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죽음 앞에 선 왕중양
왕중양은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왕중양은 얼굴을 문 쪽으로 길게 내밀었다.
"열려 있으니 들어오시게."
그는 의형제를 맺은 두 사람 중 하나일 거라 짐작했다. 왕중양의 예상이 맞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은 바로 모용준이었다. 그는 긴요하게 할 말이 있어 들어온 사람처럼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쭈뼛거렸다. 왕중양이 그의 심중을 꿰뚫어 보았다.
"둘째 동생, 할말이 있는 것 같은데 어서 말해 보게."
모용준이 방안을 슬쩍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큰형님, 말씀드리기 송구합니다만……."
"동생과 나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어서 털어놓게 나."
모용준이 결심을 한 듯 얼굴에 힘을 모으더니 말을 이었다.
"큰형님, 나와 셋째 동생은 강호를 돌아다닐 생각이 있지만 사실 형님 때문에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끝을 흐리는 모용준의 태도에 왕중양은 긴장했다. 어떤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올지 여간 궁금하지가 않았다.
"동생, 그만 애태우고 어서 속시원히 말해 보라니까."
"알겠습니다. 형님께서 부상을 입어 무척 걱정이 됩니다. 강호를 돌아다니다 보면 숱한 패거리들과 본의 아닌 싸움도 벌여야 하는데 형님 때문에 곤란을 받을까 염려가 되는군요."
왕중양이 잠시 눈을 감고는 상념에 빠졌다. 사실 모용준의 말이 섭섭하기는 했지만 그를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입장이 바뀌었더라도 그같은 기우는 변함이 없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 점이라면 너무 염려를 말게. 그렇지 않아도 난 가 볼 데가 있다네."
왕중양은 지금 거짓말을 하는 중이었다. 모용준이 한숨을 내쉬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형님께 말씀을 드릴 참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형님께서 저의 모용세가에 한동안 머물러 있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만 어떠신지요? 저와 셋째가 자주 찾아 뵙고 형님의 쾌유만을 기다리겠습니다."
왕중양은 모용준의 말에 크게 감동했다. 두 동생들을 따라다니며 짐이 되는 것보다는 혼자 남아 상처를 치유하고 무예도 더 연마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와 셋째의 무예로 형님을 모시고 다니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다시 입을 연 것은 모용준이었다. 그는 왕중양의 기색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셋째가 자지 처녀와 인연을 두는 바람에……."
놀란 왕중양은 모용준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변명을 위해 꾸며낸 말 같지는 않았다. 황중양은 비로소 임조영과 자지 처녀가 그런 사이라는 것에 서운한 느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모용준의 말이 사실이고 임조영이 자지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더 이상 강호를 떠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되면 모용준 혼자만이 외로운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일단 셋째에게 속마음을 타진해 보고 난 뒤 결정을 하도록 하세."
왕중양이 수습책을 꺼내자 모용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셋째 역시도 형님을 혼자 남겨 두고 싶어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는 없네. 나를 데리고 가자면 힘이 몇 배 더 들텐데."
"생각 같아서는 셋째에게 자지 처녀를 한곳에 정착시키도록 종용하고 싶지만 말을 들을까 걱정이 되는군요."
"자지 처녀는 셋째와 함께 있어야 해. 만약에 두 사람이 이미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면 말이야. 내가 떠나는 게 좋겠어. 아니 지금 당장 일어서야겠네. 셋째에게는 동생이 잘 말해 주게나."
그러자 모용준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수하 두 사람을 급히 불렀다. 그중 하나는 손에 구리망치를 들고 있는 아주 건장한 사내 였는데 곱슬곱슬한 턱수염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마치 목숨을 바쳐 은혜에 보답했다는 개백정 주해(朱亥)의 모습과 흡사했다. 다른 한 사내는 아주 여윈 키다리였는데 어딘가 간사해 보이는 구석이 엿보였다. 흰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아 더욱 그렇게 보였다.
모용준이 설명했다.
"이 두 사람은 나와 형제처럼 지내고 있는데 한 사람은 주정(朱亭)이라 부르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목우(程雨)입니다. 이들이 형님을 모용세가로 모셔 갈 겁니다."
곧 주정과 목우가 왕중양에게 예를 올렸다. 모용준이 두 사람에게 일렀다.
"이분은 나의 큰형님이시다. 그러니 두 사람은 모용세가까지 잘 모시도록."
왕중양은 이들과 함께 객점을 떠나게 되었다. 왕중양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 속으로 생각했다. 무공이 사라진 자신이 두 동생들에게 괜한 짐으로 맡겨질까 봐 내심 걱정되던 차였다. 그렇기에 모용준의 말대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다음 대사를 도모하는 게 나을 듯 싶었다.
세 사람은 말을 달려 임안을 벗어났다. 그들은 강남 한복판을 가로질러 며칠 후 태호(太湖)에 당도하게 되었다.
어느새 다시 날이 어두워 하늘에는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중양은 의미로운 눈길로 거대한 태호의 물결을 응시했다. 그는 갑자기 기분이 유쾌해져 들뜬 목소리로 떠들었다.
"이 태호는 정말 좋은 곳이오. 우리 배를 타고 마음껏 즐깁시다."
두 사람이 깍듯이 예를 올리며 대답했다.
"공자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지요."
이들은 곧 배를 한 척 빌려 몸을 싣고는 호수 안쪽으로 노를 저어 나갔다. 호수를 바라보는 왕중양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빛이 났다.
배가 이윽고 호수 한복판에 이르자 주정과 목우가 술과 요리를 꺼냈다. 주정이 말했다.
"공자님, 월색도 좋은데 한잔 하시지 않겠습니까?"
"임자들이나 드시오. 난 호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취흥이 나는구려."
그러자 주정이 약간 못마땅한 기색을 나타냈다.
"우린 공자님이라 받들고 있는데 공자님은 우릴 무시하고 있군요."
