨 암탉 잡아주는 장모님(표) 미소 정도는 분명할 터다.)
이건 분명 씨 암탉 잡아주는 장모님 미소렸다.
○ 한테 남발
↳ 에게
○ 사랑이 깔려 있어 흐뭇합니다.
주인님, 환영합니다
(내가 주인)
엄영희
"놀다가 언덕에서 떨어진 거야. 알았지?"
아들에게 다시 한 번 다짐을 시켰(받았)다. 말귀를 알아들은 여섯 살 아들이 어색해하며(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응급실은 붐비지 않았다. 하필이면 앞머리로 가려도 보일만한 왼쪽 이마에 서너 바늘을 봉합했다.
휴가를 이용해 시댁에 다녀오던 참이었다. 자가용이 지금처럼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시댁 오가는 길은 멀었다.) 동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영천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하루 서너 번 있는(운행하는) 완행버스를 타고 또 한 시간 정도를 달려야 (서야) 시부모님 댁에 갈 수 있었다. 떠나올 때도 마찬가지여서 시내버스 시간에 맞추어 채비를 차리(하)고 있을 때였다. 마실 다녀온 시어머니께서(가) 황급히 부르셨다.
"마침 뒷집 대구 사는 아재가 고향 왔다가 나가는 길이란다. 그 차에(로) 같이 가면 된다."
"세 명 탈 자리가 있대요?"
"그럼, 아재가 운전하고, 그 집 조카 타고 (난) 뒷자리는 다 비었단다."
망설일 필요도 없이 아들을 가운데 앉히고 남편과 뒷자리에 동승했다. 운전자는 항렬로 아저씨뻘이긴 하지만 남편보다 여남은 살 어렸다. 대구에서 한의원을 개업하고 있던 터라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 흔드는 시어머니를 뒤로하고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을 벗어나는 길은 구불거리는 데다 시멘트 포장길이었다. 회전 구간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아 몸이 이리저리 휩쓸렸다. 오디오 볼륨도 너무 컸다. 젊은 사람들이라 그런가 보다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포플러나무가 도열한 국도로 진입하자 쭉 뻗은 2차선 아스팔트 길이(었)다. 천천히 가면 좋겠다는 우리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자동차는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스팔트 길로 들어선 지 채 5분이 지났을까. 중앙선을 침범한 차가 기우뚱하더니 원래 차선으로 돌아오는가 싶었는데 논 속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도로는 한참 높았고, 모내기 준비를 위해 물을 가득 담아 놓은 (무) 논은 어른 키만큼 낮은 곳이었다. 논으로 다이빙하듯 뛰어드는 차 안에서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완충 역할을 한 (논)물이 출렁이는가 싶더니 몸이 차 의자와 모서리에 이리저리 부딪혔다.
어찌어찌 자동차 밖으로 나왔다. 무논에 바짓가랑이가 무릎까지 젖었다. 얼떨결에 생긴 일이라 아픈지도 모르겠는데 아이 이마에 피가 흐른다. 손수건을 꺼내 압박하며 지혈시켰다. 아무래도 봉합을 해야 할 것 같다. 자동차 보험도 들어 있지 않단다. 그 와중에도 자기가 한의사니까 상처를 한 번 보자고 했다.
상처 보여 달라는 아저씨의 손을 뿌리치고 갓길에 섰다. 마침 지나가던 자동차 한 대가 길을 멈추었다. 손수건으로 아이 이마를 누르고 있는 데다, 물에 젖은 바지며 신발이 응급상황임을 알아챘으리라. 병원 응급실로 우리를 태워다 준 이는 그 지역의 부대에서 근무하는 직업군인 아저씨였다.
자동차 보험이 되지 않으니 건강보험 혜택이라도 받으려고 아이에게 억지 거짓말을 시켰다. 우리 행색을 본 의사가 몇 번이나 어떻게 하다 이마가 찢어졌는지 (찢어진 연유를) 물었지만 (아들은 앵무새처럼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친구랑 놀다가 냇가 언덕에서 떨어졌어요.”
아들은 앵무새처럼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돈 몇 푼 아끼려고 철없는 아들에게 거짓말까지 시킨 못난 엄마였다.
