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성선경
파란시선 0138
2024년 3월 1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104쪽
ISBN 979-11-91897-73-9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나는 아직 못 가 본 저 세계 참 환하다
[민화]는 성선경 시인의 열네 번째 신작 시집으로, 「민화」 연작 65편이 실려 있다.
성선경 시인은 1960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널뛰는 직녀에게] [옛사랑을 읽다] [몽유도원을 사다] [모란으로 가는 길] [진경산수] [봄, 풋가지行] [서른 살의 박봉 씨]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파랑은 어디서 왔나] [까마중이 머루 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 [아이야! 저기 솜사탕 하나 집어 줄까?] [네가 청둥오리였을 때 나는 무엇이었을까] [햇빛거울장난] [민화], 시조집 [장수하늘소], 시선집 [돌아갈 수 없는 숲] [여기, 창녕](공저), 시작에세이집 [뿔 달린 낙타를 타고]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았다], 산문집 [물칸나를 생각함], 동요집 [똥뫼산에 사는 여우](작곡 서영수)를 썼다. 고산문학대상, 산해원문화상, 경남문학상, 경상남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장 아메리는 늙어 감을 저항과 체념 사이의 모순으로 해명한다. 몸과 삶의 변화에 저항하면서 곧 체념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말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모호함의 시간은 죽음이 숙명인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놀라운 일은 장 아메리가 [늙어 감에 대하여]를 쓴 나이가 고작 쉰다섯 살 때라는 점이다. 성선경 시인은 예순을 넘기면서 「민화」 연작시 65편을 통하여 어떤 노경(老境)과 삶의 역설을 풀이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민화’는 웃음으로 표현하고 체관으로 말하려는 삶의 풍경이자 이야기이다. 「시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서재는 ‘소소헌(笑笑軒)’이다. 자신을 향한 내적 웃음을 지향하려는 의지가 담겼다. 타인을 교정하려는 웃음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체관하려는 웃음이다. 이는 “짙고 옅음”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저마다 생의 내력을 긍정하고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이상 구모룡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민화란 무엇인가? 반복이다. 머라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리듬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고, 생로병사고, 희로애락이다. 거기서 거기이고, 흔하디흔한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리듬이다. 해학이고 말놀이다. 슬픈 사람이 술 푸고, 아네모네에 아내 몰래 눈길을 주고 “아내 안 해” 할 때는 천지가 깜깜해지는 말놀이고, 가뭇하니 조는 내게 “당신 잠 오지?” 하고 묻는 아내에게 “당신이 자모지! 나는 엄부” 하고 능청을 떠는 말놀이다. 꽃씨를 묻고는 ‘필 거지?’ 하고 묻는 말놀이다. 마냥 말놀이는 아니고, “그릇 던지요” 해서 번개처럼 놀라는데 “그라든지요” 하고 천둥소리가 따라오고, 죽은 국화가 주권 국가가 되는, 댓잎에 비 오는 소리가 되는 서글픈 말놀이다. 그러다 문득, 댓잎에 비 오는 소리? 좋은데! 하면서 행간에 오래 잠겨 있게 되는, 민화는 말 그림이다. 그 말 그림 안에서는 일(의 순서와 경중과 복잡을 외며)도 놀이가 된다. 한 손은 카누 양손은 카약 하며 분별하고, 두루치기는 끓이는 것, 제육볶음은 볶는 것, 주물럭은 굽는 것 하며 민화는 가르치고 깨닫는 천지현황 기억의 말이다. 일단 놀고 놀다 보면 죽도 되고 밥도 되는 생활의 말이다. 창원소방서 맞은편 밀면집 사훈처럼 길을 내고 문을 여는 말이다. 원래는 없던 공간인데 불안은 불의 안, 하면 열리는 펄펄 끓는 상상력이고, 말의 주문이라서 거기가 달팽이 뿔 속이든 물 없는 바다 사막이든 시끄럽게 떠드는 나무의 입이든 반드시 한번은 그 말을 따라갔다 온다. 사람이 먹어 치운 술병들이 급기야 사람을 먹어 치운 뒤 부는 괴괴한 휘파람을 들려주고, 작은 옹기에 기어이 큰 옹기를 담으려는 옹기장수의 억지를 비아냥대는 듯 경원하고, 펄펄 눈이 내려 가난이 가난을 덮는 징글(벨) 징글(벨)한 시절에도 산타클로스 같은 군밤장수가 있어 따뜻했던 한때의 기억을 사금파리처럼 만지작거리는 그는 누구인가? 그는 점차로 눈이 흐려지고 무릎이 아파 내려설 계단 한 층을 연옥에서 지옥 보듯 하지만, 그의 시선에서 세상사는 더 깊숙한 그림이 되었다. 힘주거나 우기지 않으면서도 세상사가 다 그냥은 없고 천지간이 다 연비간임을 말하는 그가, 웃고 있는데 눈이 젖은, 그가 시인 성선경이다.
―이현승(시인)
•― 시인의 말
나쁘게 보아 내치려면 잡초 아닌 게 없고
예쁘게 보아 보듬어 안으려면 모두가 다 꽃이다
이젠 짙고 옅음도 경계가 흐릿하다
내 화단의 남천이 올해는 더 무성하게 자란 듯
비바람과 우박 서리를 다 견딘 저 나무
열매가 참 붉기도 하다.