그 말에 왕중양이 긴장을 하며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허허, 주 형, 난 모용준과 의형제를 맺었소. 그대들은 나의 둘 째와도 형제 사이이니 나와도 역시 수족 같은 사이가 아니겠소. 그러니 달리 생각 마오. 내가 술을 마시고 싶었다면 벌써 찾았을 거요. 하지만 난 지금 저 달빛과 이 호수를 즐기고 싶소."
그러자 주정이 버럭 화를 내었다.
"우린 공자님을 꼭 마시게 하겠수다! 어쩔 셈이오?"
고집을 부리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왕중양이 하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 형께서 정 이렇게 나오니 그러리다."
그는 이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술만 자셔서야 어디 재미가 나겠소.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더할 나위 없는 취흥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주정의 말에 목우가 거들며 나섰다.
"좋지, 그거 좋지!"
왕중양은 주정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는 이곳까지 오면서 별로 입을 열지 않는 사내로 비쳤었다. 그런데 그런 주정이 갑자기 화젯거리를 찾자 왕중양은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주정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먼저 한마디 하겠소. 이전에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게 된 일이 있었소. 그런데 의형제를 맺기 전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지요. '난 내가 죽을 때 나머지 두 형제와 한곳에 묻히기를 원하오.'하지만 이 사람은 속으로는 전혀 다른 꿍심을 갖고 있었소. 그는 속으로 두 형제들이 먼저 죽기를 원하고 있었던 거죠. 또한 다른 한 형제가 말하기를 자신이 죽게 되면 두 형제가 친 혈육처럼 슬피 울어 주기를 바랐지요. 하지만 이 사람 역시 속으론 두 사람의 아들이 죽고
그 손자가 결혼을 할 때까지도 살아 있고 싶어했습니다."
왕중양은 주정의 말을 들으며 문득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에게서 피비린내를 맡았던 것이다.
'둘째 동생 신변에 이같은 자들이 있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조만간에 만나게 되면 깨우쳐 줘야겠어. 조심하라고 말이야.'
속으로 혼자 다짐을 하고 있는데 이번엔 목우가 입을 열었다.
"에이, 그런 얘기는 재미가 없어. 차라리 술먹기 내기를 하는 게 어때? 진 사람이 물에 들어가는 거야."
여름을 넘긴 가을 중간이라 물은 몹시 찼다. 그런데도 목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이다. 주정이 껄껄 웃으며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거 좋지. 내가 먼저 너와 내기를 하겠어!"
그러면서 그가 슬쩍 왕중양의 눈치를 살폈다.
"저분은 공자라 우리와는 내기 따위를 하지 않을 게 분명해. 그러니 우리끼리 즐기자구."
"잠깐, 나도 내기를 하겠소!"
왕중양은 그들에 대한 속마음을 숨기고 가급적이면 이 두 사람과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왜냐하면 이들과 아직도 며칠을 더 함께 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사이가 벌어지면 아무래도 손해를 입을 것만 같았다.
주정의 안색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지껄였다.
"좋소. 공자님이 그렇게 마음을 정한 것을 대환영하오."
술마시기 내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대적하려니 왕중양이 딸렸다. 그는 내기에 질 때마다 벌주를 마셔야 했다. 이래저래 취한 왕중양은 앞이 약간 흐려지는 기운에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주정이 흥에 취해 팔을 휘저으며 떠들어댔다.
"이제부터는 처음 약속대로 지게 되면 호숫물에 뛰어드는 거요."
다시 가득 채운 술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엔 주정이 지고 말았다. 그는 약속대로 호수에 몸을 던졌다. 목우가 그를 두고 빈정댔다.
"자낸 평소에도 좀 못된 성미를 지녔었다구. 그러니 물 속에서 정신을 말끔하게 씻고 나오게나."
그러자 주정이 손과 발로 물을 저어 대며 숨가쁜 소리를 냈다.
"뭐, 뭐라고! 요 놈의 자식, 네가 나에게 욕을 한다 이거지? 허헉!"
그가 곧 허우적대더니 배 위로 올라왔다.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 졌다.
"다시 하자. 이번엔 너희들 두 사람을 물 속에 처넣을 테니 두고 보라구!"
달빛은 더욱 창연하여 배의 그림자를 호수 위로 드넓게 펼쳐 놓았다. 이들은 배 위에 앉아 다시 술내기를 시작하였다.
드디어 왕중양이 걸리고 말았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 속으로 풍덩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난 헤엄에 서투르니 이만 올려 주오!"
허우적대던 왕중양이 뱃전으로 기어오르려 하자 주정과 목우가 그쪽으로 다가갔다. 왕중양은 간신히 뱃전에 매달린 채로 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취기로 얼룩진 시야에 달빛마저 가미해 이들의 얼굴이 한층 괴상하게 비쳤다. 마치 호수에 살고 있을 듯한 괴물을 보는 듯했다. 왕중양이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애원했다.
"어서 손을 잡아 주오. 내가 기력이 모자라 혼자는 힘이 드오."
그런데 주정이 느닷없이 손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드는 것이 아닌가. 또한 왕중양은 그의 손에 큰 구리망치가 들려져 있음을 깨달았다.
"에잇!"
그가 힘껏 왕중양을 향해 망치를 내리쳤다. 왕중양이 머리를 옆으로 피하는 바람에 뱃전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시 왕중양이 물을 헤치며 손을 뻗어 뱃전을 잡으려고 하는데 주정의 망치가 내리꽂혔다. 이번엔 왕중양의 어깨에 적중하고 말았다.
"악!"
왕중양은 비명을 내지르며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왕중양이 가라앉은 곳에서 꼬르륵꼬르륵 하는 물방울들이 솟아오르더니 곧 그가 떠올랐다.
"푸우! 어서 손을!"