식구 세 명이 한꺼번에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중앙선을 침범하던 순간 반대 차선에서 자동차가 달려왔더라면, 촘촘히 서 있던 포플러나무를 들이박았더라면, 모내기 준비를 위한 무논이 아니었다면 어쩔 뻔했겠는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운전했던 아저씨는 그 무렵 정신병이 발병되어 치료 중이었다고 했다. (후유~ 그만하길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가해자가 된 적도 있다. 아침이면 1분이라도 단축해서 직장에 가기 위해 애쓰던 때가 있었다. 왕복 60km 넘는 길을 출퇴근해야 하는 데다(곳이었다.) 해 뜨면 일을 시작하는 시골 어른들의 생활양식에 맞추다 보니 늘 마음이 바빴다. 출근길을 정신없이 달리는데 (갑자기) 여학생 한 명이 뛰어들었다. 무단횡단을 한 것이다. 나는 내 갈 길이 바빴고 여학생은 반대편에 본인이 타고 갈 버스가 오고 있었으리라. 횡단보도가 아니었기에 적당히 가속도 했을 것이다. 가방을 든 여학생이 도로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땐 아차 이미 늦었다.) 여학생은 이미 자동차 보닛 위에 부딪혔다 인도로 튕겨 나갔다. (간 여학생을 보는) 순간 '이젠 모든 것이 끝났구나.' 싶었다.
여학생을 자동차에 태웠다. 다행히 외상은 없었다. 신발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운전할 때 신었던 (내) 실내화를 신겨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허리가 아프다고 한 여학생이 촬영과 검사를 하고 있을 때 피해자의 어머니가 도착했다. 이유 불문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신발 사 신기라.’며 현금을 건넸다.
여학생은 허리 타박상 치료와 물리치료 후 차츰 나아졌고, 자동차보험 담당자는 현금 건넨 것은 나의 실책이라며 나무랐다.(왜 나무랐을까?)
자동차가 흔하니(한만큼) 크고 작은 사고를 겪게(기) 마련이다. 몇 번을 겪어도 생경하고, 당황스럽고 찝찝하다. 일을 당할 때마다 자동차가 무서웠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듯) 사고를 염려해서 자동차를 멀리하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편리하고 유용하지만 인간의 모든 것을 순간에 앗아갈 수도 있는 양날의 검劍이 자동차 아니던가.
도시의 거리에는 자동차가 차고 넘친다. (넘치는 요즘이다.) 문명의 이기利器임은 틀림없지만 (분명하지만) 인간이 자동차를 지배하지 못하고,(못 하는 건 아닐까.) 나부터 운전대만 잡으면 자동차의 (기계적인) 속성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구나 운전을 안전하고 손쉽게 해 준다는 명분 아래 자율주행 기능, 차선이탈 방지, 자동 주차 등 별별 기능이 추가되어 운전대 앞에 앉으면 주인이 뒤바뀐 느낌이다.
불안하고 주눅 드는 내게 단 하나 충실하게 나를 알아봐 주는 놈(녀석)이 있다.
“주인님, 환영합니다.”
차문을 열면 내비게이션 화면에 띄워지는 이 메시지 하나에 힙입어 (안도하며) 오늘도 당당하게 운전대를 잡는다.
“암, 내가 주인이지. 주인이고 말고.”(15.3매)
하고 싶은 일
이광조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은(이) 있다. 그게 거창한 것일 수도 있고 (,) 사소한 일상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나라를 빼앗긴 데 대한 울분이 가득 했던 청년 안중근의 소망은 하얼빈역의 거사였을 것이다. 큰돈을 벌고 싶었던 농갓집 아들 정주영에게는 부친 몰래 소를 몰고 달아나는 것이 절실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일주일 이상 이발을 미룬 나의 당면과제는 내일 아침 이른 시간에 (날 밝기 무섭게) 이발소 문턱을 넘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에 두고 기회를 엿보는 것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된다.) (벼르다가) 그걸 이루었을 때는 성취감을 맛볼 수도 있지만 마음먹는다고 다 이루는 건 아니다. 성취감이란 것이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운전대를 잡고 도로에 나섰던 날(,) 20분이면 될(너끈할) 거리를 그 두 배나 걸려서 (겨우) 도착했(하였다.) (그렇)지만 해냈다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별로 긴장한 것 같지 않았는데 차에서 내려 보니 겨울 내의가 (속옷이) 땀으로 다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날 주행에는 휘발유 말고도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던 게 틀림없고 그래서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딸이 울산에서 대구까지 더위를 무릅쓰고 달려왔다. 네 살 베(배)기 아들에게 백화점 아쿠아리움을 구경시켜주려는 것이었다. 몇 달 전부터 그걸 들먹거리더니 큰 맘 먹고 결행한 모양이었다. 혼자서 돌보기 버겁다고 수필 수업 가야하는 나(애비)를 불러내어 셋이서 입장했는데 들어간 지 30분도 안 되어(되지 않아) 어린 것이 나가자고 보챘다. 제 성의를 몰라주는 철부지한테 짜증내는 딸을 보면서, (이 안쓰러웠다.) 세상사 마음먹는 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것이) 마음 편하게 (잘) 사는 법이라고 말해주려다가 참았다.