甲辰 早春
笑笑軒에서
•― 저자 소개
성선경
1960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널뛰는 직녀에게] [옛사랑을 읽다] [몽유도원을 사다] [모란으로 가는 길] [진경산수] [봄, 풋가지行] [서른 살의 박봉 씨]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파랑은 어디서 왔나] [까마중이 머루 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 [아이야! 저기 솜사탕 하나 집어 줄까?] [네가 청둥오리였을 때 나는 무엇이었을까] [햇빛거울장난] [민화], 시조집 [장수하늘소], 시선집 [돌아갈 수 없는 숲] [여기, 창녕](공저), 시작에세이집 [뿔 달린 낙타를 타고]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았다], 산문집 [물칸나를 생각함], 동요집 [똥뫼산에 사는 여우](작곡 서영수)를 썼다.
고산문학대상, 산해원문화상, 경남문학상, 경상남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 차례
시인의 말
민화 1 – 9
민화 2 – 10
민화 3 – 11
민화 4 – 12
민화 5 – 13
민화 6 – 14
민화 7 – 15
민화 8 – 16
민화 9 – 17
민화 10 – 18
민화 11 – 19
민화 12 – 20
민화 13 – 21
민화 14 – 22
민화 15 – 23
민화 16 – 24
민화 17 – 25
민화 18 – 26
민화 19 – 27
민화 20 – 28
민화 21 – 29
민화 22 – 30
민화 23 – 31
민화 24 – 32
민화 25 – 34
민화 26 – 36
민화 27 – 38
민화 28 – 39
민화 29 – 40
민화 30 – 42
민화 31 – 44
민화 32 – 45
민화 33 – 46
민화 34 – 48
민화 35 – 50
민화 36 – 52
민화 37 – 53
민화 38 – 54
민화 39 – 55
민화 40 – 56
민화 41 – 57
민화 42 – 58
민화 43 – 60
민화 44 – 61
민화 45 – 62
민화 46 – 63
민화 47 – 64
민화 48 – 65
민화 49 – 66
민화 50 – 67
민화 51 – 68
민화 52 – 70
민화 53 – 72
민화 54 – 73
민화 55 – 74
민화 56 – 75
민화 57 – 76
민화 58 – 78
민화 59 – 79
민화 60 – 80
민화 61 – 82
민화 62 – 83
민화 63 – 84
민화 64 – 86
민화 65 – 87
해설 구모룡 웃음과 체관의 시 – 88
•― 시집 속의 시 세 편
민화 3
앵두나무 아래로 가서 저 할머니 금방 앵두다
앵두 같은 눈빛, 앵두 같은 볼, 앵두 같은 생각
열일곱, 열여덟 입술이 붉어진
앵두를 따며 앵두 나라로 망명하여
앵두 나라의 시민
처녀 적 앵두 나라의 시민
앵두나무 아래로 가서 저 할아버지 금방 앵두다
앵두 같은 나이, 앵두 같은 말투, 앵두 같은 휘파람
열일곱, 열여덟 눈빛 초롱한
앵두를 주우며 앵두 나라로 망명하여
앵두 나라의 시민
총각 적 앵두 나라의 시민
앵두나무, 앵두나무 아래로 가서. ■
민화 10
군밤장수가 있었네 눈이 오는데
펄펄 눈이 오는데 군밤장수가 있었네
내 팔짱을 낀 그니에게 무얼 사 줄까?
걱정할 필요도 없게 노릇노릇
군밤장수가 있었네 눈이 오는데
징글벨 징글벨 눈이 오는데
군밤장수가 있었네 따끈따끈한 군밤이
한 소쿠리에 삼천 원 군밤장수가 있었네
그분이 오신 날을 며칠 앞두고
펄펄 눈이 오는데 군밤장수가 있었네
가난이 가난을 덮으며
징글벨 징글벨 눈이 오는데
내 팔짱을 낀 그니에게 무얼 사 줄까?
걱정할 필요도 없게 노릇노릇
군밤장수가 있었네 따끈따끈한 군밤이
한 소쿠리에 삼천 원 군밤장수가 있었네. ■
민화 56
동지매(冬至梅)를 보려거든 아직 녹지 않은 겨울도 약간, 불같은 사랑을 하려거든 거짓말도 약간, 복수초가 피었다고 저 봄을 가지려거든 꽃샘도 약간, 네게로 가는 기쁨 다 가지려거든 불안도 약간, 화사한 봄볕을 즐기려거든 봄바람도 약간, 내 사랑을 다 전하려거든 짠 소금도 약간, 빼곡한 책장에는 빈 공간도 약간, 봄 오는 화단에는 쓸쓸함도 약간, 미안하다 말하려거든 눈물도 약간, 좋은 그림을 그리려거든 여백도 약간, 아직도 우리에게 사랑이 남았다면 헤어질 준비도 약간, 아네모네가 피었는데 어쩌나 아내 몰래 눈길도 약간, 늘 우리와 함께하는 약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