왕중양이 소리를 질렀지만 주정이 쓴웃음을 지으며 못 들은 척했다.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목우가 다급히 주정을 불렀다.
"주정, 자네 미쳤나? 저분은 모용 공자의 큰형님이신데 어쩌려고 하는가?"
그러나 주정은 이미 왕중양을 죽일 속셈인 모양이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왕중양에게 매서운 눈초리를 던졌다.
"난 저 놈을 죽여 버릴 테다! 큰형님은 무슨 놈의 큰형님이야. 내 보기엔 저 놈은 쓸모 없는 궤짝에 불과하다구. 기력도 없는 형편없는 몸으로 어찌 우리 공자님의 형님 노릇을 하겠다는 게야!"
주정의 화는 좀체 가라앉을 줄 몰랐다. 왕중양은 망치로 얻어맞은 어깻죽지의 통증 때문에 더 이상 뱃전을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고통스런 얼굴로 숨을 몰아쉬자 옆에 있던 목우가 대신 손을 내밀었다.
"자, 큰형님! 내 손을 잡아요."
그러자 주정이 금속성의 목소리로 목우의 행동을 꾸짖었다.
"가만 놔두지 못하겠어! 이대로 태호 물에 빠져 죽게 놔두란 말이다!"
"모용 공자가 우리에게 한 말을 자넨 잊었나? 이분을 죽인다면 훗날 어찌 모용 공자를 대하겠는가?"
주정이 외면하며 혼자말처럼 흘렸다.
"난 조금도 모용 공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없어. 구태여 있지도 않은 마음까지 모아 가며 머리 숙이고 싶지는 않아."
그러나 목우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왕중양을 얼른 끌어 올렸다. 배 위로 올라온 왕중양은 기진맥진하여 머리를 숙인 채 한동안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주정이 다가와 망치를 높이 쳐드는 것을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악!"
왕중양은 눈앞으로 스치는 노을을 보았다. 그것은 아찔함을 동반한 섬광 같은 빛이었다. 주정이 휘두른 망치의 위력은 왕중양의 가슴이 한 뼘이나 깊이 들어갈 정도로 대단했다.
다시 물 속으로 곤두박질 친 왕중양은 서서히 떠오르며 사지를 길 게 늘어뜨렸다.
두 사람이 방금 왕중양을 해치는 것을 본 뱃사공은 겁을 먹고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주정이 힐끔 돌아보며 그를 불렀다.
"이봐 사공!"
주정이 묘하게 입꼬리를 위로 치켜 올리며 물었다.
"사공, 너는 방금 전 무엇을 보았지?"
"전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뎁쇼."
사공은 질린 목소리로 들릴락말락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목우가 상체를 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대는 똑똑히 그 눈깔로 보고도 왜 거짓말을 하는가?"
뱃사공이 더욱 졸아든 목소리를 쥐어짜듯 말했다.
"저, 정말 모릅니다요."
목우는 전혀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애써 왕중양을 끌어올려 주던 방금 전과는 다른 또 하나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똑똑히 목격한 사공은 그래서 더욱 몸을 벌벌 떨어댔다.
"악!"
주정이 날린 구리망치에 사공의 머리는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잘려 나간 목이 먼저 물 속으로 떨어지고 곧 몸뚱이가 따라 풍덩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주정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술잔을 높이 들자 목우도 호탕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어 건배를 했다. 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웃음 소리에 달빛마저도 마구 흔들렸다.
해불개는 다시 한 번 손에 힘을 주어 옥총의 뺨을 갈겼다.
"욱!"
옥총이 옆으로 몇 걸음 미끄러지다가 얼른 버티어 섰다. 그의 입과 귀에서는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불개는 유기에 대한 앙갚음을 잊을 수 없는지 씩씩거리며 중얼댔다.
"옥총 동생, 이건 분명 그대를 때리는 게 아니라 저 유기란 놈을 때리는 걸세!"
해불개가 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유기가 약간 긴장을 한 얼굴로 옥총을 응시했다.
"옥총 동생, 그댄 왜 이 고통을 자청하는가?"
유기의 안타까워하는 말을 뒤로한 채 옥총이 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불개 형님, 어서 더 때리시오."
그러자 해불개가 유기를 돌아보며 도리질을 해댔다.
"안 되겠어. 내 손에 그대가 큰 타격을 입을까 걱정이 되네. 나머지는 저 유기가 맞도록 하는 게 좋겠어."
유기가 나섰다.
"좋소. 이봐 옥총, 자낸 어서 물러나게."
그런데 해불개가 혼자만의 생각이 있는지 손을 들어 유기를 제지했다. 옥총이 고개를 들어 해불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따악! 하며 해불개의 손이 번개같이 옥총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엔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옥총이 꼼짝을 않은 채 버티고 서 있는 게 아닌가. 해불개는 체면에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했는지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모두들 휘둥그래진 눈으로 해불개와 옥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해불개가 다시 손을 들어 옥총의 뺨을 갈겼
다. 그런데 이번엔 처음처럼 옥총이 맥없이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옥총이 겨우 일어나더니 볼멘소리를 냈다.
"불개 형님, 어서 더 때리시오!"
옥총의 뺨은 퉁퉁 부어 올라 마치 심통이 난 사람처럼 돼 버렸다. 이빨도 흔들리는 것 같아 옥총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는 만약 해불개가 몇 대 더 손을 쓴다면 상처를 달래는 데도 오랜 시일이 걸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해불개가 질렸다는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옥총 동생, 어서 물러나게!"
옥총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해불개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온통 피멍이 들어 보기조차 민망할 지경이었다. 옥총이 아픔을 참아 가며 입을 떼었다.
"불개 형님, 이제 겨우 네 대를 맞았을 뿐이오. 약속대로 하지 않고 여기서 중단한다면 난 결국 쓸데없는 공매를 맞은 셈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옥총, 그대는 총명한 사람이야. 그런데 어째서 괜한 고집을 부려 죽음을 재촉하려는가? 그댄 정말 유기를 위해 죽을 각오라도 돼 있는 건가?"