빡센 시집살이를 하던 군 초년병 시절 나의 간절한 소망은 ‘또또’라는 과자를 실컷 먹는 것이었다. 어쩌다 손에 들어온 그 과자 (또또) 한 봉지를(가 생기면) 밤에 보초 서면서(설 시간을 기다려) 혼자 먹었는데, (게 눈 감추듯 먹곤 하였다.) 무장공비가 떼로 몰려와도 모를 그 맛 때문에 휴가 때 두고 보자는 결심으로 굳어지고 말았다.(고 벼뤘다.) 11개월 만에 첫 휴가를 나와 동생들이 출근한 후 혼자 남으니(가 되자) 이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다섯 봉지를 사와서 닥치는 대로 먹어보고 성에 차지 않으면 더 사오기로 했다. (아, 그러나) 한 봉지도 다 먹기 전에 결심이 무너지는 걸 느꼈지만, (속이 치받았다.) 참으면서 (그래도 미련 때문에) 반 봉지를 더 먹으니(욱여넣었으나 그걸로 땡이었다.) 속이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았다. 입맛이란 것이 참 지조 없다는 걸 그 때 또 한 번 확인한 셈이다.
퇴직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 몇 가지가 있었다. 중국어 공부, 규칙적인 운동, 해외여행이 그것이다. 4년이 된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세 가지가 다 흐지부지해지고 없다. 중국어는 올 봄까지 3년을 배웠으나 남는 게 (써먹을 데가) 별로 없어서 흥미를 잃었고, 헬스장 운동은 (심드렁하던 차에) 코로나가 번지면서 반가운 구실을 찾아(삼아) 그만 두었다. 부부동반 해외여행은 아내의 허리가 탈나는 바람에 말도 못 꺼내는 형편이 되었으니 어느 것 하나도 건진 게 없다. 이유야 어쨌건 단 하나도 (명색이 할애비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으니 어린 외손자의 변덕을 나무랄 처지는 못 될 것 같다.
요사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작은 아버님 일생을 기록하는 일이다. 2년 전에 줄거리를 받아놓고 차일피일 미뤄왔다. 책을 쓰려면 아직 표현력이 딸리는 걸 알고 있고 끝까지 써낸다는 자신도 없다. 글쓰기 교실을 기웃거리게 된 것도 그 일을 위한 준비였는데 준비자체가 목적이 되고만 느낌이다. 더 없이 감사하고 존경하는 어른의 일을 두고 이렇게 성의 없이 대해도 되는가하는 반성을 하면서 마음만 바쁘다.
그래도 할 일이 있어서 (을 두고) 조바심을 내는 것이 나쁘지는(만은) 않은 것 같다. 살아 있다는 표시요, 물건으로 치자면 (이자 조카로서의) 유효기간이 남아 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더위가 한 풀 꺾이고 나면 잘(자)잘한 일상 좀 내려놓고 원고 작성에 매달려 봐야겠다. (작은아버님은) 내년 이맘때쯤 구순을 맞으신(다.) 작은 아버님께 (그 잔칫상에) 소박한 자서전 바치(올리)면서 큰 절 한 번 올릴 (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22년 8월 8일, 10.1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이라고?
편: “내가 추구하는 글이 살짝 웃기는, 유머와 위트가 있는 글이다. 단,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로 점철된 글은 최악이다. 유머 옆에는 언제나 페이소스(동정 혹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표현방식)가 있어야 한다. 요즘 독자들은 저 높은 곳에서 호통치는 ‘작가님’보다, 자기와 비슷한 사연과 정서를 갖고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라이터’를 원한다. 지금은 누구나 글을 써야 하는 시대다. 그런데 글재주가 없다며 시작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다. 좀 못 쓰면 어떤가.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닌데.”
↳ '편성준·윤혜자 부부가 사는 법' 중에서.
첫댓글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이라고?
편: “내가 추구하는 글이 살짝 웃기는, 유머와 위트가 있는 글이다. 단,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로 점철된 글은 최악이다. 유머 옆에는 언제나 페이소스(동정 혹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표현방식)가 있어야 한다. 요즘 독자들은 저 높은 곳에서 호통치는 ‘작가님’보다, 자기와 비슷한 사연과 정서를 갖고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라이터’를 원한다. 지금은 누구나 글을 써야 하는 시대다. 그런데 글재주가 없다며 시작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다. 좀 못 쓰면 어떤가.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닌데.”
↳ '편성준·윤혜자 부부가 사는 법' 중에서.
김작가님 생각이 나던데요.
"좀 못 쓰면 어떤가.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닌데." 글쓰기를 머뭇거리는 나같은 사람에게 힘이 되는 글입니다.
조간신문에서 보고 책~주문했습니다~ㅎ
@철수와 영희 저는 책 살 생각이 없어서 박완서 산문집을 도서관에서 빌렸답니다.
유튜브에서 낭송 수필을 듣다가 필이 꽂혀서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