옥총이 탈바가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우스운 형상으로 지껄였다.
"불개 형님이 설마 날 죽이기야 하겠소?"
옥총은 그러나 속으로 만일 해불개가 다시 손을 든다면 더 이상 견뎌 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유기를 돕자고 나선 일인데 여기서 중단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할 게 분명했다. 유기가 더는 못 보겠다는 듯 침통한 얼굴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옥총 동생은 이만 물러나게. 내가 차라리 저 놈과 한판 겨루겠어!"
"안 돼요!"
옥총이 매우 단호하게 제동을 걸자 유기가 주춤했다. 옥총이 아예 유기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해불개의 성질을 돋우었다.
"왜 겁이라도 나는 거요? 망설이지 말고 어서 때리란 말이오!"
그러자 해불개가 화를 벌컥 내며 곧 잡아먹을 듯 이빨을 내보였다.
"오냐, 좋다. 죽여 달라고 해도 난 마다하지 않겠다!"
딱! 딱! 딱! 해불개가 연거푸 옥총의 뺨을 후려갈겼다.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옥총은 그만 정신을 잃고는 바닥에 녹아 내리듯 쓰러졌다. 해불개가 아직 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유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유기 네 놈은 그래도 죽어야 한다! 옥총이 대신 매를 맞았다고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러나 유기의 눈에는 오로지 자기 때문에 변을 당한 옥총만이 들어왔다. 그는 옥총을 끌어안고는 목을 놓았다.
"옥총 동생!"
다행히 옥총은 천천히 의식을 되찾고는 눈을 떴다. 유기를 본 옥총이 고통을 이빨로 사려물며 어렵게 입을 떼었다.
"혀, 형님은 무엇 때문에 그까짓 반화대회를 구경하신단 말이오. 형님은 이제 연세도 많으신데 그걸 구경해서 무엇하겠소?"
유기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래, 동생 말이 맞아. 난 다시는 이같은 강호의 싸움엔 말려들 지 않을 생각이야."
유기는 마음이 상해 더는 옥총을 하라볼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해불개가 다가와 옥총을 향해 지껄였다.
"그래도 더 맞겠다고 하겠는가? 고집을 버리게나. 그러다가 죽는다구."
"유기 형님, 절 좀 부축해 줘요."
유기에게 의지한 채 일어선 옥총이 해불개를 노려보았다.
"불개 형님, 당신은 이제 나의 형님이 아니오. 그러니 나를 동생으로 여기지 말고 어서 마저 때리시오. 내가 이까짓 아픔을 참아내지 못한다면 어찌 옥면낭군(玉面郎君) 옥총으로 강호에서 불릴 수 있겠소?"
"하하하!"
해불개가 크게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음을 싹 거두고는 옥총의 눈을 빼먹을 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역시 자낸 심지가 곧은 데가 있어 좋아. 좋다, 그럼 어디 자네의 그 잘난 이름을 지켜 보라구!"
말을 마친 해불개가 이번엔 아예 몸을 날려 옥총의 면상을 호되게 갈겼다.
"웁!"
옥총은 뒤로 자기 키보다 높게 떠서 뒤로 날아갔다. 옥총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질렀다. 돌로 된 바닥에 금이 갔던지 아니면 옥총의 몸 어디가 부러진 듯했다. 그런데도 옥총은 굴하지를 않았다.
"흐흐, 겨우 이 정도요. 이처럼 용기가 있고 무예가 뛰어난 당원이 왜 유운장 사람들 앞에서는 손안에 잡힌 개미처럼 허둥대었단 말이오? 또한 어찌 임 공자 앞에서는 말 한마디 꺼내지도 못한 채 돌아섰단 말이오?"
해불개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들어갔다. 가슴에서 열기가 솟구쳐 지레 고꾸라질 것 같은 해불개는 입을 벌린 채 옥총을 노려보았다. 강호에서 이처럼 사내답지 못한 일들이 알려진다면 그것은 곧 최후를 예고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어찌 강호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단 말인가. 해불개가 분노를 짓누르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
"허허, 그대는 정말 내 형제답게 처신을 하려는군."
그러나 그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해불개는 더 이상 솟아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강호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일이 있어도 옥총의 기고만장함을 영원히 잠재울 생각이었다.
딱! 딱! 딱! 해불개는 쏜살같이 달려들어 옥총의 뺨을 마구 갈기기 시작했다. 옥총은 더 이상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얻어맞고는 죽 뻗어 버렸다. 하지만 부릅뜬 두 눈은 여전히 해불개를 향 해 열을 내뿜고 있었다.
해불개가 씩씩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크게 몇 번 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옆으로 길게 찢으며 말했다.
"나와 유 장주 사이에 일은 이 정도로 하고 묻어 두겠다. 하지만 훗날 다시 만나 그 죄값을 받아낼 것이다! 얘들아, 가자!"
해불개가 명령을 하자 살아 남은 부하들이 그를 따라 떠나갔다.
임조영과 자지는 침대 위에 나란히 누운 채 말이 없었다. 자지 처녀의 가냘프면서 규칙적이지 못한 숨소리가 들려 왔다. 두 사람은 쉽게 잠을 이를 수가 없었다. 자지가 한쪽으로 몸을 옮기며 한 숨을 내뱉었다.
"그분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임조영은 언뜻 짚이는 데가 있어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입을 열었다.
"누구를 말하는 거지?"
자지는 임조영이 왕중양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채 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눈치가 무딘가 봐요. 호호호!"
"왜 웃지?"
"아니……."
이곳으로 오던 길에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은 일이 떠올라 황급히 말문을 닫아 버렸다. 그때 임조영은 너무도 태연하게 두 사람과 의형제의 굳은 결의를 다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자지는 왕중양과 모용준이 어리석고 우둔하게 여겨져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웃음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고개를 들어 임조영을 바라보았다.
"왕 공자는 좋은 사람이지만 그분은 달라요."
"누구? 모용준을 두고 하는 말이냐?"
"예."
"그럴 리가 없다."
다시 자지의 긴 한숨 소리가 방안을 메웠다. 자지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털어놓은 것은 그 긴 한숨이 지나고 또 얼마간의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머물다 간 뒤였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어느 날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던 것이다. 그때 어머니는 피살이 되었고 혼자 지금까지 어려운 나날들을 보내 왔었다.
자지의 사정을 듣고 난 임조영은 나지막이 한숨을 부려 놓았다.
이때였다.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임조영이 머리를 그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누구요?"
모용준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 왔다.
"셋째 동생, 큰일이 났어. 빨리 일어나 보라구!"
두 사람이 급히 일어나 얼른 문을 열어 주었다. 모용준이 안으로 들어서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임조영 방에 있는 자지 처녀를 확인한 그는 얼굴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그러나 모용준은 더 급한 일이 벌어졌다는 듯 임조영의 팔을 잡았다.
"큰형님이 떠났는지 보이지가 않아!"
임조영이 깜짝 놀라며 문밖으로 황급히 시선을 던졌다.
"도대체 큰형님이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모르겠어. 큰형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난 내 방으로 갔을 뿐이야. 이젠 어떡한다지! 한 가지 짚이는 것은 형님과 나눈 대화였어. 형님은 나와 동생에게 부담이 된다는 말을 했었어. 난 극구 말 렸지. 가려거든 다 함께 가자고 했었어. 또 동생이 형님을 극진히 생각하고 있다는 말도 했었지. 만약 정 떠나려거든 동생에게 알리고 나서 가시라고까지 했는데. 그런데 큰형님은……."
갑자기 말끝을 흐리는 모용준에게서 무언가 범상하지 않은 기운 을 감지한 임조영이 물었다.
"그래, 큰형님이 또 뭐라고 하시던가요?"
"큰형님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원래 우리와 의형제를 맺을 마음이 없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우리 두 사람과 함께 있자니 부담스럽기만 하다면서……. 내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네. 난 형님을 설득하다가 내 방으로 돌아왔지. 날이 밝거든 다시 의논해 보자는 약속까지 했는데 그만……."
"그래 곳곳을 찾아보기는 했나요?"
"소용없어. 벌써 멀리 가셨을 테니까. 따라잡기도 어려워."
"큰형님은 무공을 쓸 수 없는 몸인데다가 경공마저도 어려워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예요."
자지도 임조영의 말을 듣고는 함께 왕중양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런데 모용준이 안 된다며 두 사람을 막았다.
"동생, 내가 동생의 입장이라면 큰형님을 찾지는 않을 거야."
"무슨 뜻이죠?"
"큰형님은 그대와 나를 동생으로 삼고 수족같이 여기고 있어. 우리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떠났는데 우리가 다시 찾아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냔 말이지."
임조영의 가슴은 휑하니 바람구멍이라도 난 듯 허전하기만 했다. 스스로도 왜 이다지 가슴을 졸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만 큼 왕중양이 차지하고 있던 마음자리가 컸는지도 모르는 일이었 다.
"큰형님께서는 제게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나요?"
임조영은 아직 가슴에 그의 목소리와 얼굴이 깊이 새겨져 있음을 상기하며 자신을 위해 한마디라도 남겼을 거라 믿고 싶었다.
"맞아요. 왕 공자님께서 떠나실 때 필시 둘째 오라버니를 통해 무슨 말인가를 남기셨을 거예요. 여기 있는 임……, 임 공자님께 어서 말씀드리세요."
자지가 나서서 거들었다. 그녀는 자칫 임조영의 정체를 드러낼 뻔했다. 그러나 모용준은 짐짓 말을 더듬는 자지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척했다.
"큰형님은 셋째가 피곤할까 봐 깨우지 않았던 거야."
그러나 임조영이 알고 있는 왕중양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토록 무책임한 행동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갈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말게. 내가 혹시나 해서 벌써 사람을 시켜 뒤쫓게 했으니까. 그들이 큰형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 모용세가로 정중히 모시라고 당부를 했네."
자지가 임조영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모용세가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곳에 가서 일단 큰 오라버니를 만나자고요."
자지의 제안에 임조영이 순간 눈빛을 반짝였다. 별수없다는 듯이 모용준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웃었다.
"하하, 역시 동생들의 말이 옳아. 그리고 난 두 동생들의 깊은 마음에 탄복했다고. 그래, 우리 함께 가서 큰형님을 만나자고. 우리 모용세가를 두 동생이 방문해 준다면 나 역시 영광일 테니까."
모용준의 말에 모두들 길을 떠나기 위해 서두르기 시작했다.
서서히 불어오는 바람에 주름살을 더해 가는 물결이 햇빛에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었다. 호수는 마치 거센 폭풍 전야의 조짐을 예고하듯 크고 작은 물결들이 서로 어깨를 견주고 있는 듯했다. 그 호수 위로는 커다란 배 한 척이 떠 작게 흔들거렸다. 배 위에서는 젊은 남녀가 알몸인 채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절정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던 여인이 고개를 꺾으며 신음을 물었다. 잠시 후 사내가 여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두 사람은 격정의 파도를 가라앉히
듯 미풍에 몸을 말리는 자세를 취했다.
여인이 사내를 바라보다가 그 뒤로 언뜻 눈에 들어오는 물체에 눈길을 빼앗겼다.
"어머, 저것 좀 봐요. 무슨 고기가 저렇게 크죠?"
그러나 사내는 여인의 말에 귀기울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방금 전 온몸을 떨게 하던 여인과의 정사에 마음이 가 있었고 다시금 뒷덜미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욕정을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언제 이처럼 마음놓고 또 근사한 곳에서 재미를 본 적이 있었나? 그런데 그대는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군. 아직 그럴 만한 힘이 남아 있는 건가?"
사내가 투덜대자 여인이 키드득 웃었다.
"그건 당신의 재간이 형편없기 때문이라구요. 당신이 좀더 강했더라면 난 벌써 녹초가 되어 손끝조차 움직이지 못했을 거라구요."
사내가 주눅이 든 얼굴로 빈 눈길만 허공으로 던졌다. 여인이 이윽고 몸을 일으키며 명령조로 말했다.
"가서 저걸 건져 와요. 내가 상을 후하게 줄테니."
사내는 그 말에 귀가 솔깃해서 물었다.
"무슨 상을 주시겠수?"
그러자 느닷없이 여인이 사내의 뺨을 후려쳤다.
"잔말 말고 어서 건져 오기나 해요!"
사내는 투덜대며 곧 물 속으로 텀벙 하고 뛰어들었다. 사내가 천천히 헤엄을 쳐 여인이 가리킨 물체가 떠있는 옷까지 다가갔다.
"익!"
사내의 두 눈이 개구리처럼 튀어나온 것은 바로 그가 손을 뻗어 그것을 만져 보려 할 때였다. 그곳엔 죽은 시체로 보이는 시커먼 물체가 나무토막에 얹힌 채로 떠있었다.
"죽은 사람이구먼!"
사내가 배 위에서 알몸을 드러내고 서 있는 여인에게 알렸다. 여인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에그 불쌍도 하지. 어쨌든 건져 오세요. 뭐 값나갈 물건이라도 있나 보게."
사내가 호숫물이 입 안으로 들어갔는지 퇘 하고 침을 내뱉으며 투덜댔다.
"죽은 사람인데 뭐가 나올라고?"
여인이 버럭 소리치며 사내를 윽박질렀다.
"건져 오지 않으려거든 거기서 살어!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알았어. 혹시 이게 당신의 죽은 영감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사내가 시체를 배 위로 올려 놓았다. 온통 시커먼 형상을 한 시체는 축 늘어진 상태였다. 특히 가슴 부분에 커다란 상처가 나 있어 여인은 죽었을 거라 생각했다. 여인이 혀를 심하게 찼다.
"잘생긴 미남자구먼. 귀공자가 아깝게 변을 당한 모양이야."
사내가 묘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 사내가 부잣집 귀공자라는 걸 어떻게 아우?"
"당신이야 사람 볼 줄 모르지만 난 다 알지. 당신은 그저 살코기밖에는 모르는 위인이니까."
"그래, 여인이란 바로 한 덩어리의 살코기지 뭐."
여인이 사내의 빈정거림에 대꾸를 하려는데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놀란 얼굴을 했다.
"맙소사! 살아있어!"
여인이 자세히 누워 있는 사내를 살폈다. 그러자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경련을 일으키며 입술을 움직였다.
"이, 이곳이 어디요?"
여인이 대답했다.
"동정호(洞庭湖)예요."
"동정호……?"
"생각이 나질 않나요? 그래 아내가 죽었나요. 아니면 노잣돈이 떨어졌던가요?"
사내가 이윽고 정신을 수습하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슴의 통증 때문에 그는 다시 눕고만 싶어졌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가만히 보니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문짝처럼 어설프게만 보였다. 사내는 추물에 다 늙었는데 여인은 백옥 같은 살결에 제법 미모를 겸비한 젊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여인과 사내는 그제야 시체가 아닌 산 사람이 자기들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옷을 주워 입었다.
여인이 요염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당신은 성씨를 어떻게 쓰시나요?"
사내가 기꺼이 대답해 주었다.
"왕씨지요. 왕중양이라고 합니다. 당신들이 절 구해 주셨군요. 늦었지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왕중양은 깊은 상처를 입은 채로 호수 위를 떠돌았다. 원래 흐르지 않는 것이 호수였지만 날이 밝아 오면서 갑자기 세어진 바람에 그는 나뭇잎처럼 힘없이 이 배가 있는 곳까지 밀려왔던 것이다. 왕중양은 용케도 나무토막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죽기 직전에 이들에게 발견되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연명하게 되었다.
"왕씨!"
여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어쩜, 저도 왕씨인데 그럼 나이는……."
왕중양이 나이마저 말해 주자 그녀는 다시 손뼉을 쳐가며 기뻐했다.
"그럼 당신은 저에게 오라버니뻘이 되시는군요."
여인이 옆에 있던 추물인 사내에게 일렀다.
"어서 노를 저어 집으로 가자구."
그녀가 말한 집이란 바로 배 위에 있는 선창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왕중양은 그저 여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아픈 몸을 의지했다. 여인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물에 빠지게 되었나요?"
왕중양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여인은 크게 화를 내며 이까지 부드득 갈았다.
"그럼 그 두 놈이 바로 오라버니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군요? 그 모용준이란 작자는 더욱 나빠요."
그러나 왕중양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는 나와 의형제의 피를 나눈 사람이오. 다만 모용준이 붙여 준 그 두 놈들이 미울 따름이오."
여인이 왕중양을 자기 가슴에 안으며 속삭였다.
"난 왕정아(王亭兒)라고 불러요. 오라버니는 마음 편히 이곳에서 휴식을 갖도록 하세요. 이곳에서 나는 물고기를 많이 드시면 몸이 훨씬 좋아지고 회복도 빠를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 왕중양의 상처와 건강은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왕정아는 그런 왕중양을 보면서 매우 흐뭇해 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왕중양 곁에 머물면서 온갖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줄곧 왕중양 곁에서 시중을 들다가 그가 깊이 잠든 한밤중이 되어서야 잠깐 눈을 붙일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왕정아의 이런 행동에 쌍심지를 눈에 달고 나선 것은 바로 그 추물인 사내였다.
"물고기를 건지려다 결국은 애비를 얻은 셈이로군."
그는 툭하면 이렇게 비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왕정아는 사내의 질투를 따끔한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아니 바로 당신의 애비인지도 모르지요."
사내가 발끈해서 받아쳤다.
"내 아버진 너무 일찍 세상을 떠서 자식의 효성이 무언지도 잘 모르는 양반이라구."
하지만 이같은 싸움은 언제나 여인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래, 내가 당신의 목을 졸라 죽여 버려야 정신을 차리겠어요? 아니면 호수에 처박을까요?"
여인의 따금한 일침에 사내는 입을 다물고는 슬슬 눈치 살피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틈만 나면 왕정아의 심기를 살살 긁어 놓곤 했다.
"임잔 매일 저자의 얼굴을 발에 채이는 돌멩이만큼이나 실컷 감상할테지. 어떤가? 내 얼굴을 보는 것보다야 백번 낫겠지?"
"이 도깨비 같은 것아. 입 좀 다물 수 없어?"
그러자 사내가 침을 질질 흘리며 가까이 다가오려 했다. 그는 여인이 날마다 왕중양 곁에서 시중을 드느라 자기 욕심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게 불만이었다.
"저리 비켜요. 난 생각이 없으니 다른 데 가서 알아보든지……."
사내가 버럭 화를 냈다.
"뭐, 생각이 없다고? 그게 뭐 끼니 때마다 챙겨 먹는 쌀이야 나물이야? 생각이 없다고 해결되는 문제인 줄 알아? 정 그렇다면 그 녀석을 다시 물 속에 처넣고야 말겠어! 그럼 임자도 그땐 쌀이 없어도 또 나물이 없어도 게걸스럽게 밥을 찾는 지경이 될 테니 까!"
사내가 몸을 일으키며 단호하게 말하자 여인이 지지 않고 맞섰다.
"함부로 그분에게 손을 댔다가는 각오하라구요. 당신도 꽁꽁 묶어 살점을 모조리 뜯어낸 다음 고깃밥으로 던져 줄 테니까!"
사내가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할말을 잃은 듯 조용해졌다. 여인이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어깨를 계속 들먹이자 그가 여인의 팔을 잡으며 눙치듯 말했다.
"아니 정말로 화를 내는 거야?"
여인이 갑자기 비수를 꺼내 들더니 사내에게 겨누었다.
"날 건드리지 말아! 난 지금부터 잠을 자야겠으니."
사내는 별도리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왕중양을 물에서 건진 것을 크게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왕중양은 선창 속에서 두 남녀가 다투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그는 이제 몸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기에 그만 떠나려던 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가슴에 치명타를 입고도 살아난 것이 기적과도 같았다. 아직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내일 두 사람이 배를 뭍에 대면 떠나리라 다짐했다.
이튿날 배가 나루에 이르자 여인이 사내에게 일렀다.
"당신이 가서 먹을 걸 좀 사 오세요. 오라버니를 대접해야죠. 그동안 배 위에 있은 탓에 육고기는 구경도 못했잖아요. 아니면 다른 좋은 걸 좀 사 오던가."
그러자 사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좋은 거라니? 그게 도대체 뭔데? 정 그렇다면 임자가 가서 사오시지?"
"얼른 갔다오지 못하겠어요?"
"알았어. 알았다구!"
사내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발에 채이는 돌멩이를 멀리 날려 보냈다.
여인은 뱃머리에 기대어 앉아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호수에서 물을 떠올려 감는 머리는 언제나 상쾌했다. 그녀는 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서 둘러 머리를 말리고는 급히 선창으로 가 왕중양을 찾았다.
왕중양은 선창 안에서 한가롭게 앉아 있다가 여인이 허리를 숙이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왕중양 앞으로 오더니 다감하게 말을 건넸다.
"오라버니, 속이 갑갑하지 않으세요?"
"아니 괜찮소."
"아이, 동생에게 존대를 하는 오라버니도 있나요. 호호호!"
왕중양도 멋쩍은 듯 웃음을 띄웠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웃는 게 보기 싫지는 않지요? 제가 보기엔 오라버니는 아주 패기 있는 사내 같아요. 하지만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전 오라버니 앞에서 수선을 떨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전 어렸을 적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새겨 들었는데 사내가 여인과 즐기지 못하면 마음이 굶주린 거래요. 혹시 오라버니는 마음이 굶주려 있는 건 아닌지요?"
왕중양이 시선을 돌리며 정색을 했다.
"아니오!"
그러나 왕정아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는 곧 훌륭한 여인을 얻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정말 건강한 마음과 몸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녀가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벗는다는 것보다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거센 물결에 찢기고 상처입은 비늘을 털어내고 있다는 편이 더 어울렸다. 남루한 옷을 벗어 버리자 그녀는 정말 한 마리의 물고기로 다시 태어난 듯했다.
왕중양은 말없이 그녀의 행동을 지켜 보기만 했다. 미끈하고 윤기가 흘러 금방이라도 퍼득일 것만 같은 그녀의 몸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서요!"
그녀가 살짝 미소 지으며 왕중양에게 재촉했다.
"이봐 동생, 그대에게는 이미 사내가 있지 않나?"
"그는 사내가 아니에요. 그 사람은 제가 주워 온 사람인데 언제든지 물 속에 처박을 수도 있어요."
"아, 안 돼!"
"난 오라버니를 구해 드렸고 또 지금도 구원을 드리려고 하는 거랍니다. 오라버니는 마음을 굶주리고 있는데 제가 채워 드리겠어요."
왕중양은 끝까지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급기야 그녀가 왕중양의 몸을 덮치며 속삭였다.
"사내란 여인의 손길을 알아야지 힘도 생겨나는 법이에요."
그녀가 손을 왕중양의 다리 사이로 불쑥 집어 넣었다. 왕중양이 그녀를 뿌리치며 일어섰다. 그러자 그녀가 왕중양을 다시 쓰러뜨리고는 선창 밖으로 끌고 나갔다. 왕중양은 아직 기력을 완전하게 회복시킨 뒤가 아니라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그녀가 왕중양의 다리를 자기 어깨 위로 들어올리더니 협박을 했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할 수 없어요. 다시 물 속으로 던져 버리는 수밖에!"
정말 그녀는 왕중양을 던져 버렸다. 다시 차가운 물 속으로 내던져진 왕중양은 이제 죽음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기력이 이미 쇠잔해져 소리조차 지를 힘도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가라앉는 육신을 물에 맡겼다. 그런데 한 마리의 물고기마냥 뒤따라 물 속으로 들어온 그녀가 왕중양을 잡아채더니 다시 배 위로 기어올랐다.
"다시 한 번 전 오라버니를 구해 드렸네요."
"이미 말했잖는가. 난 진심으로 그대에게 감사하고 있어."
두 사람은 모두 숨이 차 가쁘게 가슴을 부풀렸다.
"하지만 전 아직 식지 않은 가슴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아요. 저 차가운 물조차도 저를 달랠 수가 없어요."
그녀의 눈에서는 또 다른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왕중양은 달리 그녀를 달래 줄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제가 그토록 뒤떨어지는 계집인가요?"
그녀는 어느 누구와도 견줄 만한 미모를 갖춘 여인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의 그녀는 촉촉하게 온몸에 매끄러운 물기를 머금고 있어 그 자태는 더욱 황홀했다. 왕중양은 저도 모르게 뛰는 가슴을 달래 고자 눈을 감았다.
"눈은 왜 감는 거죠? 차라리 보지 않겠다는 말씀인가요?"
그녀의 손이 다시 불쑥 왕중양의 아랫도리로 파고들었다. 흡 하고 놀란 왕중양이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호호호! 벌써 내게 들켜 버린 걸요. 오라버니의 마음도 이미 움직이고 있어요."
그녀는 다시금 격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들이밀 태세였다. 왕중양을 강제로 눕혀 놓고는 위로 올라가 애무를 하기 시작했다. 왕중양으로서는 난생 처음 당해 보는 괴이한 일이었다. 그녀는 배를 부리는 여인답게 힘이 강했다. 왕중양이 몸을 뒤척이려 하자 두 다리로 그의 허벅지를 내리누른 채 옷을 벗겨 냈다. 그녀는 남성을 드러낸 왕중양을 자신에게로 들이밀려고 더욱 집요하게 몸을 움직였다. 또한 손길도 그의 몸 구석구석을 바쁘게 더듬어 갔다. 마치 여인과
사내가 뒤바뀐 꼴이라 왕중양은 그 와중에서도 누가 볼까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정말 누군가 주위에 있었던 것이다.
"정아, 내가 돌아왔다!"
사내가 소리치며 배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가 신경질을 부렸다.
"벌써 오면 어떡해! 한창 재미를 보려던 참인데."
아직 그녀와 왕중양이 벌이고 있는 광경을 보지 못한 그는 농담으로 그러는 줄 알고 히히 웃기까지 했다. 사실 걸음을 돌려 다시 온 것도 그같은 의심이 생겨서였다. 그러나 훤한 대낮에 엄연히 사내가 있는 여인이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내가 배 위로 오르자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그는 한동안 쫓던 토끼 대신 나타난 호랑이 앞에 선 사냥꾼처럼 굳어진 얼굴로 그 자리에 붙박혀 버렸다.
"하필이면 꼭 결정적인 때 나타날 게 뭐람!"
그녀의 말에 정신이 들었는지 사내가 고함을 꽥 하고 질렀다.
"이게 뭐야! 둘이 붙었다 이거지?"
그녀는 아직 왕중양의 몸 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로 그를 오히려 꾸짖었다.
"썩 물러가지 못해!"
웬일인지 사내가 선창 귀퉁이로 몸을 감추며 숨을 죽였다. 그것을 확인한 그녀가 다시 왕중양의 사그라든 몸을 세우려고 애무를 했다. 그러나 왕중양은 스스로 자신을 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워낙 기력을 잃어버린데다 다시 물 속에 처박혔다 나온 탓에 그녀의 손길이 집요했지만 완벽한 남성을 만들 수가 없었다. 곧 그녀의 짧고도 깊은 신음 소리가 얼굴 전체로 훅 전해졌다.
"으음……."
왕중양은 자신의 얼굴로 짙게 전해지는 그녀의 입김을 맡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저 혼자 욕심을 채우고 말았다. 왕중양은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그녀를 요절내고 싶었다. 그녀가 왕중양에 게서 몸을 떼며 옷을 주워 입었다. 그리곤 그때까지 숨어 있던 사내에게 명령하듯 다그쳤다.
"어서 배를 몰지 않고 뭘 해요!"
"알았어. 몰면 될 거 아냐, 그래, 재미는 실컷 보았냐?"
"저분이 마음의 양식을 채우셨으니 이젠 만족하실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뭘 안다고 나서요?"
"하지만 저 사람은 배를 불렸겠지만 난 벌써 며칠째 굶었는걸!"
왕중양은 눈을 감은 채 기이하기만 한 이들의 대화를 들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이들이 나누는 대화가 바람결에 묻어 오듯 아련하게 전해졌다.
"천천히 몰아요. 호수 귀퉁이에 이르면 고기 두 마리를 잡아 오라버니께 드려야겠어요."
"영양보충을 시켜 놓고 또 굶주린 마음의 배도 채워 주시겠다고?"
이상했다. 그 사내는 여인을 미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또한 다른 사내와 몸을 섞고 있는데도 노여워하지 않았으며 아니 노여워했으며 또 아무렇지도 않게 굴기도 했다. 왕중양은 과연 이들은 어떤 사이인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는 가운데 배는 어느덧 호만(湖灣)에 이르렀다.